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Home스키스키 사랑방
쓰기
한국의 살을 에는 추위

한국의 살을 에는 추위

 

IMG_3567.jpeg
- Frozen Chosin의 두 번째 단어가 바로 "장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이다.

 

오디오 카톡방에서 스키 타는 두 사람이 추위 얘기를 했다. 얼마전에 내가 개인 홈페이지에 쓴 얘기(그걸 페북으로 옮겨 놓음. -> https://bit.ly/4jhSA8s )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시 영하 40도를 기록하고 있던 “장진호 전투(長津湖 戰鬪)”와 한국전쟁 전반의 스토리를 적은 참전용사 제임스 브래디의 책, "The Coldest War" 얘기도 당연히 나왔다. 장진호 전투에서의 추위를 이와 비슷한 제목으로 쓴 다른 책도 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이 저술한 한국전쟁 역사서인 "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the Korean War"(국내 번역서 제목이 “가장 추운 겨울”) 역시 장진호 전투를 포함한 한국전쟁의 전개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 상단의 장진호 부근에서 벌어진 중공군과의 전투(장진호 전투)는 미군이 겪은 가장 추운 전투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3대 동계전투 중 하나였다.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도 전투와 함께 장진호 전투가 3대 동계전투인데 위도를 생각해 보면 한반도의 장진호는 두 지역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장진호(북위 약 40~41°대), 제2차 세계대전의 모스크바(북위 약 55°), 그리고 스탈린그라드(북위 약 48°)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디오 카톡방에서 김명준 선생이 위의 동계 3대 전투에 관해 언급했다. 김 선생은 현직에 있을 때 유럽 근무가 많았다. 특히 북구의 노르웨이에서 오래 생활을 했기에 그곳은 물론 유럽의 여러 스키장에서 스킹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 지역의 추위를 많이 느껴봤는데, 작년에 수십 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해보니 한국의 겨울 추위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를 실감한단다. 김 선생이 상기 링크한 내 글을 읽고 노르웨이 상황을 전하는데, 거긴 평균 기온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데도 체감 온도는 그처럼 낮지 않고, 이유는 바람도 적고, 습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정곡을 찌르는 얘기다.

 

이렇듯 추위에 관한 이야기는 기온 하나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되고, 공기의 이동 방식과 바다, 지형, 습도까지 같이 봐야 이해가 된다. 그래서 한국의 겨울 추위는 숫자로 찍힌 온도보다 몸으로 더 아프게 느껴지는 특별한 구조를 가진다.

 

살을 에(이)는 추위

 

“에는 추위”라는 말은 단순히 춥다는 상태를 넘어, 감각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묘사하는 한국어 특유의 표현이다. 이 말에는 온도의 숫자보다 먼저 피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변화가 담겨 있다.

 

‘에다’, ‘에이다’, 그리고 ‘에인다’ 등으로 표현되는 이 말은 본래 ‘칼이나 날붙이가 살을 스치며 파고 들어 살을 도려내듯할 때의 감각’에서 출발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이 추위에 연결될 때는 ‘베어내듯 지나가되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미세하게 파고들며 반복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래서 ‘에인다’는 표현에는 순간적인 충격보다 지속성과 침투성이 포함된다. 찌르는 추위나 얼어붙는 추위와 달리, 에이는 추위는 가만히 있어도 계속 작동하여 사람의 견디려는 의지 자체를 꺾어 버린다. 그 의지가 꺾이는 순간부터가 ‘동사(凍死)’를 향한 첫 걸음이다.

 

‘에는 추위’의 메커니즘

 

피부에 닿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먼저 표면이 아니다. 옷을 뚫고 들어온 바람이 살결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며 체온을 벗겨낸다. 이때 느껴지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얇은 통증이다. 마치 아주 얇은 칼날이 피부 위를 눕혀서 긁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통증은 날카롭지만 피가 나지는 않는다. 대신 열이 빠져나간 자리에 공백이 생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감각은 더 깊어진다. 차가운 공기가 땀구멍과 모공 사이로 스며들며 피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이때의 느낌은 베어낸 뒤 남은 상처가 공기에 노출될 때의 쓰림과 닮아 있다. 따끔거림과 쑤심이 섞여 있고, 그 감각이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얼굴, 귀, 손가락 끝으로 옮겨 다닌다.

 

바람이 강할수록 에이는 감각은 선명해진다. 정지된 차가움은 견딜 수 있지만, 움직이는 차가움은 피부를 긁으며 파고드는 느낌이다. 바람은 연속적인 접촉을 만든다. 한 번 스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초당 수십 번 같은 부위를 스쳐 간다. 그 반복이 누적되면서 뇌는 차갑다고 인식하기보다 ‘이러다 얼어 죽겠다’는 위협을 감지한다. 그래서 에이는 추위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특히 습기가 있을 때 이 감각은 완성되기에 큰 문제가 된다. 습한 공기는 피부 표면에 얇은 물막을 만든다. 이 물막은 열을 빠르게 전달한다. 그 결과 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 상피는 보호막 없이 외부와 직접 연결된 상태가 된다. 이때 차가운 바람이 불면, 물막이 칼날처럼 작용해서 살이 아닌 열을 베어낸다. 그래서 마른 추위는 차갑고, 습한 추위는 아프다.

 

에인다는 감각은 깊이 들어간다. 손가락 끝이 먼저 무뎌지고, 그다음에 둔한 통증이 찾아온다. 얼굴 근육은 경직되고, 이가 자연스럽게 덜덜 떨리며 맞부딪힌다. 단순한 떨림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열 손실을 막기 위해 보내는 신호이다. 이 단계에서 에이는 추위는 생존과 사망의 중간적인 감각으로 바뀐다.

 

중요한 점은 에인다는 표현이 감정까지 포함한다는 점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조급해진다. 숨이 얕아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래서 에이는 추위는 불쾌함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이다. 이곳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는 신체의 경고이다.

 

결국 에인다는 말은 온도, 바람, 습도라는 물리적 조건이 피부와 신경을 통해 통증으로 번역되는 순간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언어이다. 살을 베어내지는 않지만, 베어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물리적 체온과 심리적 안정을 잘라낸다. 그래서 한국어에서 에인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겨울의 처절하고도 정밀한 묘사요 기록이다.

 

왜 한국의 추위는 살을 에는 추위인가?

 

먼저 한국이 왜 “살을 에는 추위”가 되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한국의 겨울은 시베리아 고기압이 핵심이다. 시베리아는 겨울이 되면 눈으로 덮인 거대한 대륙이 되고, 태양 에너지를 거의 받지 못해 공기가 극도로 차갑고 무거워진다. 이 무거운 공기는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남쪽으로 흘러내리는데, 그 통로에 한반도가 있다. 문제는 이 공기가 한반도로 오는 동안 성질이 바뀐다는 점이다.

 

IMG_3566.jpeg
- 바람의 세기와 온도의 관계. 도표 안의 색깔은 동상을 입는 온도를 가리킨다. 
 

시베리아 본토는 매우 건조하고 바람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공기가 차갑기는 하지만 수분이 적어 열을 빼앗는 능력이 크지 않다. 그래서 기온 수치만 보면 더 낮아도 체감은 덜 춥다.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시베리아 출신과 블라디보스톡 출신의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의 기온은 자기네 사는 곳보다 높은데 왜 더 추우냐고, 견딜 수 없다고 엄살을 떤다.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서해를 지난다. 서해는 겨울에도 완전히 얼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가 비교적 따뜻한 바다 위를 지나면 수증기를 잔뜩 머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기는 차갑고, 습하고, 무거운 상태가 된다.

 

여기에 바람이 더해진다. 시베리아 고기압과 일본 쪽 저기압 사이의 기압 차 때문에 바람이 세게 분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강한 바람을 타고 얼굴과 피부를 때리면, 피부 표면의 열과 수분을 빠르게 빼앗아 간다. 이때 느끼는 감각이 바로 “베어내는 듯한” 추위의 감각이다. 같은 영하 5도, 혹은 10도라도 한국이 훨씬 춥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극권과 그 아래 동네들의 겨울 추위는?

그럼 김 선생이 말한 북극권 노르웨이를 포함한 유럽, 그리고 그 아래의 중동은 상황이 어떠한가? 이제 유럽과 중동의 경우를 살펴 보자. 북극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은 전 지구적으로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내려오는 방식이 지역마다 다르다. 유럽 쪽은 북대서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북대서양에는 난류인 걸프 스트림이 흐르고 있다. 이 따뜻한 바닷물은 공기를 데워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밀어 보낸다. 그래서 북극 기단이 유럽으로 곧장 쏟아져 내려오지 못하고, 많이 약해진 상태로 도달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유럽은 바다에 둘러싸인 지역이라는 점이다. 바다는 온도를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겨울에는 차가워지는 속도를 늦추고, 여름에는 뜨거워지는 속도를 늦춘다. 그래서 같은 위도라도 유럽은 겨울이 비교적 온화하다. 런던이 서울보다 북쪽인데도 눈이 적고, 비가 오고, 겨울이 덜 추운 이유이다.

 

그럼 왜 그 아래에 중동의 사막이 있느냐 하면, 그것은 기단의 성질과 하강 기류 때문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권에 있다. 이 지역은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강 기류가 강하다. 내려오는 공기는 압축되면서 따뜻해지고, 수증기가 생기기 어렵다. 그래서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사막이 형성된다. 북극의 찬 공기가 여기까지 내려오기 전에 이미 상층에서 차단되거나 성질이 변해버린다.

 

동남아와 한국 바로 옆의 일본은?

 

더 아래로 내려가 동남아가 더운 이유는 태양 에너지 때문이다. 적도 근처는 1년 내내 태양빛을 거의 직각으로 받는다. 공기가 데워지고 상승 기류가 강해져 비가 많고 덥다. 찬 공기가 내려올 틈 자체가 없다. 대기 자체가 위로 솟구치고 있으니, 차가운 공기는 밀려나 버린다.

 

일본의 겨울은 한국보다 덜 춥다. 한국보다 위도가 더 높은 홋가이도와 그 위의 섬들을 통틀어도 그렇다. 가장 큰 이유는 시베리아의 찬 공기를 정면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흘러내린 찬 공기는 먼저 한반도를 통과하며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이 과정에서 공기는 바다를 지나며 습기를 얻고, 지형에 부딪혀 성질이 거칠어지는데, 그 부담을 한국이 먼저 떠안는다. 일본에 도달할 즈음의 공기는 이미 상당 부분 약화된 상태이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보다 더 바다 쪽에 놓여 있어, 차가운 대륙성 공기가 직접적으로 밀고 들어오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겨울 공기는 차갑기는 해도 공격성이 낮고, 체감 추위가 완만하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다의 성격이다. 일본 동쪽에는 쿠로시오 해류라는 강력한 난류가 흐른다. 이 따뜻한 해류는 겨울철에도 공기를 데워 주며, 기온의 급격한 하강을 막는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 서쪽의 서해는 얕고 겨울에 빠르게 식어, 찬 공기를 완충하기보다 오히려 추위를 강화한다. 일본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여서 기온 변화가 완만하고, 바람도 한국처럼 직선적으로 몰아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위도라도 일본의 겨울은 온도보다 부드럽고, 추위가 살을 에는 감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이는 지리와 해류, 공기 이동 경로가 만들어낸 구조적인 차이이다.

 

끝으로 한국은...

 

결국 한국이 유난히 추운 이유는 세 가지가 겹치기 때문이다. 첫째, 시베리아라는 거대한 냉각 장치 바로 옆에 있다. 둘째, 그 찬 공기가 바다를 지나며 습기를 잔뜩 머금고 들어온다. 셋째,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어 있어 겨울철 바람이 매우 강하다. 이 세 가지가 합쳐져서 온도보다 훨씬 잔인한 체감 추위를 만든다.

 

그래서 한국의 겨울은 숫자로 설명하면 항상 부족하다. 한국의 추위는 공기의 이동 경로와 바다, 습도, 바람이 함께 만들어낸 물리적 결과이다. 살을 에는 느낌은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열이 빠르게 잘려 나가는 물리적 환경과 통합되는 정확한 묘사이다.

 

* 위의 윈드칠 차트를 통해서 보면 겨울철 혹한에서는 우선 바람을 막는 기능, 즉 윈드프룹(windproof) 기능을 가진 윈드스토퍼 등의 천(실은 레이어)을 채용한 겉옷을 입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혹한기 등산이나 오프 피스트 스킹 시에 사용하는 하드쉘(hardshell) 자켓이 얇은 천 한 장일지라도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profile
"질긴 놈이 이긴다."
별 재주 없는 나는 남들 그만 둘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아니면 남들과의 경쟁을 피해 남들이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법이다.
로그인 없이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추천은 DrSpark님께 힘이 됩니다.

이 게시물을

댓글'1'
Dr.DJ
  • 2026.01.06

지난 시즌 하이원리조트 마운틴탑 -23도 찍을때 스키탔습니다.요즘같은 발열양말등 보온 장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면 스킹하지 못했을겁니다.오후 야간 타려고 갔다가 오후만 타고 접었던 기억이 있지요.30년 스킹경력에 추워서 스킹 못하고 접은 기억은 단 한번입니다.그것도 강풍으로 인한 곤돌라 운행정지로 그 추운 바람 다 맞아 가며 곤돌라에 몸을 싣고 20여분을 마운틴 탑에 오르니 정말 온몸이 굳어 오더군요. 강설에 엣지 팍팍 박히는 느낌하나 보려고... 체험 삶의현장도 아니고 ㅡ.ㅡ

이 댓글을

공유하기

분류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수
추천
섬네일
동영상
8시간 전
조회 수: 40
추천: 0
단상
2026.01.23
조회 수: 113
추천: 0
잡담
2026.01.16
조회 수: 274
추천: 2
동영상
2026.01.13
조회 수: 154
추천: 2
잡담
2026.01.12
조회 수: 375
추천: 1
단상
2026.01.11
조회 수: 258
추천: 1
단상
2026.01.11
조회 수: 176
추천: 1
단상
2026.01.11
조회 수: 108
추천: 0
단상
2026.01.11
조회 수: 244
추천: 0
동영상
2026.01.07
조회 수: 176
추천: 2
잡담
2026.01.07
조회 수: 338
추천: 4
기타
2026.01.06
조회 수: 178
추천: 1
2026.01.02
조회 수: 325
추천: 2
잡담
2025.12.31
조회 수: 428
추천: 9
동영상
8시간 전
조회: 40
댓글:  0
추천: 0
단상
2026.01.23
조회: 113
댓글:  0
추천: 0
잡담
2026.01.16
조회: 274
댓글:  5
추천: 2
동영상
2026.01.13
조회: 154
댓글:  0
추천: 2
잡담
2026.01.12
조회: 375
댓글:  0
추천: 1
단상
2026.01.11
조회: 258
댓글:  0
추천: 1
단상
2026.01.11
조회: 176
댓글:  0
추천: 1
단상
2026.01.11
조회: 108
댓글:  0
추천: 0
단상
2026.01.11
조회: 244
댓글:  5
추천: 0
2026.01.09
조회: 344
댓글:  0
추천: 4
동영상
2026.01.07
조회: 176
댓글:  0
추천: 2
잡담
2026.01.07
조회: 338
댓글:  3
추천: 4
잡담
2026.01.06
조회: 493
댓글:  0
추천: 5
기타
2026.01.06
조회: 178
댓글:  0
추천: 1
2026.01.02
조회: 325
댓글:  1
추천: 2
잡담
2026.01.02
조회: 282
댓글:  0
추천: 5
잡담
2025.12.31
조회: 428
댓글:  6
추천: 9
잡담
2025.12.29
조회: 941
댓글:  4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