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s Dr. Spark?
Welcome to Dr. Spark's Columns!!! 제 자신에 대하여 소개하는 페이지입니다. 별 이유는 없이 이 페이지의 제목을 영어로 달아봤습니다. 이걸 우리말로 바꾸면 좀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소개한다는 것이 좀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어느 누가 저에 관해서 저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저야 뭐 솔직한 게 주특기이니 있는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풀어놓으면 될 듯하여 써 봅니다. 만약 아래 언급되지 않은 면이 저에게서 발견된다면, 그건 자신도 알 수 없는 다른 면을 제삼자가 발견하신 것이거나, 이곳에서의 글 쓸 공간의 제약으로 제가 할 말을 다 못 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저의 이름은 박순백(朴淳伯), 한자로는 순박할 "순" 자에 맏 "백" 자를 씁니다.(원래는 3남으로 태어났으나 현재 맏이가 된 걸 보면서, 맏이가 아닌 사람에게는 맏 "백" 자를 쓰는 게 좋지 않은 것이라던 어떤 분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저는 1953년 생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나 가던 시점에서 베이비 붐 세대의 일원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Dr. Spark는 저의 별명. 원래 저의 통신 아이디 때문에 생긴 별명인데, 부르기 편하고 기억하기 편하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냥 쓰고 있습니다. 별명도 오래되다 보면 천성처럼 굳어지기 마련이어서 지금은 저도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게 되었고...^^ 스파크(Spark)란 아이디는 1987년에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 때 다른 사람들보다 좀 일찍 PC 통신을 하게 되었는데, 저의 데이콤 H-mail(한메일) ID가 sbpark이었습니다.(제가 정한 게 아니고, 데이콤에서 알아서 그렇게 정해 준 겁니다. 그것도 당시 다른 분들에게는 무슨 일련번호 같은 걸 부여했는데, 특별한 이유로 제 이름의 두문자를 가지고 정해준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 데이콤의 이 서비스 담당 연구위원이셨던 유경희 위원님(전 표준연구원장)께서 제가 쓴 글들을 읽다보면 가끔 스파크가 튀는 듯하다고 하시며 sbpark에서 'b'를 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spark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Spark는 그래서 탄생하게 된 유서 깊은(?) 아이디인 셈입니다. 그 후에 제가 박사학위를 따는 바람에 앞에 Doctor란 호칭이 추가된 것이지요.(저는 신문방송학과 출신의 언론법 전공자로서, 박사학위는 "언론학"으로 받았습니다.) 경희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저는 상당히 오랫동안 조영식 총장님(경희대학교 설립자, 전 경희대 총장, 이사장)의 비서실장으로 경희대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강의는 경희대의 제3캠퍼스인 평화복지대학원(Graduate Institute of Peace Studies)에서 했습니다. 30대를 그렇게 보냈고, 40대 초반에는 30대에 익힌 컴퓨터와 글재주(?) 때문에 직장을 정보통신(IT) 쪽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경희대에 재직할 당시 조 박사님이 세계대학총장회(IAUP)의 회장을 3연임하시는 동안 제가 그 기관지인 “룩스 문디(Lux Mundi)”란 영문 잡지의 편집인으로 일하기도 하고, IAUP의 해외 교신 업무나 데이터 관리 업무를 당시에 세상에 출현한 지 얼마 안 되어 엄청나게 값비쌌던(!!!) PC인 Tandy Radio Shack Model II를 통하여 작업하는 바람에 나름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된 것이지요. 당시엔 PC라고 해도 거의 중형 컴퓨터와 닮아있는 것이었고, 그 사용법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워야만 했습니다. 어쨌든 취미로 했던 컴퓨터와 "PC통신"(이 희한한 용어는 제가 만든 겁니다. 외국엔 컴퓨터 통신일 뿐, PC 통신이란 용어는 우리만 사용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는데, 그건 다른 글에서... "님"으로 호칭하기 운동도 제가 시작해서 퍼뜨린 것이고...)이 인생에도 영향을 미치더군요. 결국 1994년 5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아래아 한/글로 잘 알려진 (주)한글과컴퓨터에서 홍보 이사, 개발 상무(이 시절에 "심마니"가 제 휘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젠 추억의 검색 사이트가 되었지만...-_-), 마케팅 부사장으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아래아 한/글 개발의 주인공인 이찬진 사장께서 1999년 7월에 새로 설립한 인터넷 포털 업체인 (주)드림위즈(DreamWiz)로 옮겨왔습니다. 2009년 현재까지 이 회사의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COO)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드림위즈의 관계사로서 iPhone 관련 앱(app) 개발업체인 (주)터치커넥트 사의 이사로도 일합니다. 저의 가장 큰 취미는 글쓰기이며, 한 때는 테니스와 아이스 하키 스케이팅을 무척이나 즐겼습니다만, 그 두 가지는 지금은 접었습니다. 대신 스케이팅보다는 짧지만 1968년 이래 계속해 온 스키는 전보다 더 열심히 타고 있고, 아이스 하키 스케이팅은 접었지만, 인라인 스케이팅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기와 음악 듣기는 1980년 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해 온 것인데, 지금도 사진은 이 홈 페이지의 운영과도 관련히 되어 있기에 상당히 깊이 빠져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하기나 여행 등이 지금의 좋은 취미이고, 스키와 인라인 스케이팅은 이젠 취미이자 특기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제가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인라인롤러연맹(KRSF)의 생활체육이사로 일하고, 또 대한스키지도자연맹(KSIA)의 이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절 체육인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아직도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인 중 하나일 뿐이고, 또 주말 스키어 중 하나일 뿐입니다.(단지 두 스포츠에 있어서 스폰서링 회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몇 스포츠 장비에 제 signature model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반 동호인과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정도라고 하겠지요. - Simmons Dr. Spark, Deeps Dr. Spark, LAS Dr. Spark 등의 인라인 레이스 부츠, 스포츠 글라스, 인라인/자전거 헬멧.) 저는 앞서 말했듯이 1979년에 처음으로 PC를 시작하고, 1987년에 PC 통신을 시작(이라기보다는 거의 개척?)한 후, 1988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컴퓨터 전문지나 일간지에 PC에 관한 기명 칼럼을 기고한 바 있습니다. 1994년 이후에는 스키 매거진 지를 비롯한 몇 개의 스키 잡지에 기명 칼럼을 게재키도 했습니다. 1998년 이후에는 인라인 관련 칼럼도 상당히 많이 썼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저를 최초의 기명 컴퓨터 칼럼니스트, 최초의 스키 및 인라인 칼럼니스트로 기억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10여 권의 컴퓨터 관련 서적과 4권의 스키 관련서, 그리고 인라인 관련서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홈 페이지에는 제가 과거로부터 발표한 많은 컴퓨터 및 스키 관련 칼럼들이 실려 있어서 홈 페이지의 제목을 오랫동안 Dr. Spark's Columns로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 "박순백 칼럼"이란 홈 페이지의 타이틀은 결국 잡지에 실린 저의 기명 칼럼의 타이틀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조병화, 서정범 두 국문과 교수님 덕분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나중에 서정범 교수님의 권유로 "한국수필" 지에 글을 발표하고 천료하여, 한국수필가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수필가의 호칭을 가진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삶을 둘러싼 많은 글들도 썼고, 그런 글들도 이 홈 페이지에는 많이 실려 있습니다. 살아가는 중간중간에 삶을 정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글들을 쓴 것입니다. 아주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모두 기록했습니다. 그런 글들을 발견하시면 굳이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하시지 말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홈 페이지를 통하여 앞으로도 여러분들과의 많은 만남을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이 글을 접습니다. - 박순백 드림. 아래의 여러 가지 글들은 굵직하게 나눠 본 저의 연대기(chronology)입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이 글을 고쳐썼습니다. 1996년 7월 이 홈 페이지를 만들면서 썼던 글을 2007년의 설날 연휴가 끝나며 고쳐 싣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