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편지 - Mein Liebe Alps
짐 정리를 하다가 1990년에 쓴 편지 하나를 찾았다. 전에 편지를 쓴 후에 그걸 프린팅을 하나 더 해서 부본으로 남겨둔 것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 편지를 받으신 분은 김성균 선생님. 프로 스키어이면서 사진가였던 분이다. 두 국가대표 알파인 스키선수를 키워내고, 알프스스키장을 창립했던 분이다.
편지를 쓴 이유는 김 선생님의 아드님이 내가 근무하던 경희대학교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주말 스키어였던 내가 좋아하는 알프스 스키 가족의 일이라서 썼던 편지. 공연히 부잣집 아들이란 이유(?)로 당시의 김명종 선수(경희대 체대생)를 미워하고 괴롭히던 체대 교수들이 있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당시 국대 선수는 무조건 체대에서 장학금을 주게 되어 있었는데도 김 선수를 그 명단에서 제외한 일까지 있었다. 결국 내가 그걸 당시 조영식 총장님께 보고 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대에서는 장학금의 여분이 없다는 핑계로 어찌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수혜자의 숫자를 한정하지 않는 유일한 장학금을 김 선수에게 주는 걸로 결론이 났다. 어찌보면 더 영광스러운 장학생이 된 것이다. "총장 장학생" 이 된 것이므로...^^ 오히려 그런 일로 김 선수가 더 핍박(?)을 당할까 두려워서 내가 김 선수의 아버님께 아래와 같은 편지까지 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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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N LIEBE ALPS
김성균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요즘도 하시는 일이 여의하시길 빌며, 더욱 번창하시길 빕니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뵌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군요. 명종이의 전지 훈련기간이 다가왔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벌써 떠났는지도 모르겠군요. 미리 전화라도 했어야했는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넋을 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펜을 듭니다.
혹시나 아직 안 떠났으면 떠나기 전에 마무리(?)를 잘 하고 가라는 얘길하고 싶습니다. 가기 전에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사정 애길 잘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학점관계는 교수의 재량에 달린 것이므로 교수의 눈 밖에 나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힘들더라도 그런 눈치를 보며 살아야하는 것이니 감수해야겠지요.
그리고 전지훈련을 가서라도 교수님들에게 편지라도 하도록 조언을 하여주십시오. 주소야 각 분의 집으로 안 쓰더라도 학교를 통해서 보내도 되는 것이니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아도 좋겠습니다. 혹시나 필요할까해서 체대 교수님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복사해서 동봉합니다.
작년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쓴답시고 좋은 시절을 다보냈는데 이번 겨울에는 좀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 볼 참입니다.(Hi) 하는 일 관계로 며칠씩 자리를 비울 수는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Sunday(weekend) Skier로 만족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근교의 스키장을 찾을 수밖에는 없겠지요.
12월부터는 Research & Research라는 콘설팅 회사의 자문역을 맡아 또 다른 일에 관여하게 됩니다. 그쪽에서도 월급을 따로 받게 되니 좀 더 바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사모님께도 안부를 전하여 주시고 활발한 작품활동도 기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려주십시오. 제 동생도 내년 5월에 압구정동의 토도랑이란 곳에서 초대전을 열게 된다며 벌써부터 준비가 한창입니다. 이제 그 친구는 4회째의 개인전을 하게 되는 것인데, 작가생활이란 것이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알지 못 하는 어려움이 많더군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1990년 10월 30일(Tuesday) 1시 17분 (pm) 박순백 드림.
- 이 옛 서신을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크롭했더니 아래쪽에서 왜곡이 생겼다. 이 사진을 가지고 "구글 렌즈"로 본문의 텍스트를 추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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