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나이가 같으니 우리 친구하면 되겠네."
시커멓고 다부진 근육질의 그 친구가 대뜸 꺼낸 말입니다.
"어~그, 그러지 뭐..."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 들어보이는 친구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난 날 저녁 친구가 되었습니다.
1997년 북미최고봉 맥킨리를 등정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새로 들어온 신입회원이 있다고 해서 토요일 밤 늦게 도봉산을 올라 갔습니다. 소주와 삼겹살로 한창 분위기는 무르 익어 있었죠.
나를 꽤 보고 싶었다고 먼저 말을 꺼낸 그 친구는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격없이 사람을 대했습니다.
하는 일이 통나무집 짓는 일이어서 전체적으로 다부진 근육질의 체형에 팔, 다리가 길어 한 눈에 등반에는 아주 적격인 체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선배들을 위해 준비했다며 슬며시 양주 한 병을 꺼내 들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 되었고, 그 친구의 술 잔을 받으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와 나의 운명은 간 발의 차이로 바뀌어 버린 것 같습니다. 맥킨리 원정 이 후 산악회에서는 나를 서울시 산악구조대원으로 추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 여름 등반 도중 턱 뼈가 부서지는 큰 사고를 겪은 나는 등반 활동이 점차 움츠러 들었고, 겨울에는 스키에 빠져 지내면서 점점 더 산악회 활동과는 멀어져 갔습니다.
반면에 그 친구는 나를 대신해 열심히 활동하였고 탁월한 힘을 바탕으로 모든 등반에서 주축이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일 년인가 지난 후 그 친구는 미국의 요세미테로 빅월등반(Big Wall Climbing) 원정을 다녀왔고 얼마 후 산악회의 추천으로 서울시 산악구조대원이 되었습니다. 스키에 빠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자리였습니다.
그 후 스키에 미친 나는 산악회 활동에 뜸해졌고, 2001년 캐나다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소식은 알지 못했었는데 2002년 우연히 인터넷 기사중 그가 엄홍길씨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등정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처음 그 기사를 접했을 때 얼마나 그가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나의 꿈 중 하나가 에베레스트 등정이기에...
2003년 7월 19일. [한국 로체 샤르 원정대] 발대식에서의 박주훈(왼쪽). 두 달 뒤 그는 히말라야에 묻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2003년 10월 6일) 또 다시 그의 이름이 포함된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원정대원 2명 실종-
히말라야 원정에 나선 한국인 산악대원 2명이 눈사태를 만나 실종했다고 네팔 관광부 관리들이 8일 발표했다. 네팔 관광부는 서울 출신의 박주훈(한국 청화산악회 소속,34세) 씨와 황선덕(26) 씨가 다른 한국인 대원 3명과 함께 지난 5일 로체 샤르(8,400m) 정상을 정복하기 직전 눈사태를 만나 실종했다고 밝혔다. 푸르나 바크타 탄둘카르 관광부 관리는 구조대를 급파했으나 아직 이 2명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조대와 연락을 취하고 있는 세르파는 이 한국인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들의 시신을 발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전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세르파는 눈사태를 만나 생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된 기사는 그들의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으며, 구조를 포기했다는 기사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름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그 친구를 생각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등반을 하다가 떨어져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떨어지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모두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어느덧 죽음마저 초연히 받아들이는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 친구는 떨어지는 순간, 눈더미속에 파묻혀 온통 어둠뿐인 그 상황에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아내와 아이가 있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 가슴은 얼마나 저몄을까....
그런 느낌들 마저 나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도전은 위대하지만 그 위대함의 이면에 이처럼 끊없는 절망과 슬픔이 존재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인가 봅니다.
등반을 시작하면서 틈나는대로 딸아이를 데리고 실내암벽을 다니던 그 친구, 언젠가 자신의 딸이 서울시 대회 암벽등반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며 해맑게 웃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다 떠난 그 친구는 여한이 없겠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어떡하나요...
그 친구에 대한 애도, 그 이상으로 보다 그 가족의 슬픔을 이겨내는 힘을 기원해 봅니다.
"주훈아, 잘 가라. 추운데 있어도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생각하며 편안히, 편안히..."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안면도의 박주훈 추모비(출처-이마운틴)
- https://m.blog.naver.com/taeanblog/221177925022?view=img_6
산이 좋아 히말라야의 일부가 된 많은 사람들의 얘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지만,
항상 가슴이 아픕니다.
가신 이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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