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 스키에 인생을 걸다
하지만 이 때까지 스키가 내 삶의 화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키가 미칠 것 처럼 좋았지만 스키를 직업으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스키가 내 삶의 화두로 자리잡는 사건이 운명처럼 발생했습니다. 아마도 1999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문을 통해 접한 양성철의 기사였습니다.
'GOD OF SKI'라 불리는 캐나다의 레벨 4를 한국인 최초, 동양인으로서는 두번째로 취득한 그의 기사와 세계최고의 스키장으로 꼽히는 휘슬러-블랙콤(whistler-Blackcomb)에 대한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젊은 베르테르가 처음 롯테를 만났을 때 처럼 쿵쾅쿵쾅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찾는 것이! 이왕 스키를 탈거라면 세계 최고의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야지! 이거라면 한번 내 모든 인생을 걸어볼만하겠는걸......'
마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을 때 할 법한 감탄을 내뱉으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스키를 타면서 나보다 스키를 잘타는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였지만 한번도 내가 '꼭 그들처럼 되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성철과 그가 스킹을 즐기는 '휘슬러-블랙콤'은 정말 특별한 느낌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 느낌은 반드시 그 곳에 가서 스킹을 해봐야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은 터질 것 처럼 벅차올랐지만 현실의 벽은 두텁기만 했습니다.
"야! 너가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 스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거야. 서른이면 남들은 선수생활 다 끝내고 은퇴할 나이야." 당시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차더군요.
제 스스로 고민해봐도 답이 안나오는 문제였습니다. 스키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저를 둘러싼 현실은 차갑게 그 꿈을 외면하라고만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스키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귓가를 스쳐지나가고, 하얀 설원위에 나만의 궤적을 그리며 달려갈 때의 느낌은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의 극치입니다. 서른 해를 살면서 나름대로 여러가지를 경험하였지만 스키처럼 저를 사로잡고 뒤흔들어 놓는 것은 없었습니다. 마치 젊은 날의 사랑의 열병처럼요.
그래서 99년 여름은 "이미 늦었어. 해서는 안 돼"라는 이성(理性)과 "하지 않고는 못 살 것 같아"라는 감성(感性)이 하루에도 몇 차례나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루한 싸움은 99년의 가을에야 끝났습니다. 아내 혜승의 조언이 저에겐 무엇보다 큰 힘이었습니다.
"당신 하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해 봐. 난 당신을 믿어!"
당시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으니 다른 어느때보다 불안할텐데도 조금의 흔들림없이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삶을 결정지었습니다. 나이 서른에.
스키패트롤, 미친놈의 열정으로 버티다
하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스킹실력을 가진 저로선 휘슬러에 가서 스키강사가 된다는 것이 정말 꿈에서나 가능할뿐인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스킹실력을 향상시켜야 했습니다.
지금은 십여년전에 비해 수많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고, 많은 고수들을 동호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주말스키어로서 아마추어 이상의 스킹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정말 타고난 운동 능력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준강사(KSIA Level2)이상의 실력자들은 대부분 선수출신이거나 스키장에서 강사나 패트롤을 했던 사람들, 그것도 아니라면 한두해 이상 시즌 내내 스키만 탔거나 10년 이상 스키를 열심히 연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법을 알아 보다가 선택한 방법은 스키패트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패트롤은 모든 아마추어 스키어들에게 동경의 대상입니다. 먼저 그 검게 그을은 얼굴과 붉은색 패트롤복이 무엇보다 스키어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그들이 보이면 모든 스키어들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한국의 스키어들이라면 한 두번쯤은 누구나 그런 패트롤을 꿈꾸어 보았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패트롤을 동경해왔었기에 내 스킹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스키장에서의 패트롤 근무를 계획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1999년 가을, 당시 패트롤을 하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서른이 넘은 나이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지산스키장은 '서울근교의 가장 잘 나가는 스키장'으로 인식이 되면서 확장일로에 있었고, 실버슬로프를 오픈하면서 많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일단 슬로프 공사현장에 투입되고 그 후 겨울에 패트롤로 일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일하게 되었습니다.
시즌을 한참 앞둔 10월경에 지산스키장에 들어가 슬로프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시즌 오픈을 기다렸습니다. 스키장 휀스 만들기, 옮기기, 설치하기에서부터 슬로프 고르기, 짚단깔기 등 이러저러한 잡다한 작업들을 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막노동'을 한 것이죠.
일이 고된 것은 둘째치고 하루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하는 작업들이 대부분이어서 작업이 끝나고 돌아와 샤워를 할 때면 온 몸 구석구석과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오는 흙먼지들로 욕실바닥엔 흙탕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몸은 고되도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겨울엔 패트롤로 일할 수 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 힘겨운줄 모르고 신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함께 고생했던 선준철(선일영데몬의 큰 형), 김춘수(전 국가대표 모글스키팀 감독), 장근원 팀장들과도 두터운 정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넉살 좋고 구수한 횡계사투리가 특징인 선준철 팀장은 서울리조트 근무시 두현형과도 인연이 있었고 나이도 비슷해 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마 선팀장이 없었다면 힘든 패트롤 생활을 제대로 버텨냈을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드디어 두달여의 막노동을 마치고 맞이한 겨울.
얼마나 기다려왔던 겨울인지 정말 스키장을 처음 오픈하는 날은 눈물이 고일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비록 스키타기 보다는 해야할 일이 훨씬 많은 시즌 초였지만 드디어 패트롤복을 입고 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벅차오르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패트롤 생활은 생각보다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엄청난 작업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키장이 오픈하고 나면 각 슬로프마다 휀스를 정리해야 하고 슬로프 바닥을 고르고 눈이 뿌려지면 그 눈의 높이에 맞춰 또다시 휀스높이를 높여야합니다.
또한 아침마다 안전그물을 설치해야 하는데 슬로프가 오픈하기 전에 미리 올라가 휀스를 설치할 곳을 확인하고 휀스와 드릴, 삽등을 가지고 출동합니다. 시즌 중반 이후에는 이런 작업들에도 이력이 나서 한층 수월하고 시간도 적게 걸리지만 초반엔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습니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만큼 체력소모도 큽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보다 더욱 힘든 것은 추위와의 싸움입니다. 어느정도 휀스설치 작업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각 팀별로 정해진 슬로프의 근무지에 배치되어 근무를 섭니다. 사람이 적은 주일 주간스키는 그나마 근무를 서기가 편하고 개인적으로 스킹을 연습할만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야간스키는 상황이 다릅니다. 서울근교 스키장이다 보니 주간스키보다는 야간스키에 사람이 집중되는 편입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사고도 많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데다 밤이면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는 날씨때문에 거의 초주검이 됩니다. 부지런히 스키라도 탄다면 춥지는 않으련만 수시로 발생하는 사고 때문에 다른 대원들이 환자수송에 나서면 꼼짝없이 몇 시간이고 제자리에 서서 발을 굴러야 합니다.
이 때 양쪽 발에 동상이 걸려 겨울동안에 무척이나 고생이 심했습니다. 언젠가는 '출발, 모닝와이드'라는 아침 TV프로그램에서 스키패트롤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 때 동상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이 잠깐 화면에 비친 적이 있습니다. 촬영중 리포터가 이름과 나이를 묻는데 생각없이 26살이고 답했다가 화면 하단에 '정우찬(26세)'라는 자막이 나가는 바람에 한동안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했죠.^^*
추위 못지않게 패트롤을 괴롭히는 것은 피곤입니다. 아침 7시경에 기상해서 야간스키가 끝난 뒤 각종 정리작업을 마치고 나면 저녁 11시가 넘는 것은 보통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울 시간이면 빨라야 12시. 하지만 한창 피가 끓는 젊은 친구들이 그냥 잠자리에 들리는 없습니다. 저마다 소주 한 잔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보면 새벽 2~3시가 넘는 것은 다반사이죠.
이런 생활을 견디어 내는 것은 젊음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더구나 대부분 체육과 재학생들이어서 체력 하나만큼은 어느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무쇠같은 친구들이다보니 그나마 버티어 내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생활이 한두달 넘어가면 저마다 체력이 바닥나고 날이 따뜻해지는 2월경이 되면 슬로프에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입니다. 시즌 초반에 저마다 열심이던 스킹연습도 시들해지고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처럼 패트롤 생활의 고단함들을 이야기하니 마치 실미도 대원들같네요.^^ 하지만 이런 고단함에도 당시의 패트롤 생활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건 그에 버금가는 훈훈한 추억들과 에피소드 그리고 원하던 스킹의 향상이 가능했기 때문일겁니다.
당시의 재미난 기억들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적도록 하고 이번글엔 스킹에 대한 부분만 적어보죠.
스키패트롤 생활을 시작하기전 당시 제 스킹은 무난한 자세로 롱턴과 미디움턴을 할 수 있고, 중급사면에서 숏턴이 가능하나 급사면 숏턴이 안되는 정도의 실력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그나마 중급자 정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실력이었습니다.
처음 패트롤 생활을 시작하면 각 팀장들에 의해 팀원들의 스킹테스트가 치뤄지고 실력이 수준에 못미치면 팀장 인솔하에 일주일에서 열흘간 기본적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어느정도 수준이 된다고 판단되면 그나마 스킹교육은 제외되고 바로 환자의 응급처치 및 수송에 관련된 교육과 근무서는 방법 등 구체적인 실전훈련에 들어갑니다.
저는 스킹테스트를 거쳐 일단 기본스킹교육은 필요없다고 판단되어 바로 실전훈련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미 패러렐 스킹이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이때부터 스킹향상은 각 개인의 몫입니다. 팀장들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열심히 각자 연습하거나 선배들을 따라 다니며 한 수 씩 전수 받습니다. 체계적인 교육이 없으니 스킹향상은 대부분 각자의 노력에 달려있는 셈이지요. 물론 저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타고난 머슴스키어라서......^^*
시즌초반엔 마음과는 달리 스킹을 할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작업량도 엄청 많은데다 일이 손에 익지 않으니 같은 일을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곤 했죠. 하지만 1월중순 이후엔 여러가지 상황이 호전되어 스킹연습할 시간이 많아집니다.
저는 오전에 주로 보겐과 슈템, 패러렐 등을 위주로 연습하고 오후엔 패러렐과 숏턴을 연습했습니다. 기초스킹을 연습하는 과정은 꽤나 지루하고 발전도 더디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본기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패러렐과 숏턴은 속도감도 있고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이 스스로 느껴지는 단계이므로 그만큼 흥미가 있는 부분입니다. 때론 팀장들이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기도 하지만 가장 도움을 많이 준 것은 역시 함께 연습하는 다른 대원들입니다. 서로 스킹의 장단점을 지적해주며 이야기하고 스킹을 하다보면 조금씩 스킹에 대한 지식도 생겨나고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스킹을 하다보니 쉽지 않던 급사면 숏턴이 가능해지고 더욱 안정된 패러렐턴이 가능해졌습니다. 어떤 특별한 트레이닝이라기 보다는 엄청난 연습량에 따른 자연적인 스킹향상인 셈이죠. 당시에 저를 바라보는 다른 패트롤대원들에 눈에는 아마 "연습벌레"로 비춰졌을 겁니다.
마침내 스키 준강사를 취득하다
2월 중순경 천마산스키장에서 치뤄진 1급 뱃지 테스트를 패스하고, 또한 지산스키장에서 치뤄진 스키패트롤 자격시험을 통과하면서 점차 스킹에도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드디어 2000년 3월. 준강사 시험이 치뤄지는 휘닉스파크 스키장.
지산스키장에서는 스키스쿨 소속의 강사들 몇 명과 스키 패트롤 몇 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스키스쿨과 패트롤간에는 알게 모르게 경쟁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름의 신경전이 많답니다. 함께 참가한 정철기, 양정모 대원과 서로 화이팅을 외치며 최선의 스킹을 다짐해 봅니다.
시즌 초반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급사면 숏턴의 감은 시즌 후반 들어서면서 거의 안정화되었습니다. 시즌 중반까지도 급사면 숏턴은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밸런스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작정 스키만 돌려주다보니 정확한 엣지그립이 형성되지 않아 쉽게 턴호가 터지고 불안정한 숏턴이 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정확한 자세를 취하면서 한 턴 한 턴 완성해 가다보니 시즌 후반에 들어서면서 스키와 신체 중심의 연관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스키 위에 바르게 서는 법을 깨달은 거지요. 스키를 몸의 중심 아래에 두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엣지를 이용해 스키를 돌려주면서부터 급사면에서도 안정적인 숏턴을 만들수 있게 되었습니다.
롱턴 또한 스키의 중심에 올라탄 채로 정확하게 스키를 밟아주면 고속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시즌 중반 이후 롱턴에 대한 감은 빨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매끄럽게 정설된 슬로프를 가장 먼저 활주할 수 있는 패트롤만의 특권(?)때문에 일반 스키어들보다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나 봅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텅 빈 슬로프, 빗살처럼 정설된 부드러운 슬로프를 달려내려갈 때의 그 느낌은 아마 패트롤만이 맛볼 수 있는 특별한 행복감일 것입니다.
다른 스키어들이 리프트 대기라인에 길게 줄을 선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패트롤들은 일종의 우월감같은 것을 느낍니다. 아마 이런 쾌감이 힘겨운 패트롤 생활을 보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겐과 슈템은 남들이 지루한 연습이라며 멀리할 때도 꾸준히 연습하였습니다. 당시 패트롤 선배중의 하나가 푸르그보겐을 '스키기술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스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그 말을 믿고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덕분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종합활강.
한창 시즌때와는 달리 습설이 많은 시즌 후반이어서 롱턴에서 발생한 스피드를 안정적으로 숏턴으로 변환하는 것이 큰 과제였습니다. 스피드를 줄이면 스킹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스피드를 유지하면 숏턴이 걷잡을 수 없어 망가지곤 하였습니다. 시즌 후반까지도 종합활강은 되었다가 안되었다가 하여 제 마음을 바짝 졸이게 한 종목이었습니다.
시험 당일에도 역시 슬로프 상태는 좋지 않았고, 많은 스키어들이 스쳐지나간 슬로프는 이리저리 난도질 되어 있었습니다. 중간 중간 얼어있는 구간도 있어서 넘어지는 참가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지만 종합활강은 나름 큰 관문이었지요. 하지만 큰 실수 없이 시험을 마치고 안도의 큰 숨을 내쉬었습니다. 휴~우
마침내 합격통지를 받고 눈물이 글썽.
"스키강사는 다 선수출신들이야. 일반인들은 평생 타도 스키강사되기 힘들어."
처음 스키를 타기 시작했을때 오랫동안 스키를 타셨던 산악회 선배님께 들은 말입니다. 그 말이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일반인들이 강사급의 실력을 갖추기는 어려운 일이란 뜻으로 이해한다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성취의 뒤에서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누가뭐래도 제 아내일 것입니다. 제가 패트롤로 일할 당시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중인 상태였고, 긴 겨울동안 혼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당시에 제가 썼던 편지입니다.
혜승아!
임신한 당신을 떠나 지산스키장에서 스키패트롤로 근무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스키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채우기위해 당신과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하지만 꼭 강사와 패트롤 자격증을 딸 께. 당신과 아이에게 그 선물을 바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고 있어.
97/98년 스키시즌에 대명에 내려가 있던 때가 생각나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우리의 사랑을 깊게 하고 순수하게 만들던 시기였지. 이 겨울 또한 마찬가지일거야. 당신과 아이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지낼께.
당신을 내게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해.
나를 이해해 주는 당신이 있기에 내가 이 세상의 넓고 거친 품으로 당당하게 뛰어들 수 있는 거야.
외로움을 타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무언가를 찾아서 해. 특히 영어공부. 태교에도 신경쓰고, 혼자서도 잘 먹어야 해.
당신이 보고 싶은 만큼 그만큼 열심히 탈 께.
내 꿈, 우리의 꿈을 꼭 이루자.
항상 건강에 주의하고, 마음은 편하게~ 알았지?
사랑해.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계속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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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합니다.
다음 호(?)도 기다려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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