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천마산 등산과 맛있는 BBQ
늦가을의 천마산 등산과 맛있는 B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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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5, 월] 전에 용문산에 함께 갔던 두 분(김현목, 김영근 선생님)과 함께 천마산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당시에 김현목 선생님께서 남양주 마석 가곡리의 웨이크힐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셨는데 그 댁에서 천마산이 올려다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산들을 다 젖혀두고 그 산에 함께 오르기로 했던 것이다.
용문산에 갔을 때 명동 아이닥 안경원의 김영근 대표님이 맛있는 산채정식을 사주셨기에 난 김현목 선생님의 가곡리 댁에서 가까운 같은 마석(화도읍)의 올리앤이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현목 선생님께서 기왕 그곳까지 오는 것이니 가곡리 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신단다. 아무래도 그게 준비를 많이 해야하는 번거로운 일이어서 난 등산 직전일까지도 그냥 식당에서 먹자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김현목 선생님이 뜻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그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가곡리의 웨이크힐은 화도읍에서 수동으로 가는 비룡로(그 부근에서 군생활을 하신 분들은 그 길 이름이 왜 그런 것인지 아실 텐데...^^ 비룡부대!)에서 살짝 벗어나 언덕으로 오르면 되는 곳에 자리한다. 거긴 상당히 많은 전원주택이 몇 차에 걸쳐서 분양되고 있는 곳인데, 이 단지의 캐치프레이즈가 "사시사철 캠핑하는 기분으로 살자!"는 것이었다.^^ 근데 그게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김 선생님 댁의 거실 창을 통해 서쪽에 천마산이 보이고 있었으니... 그리고 마당이 딸려있어서 그 잔디밭에서 바비큐를 할 수도 있는 그런 구조라서 맘만 먹으면 매일을 캠핑가는 날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역시 전원주택답게 무척 공기가 맑은 곳으로 가끔 구름에 싸인 천마산을 볼 수 있고, 거의 매일 그 산이 석양에 물드는 걸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가곡리의 노래방은 이름 자체가 "가곡노래방"이라 수준도 높고(???), 정겨운 이름의 다방도 가곡만 트는지 "가곡다방"이었다.^^ 이건 농담이고 가곡리는 한자로 아름다울 가(佳)와 골짜기 곡(谷)이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곳 토지의 대부분이 일제감정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이시영 선생(정치인 이종찬 씨의 할아버지) 등 일곱 형제의 것이었단다. 그리고 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자금이 가곡리의 땅을 팔아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가곡리(嘉谷里)는 가오실 마을로도 불리는데 여기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난 가오리처럼 생겨서이고, 또하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귤산 이유원(李裕元, 1814~1888)과 관련된 것이다. 대원군 집정 당시 이유원이 이곳으로 물러나 살고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집을 '가오실(嘉捂室)'이라 부른데서 유래됐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사유가 있다. 이유원은 백사 이항복의 9대손으로서 이들의 집성촌이 평택 진위면(전 진위현) 무봉산 아래의 가곡리였다. 이유원이 고향땅으로 낙향하지 않고 마석에 터를 잡는 바람에 이곳이 경주이씨 상서공파의 또다른 고향으로서 진위의 가곡리와 같은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유원은 아들을 잃고 동생 이유승(李裕承)의 둘 째 아들 이석영을 양자로 들였다. 그리고 이유승 집안의 6명의 형제들과 이석영은 자신들의 전 재산을 팔아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넘어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가 양성에 나선다. 이유승의 아들 일곱 명은 각각 이건영(李健榮), 이석영(李石榮), 이철영(李哲榮), 이회영(李會榮), 이시영(李始榮), 이소영(李韶榮), 이호영(李護榮)이다. 이유원이 평생 이룩한 재산은 대부분 양자 이석영에게 물려주었고, 그걸 팔아 모은 자금이 독립운동에 쓰인 것이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가문의 선행이다.(해방 후 이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대학교가 서울 한 켠에 생기게 되니 그것이 동대문구 이문동에 설립된 신흥대학교이다. 이 대학은 1948년에 고황재단이 인수하여 "경희대학교"로 개명을 하게 된다.)
얘기가 나온 길에 천마산과 김현목 선생님의 댁이 있는 화도읍(和道邑)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부기하기로 한다. 화도읍은 전국의 읍 중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꽤 큰 읍으로서 11만 명을 넘긴 인구만으로 보면 거의 시급에 해당한다. 이 읍은 출장소가 마석우리(磨石隅里)에 있기에 화도읍이란 명칭보다는 "마석"이란 지명으로 불리곤 한다. 재미있는 건 이 마석이란 이름이 맷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맷돌을 한자로 마석이라 쓴다.) 법정동명인 마석우리(磨石隅里)는 이 동네가 맷돌의 주생산지였던 것과 함께 현재 46번 도로(경춘국도)가 구불구불 돌아나가는 모퉁이가 많았기에 모퉁이 우(隅) 자를 덧붙인 것이란다.
이 마석에 가까운 곳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높은 산이 천마산이다. 마석을 대표하는 이 산 이름에도 "마" 자가 들어가지만 한자는 다르다. 천마산(天摩山)은 812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한자어의 의미로 보면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한 산"이다. 이 산 이름은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손이 석 자만 길었어도 가히 하늘을 만질 만 하다(手長三尺可摩天)"고 했단다. 한자까지 똑같은 산이 평북 삭주(1,169m)와 경기 개풍(762m)에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화도읍 마석우리의 천마산이라 하겠다. 그래서인가 이 산은 산림청과 블랙야크에서 정한 100대 명산의 하나이다.
난 이 산에 두 번 올라가 본 적이 있는데 여길 오른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작은 산의 북쪽면에 만든 것이 전 천마산스키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산은 나중에 스타힐리조트란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했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6월에 폐업을 했다.ㅜ.ㅜ 이 스키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내가 베이스로 삼았던 곳인데 말이다. 스키장 동네인 묵현리의 마치고개(마치터널)를 중심으로 해서 고개 직전에 있는 산이 백봉산이고 그 산 정상 바로 아래 먼저 폐업한 서울리조트가 있기도 하다. 인접한 두 개의 스키장이 다 닫았다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인지...ㅜㅜ
두 번 천마산에 올라 이 스키장을 내려다 보는 게 참 즐거웠다. 처음 갔을 때는 슬로프의 눈이 많이 녹은 상태였기에 '다음 해엔 더 일찍 올라와 눈쌓인 슬로프를 보리라!"고 다짐했기에 두 번째 올랐을 때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근데 그 직후에 스타힐리조트가 폐업을 한 것이다. 가을에 세 번째 오른 천마산에서는 눈이 없이 주변 풍경과 비슷하게 녹색으로 덮여 슬로프를 구분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슬로프를 내려다 보면 기분이 많이 다운될 듯한 느낌도...
등산일 아침엔 안개가 많이 끼어있어서 아침나절엔 천마산이 안 보이고 있다며 김현목 선생님이 사진을 한 장 보여주셨다. 산이 완전히 운무에 감싸여 전혀 안 보였다. 하지만 내가 수석호평도시고속도로 상의 백봉산 터널을 통과하니 천마산의 구름은 완전히 걷혀있었다. 가곡리를 향해 비룡로를 달리는데 거긴 안개가 덜 걷혀있었다. 셋이 모이기로 한 김 선생님 댁에 들르니 천마산 정상의 안개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동네사람이라야만 알 수 있는 가곡리의 골목길과 대로, 그리고 아파트 뒤의 산길을 거쳐 천마산으로 올라가는 임도를 만났다. 이 등산로는 대부분의 등산인들에게는 족보도 없는 등산로이다.ㅋ 원래 잘 알려진 천마산 등산로는 호평동의 수진사 출발, 천마산과 백봉산 중간의 마치고개 출발, 그리고 천마산역 출발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이미 단풍의 절정기를 지난 임도 중간의 샘물에서 물 한 잔 마시고, 임도에서 급경사의 계곡로를 오르니 천마산 능선로가 나타났다. 거기서는 마석 일대와 가곡리로부터 수동(축령산이 부근에 있음.)에 이르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능선로를 조금 더 오르니 천마산역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의 등산로는 평탄하고 크게 어렵지 않았다. 거기서 더 오르니 호평동 수진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다시 만나게 된다.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100여 미터 정도이다. 정상 부위에 암반이 많은 곳이 천마산이다.
천마산 정상에 올라가니 전에 안 보이던, 실은 보면서도 어디가 어딘지 몰랐던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백봉산에도 올라갔었기에 그 산의 정상이며, 그 아래 전 서울리조트의 흔적도 보이고, 그 동편의 사진 동호인들에게 멋지다고 소문난 비전힐스컨트리클럽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화도읍 전체와 수동 방향의 풍경 등도 그랬다. 그리고 거기서 가곡리의 김현목 선생님 댁도 찾아볼 수 있었다.(200mm 망원으로 찍은 사진을 원본 확대하니 그 집 마당까지 잘 보였다.)
셋이서 즐거운 마음으로 워낙 노닥대고 올라갔었기에 원래 정한 바비큐 식사 시간에 늦은 바람에 내려올 때는 쉬임 없이 내려왔다. 이번에 등산을 하면서 김영근 선생이 처음으로 등산 폴을 사용했다. 전에 용문산에서 내가 폴 없이 온 김 선생에게 폴의 사용을 권유한 바 있고, 거기서 내 폴을 사용해 본 김 선생이 폴의 유용성을 확실하게 파악한 바 있다. 이번 등산에 즈음하여 어떤 폴을 구입하는 게 좋겠냐는 문의를 하셨던 바, 내가 권한 것은 가벼운 카본 폴도 좋지만 처음 사용하는 것이니 비싼 카본 폴보다는 튼튼한 7075 소재의 알루미늄 폴이었다. 그리고 선정해 드린 것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할 수 있는 네이쳐하이크 사의 제품이었다.(이 회사의 제품은 몇 가지 사용해 본 바 믿을 만하다.) 그랬더니 폴을 두 세트 사셨단다. 이날 본격적으로 사용해 본 바 그것 없이 등산을 해 온 게 억울하다 싶게 큰 만족을 하셨다.^^ 폴은 등하산시에 정말 유용한 장비이다.
우리가 등산하는 동안 김 선생님의 아드님이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김 선생님 댁에 도착해 보니 잔디밭에 테이블이 놓이고, 바비큐 기기들이 보였다. 바비큐는 아주 보기 좋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출출한 참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바비큐가 골고루 제공되니 꿀맛이었다. 김 선생님이 미식가이다보니 바비큐도 맛있게 만들어진 것 같다. 열심히 바비큐를 먹고 있는 동안에 김 선생님이 멸치국수를 직접 끓여주셨다.(이분은 가곡리로 이사오기 전에 멸치국수 생각이 나면 그걸로 유명한 공릉동 멸치국수 거리까지 자전거로 달려갔을 정도로 맛에 진심인 분이다.^^)
그렇게 세 번째의 천마산 등산이 멋진 점심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주 즐거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