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의 제자 중 한 분(홍정현 씨)이 추석 선물을 보내왔다.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갔다가 거기서 특산품 몇 개를 사 보낸 것이다. 이 나라는 KAI와 함께 KF-21 보라매 전투기를 공동개발하기로 하고, 분담금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의리 없는 행동을 하여 한국인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어서 인상이 꽤 안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도네시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알고보면 이 나라는 그 크기나 인구면(2억8천만 명)에서 대국이기 때문이이다. 면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9배이고, 한국(남한)에 비해서는 19배 정도가 된다. 우습게 볼 나라가 아니다.
어쨌거나 홍 선생이 선물한 박스를 여니 거기 담긴 것이 몇 종되었는데, 원두 커피 두 봉(Kopi Luwak & Toraja Pulu-Puulu), 자헤 메라 루라 자와라는 이름의 일종의 생강차(Red Ginger with Coconut Sugar), 그리고 생강 코코넛 캔디(Ginger Coconut Candy)가 그것들이었다.(실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건 집사람이 자신의 피부에 잘 맞아서 사용해 온 화장품이다. Celonia의 Signature Bio 앰플인데, 한국산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는 커피 대국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베트남과 더불어 커피 수출 4대국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이다. 잘 알려진 자바섬의 자바 커피는 19세기에 전세계 커피의 약 20%를 점유할 만큼 많이 수출되었고, 그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극소량이 생산되나 그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유명한 인도네시아산 커피가 루왁(Luwak)이다.
당연히 홍 선생의 선물 중에서 커피 애호가인 나의 관심을 크게 끄는 건 일반 커피보다 대략 13배 정도나 비싼 루왁 커피였다. 인도네시아 사향(麝香)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싼 똥에서 추출한 생두를 볶아서 원두로 패킹한 후 판매하는 것이다. 루왁 커피가 비싼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크게는 희소성과 생산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한 독특한 맛 때문이다.
루왁 커피는 인도네시아의 아시아 사향고양이가 자연환경에서 커피 열매를 먹고 소화한 후 배설한 똥에서 추출한다. 잘 아시다시피 커피는 작긴 하지만 과일이다. 커피는 열매 중 씨를 추출해서 이를 세척하고, 말려서 생두를 만들고 이를 볶아서 원두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분쇄해서 뜨거운 물을 부어 원두에서 추출된 검은 액체를 마시는 것이 커피이다. 그러므로 사향고양이가 먹는 것은 씨가 아닌 과육 부분 뿐인데, 이 새빨갛게 익은 부분을 체리(cherry)라 부른다. 이 열매의 과육은 새빨간 색깔이고, 실제로 모양도 체리처럼 아름답다. 이 체리의 맛도 의외로 좋다. 당연히 과일이라서 신 맛이 포함되어 있고, 향도 좋다. 멍게를 먼저 먹은 사람처럼 한 용감한 사람이 나타나 커피의 씨앗을 굽고, 부수고, 그걸 뜨거운 물에 우려 먹는 일이 없었다면, 우린 커피 체리만 수확해서 먹고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커피 체리를 먹는 사향고양이의 수가 많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루왁 커피의 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의 생산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사향고양이가 배설한 커피 원두는 자연 상태에서 수집되어야 하고, 수집 후 세척, 건조, 가공 등의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일반 커피 생두의 추출과정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똥을 제거해야하고, 그 똥에 싸여있는 동안에 스며든 구린내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처리 비용이 대폭 상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왁 커피는 특별한 맛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소화 과정에서 커피 체리가 분해되면서 일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커피의 쓴맛이 줄어들면서 부드럽고 깊은 맛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 커피커퍼(coffeecupper)들의 평가이다. 이러한 독특한 풍미가 커피 애호가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루왁 커피의 명성이 그 맛에서만 비롯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비싼 가격과 희귀성을 강조한 마케팅 요인이 크다고 할 것이다. 커피커퍼들은 그 힘든 생산 과정에 큰 점수를 주고, 뭔가 독특한 향과 맛에 점수를 준 것인데,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원인도 크다. 게다가 지금은 자연스런 과정에서 야생의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싼 똥에서 추출하는 게 아니고, 닭장에서 닭을 키우듯 사향고양이를 가두고 억지로 커피 열매만 먹여서 공장식으로 생산하는 게 이 루왁 커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특산의 루왁 커피는 그 생산 초기의 좋은 이미지가 계속되어 고급 커피로 자리잡은 후에 지금도 계속 프리미엄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또 하나의 커피는 이 나라의 술라웨시섬에서 재배되는 토라자 커피이다. 토라자 커피는 이 섬의 북쪽고원에서 재배되는 것으로서 그 특성이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익은 과일의 풍성한 향과 특히 강조되는 다크 초콜릿 향이 그것이다. 토라자의 주민들은 두 가지 형태의 원두를 생산하는데, 하나는 아라비카종이고, 또 하나는 베트남 등에서 많이 재배하는 로부스터종이다. 선물 받은 것은 아라비카 원두이다.(내가 좋아하는 종류이다.)
그럼 이 두 커피의 실제 맛은 어떠할까? 난 오래전에 루왁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다. 게임 전문 사이트인 루리웹의 공동 창업자(대표이사)인 박병욱 선생의 커플을 주례한 바가 있는데, 박 선생이 내가 커피 애호가임을 알고 루왁 커피를 선물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의 내 첫 인상은 이 커피가 부드럽기는 커녕 약간 혀를 쏘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 매우 독특한 향이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셔보는 중에도 계속 머리속을 맴도는 게 그 사향고양이가 싼 똥속에 박혀있는 커피 생두의 적나라한 모양 때문에 입맛이 잘 돌지 않았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편견 없이 맛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맛은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난 “아직 먹어보기 전이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먹기도 전에 자랑질부터 한 번 하고 싶었을 뿐이다.
"질긴 놈이 이긴다."
별 재주 없는 나는 남들 그만 둘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아니면 남들과의 경쟁을 피해 남들이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