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나절의 짧은 산책
박순백
해 넘어간 이른 저녁, 오렌지 주스와 구두약을 사러 줄리와 함께 나섰다.
조금 어둑해진 시간의 고요함과 적막이 주는 한가로움을 느끼며 걷는다.
이 밤에 내 탱자열매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그리로 향했다.
가로등 비추는 희미한 밝음에 의지해 암부 표현 좋은 기기의 셔터를 눌렀다.
가는 길에 가을임을 알아차려 제철에 맞춰 꽃움을 틔우는 국화를 본다.
웬 깻잎인가 자세히 보니 꽃으로 피어날 사루비아의 작은 꽃봉오리들이다.
아침을 빛내던 나팔꽃은 꽃잎을 오무렸으나 페튜니아 꽃은 낮과 같다.
만물이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변치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신비롭다.
스위트한 와인마저 쓰디쓴 술꾼 아닌 내게 필요한 칵테일용 오렌지 주스.
오랜 피로에 찌들어 희끗한 신발을 원래의 색으로 돌려줄 검정 구두약.
스위트로는 왠지 부족해 이태리의 돌체가 어울리는 달콤한 오렌지 주스.
세파를 가장 낮은 곳에서 대신 겪은 구두를 저먼 블랙으로 칠할 구두약.
말티즈 줄리는 어서 가자 칭얼대고, 여유로운 산책을 바라는 난 서성인다.
어둑한 시간의 고요와 적막이 검은 하늘빛과 합세하는 고독한 시간이다.
A Brief Evening Stroll
By Dr. Spark
The sun had set, the evening soft and fine,
I walked with Julie to buy polish and orange juice for wine.
In tranquil dusk, I savored quiet’s grace,
And felt the peaceful stillness fill the space.
I wondered how my trifoliate fruit might seem,
And headed there beneath the lamplight’s gleam.
My camera clicked, its lens absorbed the dark,
Each shadow captured, crisp, a perfect mark.
Along the way, chrysanthemums had bloomed,
In autumn’s breeze, their buds were now attuned.
I thought I saw a leaf, but closer, spied
The salvia’s bloom, in petals still inside.
Morning glories closed, their petals now drawn tight,
But petunias shone, unchanged from day to night.
All things transform with time, and yet, I find
Some stay the same, a marvel for the mind.
Sweet wine, too bitter for a soul like mine,
So orange juice I sought, a better sign.
My shoes, worn out, with dust and age displaced,
Would soon be cleaned, their polish black erased.
The word “sweet” fell too short, Italian “dolce” felt more right,
For juice so sweet, a pleasure, pure delight.
My shoes, once worn through life’s most humble days,
Would gleam anew, in German black’s full blaze.
My Maltese Julie tugged for me to roam,
But I, content, enjoyed our slower home.
The evening’s quiet merged with sky’s dark hue,
And solitude, in shadows, softly grew.

- 어느 가게 앞에 내놓은 가을 국화

- 화분에 심은 사루비아

-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은 지나가고 나팔꽃은 꽃잎을 오무린 이른 저녁.

- 페튜니아는 어둠 속에도 희다.

- 서둘러 먼저 가다 느린 걸음의 나를 올려다 보는 줄리(Julie). 모처럼 저녁 산책을 나온 줄리는 맘이 바쁘다.

- 이 한밤의 "내" 탱자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가로등을 등진 한 밤의 녹색을 좀 남긴 노랑 열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플래쉬도 없이 이런 사진을 찍어내 주는 소니 알파 세븐 풀 프레임 카메라가 고맙다.(자세히 보면 입자는 거칠지만 SNS의 사진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만약 휴대폰으로 찍었더라면 더 쨍한 듯 보이나 물리학적인 법칙을 어겨 입체성이 부족한 사물의 모습들만 보였을 것이다. 존재하는 대로 찍을 수 있는 카메라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 밤에도 예쁜 애들은 색을 지니고, 빛을 내준다.

- 이제 반쯤 노란 열매가 곧 전부 노랗게 변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