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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한창인 이 때 발견한 글인데, 내가 1991년 6월에 쓴 글이다. 이 글은 두 당사국에 갔던 일에 대한 것이고, 주제는 전쟁과는 반대 개념인 "평화"에 관한 것이다. 기행문의 형태로 쓰여진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당시 경희대학교를 설립한 조영식 총장님(2012년 2월 18일 91세로 별세)을 위해 총장 비서실장의 직함을 가지고 일하던 때, 그분의 행적에 대해 내 나름 대로 느낀 바를 적은 것이다.

31년 전에 쓴 이 글은 최근 버릴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Clear File이란 비닐 파일첩에 도트 매트릭스(dot matrix) 프린터로 인쇄되어 있었다. 이때는 아래아 한글이 개발되어 처음 보급되고 있는 중이나 난 당시에 그것 대신 막강한 미국의 워드퍼펙(WordPerfect)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었고, 당시 IBM PC 호환기종에 조합형 한글 카드를 넣어 한글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걸 KSSM 코드를 내장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출력해 뒀던 것이다.

 

KakaoTalk_20220601_153822276.jpg


그런데 그 출력물을 아이폰으로 촬영 후에 그 데이터를 구글 검색창 오른편에 있는 사진기 모양의 아이콘을 눌러 "구글 렌즈"에서 불러들이고, 그 사진 속의 텍스트를 추출한 후 그걸 전체 복사로 메모 앱에 복사했다. 그 텍스트를 아래아 한글에서 불러들여 스펠체킹과 띄어쓰기 검사를 한 후에 다시 이 화면에 뿌렸다.^^ 이 글 하나에 30년 간의 IT 세계의 발전상이 약간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스캐너로 스캔한 후에 그걸 OCR 판독기로 텍스트를 추출하는 과정이 사라지고 그걸 휴대폰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린 것이다. 놀라운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KakaoTalk_20220601_155621279.jpg


31년전에 갔던 우크라이나 흑해변의 얄타. 그곳에 있는 제정 러시아 시절의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여름궁전인 리바디아궁의 평화롭고도 신비로운 풍경이 눈에 선하다.(거기서 멀지 않은 아룹카와 얄타 중간에 세워진 "제비집/The Swallow's Nest)"이란 40m 벼랑 위에 세워진 작은 성도 매우 인상깊었다.) 당시에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체르노빌 원전 부근의 고속도를 통해 수도인 키이우(당시엔 "키에프"라 불렀다.)로 갔었는데 원전의 그 음산한 풍경 역시 눈에 선하다. 키이우에서 들렀던 조국의 어머니상이 있던 공원, 우크라이나-러시아 친선평화공원, 키에프공과대학, 보석박물관, 안톤 체홉박물관(생가), 체홉 여름극장, 크리미아전쟁이 벌어진 세바스토폴의 발라크라바 마을, 곳곳의 우크라이나정교회 사원, 굵고도 높은 가로수가 즐비한 아름다운 키이우의 거리 등, 우크라이나의 모든 곳은 아름다웠다. 그런 나라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깝고도 통탄스러울 뿐이다. 

아래는 31년전의 프린트물에서 되살려낸 텍스트이다. 돈도 안 내고, 가볍게 OCR 기능을 사용케 해 주신 구글신에 감사드린다.^^;

 


 

 

어쩔 수 없는 평화주의자

 

박순백

 

"조이안 이레놀로지(Chouean Irenology)가 뭐야? 그런 단어도 있어?"

 

항상 조 총장님의 평화운동에 대한 이해심이 적었던 어떤 분이 물었다. 마치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이상한 단어를 보았다는 듯이 그는 내게 물어왔다.

 

"뭐요? 아, 〈White Paper on World Peace>의 부제목 말씀이신가요?" 

 

짐짓 모르는 척하고 난 그렇게 받아넘겼다. 영문판으로 나온 <평화백서>란 책의 부제가 "조영식 평화학"이란 의미로 "Chouean Irenology"란 부제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단어에 대한 그의 의문이 어떤 성격인가를 잘 알 수 있었다. 난 총장님 옆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고, 아주 분명한 색깔을 가진 사람이므로 그를 - 속으로 - 가련히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말하자면 "Choue's면 Choue's지, Chouean은 또 뭐냐?"는 것이었다.

 

"그게 총장님의 친구들이 흔히 쓰는 단어입니다. 전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박사가 총장님의 저서 <인류사회의 재건>과 <오토피아>를 읽고 난 후에 쓰기 시작한 말이죠. '조 총장님의 철학'이란 의미로 총장님의 회갑 때 'Chouean Philosophy'란 말을 그 분이 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있는 단어는 '이레놀로지'가 아니고 (난 그의 무식을 탓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걸 강조했다) '아이리놀로지'라고 하는 건데 정치학을 하는 분들은 다 아는 단어죠. '평화학' 아닙니까?”(실은 정치학자들의 신조어인 이 단어는 아직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래? 그게 그런 거야?"

 

그는 씁쓸한 표정이 되어, 뭔가 말을 꺼내려다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그가 "어쩔 수 없이 고루한 사람”이라면 조 총장님도 어떤 의미의 "어쩔 수 없는 분”이다. 그분은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평화주의자"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못난 사람들임에 비해서 그분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정말 위대한 분이다. 오랜 세월 옆에서 지켜본 것이니 그분을 멀리서 흘깃 보면서 쉽게 판단하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난 훨씬 더 정확하게 그분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1991년) 5월에 총장님을 모시고 소련에 갈 일이 있었다.(소련은 이해 12월 26일에 붕괴하고 다시 러시아가 된다.) 소련 이후의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며칠간 시간이 있었는데 이분은 하고많은 소련의 관광지를 다 젖혀두시고 얄타(Yalta)에 들르겠노라고 하셨다. 나로선 그 지명만을 들어도 괜히 으스스해지는 느낌이 있는 별로 인상이 좋지 않은 지명이었다.(우리 또래는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대에 교육을 받았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거긴 단지 얄타회담이 열린 장소일 뿐,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38선으로 나뉘어 고생한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운명이 바로 그 장소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었던가? 

 

심페로폴 공항에 내려 우리를 마중 나온 소련 청년동맹(Youth Organization of the USSR)의 한 소련 측 인사를 만났는데, 그는 키가 무척이나 크고 귀부인의 풍모를 한 어떤 여자와 함께 나왔다. 그녀가 총장님께 인사를 하는데 자신의 이름이 "아이린”이란다. "Irene”, 평화의 여신의 이름이 아닌가? 바로 그 평화학이란 단어가 비롯된 그 여신의 이름이었다. 우연이긴 하지만 총장님께나 내게나 그러한 조우가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음이 사실이다.

 

제주도의 어느 곳을 가는 듯한 느낌으로 몇 시간 산간도로를 달려 얄타에 이르니 이 건 전혀 상상 밖이었다. 그 음울함으로 가득하게 느껴지던 단어, 얄타, 이곳이 흑해 연안의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라는 사실을 이 무식쟁이는 거기 가서야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한 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난 잠시 그런 감회에 빠져들었다.

 

난 그곳 얄타의 해변에서 흑해의 푸른 물을 보며 경탄했고, 언젠가 이곳에서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두 문인, 체홉과 고리끼가 함께 거닐며 얘기했다는 사실에 매혹되었다.(그곳엔 안톤 체홉의 생가를 개조한 박물관과 체홉의 여름극장도 있었다.) 난 단지 그곳을 거니는 많은 유럽 사람들처럼 관광객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총장님은 달랐다. 이분은 호텔에 머물고 계시는 동안 줄곧 글만 쓰고 계셨다. '아니, 세상을 왜 저렇게 사실까? 짧은 생을 저렇게 허비(?)하고 계시다니......' 십 수 년을 모셔온 총장님이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뭔데?' 난 시간만 나면 아는 사람도 없는 그곳의 거리를 쏘다녔다.

 

총장님은 우리를 안내하는 소련 측 인사가 얄타회담이 열린 장소를 방문하자는 말을 꺼내자 그제야 생기가 도셨다. 그리고는 제2차대전이 끝난 후 우리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한 장소이니 거긴 꼭 찾아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그런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보는 것은 행운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글쎄 총장님은 무척이나 그 장소에 의미를 두고 계셨지만 난 그저 그랬다. 단지 그 소련 측 인사의 말대로 한국 사람으로는 총장님과 내가 그곳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라면 그건 정말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니콜라이 황제의 여름별장이었다는 리바디아궁, 그 얄타회담이 열린 장소에 갔다. 총장님은 눈까지 감으시며 뭔가 착잡한 마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계셨다. 난 햇빛이 찬란히 빛나던 그 날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니었지만 그 같은 총장님의 숙연한 태도에 질려서(?)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를 뿐이었다. 얄타회담이 열린 바로 그 넓은 홀에 들어섰다. 총장님은 이제 숙연하다 못해 완전히 얼굴이 굳어지셨다. 2차대전시에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군대생활을 하던 중,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룬 그분으로서는 당시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 그 자리에 섬으로써 가지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 자리에 들어서서는 좀 심각해졌다. 홀의 저편에 있는 의자에 한 때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 세 거두가 앉아서 전후 문제를 결정했다는 사실에 어떤 저항감이 일어나고 있었다. '네깟 놈들이 뭔데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단 말인가?'

 

총장님은 별로 말이 없으셨다. "전쟁은 비극이야. 그래서 평화를 해야 해!" 단지 그렇게 말씀하셨을 뿐이다.

 

이분은 얄타에 계시는 동안 내게 수쿠타리의 건너편 해안에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곳은 얄타가 있는 크리미아(크림) 반도의 어느 곳에 있으며, 바로 크리미아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곳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련 사람들도 그곳이 어딘지를 제대로 알지 못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지명은 소련인들에게조차 별의미를 지니지 못 하여 잊혀진, 그런 낯선 지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별난 한국인은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얄타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총장님은 이런 말씀으로 아쉬움을 남기셨다. "박 군, 이곳 크리미아 반도에서 일어난 참혹한 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이 활약을 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냐? 저 소련학자가 전공이 평화 관련의 정치학이라면서도 크리미아 전쟁에 대해서만 알지 나이팅게일이 수쿠타리의 대안(對岸)에서 구호활동을 했다는 건 모르고 있구나. 거기도 한 번 가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 어쩔 수 없는 분!' 난 그 때 그렇게 결론지었다. 전쟁의 인도화(humanization)란 묘한(?) 지론을 가진 분, 총장님은 그 현장을 보시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나라도 그곳이 어딘 줄 알았더라면......' 총장님의 진한 아쉬움을 보며, 나까지 그런 아쉬움에 잠겼다.(여행에서 돌아와 소련 지도를 살펴봤지만 결국 그 위치를 찾지는 못 했다.)

 

국교조차 수립되지 않은, 우리와 인연이 없는 나라가 소련인데 올 10월에 다시 거기에 총장님을 모시고 갈 기회가 있었다. 모스크바국립대학이 총장님께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련학술원의 결정으로 아카데미션(academician)인 현 소련국가경제아카데미 총재 아간베기얀 박사가 모스크바국립대학의 평위원회(University Council)에 추천한 결과였다.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니 그 대학의 로구노프 총장을 비롯한 학교관계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몇 마디 인사가 건네지고 난 후에 그 대학에서 나온 한국어 통역관이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받으시는 학위는 북쪽의 그 '위대한 수령님' 조차 못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 학위가 남북한 통틀어 한국인에게는 최초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 걸 강조하지 않아도 좋았다. 모시고 간 내가 그 말에 감격을 했으니, 당사자인 총장님이야 그보다 더 하셨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10월 17일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거행된 총장님에 대한 명예 평화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은 소련의 500일 경제계획 수립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샤탈린 박사는 물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보좌관 등 저명인사가 다수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사실 이런 일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지난 5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소련문제 전문가 로이 킴 박사는 당시 총장님을 환영하기 위한 리셉션과 오찬에 참석한 인사들을 보면서 이런 얘기까지 했음을 내가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소련에 십 수 차례 드나들었지만 한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서 저런 거물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건 처음 봅니다. 특히 소련 학자 100만 명 중 하나에서 선출되는 아카데미션 중에서도 맨 위에서부터 꼽아내려 올 수 있는 로구노프, 샤타린, 오시피안, 아간베기얀, 쿠쿠신 등이 한 자리에 모인 건 정말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이건 아마 소련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소련인들의 총장님에 대한 열광은 이렇듯 정말 대단했다. 오죽하면 그 회의에 참석한 일본인 학자가 모스크바에 와보니 이상하게 한국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을까? 그는 그 이유가 한국이 소련에 약속한 35억불 경협차관 때문이든지, 아니면 고르바초프의 제주방문 때문이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그게 조 총장님이 몰고 온 경희대의 바람임을 알고 일부러 우리 대표단을 찾아와서 그렇게 실토를 했었던 것이다. 난 아태지역 7개 국가에서 모여든 학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놓고 격론을 벌인 모스크바 평화회의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총장님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환영사에 이어 행한 기조연설 중에서 제안하신 세계평화정착결의안이 그 같은 분위기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기우일 뿐이었다. 일본학자의 표현대로 한국바람의 덕분인지 그 결의안은 한 사람의 반대의견도 없는 전원일치의 찬성으로 그 회의의 이름으로 통과되었던 것이다.

 

얘기가 잠시 벗어났지만, 총장님은 모스크바국립대학교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 “제3민주혁명과 소련"이라는 주제의 답사를 통하여 현 시대상황과 장차 소련의 나아갈 바를 극명하게 제시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청중들은 그 연설을 숨죽여 듣고 있다가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로 총장님의 연설 내용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이튿날 붉은 광장 옆에 위치한 모스크바대학의 분교로 옮겨 행해진 교수와 학생들을 위한 특별강연에서는 “소련국민이여, 새로운 역사창조의 기수가 되라!"는 제하의 연설이 행해졌다. 이 강연을 통해서 총장님은 소련 경제의 실상을 분석하고,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후에 이의 개선점을 지적하고, 이로써 소련 경제가 앞으로의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관하여 한국의 예와 자신이 직접 60년대에 펼쳤던 잘살기운동의 예를 들어가며 역설하셨다. 이 연설은 우리가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동안 그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모스크바의 일정이 끝난 후 총장님은 미국의 커네티컷으로 향하셨다. 물론 내가 계속 수행을 했는데 그곳으로 간 이유는 센트럴커네티컷주립대학(CCSU)에서 총장님께 명예 인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키로 했던 때문이었다. 사실 이 같은 결정은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두 대학의 스케줄이 비슷한 시기에 잡힌 그 때까지 늦춰져 왔던 것이었다. 이 대학에서의 총장님에 대한 대접 역시 - 영어식의 표현을 빈다면 - “red carpeted"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총장님의 그간의 세계평화에 대한 업적을 어떻게 그렇게도 자세히 파악했는지 놀랄 지경이었으며, 그들은 중요한 사항들을 기나긴 싸이테이션(citation)에 시적 (poetic)인 문장으로 표현하여 인쇄해 놓고 있었다. 여기서 총장님이 답사로 행한 연설의 제목은 “냉전 후 세계에 있어서의 미국의 새로운 역할과 사명"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강한 나라(strong nation)를 지향하기 보다는 위대한 나라(great nation)가 되어야한다는 요지의 연설로서, 이 화해의 시대에 있어서의 강대국의 역할과 사명은 힘으로써가 아니고 진실한 지도력을 갖춤으로써 완수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항상 강한 것을 뽐내온 그 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충고를 주는 내용이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또 하나의 수퍼 파워였던 소련의 힘이 약화된 이 시점에서 그들의 의기양양한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어서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었다.(총장님은 이미 그 같은 세계의 추세를 내다보시고 85년 미국 알라스카대학교의 졸업식의 기조연사로서 “다가오는 환태평양 시대에 있어서의 위대한 미국”이라는 비슷한 주제의 연설을 행하신 일이 있다.) 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는 물론 그 직후에 있었던 리셉션에서도 온통 화제는 그 연설에 관한 것뿐이었다.

 

참으로 멀고 먼 여행을 총장님과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은 이분은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셔야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분의 삶을 지켜보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면이 많았다. ‘뭘 위해 저리 고생하시나?' 좀 천한 표현이어서 안됐지만 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용치 않을 수 없는 말이 하나 있다. 총장님이 노심초사 동으로 서로 뛰시며 평화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를 안쓰럽게 여긴 주위 분의 말씀이다.

 

“저런다고 쌀이 생기냐, 연탄이 생기냐?"

 

그렇다. 정말 남는 것 하나 없는 일을 위해 일흔이 넘도록 뛰시는 이분을 보며 이분의 주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이 건 말릴 수도, 누가 어쩔 수 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위해 태어나셨다고밖에야...... 그것 말이다. 어쩌면 가장 하찮은 것, 아니 가장 중요한데 우리가 잊기 쉬운 것. “평화” 말이다.

 

총장님, 이제 전 총장님을 포기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쉬시란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신상명세서의 취미란에 독서라 쓰시지 마시고, 아주 그걸 쓰세요. “평화” 말입니다. “평화활동”이라고 쓰셔야 정확한 의미가 되겠지만 그 두 단어만 갖고도 모두들 잘 이해할 것입니다. 특기는 “그 걸 위해 밤새우기"라고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어쩔 수 없는 분.

 
-----
 
* 오, 위대한 구글신. 드디어 조 총장님께서 잘못 생각하시고 계셨던 수쿠타리(실은 스쿠타리)의 위치를 구글신의 도움으로 오늘 알게 되었다.ㅋ 그것은 크리미아 반도 내에 있는 것이 아니고, 터키의 우스크달(라)에 있었던 것이다. "마주보는 해변"의 "대안"이 바로 옆의 터키를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 나이팅게일의 병원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스쿠타리가 그리스어이고, 그게 터키의 우스크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니...
 
c_03.jpg

 

관련 글: https://www.drspark.net/ski_talk/655997
 

Comment '2'
  • ?
    byhyun3 2022.06.02 00:17

    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평복 현ㅂㅇ 입니다.  동문카톡 통해서 선생님 글 읽고, 조 박사님 생각에 그립고, 박 선생님께 안부도 전하고 싶어서 가입하고 들어왔습니다. 

    도트 프린터의 드르륵 거리는 프린팅 소리, 8비트 컴퓨터의 초록색 커서 등등.. 그때도 최신으로 앞서가시던 선생님께서 삼십 년 된 글을 그간 기술 발전을 한번에 보여주시는 방식으로 다시 열어주시니 감개무량입니다.  ^^

    글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Dr.Spark 2022.06.02 00:57
    현 선생, 오랜만입니다.^^ 집안에 오래 묵은 짐들을 정리하다 나온 글 하나로 평화복지대학원 출신들과 다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니 참 다행입니다. 저도 이 글을 찾아 읽고는 많이 놀란 게 있습니다. 현재의 제 나이가 저 위의 글을 쓸 당시의 조 총장님 연세와 거의 같아졌다는 것입니다.^^; 역시 쏜살 같은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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