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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21.11.11 16:17

마르티스 두 마리 - 보라와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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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두 마리의 마르티스가 있다. 오래 전에 기르던 마르티스 나리는 이제 없다. 난 큰 개만 기르던 집에서 자라는 바람에 작은 애완견은 못 키워봤는데 아들놈의 성화에 못 이겨 눈만 뜬 애를 데려다 키웠다. 그게 나리다. 아주 착하고 병치레 한 번 않고 잘 자랐다. 걔가 여덟 살이 됐을 때 외롭겠다 싶어서 집사람이 역시 태어난 지 오래지 않은 작은 마르티스를 하나 데려왔다. 그게 보라다.

 

그 보라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큰 녀석 나리가 떠났다. 보라는 나리가 마치 제 새끼처럼 정성스레 대했다. 뭐든 보라에게 양보를 하고, 정말 물고 빨며 보라를 예뻐했다. 그래서인지 보라는 철이 없이 컸다. 나리 언니가 엄마처럼 잘 챙겨주고, 우리도 보라를 예뻐했더니 얘가 아주 철이 없고, 이기적인 애가 됐다. 그렇게자길 위해주는 나리 언니에게 대들기도 하고 항상 깍쟁이 짓을 했다. 그래서 보라는 우리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근데 그런 보라를 우리가 때려주는 시늉을 하면 나리가 그걸 싫어해서 짓기도 하고, 심지어는 와서 말리기도 했다.^^ 보라는 단 한 차례도 건강 문제가 없던 나리와는 달리 병원에 자주 갔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커서도 몇 번 수술을 하는 일도 있었다. 깍쟁이고 예쁜 애였다. 아주 공주 같이 굴었고, 귀여운 짓도 많이 했다.

 

그러다 나리가 떠났다. 보라가 의지할 언니가 없어지니 가끔 안절부절했다. 그래서 우린 다시 마르티스 하나를 더 들이기로 했다. 그게 줄리다. 보라가 여덟 살에줄리가 왔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줄리를 데려오면서 걱정은 깍쟁이 보라가 줄리를 많이 괴롭힐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이기적인 애가 줄리에게 뭘 양보하지도 않을 것이고, 앙칼진 녀석이 혹 줄리를 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었다. 근데 그건 기우였다. 막상 줄리를 데려오니 그 작은 놈을 보라가 예뻐하고 어떨 땐 저 먹을 것도 양보를 하는 것이었다. 양보를 모르는 놈인데, 철 없는 줄리가 달려들어 보라를 밀치면 밀려나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강아지도 어린 애들은 보살핀다는 걸 알게 됐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가끔은 줄리에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줄리가 워낙 철이 없다보니 그런 걸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점차로 보라가 알아서 물러나는 일이 생겼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니 어느 새 보라는 무대뽀 줄리에게 밀려서 눈치를 보며 살고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 부부는 지가 어릴 때 나리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벌을 받는 것이라 쌤통이라고 했다.^^

 

손바닥만 하던 줄리가 성견이 된 지 오래이다. 올해로 줄리가 아홉 살이다. 보라는 당연히 열아홉 살이 됐다. 노견 중에도 노견이 된 것이다. 움직이는 것도 굼되고 가끔 한 자리를 빙빙돈다. 의사에게 물으니 그게 강아지의 치매 증상 중 하나란다. 몸이 많이 허약해졌다. 함께 걸으면 잘 따라오지 못 하여 금방 안아줘야한다. 사실 열아홉까지 사는 애도 희귀할 정도란다. 보라가 꽤 장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밥을 주면 달려들어 잘 먹으니 그건 다행이다. 더 아프지 않고 우리와 좀 더 오래 함께 지내면 좋겠다. 줄리는 아직 쌩쌩하다. 젊은 정도가 아니라 어린 느낌을 줄 정도로 튼튼하고도 정열적인 애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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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아파트 복도에서 집사람이 두 애들과 놀아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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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전, 오른편의 줄리가 왼편의 보라가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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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가 운동을 하고 있는 중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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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으며 부르니 이렇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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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부르니 뛰어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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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어느 가을날 저녁에 나와 함께 왕숙천변에 가서 산책을 하다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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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는 우리 둘이 열심히 케어하는 중이다. 전엔 쉬를 싸면서 발이 젖을까 발을 들고 신경을 쓰던 애가 보라인데 요즘은 그냥 쉬를 싸서 발을 적시는 걸 보면 안쓰럽다. 그 때마다 우리가 정성스레 발을 닦아준다. 어떤 때는 똥을 싸고 치매기로 그 자리를 돌다가 그걸 밟기도 한다.^^ 그래도 좋으니 보라가 오래 살면 좋겠다. 언젠가 그 애를 떠나보내야할 슬픈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와 정말 오래 함께 한 보라는 물론 줄리도 앞으로 계속 건강히 잘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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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현진     임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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