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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22.07.19 01:40

김상헌과 "과거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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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金尙憲)과 "과거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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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가진 기능 중의 백미는 "과거의 오늘"이다. 그것이 2년전인 2020/07/18의 일을 상기시켜 준다. 집사람과 함께 남양주 쪽으로 가다가 길이 심하게 막혀서 잠시 450년 전의 한 인물을 만나러 갔던 날의 일.

 

김상헌(金尙憲)이란 이름을 누가 기억하겠는가? 대개는 기억하지 못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긴 하지만 우리의 5천 년 역사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들도 수두룩했기에 그를 기억하지 못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름으로 기억되지는 않지만 당대엔 출중했던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한 일로 수 세기 후의 내 뇌리에 남은 사람은 많지 않다. 남들이 더 높게 평가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지라도 내게 의미가 없으면 그들은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내게 의미를 던져준 사람이라야 한다. 난 당연히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마련이라는 인간의 속성에 충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 뇌리에 남은 건 단지 그 시조 하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때문이다. 친명배금(親明排金)의 의리로 반청(反淸), 척화(斥和)를 부르짖다가 죽음의 땅 청(淸)으로 끌려갔던 조선 인조 때의 인물 김상헌(1570~1652).  

 

'청에 끌려가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가 몇 년 후 무사귀환하여 천수를 누리다 경기도 와부읍 석실리의 석실묘에 묻혔다는 걸 알게 된 지 오래지 않다. 그게 어찌나 기쁜 일이었던지... 그 사실을 알기까지 수십 년동안 간간히 그 시조를 생각하며 가슴아파했었는데... 

 

그래서 페친 임동관 선생이 한강변에서 찍은 삼각산(북한산) 사진을 보며 다시 김상헌 선생을 기억했고, 석실묘를 찾아 인사한 후 첫 포스팅을 2년전 이날(2020/07/18)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2021/01/21)에도 다시 거길 갔었다.(참조: https://bit.ly/3ILDGF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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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삼각산(북한산 국립공원) / @2017DKLIM(임동관, 2017.07.16) 

 

 

난 한 번 꽂히면 오래 가는 사람이라 며칠 전에도 집사람의 덕소 병원 방문 시에 혼자 거길 찾았다. 2022/07/12(화)의 일이다. 이맘 때 거길 들르고 싶었다. 김상헌 선생의 묘가 있는 석실묘 하단의 연지(蓮池)에 연꽃이 피어있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2년전에 들렀을 때는 연꽃을 보지 못 해 아쉬웠었다.

 

이번에 들르니 그 일대의 풍경은 2년전과 다르지 않다. 묘역 관리도 상당히 잘 돼 있다. 남양주시에서나 "신 안동 김씨" 가문에서 그 묘역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잡풀들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고, 웃자란 풀도 없었다. 그리고 묘역을 바라보고 오른편의 석실마을에서 묘역으로 향하는 길엔 자갈이 두껍게 깔려있었다.(변화는 대개 발전이다.) 석실마을에서 그 묘역으로 가는 길은 고갯마루로 향한 길과 상기 자갈길이 있는데 그 둘 다 PE 바리케이드가 쳐져있었다. 

 

'왜 여길 못 들어가게 막았을까?' 생각하며 난 묘역으로 들어섰었는데... 막아놨지만 김상헌 선생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찾은 그 묘역에 들어가는 게 큰 죄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그리 한 것이다. 경기도나 남양주시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길 찾도록 홍보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왜 그렇게 했을까? 아마도 경기도의 역사적 기념물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다보니 관리 측면에서 그렇게 했을 거다. 

 

하긴 누가 김상헌을 알겠으며 누가 그를 기억하겠는가? 인조가 청나라 군대에 쫒겨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는 국난에 처했을 때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대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가노라 삼각산아..."의 충절과 회한을 담은 시조를 기억하는 사람들 뿐일 것이다. 특히 김상헌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고, 기억한다해도 대개는 그 대상이 시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가문 사람들이 묻혀있는 와부읍 석실리의 석실묘엔 김상헌의 묘는 있으되 그의 시조는 없다. 거긴 철저히 한 가문의 묘역 역할에만 충실하다. 근데 아무리 봐도 그곳의 주인공은 김상헌 선생이다. 그의 윗대에서도 아랫대에서도 그만한 인물이 없다. 그렇다면 거길 상징하는 또 하나의 정신적 유산은 그의 시조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시조와 함께 그의 행적을 담은 안내판 정도는 따로 하나 세웠어야하는 게 아닐까??

 

그의 묘로 향하는 길의 이름이 와부읍의 "석실로"이다. 그의 호 중 잘 알려진 것은 청음(淸陰)이나 그의 또다른 호가 석실산인(石室山人)이다. 석실로를 달리다보면 "석실마을"이란 이정표 하나만 보일 뿐이다. 그것도 좀 초라한 행색으로 값싼 간판처럼 길가에 걸려있다. 누가 그 마을 안쪽 한 켠에 김상헌 선생이 잠들어있다는 걸 알겠는가? 내가 남양주시 문화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난 석실로의 석실마을 입구에 적당한 크기의 간판이라도 하나 세우겠다. 거기 김상헌 선생의 시조를 적고, 그 아래 석실묘의 사진 하나를 넣겠다. 그렇게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길 찾고, 그곳에서 우리의 오랜 역사와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다 돌아가게 만들겠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분명 영원한 이별을 예감하며 쓴 시조이다. 하지만 살아돌아와 다행이었던 그분. 다시 보게 된 삼각산과 한강수는 그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북에서 한양을 향하던 그가 동두천 정도에 이르렀을 무렵, 남쪽 저 멀리 보이는 삼각산의 뒷모습에 감격의 눈물을 쏟았을 터이다.

 

- 아래 몇 단락의 글은 윗 단락에서 그친 글 끝에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고집장이 노인 김상헌의 행적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있다. 그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멀리하고 수구적(守舊的)인 자세로 임했던 것에 대한 비판이 명암 중에 암이다. 그래서 그와 대척점에 있던 최명길 선생의 안목을 중시하고 그를 추앙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난 누구의 옳고그름을 논하고 싶지 않다. 김상헌 선생 역시 시대의 산물이고, 당시의 상황이 그의 행적을 낳은 것이다. 일제시대의 생각이 깊은 현실주의자들은 대개 매국을 했고,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이상을 가진 행동파 이상주의자들은 독립투사가 됐다. 자신의 이상과 이념에 따라 죽음을 불사하는 자세는 고금을 막론하고 옳거나 바람직하다. 

 

김상헌 선생 묘 앞에 한 쌍의 문인석이 있는데 오른편 문인석 옆에 1671년(현종 12년)에 건립한 묘표(墓表)가 있다. 대개 이런 묘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로서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기는데 대개는 공적비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묘표에 손자 김수증(金壽增)이 쓴 묘명(墓銘)이 새겨져있다.

 

그 내용은 “지성으로 금석에 맹세하였고, 큰 뜻(大義)은 해와 달처럼 하늘에 걸려있네. 천지가 굽어보고 귀신도 알고 있다네. 옛것(古)에 부합하고자 하다가 도리어 현재(今)와는 어긋났구나. 아! 백세 뒤에 사람들은 내 마음 알아주리라.(至誠矢諸金石 大義縣乎日月 天地監臨 鬼神可質 蘄以合乎古 而反盩於今 嗟 百世之後 人知我心)"는 것이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마음을 빗대어 후세에 고한 말이다. 할아버지를 위한 좋은 의미의 변명이자 후손으로서의 사과문이라 하겠다. 

 

수 세기를 지나면서 김상헌 선생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의 묘 앞에 서서 이런 묘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법하다. 난 당연히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나라와 주군을 위한 충절과 바른 심성을 오래전 그의 시조 한 편을 읽은 후 마음 깊이 새겼던 바이다.

 

* 집사람이 문정동 인애가한방병원에서 무릎부상 치료를 받는 동안 "가비 커피 로스터스"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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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람이 부근(문정동)의 인애가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난 가비 커피 로스터스 카페에 와서 카페 라떼 한 잔을 시켜놓고 글을 쓴다. 이 포스팅이 그 결과물이다. 다른 사진들은 지난 주 화요일에 들렀던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석실로 한 켠의 석실묘(김상헌 선생의 묘가 있는 곳)에 들러 찍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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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의 연지에서 찍은 아름다운 연꽃이다. 7월 중순에서 말까지는 연꽃의 계절이다. 그곳 연지에는 이런 큰 연꽃은 물론 자그마한 수련도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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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김상헌 선생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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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김상헌 선생의 묘에서 바라본 남양주시 와부읍 석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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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로 길가의 석실마을 이정표 - 참 허술하다. 조명 회사의 간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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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의 어느 집앞에 피어있는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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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 끝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석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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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사진에서 줌을 당겨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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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 끝, 석실묘 부근의 밭에서 올려다 본 김상헌 선생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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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곳, 다른 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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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멀리서 본 김상헌 선생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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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길 옆에서 묘역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풀이 많이 우거져있다. 바리케이드 옆으로 들어가면서 처음 나타나는 묘소의 문인석 둘과 비석 하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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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의 연지(연꽃이 피어있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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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의 계절에 맞춰 피어난 연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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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색깔이다. 연노랑과 핑크의 조합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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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좋은, 더우나 아름다운 이 계절. 달려드는 모기와 날파리 떼만 아니면 연못가에 한참 서서 연꽃을 바라봤을 것이다. '해충 기피제 스프레이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게 언젠데 아직까지... 이런 생각은 평소에 잊혀지고 있다가 등산로에 들어서서 눈앞에서 왱왱대고 날아다니는 해충들을 봐야나 다시 떠오른다. 머리 나쁘면 평생 고생한다더니 내가 그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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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상이 다른 연꽃도 있다. 오래 쳐다보면 이 은은한 색깔이 주는 또다른 오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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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에서 석실묘로 들어가는 길엔 전에 없이 두껍게 자갈이 깔려있었다. 왼편이 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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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의 규모가 작지는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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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를 보고 선 등뒤가 원래 석실묘의 주요 부분인데 사진 왼편 상단의 장소에도 묘들이 두 개 이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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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도 사랑했던 수련. 물위에 핀 연꽃이라 수련이 아니다. 오후면 잠든다고 하여 수련(睡蓮)이다. 두세 시면 꽃잎이 닫히고 얘네들은 실제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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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하단의 비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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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하단. 오른쪽 위 안내판 같은 것이 있는 곳이 김상헌 선생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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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편에서 올려다 본 김상헌 선생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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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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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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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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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와 왼편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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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는 경기도의 역사적 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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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안내판에 적힌 내용은 아래와 같다.("Google Lens의 텍스트 추출 기능을 이용하여 사진의 글을 읽어냈다. Thanks Google!)

 

김상헌 선생 묘(金尙憲先生墓)

 

Tomb of Kim Sangheon

 

경기도 기념물 제100호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 산5

 

Monument of Gyeonggi-do No.100

 

조선 인조. 효종 때 문신으로 활약한 김상헌(金尙憲, 1570~ 1652)의 묘이다.

 

김상헌은 안동 김씨로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의 할 아버지이다. 선조 41년(1608)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을 거치며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이조참의에 발탁된 후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가 되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 예조판서로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는 척화를 주장한 탓에 이듬해 강화가 이루어지자 파직되고, 인조 17년 명을 공격하기 위한 청의 출병 요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다음 해 청나라 심양에 압송되었으며 인조 23년 귀국하여 좌의정이 되고,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는 「야인담록」 등이 있다.

 

This is the tomb of Kim Sangheon (1570~1652), a civil minister in the reigns of King In-jo and King Hyo-jong. He was dismissed from office because he opposed against the reconciliation with the Ching Dynasty during the Beongjahoran War in 1636. and was taken to the land of the Ching Dynasty for he made an appeal to oppose against the request of the dispatch of troops by the Ching Dynasty in order to attack the Ming Dynasty. But he was respected as the ideological hero when King Hyo-jong put forward the conquest of the northern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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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의 문인석과 묘 및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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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의 묘비

 

중간의 큰 글씨 두 줄에는 "유명조선문정공청음김선생상헌지묘(有明朝鮮文正公淸陰先生尙憲之墓)"라 적혀있다.

 

그 오른쪽에는 시법(諡法), 즉 예전에 시호(諡號)를 의논하여 정하던 방법이 적혀있는데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하여 문(文)이라고 하고, 정도(正道)로 복종시켰으니 정(正)이다.(諡法勤學好問曰以正服之曰正)"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왼쪽에는 1669년(현종 10년) 비가 건립되었다는 연도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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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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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에서 내려다 보이는 묘역 하단과 석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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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중간의 두 나무 사이로 보이는 풀밭 건너편이 고갯마루 쪽으로 난 묘역 입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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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의 묘비

 

중간의 큰 글씨 두 줄에는 "황제국 명나라 제후국 조선의 문정공 청음 김상헌 선생의 묘(有明朝鮮文正公淸陰先生尙憲之墓)"란 내용이 한문으로 적혀있다.

 

그 오른쪽에는 시법(諡法), 즉 예전에 시호(諡號)를 의논하여 정하던 방법이 적혀있는데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하여 문(文)이라고 하고, 정도(正道)로 복종시켰으니 정(正)이다.(諡法勤學好問曰以正服之曰正)"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왼쪽에는 1669년(현종 10년) 이 비석의 건립 연도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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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 앞에 한 쌍의 문인석이 있는데 오른편 문인석 옆에 1671년(현종 12년)에 건립한 묘표(墓表)가 있다. 대개 이런 묘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로서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기는데 대개는 공적비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묘표에 손자 김수증(金壽增)이 쓴 묘명(墓銘)이 새겨져있다.

 

그 내용은 “지성으로 금석에 맹세하였고, 큰 뜻(大義)은 해와 달처럼 하늘에 걸려있네. 천지가 굽어보고 귀신도 알고 있다네. 옛것(古)에 부합하고자 하다가 도리어 현재(今)와는 어긋났구나. 아! 백세 뒤에 사람들은 내 마음 알아주리라.(至誠矢諸金石 大義縣乎日月 天地監臨 鬼神可質 蘄以合乎古 而反盩於今 嗟 百世之後 人知我心)"는 것이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마음을 빗대어 후세에 고한 말이다. 할아버지를 위한 좋은 의미의 변명이자 후손으로서의 사과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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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의 소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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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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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의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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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갈이 깔린 석실마을에서 들어오는 묘역로와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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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떨어진 몇 기의 묘가 있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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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줌을 당겨 찍은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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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묘역로의 반대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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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예봉산(왼편의 현저한 세 봉우리 중 중간 봉우리)과 검단산(화면의 맨 오른편). 예봉산 정상 위로 살짝 올라온 기상레이더의 흰 돔(dome)이 보인다. 그 왼편 봉우리의 희끗해 보이는 것은 철문봉으로 패러글라이딩용 활공장이다. 예봉산에 인접한 다른 봉우리는 예빈산이다. 멀리 예봉산을 두고 있어서인지 석실묘에서 돌아오는 길 어느 곳엔가 예봉중학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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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갑산(전봇대 오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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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아래 석실마을 어느 집 앞 화단의 백일홍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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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 앞 버스 정류장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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