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 요들의 대표성을 지닌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과 관련된 일부 논란 - http://www.routefinder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77&fbclid=IwZXh0bgNhZW0CMTAAAR3yYiFYDCZkq5Ri_67ANpLCs6RYcmUCHcLXzVJDH9hv29N_Cwig0Q2_MxI_aem_AHXK4z4WDrIsGN2YOfKCxw
한국 요들의 대표성을 지닌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과 관련된 일부 논란
박순백(수필가, 언론학박사)
루트파인더스가 요들과 관련하여 다룬 기사들 중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은 한국에 있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5713)에 실린 내용, 스위스 사람들이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이란 요들을 모른다는 건 반은 거짓, 반은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노래가 요들 가수 김홍철 씨(1947년생)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으나 그것 또한 절반의 진실이다.
만약 요들에 관심을 가진 스위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을 들려준다면 한국어를 모르니 그 가사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곡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그 곡이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벅스, 지니, 그리고 애플뮤직의 자료를 보면 이 노래는 “스위스 민요 ‘행복한 자장가’, 김홍철 작사”라고 나온다. 공신력있는 음악 서비스들의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자장가(lullaby) 중엔 그런 게 없다. 하지만 그 곡은 존재하는데, 그건 1960년대 초부터 스위스의 유명한 요들 가수 피터 히넨(Peter Hinnen, 1941년생)이 부른 노래 “Das Berner Oberland"이며, 이는 1964년에 처음으로 음반에 실렸다. 이 제목의 의미는 영어로 Bernese Highlands(베른의 고원)이며, 이는 스위스의 여러 칸톤(Canton) 중 하나인 베른 서쪽 끝의 가장 높은 지역이다.
어쨌든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이란 요들은 피터 히넨의 ”다스 베르네 오버란트“와 동일한 것이며, 가사의 주제는 물론 거기 포함된 요들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일치하므로 이 둘은 한 노래이다. 그런데 이 가사는 1968년에 김홍철 씨가 취리히의 민속식당 킨들리(Kindli) 등에서 공연을 마치고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쓴 것이라 알려진다. 이 킨들리는 피터 히넨과 깊은 관련을 가진 장소인데, 그의 노래 'S Berner Oberland가 3번 트랙에 실린 최초의 음반 Souvenirs From Switzerland(1964)가 피터 히넨의 킨들리 민속식당 공연 실황을 녹음하여 LP로 출반한 것이기 때문이다.(1964 - Peter Hinnen – Souvenirs From Switzerland - Peter Hinnen Singt Und Jodelt Im Kindli Zürich(Ariola Records) / 3번곡 'S Berner Oberland 시작 부분- https://youtu.be/wpKvdO3CV4M?t=447 )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은 요들이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나중엔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되었는데 그건 당시에 그럴 만한 사회경제적인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후술하겠으며, 우선 이런 일을 가능케 한 김홍철 씨가 요들과 조우한 일로부터 요들가수가 된 이후의 활동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김홍철 씨의 저서”‘밴쿠버에 핀 에델바이스“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1960년(중학1년)에 길을 걷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노래(요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노래에 관한 많은 자료를 찾다가 ”스위스의 목동들이 부르는 노래“ 정도의 취약한 정보만 보이기에 스위스 취리히(Zurich)의 타게스-안자이거(Tages-Anzeiger)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악보를 보내줄 것과 전문가를 한 사람 소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편집장 고 발터 베르나이(Walter Bernays) 씨가 악보와 한 시간짜리 녹음테이프를 보내 주면서 무조건 흉내내 보라고 했고, 그 후 1년간 그렇게 독학했다고 한다. 나중에 발터 씨로부터 “요들을 잘 익혔느냐? 네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녹음해서 보내주면 스위스 요들 전문가에게 틀린 곳을 고쳐서 알려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에 응한 결과, 관련 기사와 방송 내용을 접한 스위스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스위스에 초청되어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에 가서 6개월간 요들을 배우게 된 것이다.
- 김홀철 씨의 취리히 킨들리(1968년)무대 공연 / 사진: 홍용화
2018년에 무의도에서 한국요들 50주년 행사가 였렸으니 한국요들의 기원은 김홍철 씨가 스위스에서 귀국한 1968년인 셈이다. 그 2년 후인 1970년에 동아방송이 펴낸 “산노래”란 음반에 요들가수 김홍철 씨가 작사한 노래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이 수록되어 이는 최초로 LP에 실린 요들이 된다. 이것으로 간접적으로나마 당시의 등산 열풍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산노래 음반의 대상 고객들이 “알피니스트, 반더포겔(Wandervogel, '철새'를 의미하는 도보여행운동), 그리고 스키어”였던 것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등산인을 하이커 정도로 보지 않고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알피니스트로 보면서 그 전문성을 인정한 것이라 하겠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우리 등산계가 호사가들의 등산이 아닌 “스포츠 등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엔 전문산악인들을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한국등산학교가 출범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는 현재의 파타고니아 사와 블랙다이아몬드 사를 창업한 이본 취나드 씨가 1963년에 인수봉의 취나드 코스를 개척한 시기에서 10년 정도 지난 때이기도 한데, 이 시기엔 주말이면 북한산의 인수봉이나 도봉산의 선인봉 등 인기 암벽코스엔 록클라이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
어쨌든 동아방송은 알피니스트들에게 어울리는 노래로 요들을 제시한 것이다. 반더포겔은 우리나라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보이스카웃에서 나침반을 이용한 독도법(讀圖法)을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한 때 반더포겔을 채택했었기에 거기 포함했던 것이라 본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이 출현한 해가 1975년(용평리조트)인 것을 감안하면 그 5년전에 요들의 대상에 스키어를 넣은 건 상당히 이색적인 일이긴 하지만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요들가수 김홍철 씨는 1972년 일본 구마모토 시민회관에서 단독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요즘 말하는 '한류 공연'의 초기 기록 중 하나로 볼 만한 공연이다. 또한, 김홍철 씨는 외국에 나갈 때 김포공항에서 다른 승객들보다 먼저 트랩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인사하는 환송식을 하고 떠난 적이 있는데, 한참 비행 중에 기장이 "한국에서 요들가수가 탔는데 한 번 들어보자"고 해서 비행 중에 요들을 부른 적도 있다. 이는 최초의 요들 기내 공연이었다. 이렇듯 김홍철 씨는 요들에 관한 새로운 기록을 계속 써내려갔다.
그 후 김홍철 씨는 돈이 안 되는 요들 판을 10개나 출반하게 되는데, 이걸 통해 우리의 등산계가 발전해 나가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하다. 당시엔 수많은 산악회들을 대상으로 한 요들 강습회도 많이 개최되었다. 또한 70-80 세대들은 기타를 치면서 포크송을 부르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레퍼토리엔 대부분 요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인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심지어는 1980년대 초엔 김홍철 씨가 외국곡에 한글 가사를 곁들인 노래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가 대중가요 차트 3위에까지 오를 정도로 요들이 인기가 있었다.
스위스 요들의 계보를 이은 김홍철 씨는 음반을 계속 내면서 미국의 슬림 휘트맨(Slim Whitman) 등이 노래한 웨스턴 요들, 즉 애팔래치안 요들의 영향을 받은 곡들도 수록한다. 당시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지역은 스위스 이민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는데, 그들을 통해서 스위스 요들이 미국에 전해졌다. 사실 이 웨스턴 요들은 김홍철 씨보다도 훨씬 전에 미8군 웨스턴쥬빌리쇼에서 노래하던 서수남(1943년생) 씨가 미국 컨트리 가수의 아버지로 숭상되는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의 노래로서 돌리 파튼의 리메이크를 통해 대히트한 가죽장사의 블루스(Mule Skinner Blues)와 행크 윌리암스의 오래된 외로움의 블루스(Long Gone Lonesome Blues)에 한글 가사를 붙여 부른 바 있다. 또한 앨범 수록은 1971년으로 김홍철 씨보다 1년 늦었으나 1962년에 가수로 데뷔한 서수남 씨는 한국 최초의 웨스턴 요들로서 그랜파 존스(Grandpa Jones)의 트릿젬 요들(Tritzem Yodel)을 번안한 "산이 더 좋아"도 불렀다. 서수남 씨의 호(號)는 산남(山南), 홍산(洪山), 차산(此山)으로 모든 호에 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서수남 씨는 김홍철 씨가 본격적인 요들 가수로서의 활동을 하기 전에 이 분야를 개척했으며, 웨스턴 요들로 1차적인 요들 붐을 일으킨 인물이다. 데뷔 년도가 서수남 씨와 같으나 슬림 휘트맨의 웨스턴 요들 "차임벨스" 등의 노래를 원곡으로 부른 가수 전항이 한국 최초의 요들 가수로 알려지고 있고, 현재 목사로 활동하는 그는 "복음뉴스"의 '나의 인생 나의 노래' 인터뷰에서도 그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에 비해 김홍철 씨는 우리나라의 2차 요들 붐을 주도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스위스 요들을 기반으로 했기에 당시의 등산붐과 맞물려 크게 히트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한국의 요들을 선도한 서수남 씨의 공적은 완전히 잊혀지고, 김홍철 씨가 한국 요들의 아버지(The Founding Father of Koreann Yodel)로 인식되고 있다.
- 웨스턴 요들러 서수남
김홍철 씨에게 영향을 준 요들러는 1차적으로 스위스의 피터 히넨이 있지만, 일본의 (웨스턴 & 컨트리) 요들러 고 오노 요시오(大野義夫, Yoshio Ohno, 1931-2020) 씨도 빼놓을 수 없다.( https://www.yoshio-ohno.jp/index.shtml ) 오노 요시오 씨는 일본 요들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참조: https://youtu.be/HVZK7LdoaO8 )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여, 1957년에 일본 콜럼비아(Nippon Columbia) 사를 통해 데뷔했으며, 당시 알피니즘에 취한 일본 등산계에 요들송을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활동한 기간은 스위스의 피터 히넨과 많이 겹친다. 피터 히넨은 1965년에 처음 일본을 방문하여 NHK에서 요들과 컨트리송을 부르고, 여러 군데서 공연을 한 이후에도 수차 일본을 방문해서 공연을 펼쳤으며, 일본 내에서의 인기는 "요들킹"으로 불릴 만큼 상당히 높다. 오노 요시오 씨의 영향 덕분에 김홍철 씨는 일본 요들의 향기를 품은 곡들도 발표하게 되며 그런 노래를 담은 그의 2집엔 요시오 씨가 벤조 세션맨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사실상 여기 등장하는 스위스와 일본, 그리고 한국의 네 요들러들은 서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김홍철 씨가 웨스턴 요들을 그의 앨범 중에 포함시킬 때의 곡 선정을 보면 피터 히넨의 영향이 크다. 이는 피터 히넨과 오노 요시오 씨는 전자의 일본 공연 등을 통해 서로 친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요들의 본산인 스위스의 요들러 피터 히넨을 제외한 한국과 일본의 네 요들러들(전항 포함)이 요들을 독학한 사람들이라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 Yoshio Ohno
그간 한국 요들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은 이 곡이 발표된 1968년 이래 여러 가지 그릇된 정보와 함께 알려져 오고 있었다. 그건 전기한 바, 잘 알려진 한국의 음악 서비스 회사들이 스위스의 민요 "행복한 자장가"라고 잘못 전한 것은 물론, 김홍철 씨가 원작을 일부 수정한 작사만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자료에서는 김홍철 작사.작곡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의 영어 제목은 한글을 그대로 번역한 "Beautiful Berner Valley" 혹은 "Beautiful Bernese Mountains"로 표기되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요들의 날(Yodel Day)을 정하고, 유튜브 채널 "요들데이"를 운영하는 피터 임(Peter Lim, 임중현)이 2021년에 이 곡의 원곡이 스위스의 민요가 아니라 요들러 피터 히넨이 부른 'S(Das) Berner Oberland임을 밝혔다.
지금까지 이 노래를 둘러싼 혼동 혹은 혼란에 대한 책임 중 많은 부분은 이 노래를 한국에 소개한 김홍철 씨에게 있다. 그가 원곡에 대한 정보, 즉 원곡을 부른 가수에 대한 얘기나 이 곡이 스위스 민요인지 혹은 누군가에 의해 현대에 와서 작곡, 작사된 것인지의 여부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던 점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없는 가운데, 이 곡에 대한 수많은 오해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해 침묵했다는 것은 소극적인 정보 왜곡이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다. 해외여행의 일반화(1980년대)가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 후반에 스위스 여행을 한 김홍철 씨가 당시에 약간 방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Das Berner Oberland를 한국에 소개함에 있어서 원래 가사의 주제를 살린 가운데 약간 변형하고, 요들 부분을 원형 대로 표기했다. 그리고 후에 자신이 스위스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내에서 그 나라 민요에 본인이 직접 작사를 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당시 요들 대중화를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한 그가 스토리텔링을 통해 효과적인 홍보를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김홍철 씨가 한국요들 50주년 행사에서 이 노래가 프란츠 지겐타러(Franz Siegenthaler)가 작사·작곡한 노래임을 밝혔다고 한다. 요들데이 행사를 주관하고 "세계 요들 명예에 전당"에 올라가기도 한 피터 임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부르고 있는 곡의 원곡은 지겐탈러가 맞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다만 원곡과 조금 다른 버전으로 우리나라에서 불리고 있는 버전은 피터 히넨 버전인데, 그걸 그가 변형한 것인지 아니면 지겐탈러의 다른 버전의 악보가 또 있는지를 재확인 중이라 한다. 그리고 김홍철 씨가 피터 히넨을 사사했다는 얘기가 실린 자료도 검색되는데, 요들그룹 "김홍철과 친구들"에서 그와 함께 노래한 요들러 서용률 씨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김홍철 씨가 피터 히넨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직접 사사했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피터 임을 중심으로 조직된 요들데이 행사(Since 2013) 자료를 유튜브에서 보면 이제는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을 부르는 장면에서 한글 제목 옆에 원제목을 Berner Oberland, 혹은 'S Berner Oberland로 표기하고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생각된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홍철 씨가 노래하던 당시엔 저작권과 관련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과 관련된 오해에 대한 모든 책임을 김홍철 씨에게만 돌리는 건 좀 가혹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기사를 작성했던 루트파인더스는 산과 등산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바르게 기록되도록 "길을 찾는 웹 매체"이기도 하다고 믿기에 필자가 이러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