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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단위로 달라지는 초여름의 꽃들

 

2023/05/16(화) 작년 5월 이후 1년간 화요일, 혹은 금요일에 경기도 와부읍의 도곡리를 찾았다. 처음엔 집사람이 정형외과 치료를 받는 동안 난 도심역 부근의 마을(도곡2리)을 산책하거나 카페를 찾아가 그곳에서 글을 쓰곤했다. 그 마을을 상징하는 산인 갑산(甲山)을 두 번 등산하기도 했다. 우리 마르티스 줄리(Julie)와 동네를 산책하는 게 참 좋았다.

 

그러다 올봄부터는 도곡리 곳곳을 산책하며 봄꽃 사진을 찍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곳에 가면 전주(前週)에 본 꽃들 중 일부가 남아있고, 새로운 꽃들이 눈에 띄어 단조롭지 않았다. 어떤 꽃은 길가에 피어있었고, 어떤 꽃은 화단에, 또다른 꽃들은 산야에 피어있었다. 그래서 그꽃들은 계절을 알고 피는 것과 계절에 상관 없이 일찍 핀 것들이 있었는데, 꽃은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꽃은 그 이름을 기억할 때 더 반갑게 다가온다.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고, 그제야 손을 내민다. 그걸 보고, 감탄하고, 머릿속에만 담아두는 것도 좋다. 하지만 영원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을 시간 속에 정지시켜 놓는 사진찍기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올봄의 꽃이 내년의 그 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소의 같은 꽃이라 하더라도 그 피는 시기와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훼기술의 발전으로 꽃피는 때가 점차 계절과 관계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화원에서 재배된 꽃이 아닌 자연 환경에서 제철에 맞춰 핀 꽃을 보면 더 반갑다. 도곡리는 아직 도시화가 덜 된 곳이라 바람직한 자연환경을 보존한 곳이 많다. 사람이 밀집한 동네를 벗어나면 논과 밭이 보이고, 곧 산기슭에 이르게 된다.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피운 꽃은 대개 연한 색을 띄고 있고, 지자체가 길가에 심은 꽃이나 화단에 심은 꽃은 강렬한 색을 띈다. 서로 다르지만 꽃이라서 관계 없다. 

 

전엔 도곡1리 안골 쪽으로 많이 갔었는데 요즘은 도곡3리 쪽으로 많이 가게 된다. 궁촌마을과 어룡마을 쪽이다. 서로 멀지 않지만 갑산에 가까운 곳이 아니고 적갑산과 예봉산에 가까운 곳이다.(그래도 거리상으로 도곡리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갑산이다.) 어느 곳이 더 좋다는 건 아니고 전에 많이 가보아 잘 아는 마을에서 더 잘 알고 싶은 마을로 옮겨간 것 뿐이다.

 

도곡리의 주민들은 친절하다. 그곳의 작고 아담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우수(右手)교회 앞을 지나다 보니 화분에 담긴 "바이덴스" 꽃이 예뻤다. 그걸 찍는데 거길 관리하시는 분이 보고 웃으시며 원비-D 드링크를 하나 권하신다. 염치가 없어서 거절하다 결국 받아 마셨다. 순간 '이 먼 교회까지 주말에 달려와야하나?'하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곳 언노운 로스터스(Unknown Roasters) 카페 골목에서 붓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걸 사진에 담고 나오는데, 주민들 몇이 동네 작은 상점 앞에 앉아 계시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왼편으로 가시면 거기 예쁜 꽃들이 많아요."라고 알려 주신다. 그래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그리로 가니 화사한 꽃 몇 개가 보인다. 그걸 찍고 나오다 그 가게에서 포카리스웨트 한 병과 물 한 병을 샀다. 

 

어룡 라벤더 마을의 큰 길을 지나다보니 때이른 백일홍이 화분에 담겨있다. 그걸 찍노라니 그 댁 주인께서 다가와 웃으시며 관심을 보이신다. 화분의 꽃이 예뻐서 사진에 담는다니 들어와 차 한 잔하라는 말씀과 함께 잘 가꿔진 예쁜 정원으로 안내 하신다. 멋진 잔디밭 건너편의 작은 정자에서 한동안 말씀을 나눴다. 동년배의 김원태 선생님이란 분이었다. 도곡리에 많이 갔지만 그곳 주민과 대화해 본 건 처음이다. 

 

어룡마을 표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마을주민 두 분이 말을 건네신다. 사진이 잘 나오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난 왜 잘 찍어보려는데도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알고보니 이분은 지난주에 찍은 마을표석 길건너편 장독대 앞의 꽃양귀비를 심은 분이란다. 그리고 그분이 표석 앞의 꽃양귀비와 접시꽃도 심으셨단다. 내가 찍은 장독대 앞 꽃양귀비 사진을 보여드리니 감탄을 하신다. 그분의 휴대폰으로 구도 잡는 법과 배경의 심도를 낮춰 흐리게 하는 법, 명암을 조절하는 법 등을 알려드리고, 그걸로 사진을 하나 찍어드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찍어보시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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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으로 불리기도 하는 작약꽃. 이 시절에 만나는 선물 같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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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지나다 길옆 주택의 화단에서 작은 철창 사이로 고개를 내민 장미를 만난다. 이제 피기 시작해서 장미 특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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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곡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우수(右手)교회 앞에 놓인 화분에 담긴 "바이덴스"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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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계절에 등산을 하면 많이 보게 되는 산딸나무꽃. 중간에 산딸나무 열매가 파랗게 돋아나있다. 그게 가을이 가까워지면 새빨갛게 색이 변하고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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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딸기꽃도 이처럼 아름답다. 중간에 꽃잎이 지고 산딸기가 파랗게 성장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 역시 곧 빨간 열매로 변할 것이다.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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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곡3리 어룡(魚龍)마을의 표석이다. 지난주에 갔을 때는 표석 기단의 왼편에 진한 핑크색 꽃잔디만 보였는데, 일주일이 지난 이 때엔 그 때 보이지 않던 꽃양귀비(개양귀비)가 피어있고, 왼편의 접시꽃나무가 훌쩍 커있었다. 곧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고, 의리 없는 시인 도종환의 이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접시꽃 당신

 

도종환 / 시인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래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모니카 이 여자 무지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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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룡(魚龍)마을의 표석 - 사해 어룡들이 한강으로 몰려들어 그중 일부가 궁촌천(弓村川)을 따라 올라와 이 마을에서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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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룡마을 초입의 밭에서 발견한 함박꽃 작약. 겹으로 핀 게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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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약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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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밭 한 귀퉁이에 심은 독일 창포. 이것은 소위 져먼 아이리스(German Iris)라 불린다. 결국 붓꽃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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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꽃창포. 역시 붓꽃의 일종이라 영어 이름엔 iris가 들어간다. Iris Pseudacorus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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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두콩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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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칭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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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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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선씀바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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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약꽃(함박꽃)이 무더기로 핀 것이 아름다워서 이 사진을 내 페이스북(Facebook) 배경사진으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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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약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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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책 틈으로 고개를 내민 장미, 이 계절의 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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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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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레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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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분에 심은 메리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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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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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꽃. 우리집 베란다에서 한 달도 전에 핀 감자꽃에 비해 자연속의 감자꽃은 훨씬 더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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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꽃. 비엣남(Vietnam) 국수 등에 곁들여 먹는 고수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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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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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딸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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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단동자꽃 - 참 특이한 이름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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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똥나무꽃 - 꽃이 피면 약간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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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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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초속에 핀 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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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제라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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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제라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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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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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천이 가을에 열매를 맺으면 새빨갛다. 겨울을 지낸 열매는 이렇게 색이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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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두화(佛頭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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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두화 꽃이 져서 바닥에 희게 깔려있다. 불두에서 떨어진 비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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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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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곡3리(부터 15리)의 어룡 라벤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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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스타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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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딸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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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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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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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홍 - 어룡 라벤더 마을 김원태 선생님이 온실에서 가꾸신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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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김 선생님께서는 이 꽃을 찍는 내게 잠깐 들어와 차 한 잔하고 가라시며 정원의 정자로 이끄셨다. 객으로서는 얼마나 감사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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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장미 - 내게 올림픽공원에서의 뜨거운 날씨에서 인라인 스케이팅을 하던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꽃이다. 이제 그 공원 주위에 가득하던 줄장미는 흔적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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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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