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일]에 쓴 글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
사진 한 장을 보며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짐을 정리하다 나온 사진인데 전에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딸내미가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미국 라스베가스(Las Vegas)의 힐튼호텔 컨벤션센터 등에서 열리던 컴덱스(Comdex)에 참가하여 받아온 기념품인 모자를 쓰고 있다. IT 분야와는 먼 분들이라면 알지 못 할 수도 있는 컴팩(Compaq) 컴퓨터회사의 부쓰에서 받아온 캡(cap)이다. 재미있고도 멋지게 디자인된 모자였기에 자사의 로고를 전면에 크게 붙여놨어도 괜찮아 보인다. 컴팩 사는 1982년에 설립되어, 1994년엔 미국 데스크탑 컴퓨터 시장의 11.5%를 석권할 만큼 굴지의 컴퓨터회사로 군림했었다. 컴팩은 당시 휴렛패커드(HP) 사의 강력한 경쟁업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델(Dell) 컴퓨터회사가 소비자에게 개별주문을 받아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자 경영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결국, 2002년 이 회사는 HP에 의해 250억 달러 상당의 주식 매입으로 인수되었다. 이젠 컴팩이란 이름조차 사라져 버렸다.
딸내미가 그 모자를 탐내기에 줬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딸내미가 쓴 선글라스는 레이밴(Ray-Ban) 사의 웨이페어러(Wayfarer)이다. 이미 그 당시에도 레트로 룩(retro look)의 선글라스였다. 선글라스 콜렉터인 아빠를 둔 덕분에 수많은 명품회사들의 선글라스들이 있고, 오클리(Oakley) 같은 신생회사의 첨단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선글라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걔는 웨이페어러를 좋아했다. 내 골동품 같은 웨이페어러를 탐내기에 해외여행 시에 당시에 레트로 제품으로 새로 출시된 다리(temple)가 접히는, 매우 가벼운 웨이페어러 4를 사다줬던 것이다.
이 사진은 당연히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DSLR에서 디지털의 "D"가 빠진, SLR (Single Lens Reflex) 카메라로 말이다. 니콘(Nikon) F3가 그 카메라이다. 이 사진은 당연히 찍어놓은 사진을 스캔한 것이다. 이 사진의 필름은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혹은 사라졌는지 모르는데 그걸 인화한 사진이 있기에 스캐너로 읽어들였다. 요즘엔 예전 사진이 있어도 그걸 스마트폰으로 적당히 촬영한 후에 어색한 부분만 보정해서 SNS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스캐너를 동원했다. 처음엔 디폴트가 150DPI로 잡혀있는 스캔 프로그램에서 옵션을 300DPI로 올려서 스캔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꽤 괜찮았기에 다음엔 600DPI로 스캔했다. 그랬더니 성에 차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스캐닝을 해냈다.(2천5백만 화소 정도의 BMP 파일로 만들어줬다.) 거의 인화된 사진에 가깝게 스캔이 되었다. 뭔지 모를 아날로그 감성이 깃든 사진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필름 스캔도 아니고 인화지에 인화된 걸 다시 스캔한 것이니 그 열화(劣化)의 과정을 거쳐서 뭔가 살짝 부족하고, 뭔가 조금 아쉬운, 그래서 디지털적인 완벽성을 결여한 사진으로 나온 것이라...^^ 사진 뒷면을 보니 코닥 페이퍼(Kodak Paper)이다. 코닥 사의 인화지에 미국 코닥을 대표하던 당시의 두산현상소에서 뽑아낸 사진인 것이다. 뭔가 얼룩덜룩 묻어있어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젠 이런 것도 신기해서 뒷면까지 스캔을 했다.^^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현재의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간 과학기술의 빠른 변화와 가속된 발전에 놀라며 이를 뒤따르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나이든 사람들도 소위 효도폰이 아닌 일반 스마트폰을 더 많이 쓰는 걸 보면 그들의 적응력도 상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젊은이들은 보다 새로운 제품, 진화한 제품을 좋아하지만 디지털 기기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보니 특별히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s)가 아닌 한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그걸 접하지 못 한다. 그런데 중노년층 중엔 특별히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새 기기로 바꾸는 즐거움과 함께 잠깐 쓴 제품을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또다른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현상도 보게 된다.
아날로그 세대들이야 당연히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아날로그 제품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산다. 상대적으로 느렸던 세상의 여유로움에 대한 향수는 물론 디지털이 줄 수 없는 감성을 지닌 아날로그 물품에 대한 장점을 비로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젠 아날로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 한 세대들이 성인이 되었다.(생각해 보라. 2000년 출생자들이 이제 23세가 됐다.) 빠르고, 편하고, 정확하며, 효율성과 확장성이 큰 디지털에 생래적(生來的)으로 적응된 그들이다. 그런데 디지털 세대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날로그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히 큰 걸 보게 된다. 그들은 같은 일을 불편한 과정을 통해 느리게 처리하는 기기에 대해 신기해 한다. 그들은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지연성, 완벽할 수 없음에도 나름 완벽성을 지향한 노력 중에 깃든 감성, 대량생산될 수 없는 물건들이 가진 희귀함에 대한 매력, 사람의 손길이 훨씬 더 많이 깃든 제품에 대한 사랑, 나아가 남의 손을 거쳐 손때묻은 물건이 주는 매력 등에 눈을 뜬 것이다.
사실 아날로그 시대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직도 인간이 관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그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간 그 자체가 아날로그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디지털이 좋아도 그건 뭔가를 처리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듣거나 보거나 느끼는 등의 결과물은 아날로그에 속한다. 그걸 더 빠르게, 더 편하게, 더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건 과정일 뿐이다. 그걸 통해 처리된 정보는 결국 아날로그 형태로 바뀌어 인간에게 전달되고,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져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이건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것이고, 나중엔 그 디지털 정보 그대로가 인간에게 전달되고, 그 자체로 느껴지는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은 차치한다.)
오디오와 사진 분야에서 아날로그에 함몰해 있는 젊은 친구들을 몇 만나봤다. 이 두 분야에서 디지털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이다. 거의 개벽에 가까운 변화가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 같던 기기나 물품들이 되살아났다는 게 우리 세대들에겐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과 한참 얘기하다 보면 그들이 놓친(?)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역력함을 보며 놀라게 된다. 아날로그의 장점은 잘 알려진 대로 여러 가지가 있다. 음향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음질을 들 수 있다. 아날로그 장비는 디지털 기기를 통한 것보다 따뜻하고도 자연스런 음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날로그가 부드러운 신호 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변화하는 신호와 그에 대한 처리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사진 같은 것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아직도 디지털 사진이 흉내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촬영, 현상, 인화에 따르는 지난(至難)하고도 긴 시간이라는 노스탤지어적 감성은 영원히 따라잡히지 않을 것이다. 기술로는 감성을 100% 커버하는 게 불가능하다.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를 낼 뿐이니까.
아날로그 시스템의 연속적인 데이터 처리 그 자체로 단속적인 디지털에 비해 큰 강점을 지닌다. 센싱 및 측정에 있어서도 아날로그 방식이 정밀한 데이터 수집에 더 적합한 경우도 많으며, 그 에너지 효율성도 크다. 나아가 아날로그 값은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값을 지니므로 미세한 변화나 정밀한 정보를 포착하는 것에도 아날로그가 유리하다. 또한 아날로그 미디어와 예술 작품이 창의성과 예술성을 더 잘 강조할 수 있으며, 보다 인간적인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지게 된 레트로 감성은 디지털이 어찌해 볼 도리조차 없는 영역이다. 디지털은 어떤 현상을 디지털적으로 분해하여 처리한 후에 다시 조합하고 그걸 아날로그로 바꿔줘야하는데, 아날로그는 그 과정이 필요치 않은 극강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둘은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하이브리드적으로 처리한 시스템도 있지만 실상은 "The twain shall never meet."이 정답이다.
그들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의 세상에 태어나 아날로그의 장점을 충분히 누렸더라면...'하는 안타까움까지 토로한다. 어쨌건 아날로그에 대한 호사가적 편력을 가지게 된 젊은이들을 보는데, 그 때마다 그들이 꽤 신통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아날로그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니 그걸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려야만 할 마땅한 이유도 없기에 그건 호기심에 머물게 되고, 좁은 영역에 머물게 되는 한계가 있다.
난 아날로그 시대인이지만 디지털 세상이 시작되는 걸 보며 쾌재를 불렀던 사람이고, 누구보다도 그에 빠르게 적응했다. 디지털적인 특징은 내 성격에 부합했다. 결국 문과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디지털 분야의 취미에 빠져들었고, 40대 초반엔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정보통신 분야로 직업을 바꿨다. 하지만 전공 분야 만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그 분야에서의 나의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문과적인 소양으로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홀하거나 그들이 돌보기엔 능력이 닿지 않는 분야의 일들을 처리해 주는 관리자 역할에 한정되었다. 의외로 그 분야의 전문가인 엔지니어들은 나처럼 인문학적인 소양을 지닌 채 그 분야를 열심히 곁눈질한 비전공자의 안목을 갈구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의 만들어낼 IT 제품의 사용자들은 비전공자조차도 아닌 일반 디지털 무지렁이(digital illiteracy)들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난 디지털을 좋아했다. 그건 내 시대에 앞서 간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소중했다. 이젠 아날로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뒤돌아볼 뿐이다.
* [2024/11/03, 일]에 쓴 글. "빛바랜 사진 한 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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