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계획했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왔습니다.
하산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구름 속을 벗어난적이 없었던 구름 위의 산책이었습니다.
태풍같은 벽소령 비바람 앞에서 숲의 위대함을 발견했고, 다시는 등산을 하지 않겠다던 아내가 하산 후 하루가 지나자 다시 또 지리산을 찾고 싶다며 말을 바꿔 상쾌했습니다.
더 확실하고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방법도 많았지만 여유로운 3박4일을 선택했고,
편의를 위해 기계 즉, 엔진의 속도 엑스터시를 즐기며 성삼재를 올라 밀란쿤데라를 생각했습니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나이,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이들, 자신의 근심거리 따윌 전혀 알지 못하며 그는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밀란쿤데라의 말을 약간 바꿔서 산행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렇습니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산 위를 걷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다리 근육들, 가쁜 호흡, 땀방울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산속을 걸으며 나의 체력, 나의 체중, 나의 인내력, 나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내 자신과 내 인생의 시간들을 의식하게 된다.
내가 만약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한다면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나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나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하게 된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육체를 산에게 맡기고 싶었다. 느리게 느리게..."
다음은 제 홈페이지에 4부작으로 정리한 산행 후기입니다.
지리산3박4일, 구름 속의 산책 #1 (노고단)
지리산3박4일, 구름 속의 산책 #2 (반야봉)
지리산3박4일, 구름 속의 산책 #3 (세석평전)
지리산3박4일, 구름 속의 산책 #4 (천왕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