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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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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에 가득한 책들을 처리했습니다. 정들어서 못 버리고 끼고살던 책들입니다. 집 정리를 위해 그걸 처리하려니 오래된 책이라고 무료 책 수거업체에서도 안 가져가기에 폐지 처리업체에 연락해서 가져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카트에 쓰레기(?)로 실려나가는 책들을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대략 3천 권의 책 중에서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 버린 걸 제외하고도 세 개의 방의 벽 앞마다 선 책장에 가득하게 꽂혀있던 것들입니다. 

 

실려나가는 책들 중에 가끔 앨범 같은 것도 보이고 저의 저서들이나 집사람과 저의 석박사 논문들도 보였는데, 앨범들은  다 챙기고 논문들은 두어 권씩만 남겨뒀습니다. 제가 쓴 열댓 권의 책들 중 챙긴 건 겨우 6종의 책 뿐, 그마저도 다 사라졌습니다. 가끔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던 A4 용지나 레터헤드 용지에 프린터로 인쇄된 것들이 방바닥에 떨어져있기에 그것들은 가급적 다 살펴봤습니다. 이유는 그런 것들 중에 예전에 제가 썼던 글들이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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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인쇄된 글이다. 1991년에 내가 써서 인쇄를 해뒀던... 실은 그 때 쓴 글들은 3.5" 디스켓에 보관해 놨었는데 이젠 조합형 한글 카드를 장착한 애플 ][ 호환기종의 8비트 PC에서 미국의 WordPerfect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서 저장해 놓은 것들이라... 다시 변환하기도 힘들고, 귀찮고하여 어딘가 그 디스켓들을 보관하다가 언젠가 사라졌다. 아쉬운 일이다. 그 중 이렇게라도 인쇄해 놓은 글들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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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사의 dot matrix 프린터로 인쇄했던 글. 당시 금성사의 132칼럼짜리 32x32핀 매트릭스 프린터는 꽤 고급이었고, 폰트도 상당히 예뻤다.

 

그렇게 챙긴 글들이 많습니다. 대개 금성사의 고급 도트(닷) 매트릭스 프린터(32x32핀 매트릭스) 132칼럼 짜리로 인쇄된 글들이었습니다. 영문 수필들도 여러 편이 보였는데 그런 글들은 초기의 HP LaserJet 포스트스크립 팩(PostScript pack)을 꽂은 레이저 프린터로 인쇄된 것이었습니다. 90년대 초에 뭔가 생각날 때마다 써놓고 인쇄해 둔 것들이었지요. 

 

오늘 소개하는 글도 그런 글 중 하나이고, 책을 버리던 중에 제 눈에 안 들어왔으면 그냥 사라져버렸을 제 한 때의 상념들이었습니다. 그 글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에 구글 렌즈(Google Lens)로 받아들인 후 텍스트를 추출해 냈습니다. 인쇄본에 이 글이 언제 쓴 것인지를 안 적어놨더군요. 근데 내용 중에 큰 아이가 곧 국민학교(당시는 초등학교로 호칭하기 전이라..) 5학년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1991년에 쓰여진 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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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구글 렌즈를 이용해서 전체 텍스트를 추출해 냈다. 참 유용한 기능이다.

 

그 때까지도 모든 게 서툰 초보 부모로서의 생각, 대개 부모로서는 첫 경험이 많았던 당시의 생각 중 하나가 적혀있었습니다. 어느 부모나 다 한 때 겪게 되는 그런 것이었지요.

 

-----

 

아이를 떼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태어나서 오랜 시간동안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성장하게 되고, 또 아이들은 그 보호를 당연시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 역시 당연한 과정 중의 하나여서 우린 자신들의 성장이 부모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면서 그저 생활에 순응할 뿐입니다.

 

어제는 우리, 즉 저와 저의 집사람이 조그만 슬픔을 느낀 날입니다. 일요일이어서 가족이 함께 베어스타운 스키장엘 가기로 했었지요. 몇몇 엠팔들과 스키장에서 만나기로 했으므로 일찍부터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우리 딸이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신학기가 되면 국민학교 5학년이 되는 아이인데 가족이 함께 가는 곳에 빠지겠다고 한 것은 처음입니다. 지금까지는 뭐 하나라도 자길 빠뜨리면 죽는 줄로 알고 난리를 치던 아이인데, 스스로 빠지겠다고 하니 저희가 좀 어안이 벙벙했지요. 그 앤 며칠전부터 약간 기침을 했는데 그걸 핑계로 스키장에 안 가고 혼자서 집을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날씨도 꽤나 추운 날이었을 뿐만 아니라 안 가겠다는 앨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는 것이고해서 집사람과 함께 올해 국민학교에 들어갈 사내녀석만 데리고 갔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아빠, 엄마가 함께 가자고해도 귀찮아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정도만 되면 혼자서 독립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우린 그런 날이 무척이나 멀리 있을 줄로 알고 있었는데 벌써 아이가 부모의 곁에서 떨어져서 생활하고파하는 시간을 맞닥뜨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사내녀석을 떼어놓은 일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어리광이 심한 녀석이어서 독립심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방을 하나 내어주고 그곳에서 혼자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녀석은 겁이 많아서 혼자서는 못 자겠다고 계속 떼를 써서 결국 떼어놓겠다는 생각을 우리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녀석이 자기 혼자 자겠다고 나섰습니다. 난 그 녀석의 태도가 어찌나 어른스러워보이는지 아주 좋아했습니다. 결국 그 녀석은 그날 저녁 혼자서 잤습니다. 무섭다고 칭얼대지도 않고 아주 당당하게......

 

그런데 그날 밤 집사람은 매우 서운한 눈치였습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엄마 곁에서 잠을 자던 녀석이 옆방에서 혼자 잔다는 것이 아이 엄마에게는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고,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아이는 저렇게 시작해서 영원히 우리 곁에서 떨어져나가는 거지요?"하면서 밤늦게까지 서운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소릴 들으니 정말 그렇다 싶었습니다. 최소한 잠자리 곁에서는 떨어져나간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부모의 곁에서 멀어져 어떤 의미의 타인이 되는 것이었지요. 

 

어제 딸아이의 독립선언은 그와는 다른, 어떤 의미에서는 또 한 차원이 높은 그런 이별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어젠 저도 그걸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고 있었지요. 제 엄마야 항상 그런 일에 대하여 저보다도 훨씬 먼저 느끼는 사람이니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스키장에서 안대혁, 전영욱, 이정엽, 정재훈, 그리고 "재훈씨의 화순씨(?)" 또 치과방의 윤일중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안대혁 씨는 왜 아이를 하나만 데려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이젠 컸나보다"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조그만 아쉬움을 간직한 채로....

 

아이들은 그렇게, 천천히 부모의 곁을 떠나갑니다. 부모들이 그들과 이별하면서 느끼는 아픔은 조금도 느끼지 못 하는 채로 점차로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른이 된다는 즐거움, 고독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갑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르면 그들도 자신들의 아이들을 통해서 부모가 가졌던 아픔을 경험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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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생각하니 아들녀석의 첫 독립은 그 아이가 다섯 살일 때였습니다. 지금 애아버지가 된 걸 보면서도 "나가면 차 조심하고 일찍일찍 들어와라!"라고 하고 싶은데...ㅋ 근데 다섯 살의 마음 여렸던 사내놈은 당시의 우리 눈엔 정말 어려보이고 허약해 보였죠. 근데 독립한다고 배신을 때렸으니...^^; 이 글도 아들녀석에게 읽어보라고 할 참입니다. '이 놈아 너도 한 번 니 애들에게 당해봐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제가 고소(苦笑)할 게 분명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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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마음 비우고 버리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긴 나도 얼마전까지는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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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hen 2022.08.09 09:46

    15년 만에 찾아 왔습니다..21년 전..아픔을 공감했던 한 딸내미의 아빠로 바쁘게 살아오면서 스키라는 취미도 잊고 살아왔습니다..이제 퇴직을 4년 앞두고 숨 돌릴 틈이 생겨나니 박사님의 칼럼에 들아와서 보니 옛 추억에 잠시 웃음 지으며 보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추억을 돌아 볼 공간을 내어주심에..

  • profile
    Dr.Spark 2022.08.09 10:13
    그러셨군요. 여기야 뭐 전과 같죠. 고목처럼 버티고 서서 오가는 나그네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 같은...^^

    이제 은퇴를 앞두셨군요. 마무리와 함께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를 하셔야할 때네요. 하시는 일 모두 신 선생님의 생각 대로 잘 진행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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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멍야옹멍 2024.04.16 10:58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저희 아들도 4학년인데 항상 엄마랑 아빠 사이에서 잡니다. 진작 자기방에 침대를 사줬는데 엄마아빠랑 자겠다고 해서 2년 정도 자리만 차지하고 있네요. 주위 선배들이 아이가 부모품을 떠나는 게 눈깜짝할 새라고 해서 '그래 지금이 소중하고 시간이다'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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