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계획없이 무모하게 어떤 일을 벌일 때 "맨 땅에 헤딩하기"라는 표현을 씁니다. 제가 굳이 "스키타고 맨 땅에 헤딩하기"라는 제목을 붙인 건 스키 타기 위해 무작정 캐나다 휘슬러로 이민왔기 때문입니다.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세계적인 산악인 조지 멜로리가 답하기를 "그 곳에 산이 있으니까"라고 답했습니다. 저의 경우엔 "왜 이민가셨어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그 곳에 세계 최고의 스키장이 있다길래"입니다.
그럼 대부분 이해가 안된다는 듯 어벙벙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민(移民)이란 것이 누구나 알다시피 장난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민을 결정할 때는 사전답사라든지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이민을 결정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교민들이 많은 토론토나 밴쿠버 등지로 이민을 가서 현지 상황을 파악한 뒤에 자신이 정착할 곳을 선정합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위에 말한 답변이 전부입니다.
휘슬러(Whistler)가 세계 최고의 스키장이라는 소개가 실린 몇몇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보고, 양성철이라는 한국의 스키어가 "God of Ski"라는 캐나라 스키인스트럭터 레벨4에 도전한다는 기사(당시 양성철은 레벨3)를 보고 저는 이민을 결정했죠. "와~ 멋진걸! 나도 위슬러가서 레벨4 따야겠다."
아마 그런 기사들을 접한게 1998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제 스키실력은 중급자 정도의 실력이었기에 위슬러에 가서 스킹을 하고 레벨 4를 딴다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꿈이었죠. 당시 주변 사람들은 "야! 너가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 스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거야. 서른이면 남들은 선수생활 다 끝내고 은퇴할 나이야."라며 혀를 차더군요.
제 스스로 고민해봐도 답이 안나오는 문제였습니다. 스키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저를 둘러싼 현실은 차갑게 그 꿈을 외면하라고만 말하더군요. 하지만 스키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귓가를 스쳐지나가고, 하얀 설원위에 나만의 궤적을 그리며 달려갈 때의 느낌은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의 극치입니다. 서른 해를 살면서 나름대로 여러가지를 경험하였지만 스키처럼 저를 사로잡고 뒤흔들어 놓는 것은 없었습니다. 마치 젊은 날의 사랑의 열병처럼요.
그래서 98년은 "이미 늦었어. 해서는 안 돼"라는 이성(理性)과 "하지 않고는 못 살 것 같아"라는 감성(感性)이 하루에도 몇 차례나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루한 싸움은 99년의 가을에야 끝났습니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할 거 같으면 차라리 해 버리자."
일단 턱없이 부족한 스키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스키장에서 스키패트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1999년 겨울 지산스키장에 패트롤로 들어가 누구보다 열심히 스키를 탔습니다. 되지 않는 숏턴을 하루종일 연습하느라 발이 퉁퉁 붓고, 발가락은 전부 동상에 걸리면서도 스키를 탄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결실은 이듬해 2월에 치뤄진 스키 패트롤과 강사 자격시험에서 나타났습니다. 모두 기분좋게 합격한 것이죠.
2000년 겨울엔 분당의 YMCA에 근무하면서 수영을 가르칠 때입니다. 야간스키를 타기 위해 일부러 새벽반을 맡았기에 새벽 5시면 눈을 떠야 했죠. 오후 4시경 업무를 마치고 나면 차를 몰고 지산스키장으로 가서 야간 스키를 탔습니다. 야간스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저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하루의 피로가 무지막지하게 몰려들면서 제 눈꺼플을 짓누릅니다. 그런 졸음을 이기기 위해 겨울 내내 제 허벅지엔 멍울이 가신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2001년 11월 24일. `스키의 천국`이라는 말 한마디(?)에 이민을 결정하고 마침내는 캐나다 휘슬러로 이민을 와버린 말 그대로의 스키광(crazy skier)인 제가 처음 위슬러에 도착한 날입니다.
하늘은 가뜩이나 찌뿌려 있고 산 위로는 검은 구름이 가득 덮혀 있어 그렇지 않아도 긴장해 있던 조그만 동양인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던 휘슬러의 거대함. `이거 천국이 아니라 지옥같은 분위기인데~`
그 후 5개월간의 꿈같은 스킹. 처음엔 스키면 스키, 영어면 영어,....무엇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는 자괴감에 한숨만 나오던 시간도 있었지만 점차 스키를 체계적으로 배워나가면서 느끼는 득도(得道)의 희열. 그 기쁨이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기에 나를 아는 누구나 그렇게 말하듯
"미친듯이" 스키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런 미친X의 열정으로 내 꿈인 CSIA 레벨4를 향한 발걸음을 하나 둘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5개월간 스키를 타면서 저는 총 4번의 시험을 치뤘습니다. CSIA(캐나다 스키인스트럭터 협회) 레벨 1,2,3 그리고 레벨4 도전에 필요한 자격인 CSCF(캐나다 스키코치 협회) 레벨 1이었는데 이 네번의 시험에서 단 한번의 탈락없이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며, 캐내디언들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드문 경우입니다. 그런 이유는 모든 시험이 스킹과 티칭의 두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둘 다 합격해야만 레벨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벨3는 인터내셔날
스키인스트럭터 자격이자 각 스키장의 강사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므로 스키장에서 몇 년씩 일한 강사들도 따기가 쉽지 않은 자격입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한 마디로 제가 스키에 미친 스키광이기 때문입니다. 스키 하나만 메면 낯선 땅 어디라도 두렵지 않고, 스키만 타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제가 이렇게 스키에 빠져들게 된 사연과 스키이야기를 풀어 놓고자 합니다.
하지만 너무 몰입해서 읽지는 마십시요. 그러다가 저처럼 스키에 미쳐버릴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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