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게시물은 홈페이지 관리자에 의하여 "
WCT 스키 사랑방"란으로부터 복사되었습니다.(2008-05-07 18:47)
어제 이은아 데몬의 삼성동 집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미국으로 시집간 이은아 데몬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아니고, 그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데몬의 부친이 대한치과의사협회장, 예치과 원장을 역임하신 이기택(李起澤) 박사님이시지요.
그곳엔 저희 부부, 오세문 교수님 부부, 제 동생 박순관의 부부, 그리고 이은아 데몬의 작은 아버님(물론 골수 스키어이시지요.)이신 이기윤 선생님까지 적지 않은 인원이 모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자리를 하게 된 배경에는 제 집사람(고성애)이 지난 시즌에 스키 준강사 고시(考試)에 패스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지요.^^;(이 "고시"란 단어는 이 박사님이 사용하신 것을 차용.^^) 이 박사님 부부가 6수만에 붙은 고시생을 축하해 주시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었고, 저희가 딱히 날짜를 잡지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세월만 간다고 이번에 날을 잡아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80평이나 되는 큰 빌라의 거실에 들어섰을 때 요즘 과거의 전성기 때처럼 다시 오디오에 꽂힌(실은 어제도 세타 DAC/DA Converter를 하나 구입했음.-_- 집에 있는 CDP가 CDT/CD Transport 용도로도 사용된다는 걸 다시 기억을 해 내고, 거기 연결할 수 있는 그 Digital-Analog Converter를 구입한 것이지요.) 제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매킨토시 오디오에 JBL 스피커였습니다.(뭔 눈엔 뭐만...-_-)
그리고 왼쪽 스피커 위에 보이는 이 한 장의 사진. 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입니다. 경희고, 경희대 시절 산악부원으로 암벽등반을 하던 제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 사진이 젊은 시절의 이기택 박사님 사진이라는군요.^^ 근데 이 사진이 여기 걸려있는 사연이 재미있고, 사실 전 그 관련 말씀을 듣고 속으로 찡했습니다. 어느 날 이은아 데몬의 지갑에서 사진 하나가 떨어졌는데, 이 박사님이 보니까 그게 자신의 사진이고 바로 이 액자 속의 사진이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걸 가지고 다니냐?”고 했더니, “아빠 사진 중에서 이 사진이 제일 맘에 들어서요.”라고 하더라고... 물론 그 말도 딸래미를 둔 아버지로서는 감격스러울 정도로 고마운 말인데, 제가 찡했던 것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이 박사님이 그 사진의 진가(?)를 파악하게 되셨고, 그 같은 Daughter's Choice를 기념하기 위하여 확대한 후에 마루에 걸어놓으셨다는 것.
그게 뭐겠습니까? 딸래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딸래미에 대한 사랑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왠지 그런 behind story를 들으니 딸래미를 앞세운 이 애비에게는 그런 사실에 대해 듣는 것 만으로도 눈물겨웠던 것입니다.
거실엔 그 외에도 여러 개의 사진이 놓여있었고, 메모리 카드를 꽂아 디스플레이하는 전자 앨범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좀 보세요.
용평의 레인보우 코스 최상단 곤돌라 하차장 부근이라고 합니다. 이기택 박사님 부부가 다정하게 말씀을 나누며 걷는 모습이 멀리서 잡혀있습니다.(용평 포토샵의 이종호 선생님 작품.)

- 부분 접사를 해 봤습니다.
아래는 젊은 날의 초상들입니다. 그 중 두 사람에게는 어린 날의 초상이겠지만...^^

- 맨 오른쪽의 이 박사님 모습은 그 연령대의 제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가 20-30대에 무지 말라있었거든요. 가족이 낚시터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참 부러운 사진. 제가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긴 정말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피추입니다.

- “잃어버린 도시,” “공중 도시”로 불리는 마추피추 유적이 뒤에 보입니다. 정말 인상적인 사진입니다.

- 이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에서 찍으신 것이로군요.

- 이집트 기자의 피라밋에 가셨을 때 찍으신 것도...

- 남미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과수 폭포에 비하면 거대한 폭포수 앞에서 쉬하는 정도라 할 만큼 큰 폭포죠.
위 사진의 베란다 밖으로 펼쳐지는 녹음은 선능의 푸른 숲입니다. 선능 숲이 안마당.-_-

- 이 박사님 형제분.

- 박순관과 오세문 교수님.

- 왼편부터 제 집사람, 이은아 데몬의 모친, 오 교수님 사모님.

- 오 교수님 사모님과 동생 박순관의 처.

- 6시 반에 시작된 모임이 재미있는 대화로 언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이 준비해 주신 요리도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이 박사님이 해병대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17대 1”식 무용담(여기서는 7대 2였습니다.^^;)을 들으며 배꼽빼기도 하고... 오 교수님이 선배 의사들로부터 들은 “해병대의 전설적인 군의관 이기택“에 관한 질문을 하자 위의 그 무용담이 본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 박사님의 제대 이후에도 해병대 교관들이 군의관 교육생들이 들어오면 훈련을 하면서 반 죽여놓은 후에(^^;) ”귀관들을 훨씬 더 돌렸어야하지만 이기택 선배 덕을 본 줄 아시오.“라면서 교육을 끝내곤 하는 바람에 이 박사님이 해병의 전설 중 하나가 된 것이라 하더군요. 알고보니 어느 날 이 박사님이 사복 차림으로 밖에 나가셨다가 조폭 같은 캬바레 기도와 시비가 붙어 곤란에 처한 연고도 없는 해병대 교관이 있기에 젊은 혈기 하나로 돕고 나서서 조폭 7대 해병 2로 혈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 참하고 자애로운 분이 아무리 젊은 시절에 혈기가 왕성했다고 하지만, 그런 일이 있으셨다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캬바레 문짝이 떨어져 날아가고, 무대 위, 테이블 위를 마치 성룡처럼 방방 나르고, 아주 캬바레가 뒤집어 진 후에 헌병대로 연행되셨었다고...ㅋㅋㅋ 이건 뭐 서부 활극의 한 장면도 아니고...

- 7:2의 젊은 시절을 보내신 이 박사님의 요즘 모습.^^;(아시죠? 앞에 안경 쓰신 분.)

- 제 사진도 하나 남기느라고 셀프 샷. 근데 초점이 좀 나갔네요. 배경도 신경쓰다보니...
그 후에 궁금해서 어린 시절의 이은아 데몬에 대해서도 물어봤었지요. 어떻게 스키 선수가 되었느냐고...
근데 이 데몬은 스키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딸이 스키를 잘 타는 듯해서 대회에 나가보라고 한 것을 시발로 스키 선수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박사님은 당시에 초등학교 선수들이 레이싱 캠프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채로 기문도 안 타본 초등생 이은아에게 엄마 친구의 긴 스키와 스키화를 빌려 신기고 출전하라고 했답니다.-_-(아버지가 기가 막혀!!!^^) 근데 첫 출전한 대회에서 5등을 했고, 그 다음 대회에서는 4등, 또 그 다음 대회에서는 3등을 하는 식으로 발전해 나갔다고 합니다.

- 단란한 스키 가족. 이 스키복들로 미루어 90년대 초의 사진?
결국 도전하는 즐거움과 이기려 노력하는 보람을 알게 된 이
7:2 아버지의 도전적인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래미가 스키 선수가 되어 보겠다고 했고, “스키 선수는 쉬운 게 아니다. 만약 스키 선수가 되겠다면 정말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만 두겠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되고, 울어도 안 된다.”고 했고, 딸은 그러겠다고 한 것이지요. 그 후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대표 상비군, 국가대표, 국가대표 데몬스트레이터... 뭐 이런 순서로 진행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아래 기사 스크랩을 보세요. 이런 기사가 났었답니다.
태능에서 국가대표 훈련을 받으면서 어쩌다 집에 돌아와서 “울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빠 앞에서는 웃고, 방에 들어가서는 훈련이 힘들어서 펑펑 울다가 엄마에게 들킨 이 고등학교 수험생 딸래미는 그 어려운 과정 중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고, 연세대학교에 단과대학 수석 입학을 했던 것이지요.-_- 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이 또한 눈물겨운 스토리이더군요.

- 이런 앳된 모습의 대학 신입생.^^
아빠는 그냥 지켜보다가 모른 척 물러났으면 좋았을 걸 7:2로 붙어서 해병대의 전설이 되었고, 딸은 체육특기자로 편하게 들어갔으면 되었을 대학을 쌩고생을 해 가면서 일반 전형으로 들어가 단과대학 수석 합격을 하고...-_- 그 아버지에 그 딸.

- 알파인 대표선수 시절의 이은아 데몬. 회전 경기 모습이로군요.
위와 같은 경기 스키의 이력이 있었기에 데몬 시절에도 웬만한 남자 데몬들보다도 더 파워플하고 스피디한 스킹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아마 예전에 이은아 데몬의 프리 스킹 모습을 본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 데몬의 스킹은 보는 사람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데 그 이유가 엄청나게 정교한 테크닉인데도 불구하고, 파워가 흘러넘치고, 그 속도는 다른 스키어들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빠르다는 것입니다.

- 이 게 기사 스크랩을 카메라로 접사한 거라서 사진이 잘 보이실 지 모르겠는데, 이 때의 미모는 정말 눈이 부시더군요.
“이은아, 넌 뭐냐?-_- 운동 잘 해서 국가대표 스키 선수까지 되고, 공부 잘 해서 단과대학 수석으로 들어가고, 거기다 뻔뻔하게도(?) 용모까지 천사 같으니...-_- 근데, 그런데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지?”

- 미국 게스(Guess) 사의 패션 시계 부문에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전세계를 총괄하는 마케팅을 담당하는 인터내셔널 매니저 이은아.(중간의 은발 여성이 이은아 데몬을 픽업한 사장님이라고...)
스키 데몬스트레이터로서의 생활이 끝나기 전에 그와 병행한 것이 연세대 경영대학원의 MBA 과정, 바빠서 주말에만 스키를 타며 고생하던 이은아.(당시에 이 데몬이 힘들어서 입술이 부르터 터진 걸 제가 직접 본 적도 있음.) 그렇게 MBA 과정을 하면서 그도 모자라 한국의 구찌 수입상에서 마케팅 매니저로서의 커리어 우먼 생활을 시작하고...
그러다 미국 게스 사로 옮겨 일하게 되고, 거기서 천생의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고... 정말 길지도 않은 젊은 나이에 많은 경험을 하고, 같은 또래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 이 게스 패션 시계는 이은아 데몬의 모친이 집사람의 준강 합격 소식을 전했더니 미국에서 선물로 보내온 것이라고... 집사람이 시계를 받아 차고는 감격.

- 이렇게 나온 사진에서 집사람의 손목을 보니 고생한 티가 줄줄.ㅜ.ㅜ 남편을 이상한 놈을 만나는 바람에...-_-

- 저처럼 술 못 먹는 동생은 포도주 한 잔에 얼굴에 홍조를 가득 띄우고...

- 옆에서 말씀들을 나누고 계시는군요. 뒤에 아까 소개한 사진 액자들이 몇 개 놓여있습니다.
위의 사진 맨 왼쪽에 있는 액자는 가족에 대한 것인데, “
가족은 삶의 원동력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는 울타리”라는 글씨가 보이는군요. 이것이 이은아 데몬의 가족을 이끌어가는 힘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제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이기택 박사님과 사모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은아 데몬도 창창한 앞날에 더더욱 많은 일들을 이뤄나가길 빕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그리고 실은 집사람이 이번에 정 학예사(curator) 자격을 땄지요. 고고학 박사로서 박물관 조교며 발굴 등 다른 경력은 다 되는데 박물관 근무 경력 7년이 안 되어 국립박물관의 학예사 임명에서 누락되고 있었는데, 고고학 관련 강의, 강연을 계속해 왔고, 또 요즘도 박물관 교실 수강이며, 숙대의 관련 야간 강의에 학생으로 출석해서 공부하는 등의 열의가 인정되어 몇 년 모자라는 박물관 근무 경력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터 자격증을 받게 된 것.
집사람은 위의 이은아 데몬의 선물을 준강 고시(^^)와 학예사 자격 취득을 복합적으로 축하하는 선물로 여기고, 아주 고마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