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에 돌아와 문득 적다
하지장(당나라 시인, 659-744)
어려서 떠난 고향에 늙어서 돌아오니
사투리 여전한데 귀밑머리 희어졌네
아이를 마주봐도 알아보지 못 하면서
웃으며, 손님은 어디서 왔느냐 묻는다.
고향집을 떠나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알고 지낸 근래 사람 절반이 사라지고
오로지 문 앞 거울호수(鏡湖) 물만이
봄바람에 변함없이 옛 물결 그대로네
回鄕偶書(회향우서)
賀知章(하지장)
少小離家老大回 (소소이가노대회)
鄕音無改鬢毛衰 (향음무개빈모쇠)
兒童相見不相識 (아동상견불상식)
笑問客從何處來 (소문객종하처래)
離別家鄕歲月多 (이별가향세월다)
近來人事半消磨 (근래인사반소마)
唯有門前鏡湖水 (유유문전경호수)
春風不改舊時波 (춘풍불개구시파)
-----
친구야,
어린 시절엔 내가 정말 등산에 푹 빠져 살았었어. 고교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합쳐서 5년 반 동안 말이야. 그때는 그저 산이 내 전부였고, 산에서 모든 걸 배우고 느끼며 살았지. 내가 가진 시간을 다 바쳐 산에 오르고, 바위를 타고, 산 선배들과 산 친구들을 통해 산에 대해 배우고, 무슨 정보든 수집했고, 등산서적을 통해 지식을 쌓았고, 열심히 여행사 등산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해서 장비를 사들이며 내 모든 걸 쏟아부었지. 마치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카토타 피켈이나 헨케 슈즈 등의 명품 장비들을 구입하기도 했어. 등산가로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꿈을 키우며, 롤모델도 세웠고, 언젠가는 나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스포츠 등산의 신기원을 이룩해 나갈 거라는 다짐까지 했어.
등산이라는 세계 속에 발을 깊이 들였던 나였지만, 군대 생활 34개월이라는 인생의 공백이 찾아왔지. 그 긴 시간 동안, 문득 내 진정한 적성(aptitude)은 공부라는 걸 깨달았어. 원래 난 공부는 낙제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스케이팅이나 등산 등의 운동에 빠지거나 쓰잘 데 없는 놀기나 좋아하는 젊은이였었거든... 그렇게 난 산을 내려와 책을 펼치게 되었고, 그 후엔 공부에 완전히 몰입했어. 그 공부가 날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결국엔 학부 졸업 후에 대학원에 가게 됐고, 박사학위를 땄고, 대학교에 남게 됐어.
산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는 내 등산의 전성기처럼 오를 일은 없겠구나 싶었지만, 전보다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된 스키 만큼은 계속 탔어. 나중에 느끼게 된 거지만 스키는 언젠가 산을 떠나게 될 나를 위한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이었지. 그래서 산이 아니라 설산을 올려다 보며, 거길 올랐다가 내려오는 걸 반복하며 지냈어. 산을 오르던 내 발걸음 대신, 책상 머리에 앉은 내게 공부가 자리를 잡았어.
그렇게 다시 산을 찾지 않은 지, 무려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어느 날 문득 산을 떠올리게 된 건 그때부터야. 오랜만에 산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피어났고, 그렇게 취미 삼아 다시 산에 오르게 되었지. 그런데 산은 내가 알던 그 시절의 산이 아니더군. 우리나라에 스포츠 등산이 시작되던 시절과는 달리 등산이 완전히 대중화되어 국민 스포츠가 되어 있을 만큼 변모했다는 걸 느끼게 된 거야. 그건 기쁨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한 시원섭섭한 일이었지. 내가 젊은 시절 열정을 다했던 그 시간은 이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고, 그때의 등산은 새로운 세대에겐 마치 오래된 전설이나 고고학자의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고대사처럼 느껴지더라고.
하지만 왜인지 그 낯설고 먼 고향의 풍경이 그리웠어. 그래서 인터넷과 서적을 뒤적이며 예전의 산과는 달라진 등산계의 새로운 흐름을 엿보았지. 그럴 때면 어쩐지 회한이 느껴졌어. 젊은 날의 그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으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산을 생각하게 됐어.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시 “고향에 돌아와 문득 적다”를 읽으며, 나도 그런 감정이 문득 솟아올랐어. 등산은 내게 일종의 고향 같은 거였고, 그의 시 속에 녹아든 낯섦과 회한이 나의 느낌과 꼭 닮아 있더구먼. 과거와 현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게 달라졌지만, 사람의 심정은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었어. 나도 언젠가 내 마음의 고향, “산을 향해 문득 쓴 시”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
산을 떠나 문득 고향을 보다
박순백
어린 시절 내내 즐겨 오르던 산,
40년 세월 흘러 다시 돌아왔네.
산은 그대로 유구한 모습인데,
낯선 풍경을 보는 난 객이 되다.
젊은 시절에 꿈꾸던 나날들은
이젠 흐릿한 기억 속에 묻히고,
바람에 스쳐 구름처럼 흐르니,
산은 묵묵히 나를 내려다 볼 뿐.
누군가의 발길 아래 스러진 길,
낯설지만 여전히 나의 고향 길.
한때 모든 것일 수밖에 없던 산,
이젠 내 마음속의 전설로 남아.
-----

Returning Home, A Mt. Glimpse
By Dr. Spark
The mountain I climbed through childhood days,
Forty years have passed, I return through haze.
The mountain stands, with time’s eternal grace,
Yet I, a stranger, see a different place.
The youthful days no one will now recall,
The moments lost, they slip away, they fall.
Like winds and clouds, they vanish in the sky,
While the mountain gazes down, silent, dry.
Beneath someone’s steps, the path is worn and pale,
Unfamiliar, yet it’s still my homeward trail.
A mountain once my world, my all, my land,
Now lives in memory, a legend gr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