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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속삭임이 진하게 밀려오는 봄날이다. 카메라를 메고 봄과 사랑에 깊이 빠졌다. 뷰파인더로 들여다 본 꽃몽우리들은 아가의 오므려 쥔 손과 같이 앙증맞다. 나무들이 새 순을 움 틔우면 세상을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이니 봄은 젊음으로 가득해서 좋다. 앞으로 이 아름다운 꽃들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지나친 염려일까.
계절 앞에서 나이를 의식하게 된 것은 작년 즈음부터다. ‘남편과 이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얼마나 더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머무르자 세월의 속도가 두려웠다. 1분, 1초도 허술하게 보낼 수가 없다. 일상의 발걸음을 멈추고 남편과 보낸 둘만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나의 언어와 그의 언어가 맞닿아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슬픔의 흔적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 눈물자국은 잘 견뎌온 삶의 빛나는 발자취였다. 가슴 밑바닥에 눌러놓았던 감정들이 미묘하게 섞인다. 하나는 남겨지고 하나는 떠나게 되는 시간이 언젠가 온다면 미리 생각의 예방주사를 맞는 것도 좋을 듯했다.

남편이 대학 새내기 때 일이다. 국문과 교수님이셨던 고 조병화 시인께서 문장론 수업 시간에 조금 늦으셨단다. “내가 수업에 좀 늦었네. 봄꽃을 바라보다 늦었다네. ‘내가 이 아름다운 꽃들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 꽃들을 바라보는 순간이 어찌나 귀한지 그만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린 거지. 죽음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순간들이 다 귀하고 아름다운 거야.” 죽음을 곁에 두고 사신 그분은 다음 해에도 살아있어 그 봄꽃을 볼 수 있을까 여기며 가슴아파하셨지만 그 일 이후에도 서른 번 이상 봄꽃들을 만나셨단다.
인간의 삶이 언제 마감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무엇을 하자고 하면 거절을 못 한다. 매 순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가 더욱 소중해지고, 순간순간 삶이 소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기쁨으로 인간은 유한한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했다.
남편은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해서 컴퓨터에 관한 모든 걸 잘 안다. 언젠가 이것 저것 컴퓨터를 손 봐 주다가 뜬금없이 “나 죽으면 이런 건 어떻게 할래?”라고 했다. 웃자고 던진 갑작스런 질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내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남편보다 사흘이라도,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거다. 남편이 나이 들어 기운이 달린 채 지팡이에 의지해 후들거리면서 아내의 무덤에 오가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남자보다 강한 내가 살아남아, 비록 휘청거리는 다리일지라도 남편의 무덤 앞에 서고 싶다. 최근 선물받은 가벼운 명아주 지팡이, 그건 80세가 넘어 내가 사용 할 소중한 물건이다.
- 경주 보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