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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안 타는 봄날 주말의 한담(閑談)

 

매 주말 스키장에 가는 게 일상이었던 게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이제 비로소 그 광기(狂氣)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http://bit.ly/3K4amv1 )처럼 난 한적(閑寂)한 토요일의 한낮을 보내고 있다. 이 때 생각나는 게 커피 한 잔( https://www.youtube.com/watch?v=c9oZQMB2j14 )이다. 님을 기다리며 커피를 시켜놓은 게 아니라 설렘은 없지만 무료한 시간의 정적을 카페인의 힘으로 휘젓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게 또다른 의미의 설렘처럼 지나치게 침잠(沈潛)하는 마음을 흔들어주고 활성화시키며, 에너지를 생산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카페 라떼 위에 올린 휘핑 크림은 비주얼부터 아름답고, 그 달콤함이 내 감각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신체의 균형을 잡아준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그래서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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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라떼에 올린 휘핑 크림

 

어제 115년의 전통을 지닌 스위스의 솔리스(Solis) 제품 수입상 홈페이지( https://soliskorea.co.kr/ )에 접속했었다. 카푸치노 거품을 만들어주는 우유거품기를 솔리스 제품으로 구입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세 개의 국산 우유거품기를 사용했었는데, 이것들은 대개 1년도 안 돼서 고장이 났고, A/S를 받아도 같은 증상으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능이 좋다는 솔리스 제품을 구입했던 것이고, 그 이후엔 아무 고장 없이 잘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실수로 다른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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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을 만한 우유거품기, 솔리스 타입 689K

 

이 우유거품기 안의 거품을 일으키는 장치는 일반 모터의 원리와는 반대로 작동한다. 대개의 모터들은 자석 안에서 코일이 감긴 둥근 아마추어(회전자)가 돌지만, 거품기 용기 안에서는 링 페라이트(ring ferrite) 자석이 용기 아래 중심 부위에서 회전하도록 되어 있다. 코일이 감긴 아마추어는 거품기 본체에 내장되어 있다. 솔리스는 두 개의 링을 사용하고 있는데, 하난 강력한 자성을 띈 링 페라이트이고, 그 위에 올려놓는 또 하난 약한 자성을 띈 링 페라이트이다. 이 두 번째의 링 페라이트 위에 요철이 있어서 그게 돌면서 데워진 우유에 거품이 나게 하는 방식이다. 내가 원하는 A/S는 그 두 번째의 링 페라이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한 때는 커피를 무조건 카푸치노를 만들어 마셨는데, 한동안 그냥 카페 라떼로만 마시면서 그걸 어딘가에 뒀는데, 그게 생전 나타나질 않아서였다. 

 

카페 라떼와 카푸치노의 차이는 라떼는 그냥 데운 우유를 커피에 넣는 것이고, 후자는 거품을 낸 데운 우유를 넣는다는 것 뿐이다. 그 거품이 맥주의 거품처럼 향을 오래 보존해주기도 하고, 거품 아래 찻물의 온도도 좀 더 유지해 주는 순기능이 있다. 특히 여성이 카푸치노 거품을 입술에 묻혀가며 마시는 걸 보는 건 은근한 노조키(のぞき/覗き·覘き)의 변태성향을 가진 모든 남성들에게 큰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정환 선생 참조^^;) 어쨌건 한동안 라떼 아트도 해볼 겸 솔리스 우유거품기의 데우기 기능만 쓰다보니 다시 카푸치노가 그리워졌다. 하지만 그 반대 회전자 중 윗부분이 사라졌기에 그걸 포기하고 살다가 더 견디지 못 하고 그 부품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리스코리아 수입상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A/S를 받으려면 회원등록을 하란다. 그 부품을 그냥 팔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회원등록을 하고 나니 A/S를 원하는 제품이 제품 DB에 등록이 된 것이라야 한단다.-_- 그래서 등록을 시도했고, 제품 밑바닥에 있는 제품의 시리얼 번호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 제품을 산 날짜와 어디서 산 것인지, 온라인에서 산 거면 그 주문번호를 넣으라고 한다. '아니 이 놈들 미친 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삼성이나 LG, 그리고 못 된 일본의 소니마저도 시리얼 번호 하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A/S를 해주는데 이 놈들은 돈 주고 산다는데도 지나치게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구매번호가 없다고 제품 등록조차 안 해 준다는 것이다. 이미 그 정도의 마인드를 가진 회사라면 이건 전화를 해봐야 싸움만 날 것 같았고, 난 그 부속품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므로 일단 굽혀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내가 거래하는 모든 오픈마켓들의 구매정보를 뒤져보기로 했고, 그 첫 번째가 옥션이었다. 지난 5년간의 구매 리스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걸 산 지가 4~5년이 되는데 솔리스 우유거품기가 안 나온다. 또 다른 오픈 마켓을 뒤질 생각을 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일단 2~3년 안에 산 것인지라도 확인하고 넘어가자고 생각하고 찾았는데, 다행히 그게 나왔다. 의외로 그게 2020/01/22에 산 물건이고, 그 주문번호는 1704563183이었다. 

 

이 번호로 제품 등록을 해놓고, 비로소 홈페이지에 A/S 신청을 하는데 거기서 비로소 제품의 시리얼 번호를 요청한다. 링 페라이트의 두 번째 회전자를 잃어버렸다고 글을 남겨놨다. 그로부터 20분 내에 A/S 담당자의 전화연락이 왔고, 가격이 배송비를 포함해서 8천 원인데 사겠냔다. 산다면 은행계좌를 SMS를 통해 보내준다고... 당연히 사기로 했고, 그 계좌로 입금을 했다. 작은 부속 하나를 제대로 챙기지 못 한 게 이처럼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이 된다는 걸 잘 기억해 놓기로 했다. 머리가 나쁘면 평생 고생이다.ㅜ.ㅜ

 

하여간 거품기의 회전자가 오길 기다리며 오늘도 커피를 마셨다. 라떼에 시럽을 넣고, 휘핑 크림을 얹었다. 역시 크림의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과 혀에 닿고, 거기서 강한 달콤함이 느껴지면서 시럽과 우유맛이 추가된 중배전(中焙煎) 아라비카 커피맛에 좋은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In the meantime, 우리집에도 몇 가지의 식물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한겨울부터 움트기 시작한 사랑초가 며칠전부터 계속 꽃을 피워내고 있다. 겨울에 감자튀김을 할 감자를 다듬다가 떼어낸 감자싹을 화분에 심었는데 이게 아주 튼실하게 자랐고, 꽃을 피우려 작은 꽃망울을 틔워내고 있다. 화분에 심은 쓰다 남은 대파는 중간중간 잘라 먹었는데도 잘린 부분만 조금 시들고 계속 건강히 크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꽃을 피우려고 끝에 꽃망울이 맺혔다. 좀 더 두면 꽃말이 "인내"인 파꽃이 피어날 참이다. 잘 자란 감자싹의 생명력을 지켜보려고 거실에 둔 감자 화분은 원래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근데 시원찮게 자라기에 베란다의 큰 플라스틱 화분에 꽂아두고 잊었던 감자싹도 죽지 않고 굵은 줄기로 커졌고, 그간의 인고 때문인지 뒤틀린 줄기에서 여기저기 싹들이 자라올라오고 있다. 그것도 생명인데 내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그제부터 물을 잘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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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피운 사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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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망울을 틔워내고 있는 감자 줄기. 원래 감자꽃은 오뉴월에 피어나는 것인데 이건 며칠 내로 꽃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안데스가 원산인 이 식물은 씨앗으로 번식되지 않는다하여 유럽으로 건너간 뒤에도 많은 구박을 받았고, 종교적으로는 화형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단다.(화형식 후에 잘 구워진 감자를 그냥 던져 뒀나?ㅋ)

 

감자꽃의 역사

 

하지만 유럽이 대기근에 처했을 때 감자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여겨지게 됐고, 감자꽃이 감자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단춧구멍에 감자꽃을 꽂아 장식했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도 감자꽃을 머리에 달아 이를 홍보했다. 그 후 감자는 유럽 대륙의 주식이 됐고, 아일랜드의 감자역병(썩는 병)은 케네디 가를 미국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교도 중심의 미국에서 카톨릭 이민자인 케네디가의 선조들은 술통제작과 술집으로 부를 쌓았고, 현대에 이르러 조셉 케네디가 대단한 부와 명성을 쌓게되자 그에 이어 대통령 JFK(John Fitzgerald Kennedy)가 탄생한다. 감자는 미국의 역사에도 일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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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중간 잘라 먹었는데도 꽃말 "인내"를 보여주고자 파꽃망울을 틔워낸 화분에 심은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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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 씨눈을 잘라 화분에 심은 건데 튼실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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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초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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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기하고 베란다의 플라스틱 화분에 던져놓은 또다른 감자 씨눈이 고난을 버티며 살아있다. 생명의 봄을 포기할 수 없었던 감자 씨눈의 놀라운 변모. 그 덕분에 얘도 사흘전부터 내가 주는 물을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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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초 꽃의 꽃말은 길다. "당신을 지켜주겠습니다,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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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리스코리아는 정신 좀 차려야 한다. 제품의 시리얼 번호 하나로 제품 등록을 할 수 있어야지 뭔 구매 날짜와 온라인 오픈마켓의 구매번호를 요구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다.-_-

 

 

봄이다. 나른하게 살지 말고, 가끔은 카페인으로 몸을 휘저어주고, 봄에 피어나는 꽃처럼 생기를 지닌 아름다움과 생명력으로 무장해야겠다. 오늘 날씨가 꾸물대는 듯해서 등산을 가려다 포기했다.

 
 
Comment '2'
  • ?
    이승섭 2023.03.26 00:37

    항상 이런 깨알 같은 지식을 알려주시는 Spark 님 ^^;

  • profile
    Dr.Spark 2023.03.26 01:15
    흥미있는 분들만 읽어보시라고...ㅋ 대부분은 재미 없어하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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