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여년 만에 창경궁에 들렀다. 매화를 만나러 간 길이었지만, 실은 “꽃 사진 완정 정복” 을 위해서였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세 명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비 오는 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덕분에 즐겁게, 환호성을 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내게는 “매화”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매화를 곁에 두고 매화를 가리켜 '매형', '매군' 등으로 높여 부르며 예를 갖추었다는 퇴계 이황 선생이다. 퇴계는 매화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참으로 매화를 아는 사람(眞梅者)”라 했고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다.

관기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전국을 수소문해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진귀한 백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퇴계는 두향이 선물한 매화나무를 귀히 여겼고, 그 후 그는 그 매화나무를 도산서원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1000원권 지폐에는 퇴계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담겨 있어서 그걸 늘 볼 수가 있다.

퇴계는 섣달 초순의 추운 날 아침 운명하면서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고 했다.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자신의 죽음보다는 매화의 목마름을 걱정할 정도로 매화 사랑이 깊었다.
매화는 그렇게 긴 혹한의 아품을 견뎌내며 첫 봄을 알린다. 그래서 “봄은 매화나무의 가지 끝에서부터 온다.”는 말이 생겼나보다.

- 철쭉도 피어난다.
매화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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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매화 꽃 피울 때 가 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네요.
내년에 창경궁에 다시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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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향 멋진 여자였네요..외모도 이뻣을 것 같습니다..
몇 년전 회사 뒷마당에 어머니가 매화나무 묘목을 몇 개 심으셨고 꽃이 피어서 이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작년부터 그 나무에 매실이 열리고 그걸로 매실청도 만들도 매실주도 담아서 먹는 걸 알았습니다.
해마다 매실 사느라 10만 원 정도 쓴 것 같은데 작년부터는 돈도 안 나가고 ..좋은 매실 나무...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하남 수산시장에서 돌문어 2킬로 짜라 쪄왔는데 점심에 어머니와 매실주 반주로 한 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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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부인 두 사람을 20대, 40대에 한 분씩 차례로 잃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홀로 살며 평생 매화나무를 곁에 두고 살았다고 해요. 두향은 어린 나이에 일찍 부모를 여의고 단양고을 퇴기인 수양모 밑에서 자라나 이팔청춘에 결혼했지만 석 달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두향은 역시나 예쁘고, 총명하고, 거문고를 잘 타고,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지요. 십개월이 못 미치는 걸친 짧디 짧은 사랑인데 퇴계가 풍기군수로 떠나가는 바람에 이별을 고하게 되고. 두향은 퇴적계를 내고 자주 가던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강가에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며 평생을 퇴계를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두향은 퇴계 사후 강선대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인 것은 분명한데 과연 이것이 사실일런지 아닐런지는 100% 장담은 못합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문장가 이광려가 두향묘를 읊은 한시가 전해져 오는 것으로 미루어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외로운 무덤 길가에 누웠는데
물가 모래밭에 붉은 꽃 그림자 어리어 있으라
두향의 이름 잊혀 질 때라야 강선대 바위도 없어지겠지."
강정선 선생님,
홍매화 색깔이 너무 곱네요. 어머님과 매실주 반주로 한 잔, 너무 멋지십니다. 그 매실주 저도 한 잔 시음 원합니다. 그리고 저 예쁜 매화나무도 제게 분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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