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드 리게티의 역주. 테드는 월드컵 선수 출신으로 고글, 선글라스, 헬멧 등을 만드는 "스미스 옵틱"을 세운 '밥 스미스'처럼, 쉬레드(Shred)란 고글 회사를 설립한 선수 출신의 기업가이다.
스키를 잘 못 타는 사람들은 티를 낸다.
다른 덴 몰라도 스키장에서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분류하는 기준은 실력이다. 복장도 아니고, 브랜드도 아니고, 말솜씨도 아니다. 당연히 스키 잘 타는 사람이 제일이다.
스키는 미끄러지는 순간 바로 드러나는 운동이다. 인터스키 검정시험에서 심사위원들이 첫 턴만 봐도 실력을 바로 판단한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다. 슬로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첫 번째 턴에서 무게 중심이 뒤로 빠지면 그대로 드러나고, 엣지를 제대로 세우지 못 해도 그 순간 몸이 흔들린다. 아무리 비싼 장비를 쓰고, 프로처럼 다양한 스키 지식에 대해 말을 해도, 경사면은 정직하게 그 사람의 실력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키를 잘 타지 못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못 탄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유를 만든다. 그 이유들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설질 탓, 장비 탓, 그리고 컨디션 탓이다. 이 세 가지는 스키장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주문이자, 실력 부족을 가리는 얇은 가면인 것이고, 결국은 “핑계”이다. 이 핑계들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대신, 외부 조건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려는 무의식적 시도인 것이다.
설질 핑계의 정체
제일 먼저 내세우는 게 설질 핑계이다. 눈이 너무 딱딱해서 그렇다, 눈이 너무 질어서 그렇다, 눈이 흩어져 범프가 많다, 이른 아침엔 좋았는데 11시부터 엉망이 됐다, 어제는 좋았는데 오늘은 다 망가졌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같은 슬로프를 내려온 직후에도 위쪽은 괜찮았는데 아래쪽이 문제라는 식으로 구간을 세분화해가며 설질을 탓한다.
설질은 분명히 중요하다. 아이스반과 파우더가 다르고, 슬러시와 압설이 다르다. 아침 첫 타임의 단단한 압설과 오후의 울퉁불퉁한 모글(범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 설질은 핑계가 아니라 조건(눈의 컨디션)이다. 조건이 바뀌면 대응도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건 다른 걸로 생각한다. 엣지 각을 조절하고, 하중을 나누고, 회전 반경을 줄이거나 늘린다. 딱딱한 설질에서는 엣지를 더 날카롭게 세우고 턴의 호를 좁게 가져간다. 진 눈(습설)에서는 스키를 더 평평하게 유지하며 넓은 턴으로 속도를 조절한다.
예를 들어 오전 9시의 얼어붙은 슬로프에서 상급자는 체중을 앞쪽에 두고 짧고 정확한 턴을 반복한다. 반면 초보자는 속도가 너무 나온다며 오히려 뒤로 중심을 빼는데, 그러다 보면 미끄러지기 마련인데 그 때 결국 설질을 탓한다. 오후 3시 햇볕에 녹아 질퍽해진 같은 슬로프에서 상급자는 스키 전체로 눈을 밀어내듯 타지만, 초보자는 스키가 눈에 파묻힌다며 불평한다. 문제는 설질이 아니라 그 설질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의 부재인 것이다. 소위 “시추에이션 스킹”을 해야한다.
설질이 나쁘다는 말이 입에서 먼저 나오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설질을 파악하고, 해석하고, 그걸 극복할 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좋은 설질에서만 탈 수 있는 기술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 의존적 습관이다. 진짜 실력은 나쁜 조건에서 드러난다. 상급자들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과 스킹하면서 은근히 아이스반, 하드팩, 습설, 자갈밭이 좀 나왔으면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비포장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는 운전자가 진짜 운전자이듯, 열악한 설질에서도 그에 맞게 제어할 수 있는 스키어가 진짜 훌륭한 스키어라 할 수 있다.
장비 핑계의 함정
두 번째는 장비 핑계이다. 스키가 너무 무르다, 너무 딱딱하다, 길이가 안 맞는다, 바인딩이 이상하다, 부츠가 불편하다는 말이 줄줄이 이어진다. 렌탈 장비는 당연히 문제고, 심지어 자기 장비도 뭔가 오늘은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어제까지 괜찮던 스키가 하룻밤 사이에 성능이 달라질 리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장비는 중요하다. 스키는 인간과 장비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룰 때 잘 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 카빙 스키와 프리스타일 스키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고, 부츠의 밀착도나 견고함에 따라 제어력이 달라진다. 그러나 장비는 실력을 증폭시키거나 억제할 수는 있어도, 없는 실력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좋은 악기를 줘도 연주를 못 하는 사람은 연주를 못 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실력이 부족할수록 장비에 대한 불만이 많아진다. 장비를 통제하지 못 하면, 그 장비는 언제나 과하거나 부족하게 느껴진다. 회전이 안 되면 스키가 딱딱하다고 하고, 속도가 나면 스키가 너무 잘 나간다고 말한다. 그 역시 너무 딱딱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왁싱을 하고나니 탈 수가 없다고 한다. 이는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몸의 제어 능력이 가진 문제이다. 같은 장비를 주고 상급자에게 타게 하면 아무 문제없이 매끄럽게 내려온다. 장비가 바뀐 게 아니라 타는 사람이 달라진 것뿐이다.
특히 렌탈 장비를 탓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런 장비는 마모되어 있고 개인 맞춤이 안 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비는 초중급자가 타기에 충분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정말로 장비가 문제라면 그 장비로는 아예 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야 하는데, 실상은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다. 그 불편함의 실체는 대개 자기 기술의 한계가 장비를 통해 증폭되어 느껴지는 것이다.
컨디션 핑계의 위험성
세 번째는 컨디션 핑계이다. 오늘은 몸이 무겁다, 어제 잠을 못 잤다, 감기 기운이 있다, 근육이 안 풀렸다, 어제 너무 많이 타서 다리가 아프다라는 말이다. 이 핑계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하다. 컨디션 변화는 실제로 존재하고,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처럼 들린다.
컨디션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올림픽 선수도 컨디션이 나쁜 날이 있고, 월드컵 스키어도 몸이 무거운 날이 있다. 문제는 실력 있는 사람은 컨디션이 나쁠수록 더 보수적으로 타고, 몸에 맞는 스킹을 하며, 기술은 더 정확한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속도를 줄이고, 턴을 크게 가져가며, 무리한 코스 선택을 피한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스킹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컨디션을 이유로 기본을 포기한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은 오늘은 대충 타겠다는 선언과 같다. 평소에도 제대로 못 타던 동작을 컨디션 탓으로 더 엉성하게 만든다. 그러다 넘어지면 역시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라고 결론짓는다. 이는 자기기만의 완벽한 순환 구조다.
스키 실력은 좋은 날이 아니라 나쁜 날에 드러난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우연히 성공한 턴 몇 개는 실력이 아니다. 피곤하고, 날씨가 흐리고, 몸이 무거운 날에도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그래서 컨디션 핑계는 가장 위험하다. 그것은 자신에게 나쁜 날의 기준을 낮춰도 된다는 허가를 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속도에 대한 오해
여기에 몇 가지 이유를 더 보태면 패턴은 더 선명해진다. 첫째는 속도에 대한 오해이다. 스키를 못 타는 사람일수록 빠르게 내려오는 것을 잘 타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속도가 나면 성공했다고 느끼고, 넘어지면 조건을 탓 한다. 슬로프를 직선으로 쭉 내려오면서 스릴을 느끼고, 그것을 스키를 잘 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쌩초보의 경우이다.
그러나 스키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제어이다. 느린 속도에서 정확하게 회전할 수 없는 사람은 빠른 속도에서도 그렇다. 만약 잘 내려간다면, 그건 우연히 살아남은 것 뿐이다. 프로 스키어들의 영상을 보면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매 순간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턴의 크기, 엣지의 각도, 체중 분배를 통해 가속과 감속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설질 조건, 경사 등에 관계 없이 완벽하게 제어된 스킹을 한다.
초보자는 중급 슬로프를 직선으로 빠르게 내려오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든다. 상급자는 상급 슬로프를 천천히, 정확하게, 리듬 있게 내려온다. 누가 더 스키를 잘 타는가. 답은 명백하다. 속도는 기술의 증거가 아니라 기술 부족을 가리는 착시일 뿐이다.
자세에 대한 집착
둘째는 자세에 대한 집착이다. 사진에 나오는 자세, 영상에서 본 자세를 흉내 내는 데 집중한다. 그런 자세가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 상체 각도, 팔 위치, 무릎 모양에 신경을 쓰지만, 정작 하중 이동과 타이밍은 잊고 있다. 거울 앞에서 폼을 잡고, 곤돌라에서 프로 스키어의 자세를 분석하며, 자신도 똑같이 해보려 한다.
그러다 보니 동작이 어긋나고, 그 어긋남의 원인을 장비나 설질에서 찾는다. 자세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프로의 멋진 자세는 완벽한 하중 이동과 리듬, 그리고 타이밍의 산물이다. 그 내적 메커니즘 없이 겉모습만 따라 하면 어색한 포즈만 남는다. 마치 발레 무용수의 동작을 근력도 균형감도 없이 따라 하려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카빙 턴에서 상체를 안쪽으로 기울이는 자세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려 한다. 하지만 그 자세는 적절한 속도, 정확한 엣지 각도, 완벽한 타이밍이 맞아떨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세만 억지로 만들면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그리고 그 탓은 설질이나 스키 장비 쪽으로 돌린다.
연습에 대한 오해
셋째는 연습에 대한 오해이다. 스키를 많이 타면 늘 거라고 믿는다. 시간과 횟수가 실력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키장에 자주 가고, 하루에 많은 슬로프를 돌며, 자신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숙련이 아니라 나쁜 자세의 고착이 된다. 스키를 못 타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연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의미 없이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잘못된 자세로 백 번을 타는 것은 잘못된 자세를 백 번 강화하는 것이다. 근육은 반복된 패턴을 기억하는데, 그 패턴이 틀려 있으면 고치기는 더 어려워진다.
반복과 연습은 다르다. 연습은 의식적인 수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심지어는 본인은 수정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이번 턴에서 무게 중심이 뒤로 빠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음 턴에서는 앞으로 더 실어본다. 엣지가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허리, 무릎, 발목의 각도를 조절해본다. 이런 피드백 루프가 작동할 때 연습이 된다. 그냥 내려오기만 하는 것은 관성이지 연습이 아니다.
조언에 대한 태도
넷째는 조언에 대한 태도이다. 실력이 부족할수록 조언을 방어적으로 받아들인다. 동료나 강사가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두라고 하면 나는 예전에는 잘 탔다, 다른 데서는 괜찮다, 이 슬로프가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조언을 수용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이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 보면 자기 신체 감각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느끼지 못하면, 외부의 피드백은 공격처럼 느껴진다. 무게 중심이 뒤에 있다는 말을 들어도, 본인은 중경이거나 충분히 앞에 있다고 느낀다. 그 감각의 괴리를 인정하지 못하면 발전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실력 있는 사람은 조언을 실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일단 해본다. 제안된 방식으로 한두 턴을 시도해보고, 차이를 느껴본다. 맞으면 수용하고, 안 맞으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이 유연함이 발전의 기초인 것이다. 모든 조언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조언을 방어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은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비교 대상의 오류
다섯째는 비교 대상의 오류이다. 자신보다 못 타는 사람과 비교하며 안도한다. 슬로프에서 초보자가 넘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저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정말 잘 타는 사람은 기준에서 제외한다. 저 사람은 프로니까, 저 사람은 어릴 때부터 탔으니까, 저 사람은 매일 타니까라며 비교 대상에서 빼버린다.
그러다 보니 실력에 대한 자기 평가가 왜곡된다. 자신은 중급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초급과 중급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이 착각은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데, 그 지점을 착각하고 있으니 방향 설정 자체가 틀어진다.
스키는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에 가깝다. 슬로프에서는 늘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이 속도와 이 각도를 제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옆 사람이 못 탄다고 해서 내가 잘 타는 것이 아니고, 옆 사람이 잘 탄다고 해서 내가 못 타는 것도 아니다. 기준은 오직 나 자신이다.
실패에 대한 태도
여섯째는 실패에 대한 태도이다. 넘어짐을 부끄러워하거나, 변명으로 덮는다. 넘어지는 순간 빨리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고, 설질이 이상했다거나 누가 지나가서 그랬다는 식으로 즉각 이유를 댄다. 넘어진 자리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다시 내려간다. 아무리 잘 타는 사람도 어쩌다 한 번 넘어진다. 심지어는 멀쩡히 서있다가 괜히 미끄러지는 수도 있다.
그러나 스키에서의 넘어짐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데이터가 쌓이는 것이다. 어디서, 왜 넘어졌는지를 분석하지 않으면 같은 지점에서 같은 이유로 다시 넘어진다. 턴의 어느 지점에서 중심을 잃었는지, 엣지가 미끄러진 것인지 아니면 걸린 것인지, 속도가 문제였는지 각도가 문제였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핑계는 이런 훌륭한 데이터를 폐기하는 행위이다.
상급자들은 넘어지는 빈도는 적지만, 넘어졌을 때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선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성의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몇 미터 올라가서 같은 구간을 다시 내려오기까지 한다. 넘어짐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정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태도의 차이가 실력의 차이를 만든다.
언어 습관의 차이
이 모든 패턴을 관통하는 것은 언어 습관이다. 스키를 못 타는 사람은 주어가 외부에 있다. 설질이 나빠서, 장비가 이상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고 말한다.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은 주어가 자신에게 있다. 내가 타이밍을 놓쳤다, 내가 중심을 뒤로 뺐다, 내가 엣지를 제대로 안 세웠다고 말한다.
이 언어의 차이는 사고방식의 차이이다. 외부에 원인을 두는 순간, 개선의 여지는 사라진다. 설질을 바꿀 수 없고, 날씨를 바꿀 수 없으며, 컨디션을 완벽하게 관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동작은 바꿀 수 있다.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할 때 발전이 시작된다.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 들리는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이 패턴이 확연히 드러난다. 초보자들은 슬로프 탓, 사람 탓, 날씨 탓을 늘어놓는다. 중급자들은 장비와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조건에 대한 불만이 섞여 있다. 상급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거나, 다음 코스에서 시도할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엔 잘 타는지 옆에서 살펴봐 달라고 한다. 모두 주어의 위치가 다르다.
결국 태도의 문제
결국 설질 핑계, 장비 핑계, 컨디션 핑계, 날씨 핑계는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스키는 정직하다.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중력은 배려하지 않는다. 슬로프는 사회적 지위를 봐주지 않고, 경력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존심을 보호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 한 순간의 기술만을 평가한다.
잘 타는 사람은 환경을 말하지 않고, 못 타는 사람은 환경을 먼저 말한다. 그 차이는 기술 이전에 태도의 차이다. 기술은 태도에서 나온다. 자기 몸에 솔직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조건을 받아들이는 태도 없이는 백 번을 타도 초보 수준에 머문다. 반대로 그 태도만 있다면 열 번을 타도 빠르게 발전한다.
스키를 잘 탄다는 것은 멋있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핑계 없이 내려오는 것이다.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순간부터 실력은 쌓이기 시작한다. 설질은 늘 변하고, 장비는 늘 바뀌며, 컨디션은 늘 들쭉날쭉하다. 그 안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는 것은 오직 기술과 태도뿐이다.
끝으로. 변하지 않는 진실은?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국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이다. 그들은 좋은 설질에서 더 잘 타고, 나쁜 설질에서도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 좋은 장비를 주면 더 빛나고, 평범한 장비로도 제 몫을 해낸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도전적으로 타고, 나쁠 때는 안전하게 탄다. 모든 조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낸다.
반면 핑계에 기대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에 머문다. 완벽한 설질, 완벽한 장비, 완벽한 컨디션을 기다리지만, 그런 날은 죽는 날 아침까지 오지 않는다. 설령 그런 날이 와도 또 다른 핑계를 찾아낼 것이기에. 너무 사람이 많아서, 날씨가 너무 좋아서, 혹은 나빠서, 눈이 질어서, 이번 시즌 처음이라 감이 없어서. 핑계는 무한하다. 시즌 처음이라 영 감이 안 잡힌다는 건 지난 시즌, 지지난 시즌에도 그 실력이었다는 증거인데, 그건 모른다.
스키장은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무대이다. 설질도, 장비도, 컨디션도, 날씨도 모두 변한다. 하지만 경사는 변하지 않고, 중력도 변하지 않으며, 실력의 차이도 변하지 않는다. 그 변하지 않는 진실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스키어인지를 드러낸다. 핑계는 편하지만 발전이 없고, 인정은 불편하지만 성장이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난 용평의 레드가 좋아. 양편에 객석이 있는 중앙 무대잖아? 거기 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진짜 실력자는 이런 소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위에 열거하신 모든 것들이 스키의 매력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
아이스반이나 범프들을 말할 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같은 거죠.
'좋아요' 두 개 날리고 싶은데 기능이 없어 한 개 크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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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레드를 참 좋아하지만 시선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옷을 자주 바꿔 입는 변신술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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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나 보통의 삶이나 모두 같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많이 배워야하는 청년이지만 삶이 진행되면 될수록 태도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느낍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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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티 났어요? 그렇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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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읽으면서 너무나 공감했어요. 좋은 글과 조언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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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를 타고 내려오면 턱이 아픕니다.
끊어 타도, 턴이 망가져도 부끄러우니 이를 악물고 타야 하거든요.
부실하게 타느니 아예 대회에서 타듯 들이대다 크게 넘어지는 쪽이 낫다 생각합니다. 웃음이라도 주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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