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랙션 턴(Retraction Turn)’의 원리와 실제
스키어들 사이에서 흔히 ‘벤딩 턴(Bending Turn)’이라고 불리는 기술은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용어에서 기원한 경우가 많다(틀린 영어이므로 가급적 사용하지 말자). 영어권에서는 이를 ’리트랙션 턴‘ 또는 ‘업조브 앤 익스텐드 턴(Absorb and Extend Turn)’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다리를 굽히고 펴는 동작을 넘어서 설면에서 전해지는 압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깊은 스키 철학을 담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기술은 ‘상급자용(advanced skiker only)’의 높은 기술이다. 우리가 평지에서 이 연습을 하는 이유는 실제 모글 사면에서 만나는 불규칙한 충격을 몸으로 흡수하고 다음 동작으로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들이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갈 때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상해 보면 이 기술의 본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름은 낯설어도 원리는 자전거와 같다.
일반적인 카빙 턴이나 스탠다드 턴에서는 다리를 펴면서 설면을 눌러 압력을 만들어내지만, 리트랙션 턴은 그 반대의 원리를 이용한다. 설면이 위로 솟아오르는 지점이나 압력이 강해지는 순간에 오히려 다리를 접어 그 힘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를 자동차의 서스펜션 장치에 비유할 수 있다. 차체가 덜컹거리지 않도록 바퀴가 달린 축이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스키어의 하체도 설면의 굴곡에 맞춰 유연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때 핵심은 상체가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상체는 지면과 수직을 유지하며 평온하게 길을 내려가고, 하체만 바쁘게 움직여서 모든 충격을 상쇄하는 것이 이 기술의 진정한 묘미이다.
일반 턴과 리트랙션 턴의 결정적 차이
일반적인 턴과 리트랙션 턴의 가장 큰 차이는 체중을 싣는 타이밍과 방식에 있다. 보통 우리가 처음 배우는 스탠다드 턴은 회전을 시작할 때 몸을 위로 슬쩍 일으키며 다리를 펴는 동작을 한다. 다리를 펴면서 설면을 꾹 눌러주어 스키가 눈을 파고들게 만들고, 그 힘으로 회전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리트랙션 턴은 정반대로 회전이 시작되는 순간 다리를 몸쪽으로 잡아당긴다.
머리 높이의 변화를 보면 그 차이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일반적인 턴에서는 몸을 펴고 굽히는 과정에서 머리의 높이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인다. 반면 리트랙션 턴은 하체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머리의 높이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마치 카메라를 손에 들고 뛸 때 화면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스테디캠 장치(스태빌라이저)처럼, 상체는 고요하게 고정되어 있고 하체만 스프링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이다.
턴을 마무리하고 다음 턴으로 넘어가는 전환 구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일반 턴은 전환 구간에서 다리를 가장 길게 펴게 되지만, 리트랙션 턴은 이 구간에서 다리를 가장 깊게 접는다. 이렇게 다리를 접어주면 설면에서 솟아오른 모글의 압력을 몸으로 받아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다. 일반 턴이 설면과 맞서 싸우며 힘을 쓰는 기술이라면, 리트랙션 턴은 설면의 힘을 지혜롭게 피하면서 리듬을 타는 멋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압력을 다스리는 하체의 서스펜션
필자가 ‘릴스’ 영상에서 발견한 스키어가 상당히 이 턴의 동작을 잘 보여주고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14sfbhiYiDb7KqkaA8P1puCrUEP43F9rgiRTGi7xkzTsXMVKVM4dLUe33ZRbhjrLl&id=100072166247143). 그의 동작을 자세히 살펴보면, 턴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다리를 접을 준비를 마친다. 폴 라인, 즉 경사면의 가장 가파른 지점인 ‘최대경사선’에 도달하기 전에 무릎과 골반을 가슴 쪽으로 당겨 올리는 리트랙션 동작을 수행한다.
이는 단순히 무릎을 굽히는 것과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다리를 몸쪽으로 끌어당겨 스키 판이 설면에 가하는 압력을 일시적으로 제거하거나 줄여주는 행위이다. 이렇게 압력을 줄여주면 스키 판의 에지가 설면에서 살짝 자유로워지면서 방향 전환이 훨씬 수월해진다. 모글의 꼭대기(실제 모글 코스에서는 모글과 모글이 이어지는 선인 ‘너클’)에서 이 동작이 이루어지면 스키어가 공중에 뜨지 않고 눈 위를 미끄러지듯 넘어갈 수 있게 된다.
턴의 완성도를 높이는 다리 펴기 동작
다리를 접은 이후에는 골짜기 방향으로 다리를 다시 길게 펴주는, 즉 다리를 펴면서 스키를 스키딩 시켜주는, 복합적인 ‘익스텐션 동작’이 이어진다. 턴의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다리를 쭉 펴줌으로써 스키 판과 설면의 접촉을 확실하게 유지한다. 다리를 펴는 동작은 단순히 다시 서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다음 턴을 준비하기 위해 에지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단계이다. 이때 다리를 펼 때는 마치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급격하게 펴는 것이 아니라, 설면의 모양을 발바닥으로 느끼면서 지긋이 밀어내는(스키를 돌리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이루어져야만 스키의 속도를 제어하면서도 리듬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모글 사면에서 속도를 다스리는 제동의 핵심
리트랙션 기술이 모글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원리는 아주 과학적이다. 우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 턱을 만났을 때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면 몸이 공중으로 붕 뜨게 된다. 이렇게 공중에 뜨는 순간 스키어는 조종 권한을 잃고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이때 리트랙션 동작으로 다리를 접어주면 스키 판만 위로 올라오고 상체는 원래 높이를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압력을 업조브하는 과정에서 스키 판이 설면에서 떨어지지 않게 눌러주면 공중에 뜨는 것을 막아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특히 모글의 골짜기 부분에서 다리를 펴는 익스텐션 동작은 가장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다리를 길게 뻗으며 스키 판의 바닥면이나 에지로 눈을 밀어내면 진행 방향에 대한 저항이 극대화된다. 단순히 서서 내려가는 것보다 다리를 뻗는 힘을 이용해 설면을 밀어낼 때 더 정교하고 확실한 감속이 가능해진다.
내리막에서 가속을 만드는 펌핑의 원리
반대로 가속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익스텐션 동작이 엔진 역할을 한다. 모글의 뒷사면, 즉 내리막 구간에서 다리를 길게 뻗어주면 마치 그네를 탈 때 발을 굴러 추진력을 얻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펌핑이라고 부르는데, 다리를 펴는 힘을 이용해 스키를 진행 방향으로 밀어내면 경사면의 에너지를 가속도로 전환할 수 있다.
결국 리트랙션과 익스텐션은 단순히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가 아니라 스키어의 의도에 따라 브레이크가 되기도 하고 엑셀이 되기도 하는 아주 정교한 제어 시스템인 셈이다. 이 리듬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면 모글 사면은 더 이상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스키어의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흔들림 없는 상체가 만드는 안정감
이러한 리트랙션 기술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체중의 위치이다. 다리를 접어 올릴 때 많은 스키어가 실수하는 부분이 엉덩이가 뒤로 빠지는 후경 자세이다. 다리를 몸쪽으로 당길 때 상체는 오히려 약간 앞으로 숙여지는 기분을 유지해야 하며, 체중의 중심은 항상 발바닥 전체에 고르게 실려 있어야 한다. 영상의 스키어는 이 중심 잡기가 아주 완벽하다. 하체가 가슴까지 올라올 정도로 깊게 접히는 상황에서도 스키어의 가슴은 항상 스키 판의 중심 위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안정감 덕분에 다리를 다시 펴는 순간에도 스키 판이 뒤로 밀리지 않고 앞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힘을 얻는다.
또한 상체와 하체의 분리 동작은 이 기술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이다. 하체는 좌우로 회전하고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어깨와 시선은 가고자 하는 아래 방향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영상에서 스키어의 팔 위치와 어깨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체의 격렬한 움직임이 상체로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마치 팽이의 중심축은 가만히 있는데 겉면만 빠르게 도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상체가 흔들리면 시야가 불안정해지고 이는 곧 균형 감각의 상실로 이어진다. 따라서 리트랙션 연습을 할 때는 다리 근육의 움직임만큼이나 상체를 단단히 고정하는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평지 연습이 실제 모글 실력을 만든다.
실제 모글 사면이 아닌 압설된 평지에서 이 연습을 많이 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기술의 메커니즘을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모글이 있다고 가정하고, 어느 타이밍에 다리를 접고 어느 지점에서 다리를 펼지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평지에서 이 리듬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면, 실제 모글에서는 당황하여 동작이 엉키기 쉽다. 영상 속 스키어처럼 일정한 템포로 턴을 이어가는 능력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폴을 찍는 동작 역시 리듬을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는데, 다리를 가장 깊게 접었을 때 가볍게 폴을 찍어줌으로써 턴의 전환점을 명확히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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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 연습에서 취하면 좋은 방법
이 턴 방식이 평소에 하던 기술과 반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말하자면 일반 턴은 ’업-(폴)체킹-다운‘의 순서이지만 리트랙션 턴에서는 ‘체킹-다운-(돌리면서)업’의 순서이다. 하지만 다운 상황에서 체중이. 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폴을 찍은 후에 앉으면서 폴을 앞으로 상체와 함께 내어미는 동작이 필요한데, 이는 펀치 포워드(punch forward), 즉 폴을 찍으면서 앞으로 펀치를 날리듯 밀어주는 동작이 필요하다. 이는 모글 등에서 필요한 폴의 리치(reach) 동작에 연결되는 것으로서 후경을 방지하고, 상체를 전향시키는 방법이다.
처음 이 연습을 시키면 배우는 이들은 어이 없을 정도로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은 그 방법 대로 한다고 애를 쓰는데, 보는 사람은 그가 그리 생각하면서 평소의 일반 턴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미소짓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연습 방법은 ‘체킹-다운-돌리면서 업’이라고 순서 대로 입으로 소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체킹과 다운이 동시에 일어나면 안 된다. 필수적으로 체킹을 먼저 확실하게 한 후에 다운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냥 업을 하면 안 되고 스키를 돌리면서 업해야 하는데, 이 또한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연습 방법을 꼭 기억하도록 하자.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스키의 묘미
결론적으로 리트랙션과 익스텐션 기술은 설면의 에너지를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유연함의 기술이다. 강한 힘으로 눈을 깎아내며 타는 카빙과는 달리, 눈의 흐름을 타고 넘는 부드러움이 강조된다. 이 기술을 마스터하면 어떤 험한 사면이나 얼어붙은 빙판길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중학생이 자전거를 탈 때 무릎을 유연하게 써서 턱을 넘어가듯, 스키어 역시 자신의 다리를 세상에서 가장 성능 좋은 서스펜션으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이 리트랙션 턴 연습이다.
멋진 시범 영상을 참고하자.
영상의 시범자가 보여주는 정석적인 동작은 초보자나 중급자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스키 판의 탑 부분이 눈에 박히지 않도록 조절하는 섬세한 발목의 감각, 다리를 접을 때의 과감함, 그리고 다리를 펼 때의 일관된 압력 조절은 이 스키어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영상을 다시 감상한다면, 스키어의 무릎이 굽혀지는 찰나의 순간마다 그가 설면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키의 정석을 보여주는 발목의 긴장감
이 기술에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비밀 중 하나는 바로 발목의 각도이다. 무릎을 깊게 접는 리트랙션 과정에서 발목이 느슨해지면 정강이가 부츠 앞부분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스키 판을 조종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영상 속의 숙련된 스키어는 다리를 접어 올리는 순간에도 발목의 긴장을 유지하며 정강이로 부츠의 혀 부분을 지긋이 누르고 있다. 이 미세한 압력이 유지되어야만 스키 판의 앞부분이 눈을 파고들지 않고 부드럽게 다음 회전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중급자가 상급자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정복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폴 체킹과 리듬의 하모니
마지막으로 폴 체킹의 타이밍에 주목해야 한다. 리트랙션 턴은 일반적인 턴보다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폴을 찍는 동작이 박자를 맞추는 지휘봉 역할을 한다(상기 한 바, 폴부터 먼저 확실하게 찍어주고 다음 동작에 들어가야 한다). 다리를 가장 깊게 접어 올린 정점에서 폴을 가볍게 앞으로 내던지듯 찍어주면, 그 반동을 이용해 상체를 고정하고 하체를 다음 턴으로 넘기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영상 속 스키어는 폴을 찍는 위치와 타이밍이 하체의 굴신 운동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러한 일관된 리듬감이야말로 모글이라는 복잡한 미로를 헤쳐 나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리트랙션 턴을 처음 배우는 이들을 위한 조언
리트랙션 턴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은 흔히 다리만 위로 들어 올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금방 체력을 고갈시키고 자세를 무너뜨린다. 다리를 접는 힘의 원천은 하체 근육만이 아니라 복부와 골반의 중심부인 코어 근육에서 나와야 한다. 배에 가볍게 힘을 주고 무릎을 가슴으로 당긴다는 느낌으로 연습해야 상체가 뒤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발바닥 아래의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지금 눈을 누르고 있는지, 아니면 눈이 나를 밀어 올리는 힘을 이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선을 너무 가까운 곳에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다리를 굽히고 펴는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시선이 스키 판 앞부분으로 떨어지기 쉽다. 하지만 시선이 떨어지면 상체가 앞으로 굽어지며 전경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멀리 다음 모글이나 다음 턴 지점을 바라보며 몸 전체의 흐름을 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주 완만한 경사에서 느린 속도로 시작하여, 다리를 접고 펴는 타이밍이 몸에 익었을 때 조금씩 경사도를 높여가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 턴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 그 스키어는 분명 상급자이다. 이는 모글 슬로프에서만 사용하지 않는다.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기가 힘들어지는 오후 두세 시 경의 흩어져 뭉친 눈이 많은 환경에서도 스키를 잘 타는 방법이 바로 이 ‘리트랙션 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 모글제국(SMX)의 수요모글강습회(강습비 무료, '스키장 강습 비브' 구입해야 함.)
https://m.cafe.daum.net/mogulski/GRHy?boardTy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