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번에 푸르그 보겐과 슈템턴 꼭 마스터해야 하나? 에서 언급하였던 내용 중 하나가 초보단계에서 푸르그보겐과 슈템턴에 집착하면 크로스오버를 제대로 익힐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을 좀 더 자세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시작합니다.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 의견은 푸르그보겐과 슈템턴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푸르그보겐과 슈템턴을 이용한 엑서사이즈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패러렐 스킹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 혹은 특정한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연습 방법으로 그 역할을 제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기술이 초보자가 패러렐 이전에 반드시 마스터하여야 하는 기술 또는 단계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크로스오버(CROSSOVER)란 무엇일까요?
크로스오버란 COM과 BOS가 교차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이지 특정한 기술이 아닙니다. COM은 Center of Mass의 줄임말입니다. (CM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스키를 탈 때 작용하는 중력과 원심력이 작용하는 몸의 중심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스킹시의 스키어의 배꼽 혹은 배꼽보다 약간 앞 정도로 쉽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BOS는 Base of Support 우리 몸의 중심점을 받치고 있는 것 즉, 스키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노란선이 COM의 궤적이고, 파란선이 BOS의 궤적입니다.
패러렐 스킹시, 턴의 전환구간에서 COM과 BOS는 서로 교차하게 됩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의 발은 우리의 배꼽보다 더욱 바깥쪽에 자리하며 이동합니다. 스키를 조금만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당연히 그렇게 스키가 몸의 중심보다 바깥에 있어야 원심력에 대항하여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이건 굳이 대단한 물리학적 원리를 동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키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면서도 제대로 크로스오버를 만들어 내는 스키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크로스오버야말로 스키 고수들의 전유물입니다.
'뭐라? 스키 고수들의 전유물이라고? 참내,.... 왼턴 끝나면 오른턴하고, 오른턴 끝나면 왼턴하는 것이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고수들만이 하는 것이라고 하나?'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겁니다. 그런데 크로스오버가 말처럼 그렇게 쉬울까요?^^
그럼 제가 퀴즈하나 내겠습니다. 사진의 가장 위에서부터 프레임 1,2,3,... 이라고 명명했을 때 여러분이 보시기에 크로스 오버는 프레임 몇 번부터 몇 번까지 발생하나요?
1) 프레임 3-4-5
2) 프레임 4-5-6
둘 중 어느 것이 맞나요? 많은 분들이 2)프레임 4-5-6 이라고 답변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실 크로스오버가 발생한 것은 프레임 3-4-5 입니다. 스키어의 앞면에서 찍은 사진이다보니 약간 헷갈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진에서 노란선과 파란선이 교차하는 것이 프레임5 즈음이니까요. 사실 정확한 크로스오버의 시점을 알려면 스키어의 앞면에서 촬영한 사진보다는 위에서 촬영한 사진이 좋을 것입니다. 아래의 영상은 위에서 바라 본 COM과 BOS의 움직임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네요. 이 영상을 보신다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https://youtu.be/WaF39I7biOE
위의 움직이는 영상을 보시니 좀 더 이해하기 쉽죠? 하지만 스키 고수들은 스키어의 앞면 사진을 보면서도 바로 크로스오버 시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찾아 내냐구요? 자, 프레임 3-4-5에서 스키의 에지각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프레임 3에서 강하게 걸려있는 에지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프레임4에서는 설면과 평행하며, 프레임 5에서 다시 반대쪽 에지가 설면을 그립하기 시작합니다. 에지각을 눈여겨 보면 바로 보이시죠?
그럼 그러한 에지각의 변화를 위의 움직이는 영상에 맞춰 연상해보면 크로스오버의 아주 명확한 두 가지 포인트 즉, [COM과 BOS의 교차] + [에지각의 교차]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위 설명들을 통해 크로스오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명확해 지셨다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음... 크로스오버가 무엇인지 대충 알았는데.... 음... 나는 잘하고 있는거 같은데...그게 뭐 꼭 고수들만 할 수 있는 건 아닌거 같고...'
사진을 보면 크로스오버란 뭐 대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인의 스킹 비디오를 분석하여 턴과 턴 사이의 트랜지션 구간을 유심히 살펴보면 고수들의 크로스오버와는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턴을 마무리하고 빠져나오는 상황에서 COM은 어떠한 망설임이나 부자연스런 동작없이 다음턴의 안쪽으로 날아갑니다. 여기서 날아간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스키가 휘어졌다 튕겨져 나오는 힘이 COM을 밀어내 다음턴을 향해 날아가는 느낌인데다가 크로스오버 시점에서 COM이 다음턴의 안쪽으로 쓰러져 순간적이나마 자유낙하의 느낌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트랜지션 구간에서 크로스오버 시점을 클로즈업 해보면 다음 사진과 같습니다. COM이 날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래 클로즈업 사진에서 보이듯 스키가 지면에서 떠서 날아가는 모습에서도 보여집니다. 의도적인 자유낙하(controlled falling)를 통해 COM이 다음턴의 안쪽으로 들어감으로써 턴의 전반부부터 바깥스키의 인에지가 설면을 자르기 시작합니다. 스키어는 마치 중력을 희롱하듯 폴라인으로 떨어져 내리면서도 스키에 체중을 실어 스키를 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스키의 고수들만이 가진 비장의 무기입니다.
중급 스키어들은 대개 턴의 후반부에서 턴을 더 길게 끌고 들어갑니다. 중력에 대항해 버팅기고 서 있기에 안정감을 느낀 스키어는 무의식적으로 그 안정감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 후반부를 벗어나면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자유낙하의 구간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스키어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자유낙하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적으로 안정된 구간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스키어를 붙들어 둡니다. 이렇듯 늘어진 턴의 후반부로 인해 COM은 부드럽게 다음턴의 안쪽으로 넘어가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결국 다음 턴의 시작이 늦어지고 불안해집니다. 여기서 수많은 문제점들이 시작됩니다. 후경, 로테이션, 몸턴,....
'으악~ 그거 내 얘기야~~~ 그만.'
위 사진은 고수와 중급스키어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 스키어의 경우, 크로스오버와 더불어 COM이 낙하하면서 폴라인 이전(턴의 초반)부터 강력한 에지그립과 함께 스키에 하중을 전달하고 있는 반면에 오른쪽 스키어는 크로스오버의 양이 미약하여 턴 전반에 스키에 전달되는 하중이 크지 않아 보입니다. 자세가 나빠보이지는 않지만 스키 고수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 이제 크로스오버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셨죠?
자유낙하(controlled falling)의 느낌이 있는 크로스오버를 만들지 못하는 한 당신은 중급 스키어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크로스오버의 비밀을 풀지 못하는 한, 턴의 전반에 체중을 실어 스키를 휘게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소리에 불과합니다. 무수한 날들에 추위와 싸워가며 수많은 스키어들이 오늘도 "후경 극복"을 외치며 온 몸을 앞으로 쏟아질듯 수그리고 팔을 앞으로 뻗어 전경자세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 불철주야 노력에도 상급슬로프에 서면 또다시 후경을 경험합니다. "아~ 나는 안되는것인가? 사랑 너무 어렵다~ 스키 너무 어렵다~ "
물론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충분한 노력에도 기술이 늘지 않을 땐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짚어 봐야 합니다.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를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를 하게 되면, 전경이 단순히 몸의 중심을 스키 앞쪽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크로스오버를 의미함을 알게 됩니다. 단순히 몸을 앞으로 수그리라면 못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턴의 마무리와 동시에 몸의 중심을 다운힐로 던지는 크로스오버 움직임은 본능적 두려움을 떨쳐 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번지점프대에 올라 선 사람의 뛰어내리기 전의 심리상태와 같습니다. 안전장치가 나를 붙잡아 주리라는 이성의 자각과는 반대로 몸은 떨리고 주춤주춤 뒷걸음치게 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고자하는 본능적 방어기제입니다. 이런 강력한 생명보존의 본능이 우리의 크로스오버를 끊이없이 방해합니다.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감히 번지점프대에서 몸을 날리듯이 다운힐 방향으로 COM을 이동시키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전경입니다.
이러한 크로스오버의 동작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노보드 상급자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시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알파인 스노보더들의 움직임은 정말 극한적인 크로스오버의 예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포커스된 노란재킷의 보더가 턴의 후반부에 있다면, 뒤에 아웃 포커스된 파란재킷의 보더는 턴의 전반부에 있습니다. 엄청난 크로스오버 자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를 하게 되면, 외향이란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크로스오버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크로스오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스키어는 스키의 움직임에만 집중되었던 신경을 나누어서 COM의 움직임에도 주의를 집중하게 됩니다. COM의 궤적을 위에서 살펴보았지만 COM은 스키보다 짧은 궤적을 그리며 움직입니다. 우리의 상체가 향하는 방향은 스키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COM이 향하는 방향과 일치합니다. 그러다보니 스키가 향하는 방향과 상체의 방향에 차이가 생겨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런 외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향이란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COM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그 움직임에 맞게 상체의 방향을 잡아주면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를 하게 되면, 스키의 혁명적 진화인 수퍼 사이드 컷 스키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크로스오버를 제대로 하는 날. 바로 그 날에. 스키의 진화는 우리가 카빙스키라고 부르는 수퍼 사이드 컷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수퍼 사이드 컷은 모래시계 모양처럼 넓은 머리와 꼬리, 그리고 상대적으로 날씬한 허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스키의 디자인 탓에 쉽게 에지가 걸리게 되고, 에지가 걸린 상태에서 체중이 실리면 스키는 둥글게 휘게 됩니다. 둥글게 휜 스키는 자체적으로 회전을 만들게 되어 예전보다 회전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예전엔 스키를 돌려 회전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던 반면에 최근엔 스키가 자동으로 회전을 만들어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정확히 스키를 밟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비의 진화는 기술적으로 더욱 적극적이고 정확한 크로스오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정확하게 스키 위에 올라 타 강하게 스키를 눌러 주느냐가 스키의 고수를 나누는 기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대로 크로스오버를 이해하신다면 왜 초보자들이 푸르그보겐과 슈템턴의 단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유익하지 않은 것인지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푸르그보겐과 슈템턴은 크로스오버가 없이 턴을 만들기에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자전거를 배울때 세발 자전거로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세발 자전거를 열심히 타도 두발 자전거를 타는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밸런스 바이크로 알려진 페달없는 자전거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바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연습용 자전거입니다.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효과는 천지차이죠. 푸르그보겐과 슈템턴이 세발 자전거라면 비록 어설프지만 두 스키를 동시에 회전시켜 만드는 베이직 패러렐턴은 밸런스 바이크에 가깝습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크로스오버가 발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푸르그보겐과 슈템턴, 패러렐턴으로 만드는 턴의 궤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실선이 스키의 궤적이고, 점선이 COM의 궤적입니다. 패러렐턴에서 크로스오버가 발생합니다.
스키어가 푸르그보겐과 슈템턴 단계에서 필요이상 머물게 되면 패러렐 스킹으로 발전한 뒤에도 스테밍(stemming)의 나쁜 버릇이 나오게 됩니다. 일단 이 버릇이 생기면 주말스키어들은 거의 평생 이 버릇을 없애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북미의 스키강사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웻지(푸르그보겐) 단계에서 두 스키를 동시에 돌려 턴을 만드는 연습을 스킵니다. 이 동작이 익숙해지면 점차 웻지의 크기를 줄여나가고 자연스럽게 넓은 패러렐 스탠스의 베이직 패러렐로 변화하도록 이끕니다. 의도적으로 스템을 만들도록 하는 스템턴의 교육을 피하고 단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때 사용하는 응급처방식 기술(situational stem)로만 다룹니다.
패러렐스킹을 통해 크로스오버를 경험하게 되면 스킹은 보다 흥미로운 유희로 인식될 겁니다. 물론 초중급 스키어들이 처음 패러렐 스킹을 시작하면 대개 몸턴을 하거나 후경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럴때 천천히 안쪽 스키 들기를 연습하면 수많은 단점들이 사라지는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아래 영상은 김정민양이 박순백 박사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우아한 패러렐스킹의 최고비법 '안쪽 스키 테일 들기' 입니다. 이런 아주 효과적인 연습방법들을 통해 패러렐 스킹에서 발생하기 쉬운 몸턴이나 후경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면 중급자의 덫이라 일컫는 스테밍(stemming: 턴 시작시에 스키 테일이 벌어지는 현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주 전에 처음 박순백 박사님을 찾았을 때만 해도 상체의 불필요한 동작과 안쪽 스키에 실리는 체중으로 어설픈 중급 스키어에 머물렀던 김정민의 스킹이 이제 완숙한 중급자의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크로스오버의 비밀을 풀어내 우아한 패러렐 스킹을 완성해 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