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곡리 구석기 발견한 미군 상병 / 고성애 - 2006-08-05 11:42:54
전곡리 구석기 발견한 미상병 고고학자 되어 한국 찾았다
그레그 보웬씨, 27년만에 연천 유적지 방문
“아내까지 선물로 준 한국땅
영원히 못잊어”
제13회 구석기축제가 시작된 4일,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 현장.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의
미국인이 불편한 걸음걸이로 행사장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레그 보웬(54)씨. 1970년대 말 미군 상병으로 근무할 때 이곳에서
주먹도끼를 처음 발견, ‘전곡리’란 지명을 세계 고고학계에 널리 알리며 한국 구석기 역사를 뒤바꿔놓은 사람이다. 이듬해 제대하며 한국을 떠난
그에겐 27년 만의 방문이다.
“지금도 주먹도끼를 발견한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뜁니다. 그 때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 27년 만에 한국인 아내 상미(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함께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를 찾은 그레그 보웬(오른쪽)씨가 어린이들에게 구석기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가 1974년 입대해 동두천
미2사단 헬리콥터장에서 기상예보를 담당했다. 세계 구석기의 역사를 뒤바꿀 우연한 만남은 1977년 봄 찾아왔다.
“한국인
애인(지금의 아내 이상미씨)과 한탄강 주변에서 바람을 쐬다가 주먹도끼 몇 점이 눈에 띄었어요. 직감적으로 ‘물건’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랄까….”
커다란 발견을 했지만 이를 확인해 줄 학자가 필요했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구석기
권위자들에게 편지를 띄웠고, 이듬해 4월 서울대 조사팀과도 연결이 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국내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김원룡(金元龍) 교수의
지휘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 대한 대대적 발굴이 시작됐다.
당시 학계에서는 ‘유럽·아프리카와는 달리 저급한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 문화가 없다’는 모비우스(Movius) 교수의 학설이 통했다. 보웬이 발견한 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확실한
‘증거물’이었다.
▲ 1970년대 말 주한미군 상병으로 근무하며 주먹도끼를 처음 발견할 당시의 그레그 보웬씨.
보웬씨는 이번 방한에서 77년 만났던 잊을 수 없는 한 사람과도 반갑게 재회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선복(李鮮馥·48)교수다. 27년 전 서울대 고고학과 4학년 휴학생이던 이 교수는 당시 서울대 연구실을 찾은 보웬이 내민 주먹도끼를 처음 본
사람이었다. 이 교수는 “보웬씨의 발견이 없었다면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불도저 아래 사라졌을 것”이라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보웬씨, 젊은날 우리 둘이 주말마다 한탄강 일대를 누비며 석기를 찾아 다니던 때 생각나시죠? 그때 함께 끓여 먹던 라면
맛 기억나세요?” (이 교수)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전곡리는 참 황량하던 벌판이었는데 이젠 선사유적지가 되어 매년
수십만명이 찾는다니….”(보웬)
미국으로 돌아간 보웬씨는 애리조나 대학에 진학, 고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곳곳의
발굴 현장을 누볐고, 10여년간 나바호 인디언 박물관에서 발굴 책임자로 일하다 98년 퇴직했다. “전곡리를 다시 못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아쉬움이 없습니다. 주먹도끼 발견의 영광과 사랑하는 나의 아내 상미를 선물로 주신 한국땅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인터넽 조선. 입력 :
2005.05.04 18:34 18' 글·사진 연천=채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