* 수필가이시기도 한 이상돈 장군(전 군수사령관, 육군 중장 예편)께서 카톡으로 보내주신 글이다.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 선생의 면모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글 중 한 아이가 훼손한 대작에 대해 문제삼지 말고 아이를 용서한 일은 그의 고매한 인품을 말해주기도 한다.

-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 화백과 필자
소산비경(小山秘境)
2023년 말에 가까운 친구들과 새해 희망사항을 말하는 자리에서 월 2회 문화예술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얼마 후, 지난 2월에 중앙일보에서 반가운 기사를 접했다. '경주에 7년 만에 눈 내린 날. 붓으로 빚어낸 불국설경(佛國雪景)'이란 제목으로 '불국설경' 그림 앞에 박대성 화백이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한 면에 걸쳐서 그를 소개하고 개인전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기사 중에 "이건희컬렉션'의 대표작은 국보 '인왕제색도'입니다. 훼손을 막기 위해 전시 기간에 제한을 두고 다른 작품과 번갈아 겁니다. 2022년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때 '인왕제색도'와 교대로 선보인 그림이 박대성의 '불국설경'입니다."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소산비경(小山秘境, Sublime Beauty of Sosan)'은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 화백의 해외 순회 기념전으로,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에서 2월 2일부터 3월 24일까지 열린다. 소산의 해외 순회전은 2022년에 시작하여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를 거쳐 7차례의 북미 일정을 2023년 말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전통 수묵(水墨)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끈 박 화백은 이번 해외 순회 전시와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화를 비롯한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인 학술 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미국의 4개 대학이 전시와 연계하여 발간한 평론집 형식의 도록(圖錄)은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서다. 박대성 화백은 해외 순회전에 대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진정성을 느낀 것이다."라고 소회(所懷)를 밝혔다.
박대성(1945~)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경북 청도(淸道)의 운문면 공암리에서 태어났다. 5살 되던 해에 운문산(雲門山, 1,195m)에 은거하던 빨치산 야산대(野山隊)가 내려와 그의 부모와 마을 주민 10여 명을 살해했는데 아버지 등에 업혀 울던 그도 왼쪽 팔을 잃었다. 졸지에 고아에다 불구가 된 그는 고단한 삶을 살며 성장하였다. 어려운 시기에 금천면의 금천(錦川)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고, 오로지 미술에만 정진하였다. 그 결과 국전에서 8번 입상하고,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과 대상을 수상했으며, 오늘날 '한국화의 거장'이 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해외 미술현장에서 주목 받은 대형 산수화를 조명하고 있다. 가나아트는 "무르익은 필치가 그린 대자연의 풍경은 그의 독보적 미학의 정수다. 끝없는 수행으로 마침내 비경(秘境)의 경지에 오른 소산의 산수에서 생동하는 기운은 물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순회전 출품작과 최근 완성된 신작으로 구성된 28점이 전시되었으며, '불국설경(2024)'은 252.5×1114.5cm. '금강설경(2019)'은 199×1001cm, '경복궁 돌담길(2024)'은 238.2× 296.5cm, '신라 몽유도(2022)'는 197.4×295.3cm, '삼릉비경 (2017)'은 446.7×792cm, '현율(2024)'은 238.2×296.5cm의 대작이다. 내가 세 번 근무했던 15사단에 위치하고 있는 대성산(1.175고지)의 대성(大成)과 박 화백의 이름 대성 한자가 같다고 했더니, 그는 화첩에서 대성산을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분은 분명 "크게 이룸, 또는 그런 성과"를 말하는 대성이었다.
소산의 대인다운 면모를 보여준 일화(逸話)가 있다. 2021년에 '경주솔거 미술관', 박대성 화백의 특별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하다'에 전시한 1억 원 상당의 작품(39cm×19.8m)에 한 아이가 올라가서 작품을 훼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소산은 "아무 문제 삼지 말라."라고 미술관 직원에게 말했다. 그는 "다시 살펴보니 어린 아이의 눈에는 미끄럼틀처럼 보이기도 하겠다. 어린 아이가 미술관에서 나쁜 기억을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사람끼리 굳이 원수지고 살 필요가 없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 작품을 210만 명이 넘게 봤을까? 그 아이는 봉황(鳳凰)이다. 봉황이 지나간 자리에 그 정도 발자국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면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었다.
그 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소산이 아니라 대산(大山)인 박대성의 면모를 보았고, 그의 인품에 큰 감동을 받았다. '경주솔거미술관'에는 박 화백이 기증한 그림 435점과 서예·도자기 등 830점이 있다. 박대성 화백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작품들에 감동을 받은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득도(得道)한 경지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동석한 미술가는 "신의 경지입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분은 하수들의 촌평에 미소를 지었다.
전시회장에 2022년 카자흐스탄 초대전 당시 대사였던 현직 외교관 부부가 찾아와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들은 전시회 때의 추억담에 이어 디자인을 전공한 부인이 박 화백으로부터 감동을 받아 지금은 수묵화를 배우고 있다면서 습작들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방문한 날 하루 전에는 추기경이 전시회장을 찾아와 2시간 동안 머물면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대화를 했다고 하였다. 주된 화제는 '대자연의 위대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 화백이 경주에 거주하고 있는 데다. 불국사와 불탑 등 신라문화를 그린 작품이 많은 것을 보고 불교 신자인줄로 생각하지만. 그는 가톨릭 신자다.
내가 '경주솔거미술관'에 많은 작품들을 기증한 것에 대해 질문했더니, "인생은 올 때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데, 내 것이 어디 있나. 기증하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박대성 화백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미술계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세계적으로 '소산수묵'의 독창성을 널리 알린 사실도 훌륭하다. 그리고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임서(臨書)를 보면서 그분의 서예 솜씨도 최고의 경지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가나아트센터 출입문을 나오자, 소산이 뒤따라와서 한 번 더 나를 격려해 주셨다. '소산비경' 작품에다 그분의 철학과 인품으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는데, 고향 후배를 아끼는 마음도 대인의 그릇이었다. 그분은 "붓 몇 개 가지고도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데까지 가 보는 게 꿈입니다."라고 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2024.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