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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북미최고봉 맥킨리 등정기
  • 정우찬
  • 17.09.07
  • 조회 수: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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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20일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원정대는 5월 22일 경비행기로 광활한 알래스카 산맥의 빙하지대에 도착하면서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지옥의 입구처럼 쩍쩍 입을 벌린 크레바스로 인해 발을 내딛기가 두려웠고, 고도를 높일수록 차가워지는 날씨와 힘겨운 호흡은 말로만 듣던 고소증세를 동반하기 시작했습니다.

 

캠프3를 올라서면서부터 원정대원들의 얼굴이 많이 부어올랐고, 추위로 인해 깊은 잠은 들 수가 없었습니다. 캠프4인 맥킨리 시티(Mckinley City)에서는 눈보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white out)에 갇혀 며칠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의 계암산악회 팀은 9명의 원정대가 왔지만 고소증세가 심해져 7명이 하산하면서 2명만이 캠프4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과 백야(白夜)의 신비속에서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맑게 깨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그처럼 확실하게 느낀 적이 과연 삶을 살아오면서 있었던가? 단연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한상황에서 오히려 마음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진지했습니다.

 

마침내 6월 2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 정상(頂上)에 올라 섰습니다. 힘겨운 노력끝에 그 곳에 올라섰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은 없었습니다. 이미 정상을 오르기 이전부터 나는 충분히 감동해 있었고, 느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상에 오르고 안오르고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맥킨리를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많은 날 들에 우면산을 뛰어 오르고, 북한산과 도봉산의 능선을 쉬임없이 오르내리면서 꿈꾸던 그 곳에 내가 마침내 왔다는 것, 그리고 그 곳을 애써 오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꿈을 성취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결과는 그 과정으로 인해 더욱 값진 법입니다. 꿈은 그 꿈을 만들고 애써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름답습니다. 이미 그 꿈이 실현되면 생각만큼의 감동은 없습니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항상 무엇을 위한 과정으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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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산악지대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봉(6,194m)은 북위 63도에 위치하고 있어 세계의 산들 가운데 가장 험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기후가 변하는 곳이다. 맥킨리에서는 빙하여행의 상쾌한 날이 생존하기 위해 굴을 파야하는 날로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10월말 에베레스트봉 남부의 산과 산 사이의 안부가 기온이 가장 낮았던 때는 1981년으로 영하 17도를 기록하였다. 반면 그러한 기온은 맥킨리에서는 4,300m의 맥킨리시티에서의 5월과 6월의 따뜻한 밤의 기온과 같다. 한 여름조차 고소캠프(맥킨리 빌리지)와 정상 사이의 기온은 보통 영하 20도와 40도를 오르내리며 밤에는 기온이 더 떨어진다. 이러한 맥킨리의 기온은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은 등반자들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또한 맥킨리는 기압이 낮아 등반자들에게 보다 적은 산소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압차이는 3,000m이상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맥킨리의 정상은 히말라야(에베레스트봉은 북위 27도에 위치하고 있음)에서 7,000m에서의 기압과 같다. 기압이 낮을수록 공기중에 산소는 더욱 적다. 그러므로 맥킨리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고소증세의 위험에 직면한다.

 

맥킨리는 1874년 조지 벤쿠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원래 이름은 데날리였으나('데날리'는 원래 인디언 말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1897년 윌리암 딕키에 의해 맥킨리라고 명명 되었다. 요즘은 다시 데날리로 고쳐 부르자는 복원운동이 활발하다. 

이 산의 초등은 1913년 Hudson Stuck이 이끄는 미국대에 의해 초등이 이루어졌으나 이들은 하산 도중 실종되었다. 한국에서도 1979년 청주대팀 고상돈, 이일규, 박훈규 대원이 등정후 하산도중 사망하는 사고를 당한 바 있다. 

히말라야보다 경비가 적게들고 어프로치가 쉬우며, 다양한 루트, 수월한 행정절차 등 유리한 조건으로 인해 많은 한국대가 맥킨리를 찾지만 무포터,무쉘파의 조건하에 대원들이 모든 역할을 다해야 하고 랜딩포인트에서 정상까지 약 4,000m의 고도차를 극복해야하는 난점이 있기도 하다. 

 

 

주름진 어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건강하게 돌아와 고맙다, 내새끼"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어머님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어머님의 환한 웃음을 접하고 나서야 내가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맥킨리 등정!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어려운 조건들이 한 둘 해결되면서 실타래가 풀리듯 모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결과 또한 좋았다. 서울은 찜통과 같은 한 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리저리 문제가 많았던 준비기간에서 부터 걸음을 걸으면 허벅지까지 눈에 푹푹 파묻힐 듯한 등반의 기억이 아직까지 선하기만 하다. 

 

5월 20일. 드디어 지난 반년간 나의 온 마음을 가득 채우던 맥킨리를 향해 출발. 그동안 원정대 이상으로 염려해주신 청화산악회 선배님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비행장을 이룩하면서 등반성공과 무사귀환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옆에 계신 종화형과 광선형 또한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면서 원정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듯하다. 공항에서 만난 부천의 계암산악회 또한 맥킨리를 목표로 출발하는 팀이다. 모두 아홉명으로 건강해보이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이들은 원정 출발에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거의 우리팀과 같이 등반하게 되었는데 등반중에 서로에게 도움을 많이 주어서 나중에는 같은 팀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날자변경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떠난 시간은 20일 저녁이었는데 도착한 시간은 같은날 오전9시 45분이었다. 공항에는 오갑복씨와 이석무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오갑복씨는 이민가기전에 한국에서 산과 인연을 맺었던 분으로 현재는 Wasilla에서 Windy Corner라는 등산장비점을 운영하면서 한국원정대에 대한 안내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다. 이석무씨는 오갑복씨 일을 도와주시는 분으로 청화산악회 선배님이시다. 산악회에서도 이석무씨가 Alaska에 있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기에 도착해서야 이석무씨가 산악회 선배님임을 알게 되었는데 머나먼 이국땅에서 산악회선배님을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Wasilla에서는 오갑복씨집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호숫가의 캠핑장에서 지냈다. 산에 들어가기전에 필요한 장비는 Windy Corner에서 구입하고, Carrs라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식품을 구입하면서 등반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5월 22일 오전. 드디어 데날리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Talkeetna로 이동하였다. 이 곳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맥킨리 등반의 기점인 랜딩포인트(Landing Point)로 이동하게 된다. 경비행기를 타기 전에 레인져 사무실에 들려 입산신고를 하고 1인당 125$의 입산료를 지불하였다(총 입산료는 150$이지만 25$은 입산신고서 미리 예치하게 되어 있다). 간단하게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고 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비가 와서 경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비행사측의 설명때문에 다시 Wasilla로 돌아 와야만 했다. 날씨 탓에 일정이 늦어질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오후에는 날씨가 좋아져 Talkeetna로 이동하여 경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저녁무렵에야 랜딩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Talkeetna에서 비를 맞으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때문에 오히려 기분은 좋았다. 


랜딩포인트에 내리면서부터 세상은 온통 흰 눈의 만년설로 뒤덮힌 빙하지대이다. 5월말에 무릎까지 빠지는 흰 눈을 밟으며 '드디어 맥킨리구나'라는 감흥이 밀려온다. 랜딩포인트에는 우리와 함께 도착한 계암산악회외에 검악산악회가 헌터봉을 목표로 베이스를 치고 대기중이었다. 랜딩포인트에 들어온 시간이 늦어 바쁘게 텐트를 치고 저녁을 해 먹고 나니 밤이 이미 많이 늦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모두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주위는 아직 환하기만 하다. 극지방에 가까운 지역이어서 나타나는 백야현상탓이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약간 어두울뿐 거의 온종일 밝은 대낮과 같다. 그만큼 해가 길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잠을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5월 23일. 각자의 짐을 나누고 데포시킬 것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정오가 넘어간다. 스키에 씰(seal)을 붙이고 나머지 짐을 정리하고 나니 15시 정도. 계암팀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외국대도 모두 출발한 상태였다. 랜딩 포인트에서 처음 출발하는 지점은 약 1km정도가 아래로 경사진 구간이다. 스키에 익숙하지 못한 종화형이 자꾸만 뒤로 처지다가 나중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20분정도 기다려도 보이지 않아 사고라도 났나싶어 황급히 올라가보니 종화형이 스키를 조정하고 계신다. 스키가 너무 헐거워 스키를 조정하느라 아주 애를 먹으신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루한 빙하지대를 횡단하여 캠프1에 도착한 시간은 20시30분. 낮동안은 해가 뜨거워 영상 20도가 넘는 기온이더니 해가 지기시작하면서 기온은 급강하. 거기다 바람까지 가세하자 손이 곱아 텐트조차 제대로 치지 못할 상황이다. 텐트를 펼쳐 폴을 세우고 짐을 정리해 텐트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텐트가 바람에 날려 간다. '저게 없어지면 등반은 끝이다'라는 생각에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100여미터를 달려가 겨우 텐트를 잡았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의 고도는 2,500m에 가까운 곳.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숨이 가빠왔다. 겨우 텐트를 끌고 돌아오니 한쪽 폴이 부러져 있다. 비상용으로 가져왔던 폴을 이어 겨우 찌그러진 형태로 나마 텐트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날 저녁에 내린 결론은 덥더라도 좀 더 일찍 출발해서 해가 지기전에 다음 캠프까지 도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스키와 같은 장비는 사전에 미리 사용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도 좋은 교훈으로 배울 수 있었다. 


5월 24일. 어제보다 이른 시간인 12시 30분경에 출발하였다. 점차 경사가 심해지면서 허리 뒤에 매단 썰매의 하중이 등반을 괴롭힌다. 한발한발 내딛기가 무척이나 힘이들지만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올라간다. 

온통 흰 눈에 뒤덮힌 세상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서 신비함까지 담고 있다. 한국의 겨울산에 비해 거대하기만한 맥킨리의 능선을 보며 또 다른 산의 모습에 눈뜨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이러한 아름다움, 이러한 신비감의 산도 있구나! 히말라야의 산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산과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무르익어 간다. 숙명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산. 오래전부터 이 만남을 준비하고 기대해 왔으면서도 언제나 산과의 만남은 신선하기만 하다. 

올라가다 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하산중이었다. Mountain Blue라는 팀 소속으로 혼자 왔다고 한다. 베이스 캠프에서 대기하던중 바람에 텐트 폴이 부러져 텐트를 버리고 하산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제의 일이 떠올라 다시한번 바람에 대한 주의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캠프2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50분. 어제에 비해서 힘은 들었지만 점차 빙하지대에서의 운행에 익숙해짐을 느낀다. 

 

5월 25일. 오전에 일어나니 바람이 많이 분다. 경비행기가 머리를 돌며 전단을 뿌려대고 있다. '날씨가 나빠지니 등반을 하지말라는 것일까?' 모두들 불안감에 하늘만 바라보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날씨는 점차 좋아지고 바람도 약해져 간다. 올라가자! 계암팀과 논의끝에 계속 운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캠프2에서 캠프3로 오르는 코스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코스로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심해 힘이 들고 점차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고도(3,500m)이다. 캠프3는 모터사이클 힐의 바로 전면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원수산악회(원주-수유리 클라이밍 아카데미 합동대) 3명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워낙 안좋은 상태에서 고생한 탓에 그들의 코와 입술 주변은 온통 부르터 있었다. 우리팀의 성공을 기원하며 내려가는 그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이제부터 스키운행은 끝나고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인수봉을 오르기 직전처럼 온 몸의 신경이 긴장감에 파르르 떤다. 모든 대원들이 약간의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약간의 두통이 있어서 아스피린을 한 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온다. 저녁에 텐트 사이트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도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차를 끓여 마시며 빌고 또 빈다. '고소여, 오지말아라!' 

 

5월 26일. 아침에 일어나니 광선형 얼굴이 완전히 찐빵맨이 됐다. 퉁퉁부어오른 얼굴에 종화형과 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점심때가 지나면서 점차 붓기가 가라앉는다. 광선형의 컨디션이 안좋아보였지만 짐 일부를 모터사이클힐 위까지 데포시키기로하고 14시경에 출발하였다. 모터사이클힐은 지금까지 올라왔던 언덕에 비해 훨씬 가파른 구간으로 이 구간을 오르던 중 광선형의 뒷꿈치가 까졌다. 모터사이클힐을 완전히 돌아 윈디코너 입구까지 올라가서 보니 광선형의 양쪽 뒷꿈치가 동전만한 크기로 까져있었다. 운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윈디코너에 바람 한점 없는 좋은 날씨여서 그냥 내려가기가 아까왔다. 윈디코너 끝부분까지 짐을 데포시키기로 하였다. 하지만 눈에 바로 보이는 지점인데도 그 거리는 좀체로 가까와 지질 않는다. 2시간 가량 걸어서야 윈디코너 끝 지점에 도착했다. 1m가량의 깊이로 눈을 파고 짐을 묻었다. 내려오는 길은 수월했으며 시간도 짧게 걸렸다. 계암팀은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베이스 캠프까지 짐을 데포시키고 20시경에 내려왔다. 대부분의 대원이 피곤한 모습이었다. 상당히 부담이 됐을 것이다. 


5월 27일. 아침에 일어나니 광선형은 또다시 찐빵맨이 되어 있다. 종화형도 얼굴이 많이 부었다. 나는 눈이 조금 충혈되어 있다고 종화형이 얘기하지만 별다른 고소증세는 없다. 계암팀은 대장님이 고소가 와서 다른 두명의 대원과 함께 하산하였다. 우리팀은 얼굴이 부은 것 말고는 특별한 고소증세는 없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광선형이 발 뒤꿈치의 통증이 심하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반창고 등을 통해 응급조치를 하고 12시경 출발하였다. 짐이 줄어서 인지 전날 데포지점까지 4시간만에 도착하였다. 데포한 짐을 찾아 각자의 짐을 분배하고 나서 출발한 시간은 16시 30분. 

이곳에서 베이스 캠프까지는 크레바스가 발달해 있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당히 지겨운 코스이다. 그동안 크레바스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탓에 크레바스의 끝없는 깊이에 상당히 놀랐다. 과연 안자일렌이 필요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베이스 캠프(4,300m)에 도착한 시간은 18시경. 텐트를 치고 물을 끓인 후 저녁 할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종화형과 광선형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보이질 않는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차를 끓여 마중을 나갔다. 20시경 베이스 캠프에서 500m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모두 탈진 상태였다. 차를 나눠준 후 광선형의 썰매를 받아 캠프지로 들어왔다. 캠프지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꿀차를 끓여 마시고 나서야 조금씩 원기를 되찾아 갔다. 모두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8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베이스 캠프에 데포할 품목을 구분하고 가지고 올라갈 물품을 정리하였다. 13시 30분에 맥킨리의 웨스트 버트레스 코스에서 가장 경사가 심하다는 헤드월 상단에 짐을 데포시키기 위해 출발하였다. 헤드월을 올라가는 구간은 무척이나 가파른 구간이었으며 상단 삼분지 일 가량은 주마링으로 올라가는 구간으로 나의 경우에는 웨스트 버트레스 구간에서 가장 힘이 많이 들었던 구간이었다. 16시40분경에 도착하여 짐을 데포시키고 종화형을 기다렸다. 17시30분경 종화형이 도착하여 종화형의 짐까지 마저 데포시킨 후 내려왔다. 저녁을 먹고 차를 끓여 마시는 중에 계암팀에서 사람이 왔다. 대원중에 한사람이 고도폐수종에 걸려 하산을 해야 겠는데 텐트가 없다며 우리팀의 소형텐트(2인용)를 빌려 달라고 하였다. 텐트 1동을 빌려주고 나니 우리팀의 텐트가 비좁아 계암팀의 대형텐트(5인용)로 옮겨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계암팀은 고소증세로 오전중에도 두사람이 하산하는 바람에 두명밖에는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5월 29일. 오늘은 하루 휴식을 하기로 한 날이어서 마음 편하게 쉬고 있었다. 그러나 맑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고약한 날씨로 바뀌었다. 맥킨리에 도착하여 맑기만 하던 날씨가 드디어 맥킨리의 유명한 칼바람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기간이었다. 맥킨리의 경우 전형적으로 4∼5일간은 날씨가 좋고 그 다음의 4∼5일간은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하는데 드디어 좋지 않은 날씨의 기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날 오후부터는 하루 종일 텐트안에서 갇혀 있는 지긋지긋한 생활이 4일동안 지속되었다. 밤새내린 눈으로 텐트가 눈에 반쯤은 파묻힌 형태가 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아침에는 겨우 텐트에서 빠져나와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몇몇 일정에 바쁜 외국대들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불안감은 점차 더해 갔지만 오히려 이렇게 베이스 캠프에 체류하는 기간이 우리들에게는 고소적응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6월 2일. 드디어 닷새째만에 하늘이 걷히고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길을 열어준 것이다. 대부분의 외국대들 또한 출발준비를 하였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먼저 출발하는 팀이 없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앞에 가는 팀이 치뤄야할 럿셀의 수고를 누구도 선뜻 나서서 자처하지 않는 탓이다. 몇몇 외국대들이 럿셀을 하기를 기다리다가 우리- 종화형과 필자, 그리고 계암팀 2명.(광선형은 뒷꿈치가 아파 등정을 포기하였다)가 출발한 시간은 12시경. 몇 팀이 앞서 가기는 했지만 아직도 신설위로 제대로 길이 뚫리지 않아 우리들도 상당히 고생을 하며 헤드월 구간을 올라갔다. 16시 30분경 힘겹게 헤드월 상단에 올라서서 데포물품을 회수한 후 캠프 5인 맥킨리 빌리지(Villiage)로 출발하였다. 이 구간은 바람이 많고 경사가 가파른 릿지이기 때문에 눈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경사로 인해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다.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나 아이젠에 이곳 저곳이 찢겨 믿고 의지할 만한 상태는 아니다. 

빌리지(5,200m)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산소의 부족은 베이스 캠프에 비할바가 아니어서 조금만 몸의 리듬이 깨져도 수영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처럼 호흡이 엉켜 한동안 숨을 가다듬어야 하는 정도이다. 빌리지에는 대구 팔공산악회와 경주 클라이머스 합동대의 대원 2명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일 정상공격을 한다고 한다. 모든 대원이 도착한 시간은 21시경.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의 운행계획을 논의하였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으니 정상공격은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모레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모른다. 포레이커봉 저쪽으로는 또다시 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어쩌면 등정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종화형에게 내일의 정상공격을 조금스럽게 제안했다. 대구-경주합동대와 함께라는 조건으로 허락이 떨어졌다. 내일이면 정상공격이다. 긴장때문인지 추위때문인지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다 추위로 감기가 들었는지 기침이 자주나온다. 겨우 겨우 몇차례의 짧은 잠에 빠진다. 


6월 3일. 06시 45분에 기상해 주섬주섬 정상공격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해온 속옷으로 갈아입고 복장을 챙긴 후 대구-경주 합동대의 텐트로 갔다.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준비를 마친 후 09시 30분 출발. 데날리 패스를 통과하는 동안은 그늘이 져서인지 무척이나 손과 발가락이 시렵다. 나중에 들으니 종화형도 이 곳에서 동상에 걸렸다고 한다. 두 사람과 안자일렌을 하고 등반하였는데 안하던 안자일렌을 하니 몹시 불편스럽고 페이스도 맞지않는다. 데날리 패스를 통과해서는 두사람에게 부탁해 안자일렌을 풀렀다. 그들의 페이스에 맞추자니 내 페이스를 잃을 것 같았고, 비록 페이스는 다르지만 속도는 늦지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상은 정확했다. 그들은 걸음은 빠를지 모르지만 속도에 기복이 심했고 점차 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병태형이 얘기했던 레스트 스텝(Rest Step: 한쪽발이 무게를 견디는 동안 다른 쪽 발은 휴식을 취하면서 단계적으로 전진하는 운행 방식)은 고산에서 특히 유효하였다. 쉬지는 않지만 걸으면서 쉬는 방법이 레스트 스텝인데, 빠르지는 않지만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고 처음과 끝의 운행속도가 거의 일정해 결국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힘들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빌리지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6,000m대에 이르러 펼쳐지는 넓은 분지를 제외하면 계속 경사가 심한 구간이지만 짐이 없기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6,000m대의 분지 저 편으로 정상의 나이프 릿지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곳까지는 고도 200m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만 한다.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띄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린다. 맥킨리 등정을 다짐하며 아침마다 힘겹게 뛰어 오르던 우면산이 생각난다. 등정을 위해 걷고 또 걷던 북한산과 도봉산의 능선도 떠오른다. 그 산길에서 흘렸던 땀방울들이 이제 나를 맥킨리 정상으로 밀어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발끝만을 바라보고 걷던 내게 발앞을 가로막던 능선이 사라지고 정상의 나이프 릿지가 나타났다. 칼날같은 능선위로 몇 사람의 발자욱이 새겨져 있다. 양쪽은 수천미터의 벼랑이다. 이 곳에서 추락하면 죽어도 썩지 않는 얼음덩이가 되리라 생각하며 조심스레 건너갔다. 

더 이상 높은 곳이라고는 하늘 뿐인 곳. 드디어 정상이다! 빌리지를 출발한지 5시간 30분의 힘겨운 사투끝에 드디어 정상에 섰다. 한 휴대폰의 선전처럼 당장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 북미 최고봉 맥킨리 정상입니다!" 

좌우에 헌터봉과 포레이커봉을 이끌고 수많은 알래스카산군 가운데에서도 우뚝 솟은 맥킨리의 정상에 서서 조금은 자연을 닮아가는 나의 모습을 본다. 

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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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世上의 頂点에 서있다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이곳에 서서 

조용히 눈감으면 

어느새 나는 바람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등정이 아니었다. 다음날 12시간 30분만에 탈진 상태로 돌아온 종화형과 애타게 무전기로 안부를 물어오던 광선형. 그리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청화산악회 회원들, 와일드 스포츠 클럽, 건강하게 돌아오라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위험한 길 떠나는 자식을 보며 눈물로 말리시기 보다는 "힘들 때면 두 주먹 꼭 쥐고 이겨내라!"하시던 어머님. 바로 이 모든 사람들의 등정이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1997년 6월 3일 오후 3시 맥킨리 정상에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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