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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2013.06.18 10:41

[진룬즈]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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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352 좋아요 0 댓글 2

오늘은 좀 무거운 얘기를 써 보겠습니다.

 

제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곳은 ‘세기광장(世紀廣場)’이라고 합니다. 중국 동북의 도시들에 무슨 무슨 광장이 드물지 않은데, 많은 경우 여러 갈래 찻길이 수렴하여 로타리 모양을 이룹니다. 서울 한국 은행 본점 앞 분수 광장이 닮았지요. 전에는 이들 ‘광장’의 가운데에 조성된 공간을 거니는 시민들도 보였는데, 지금은 10년 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차가 늘어나 도시 자동차 간선로의 접점 역할이 주요하게 되었지요.

 

그에 비해 세기 광장은 넓고 교통량에 관계없이 접근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니 모처럼 광장다운 광장이라 하겠습니다. 모양도 정방형(square)에 가까우니까요.

 

이 광장의 한 쪽 마오쩌둥(毛澤東)의 거대 조상(彫像)이 있습니다. 중국말을 배우려 막 닿은 창춘(長春)에서 이것과 복제품처럼 닮은 상(像)을 보았을 때 ‘아니 지금 어느 시대인데?’ 하고 생경해 하다 천안문 사변 이후 곳곳에 마오의 상을 세웠다는 해설을 들었습니다. ‘나대지 마라. 공산당 아직 안 죽었다.’는 의미겠지요.

 

중국 정치 속사정이야 모르는 일이니 여기 쓰고 싶지 않고, 제 경험이 한정되어 있긴 해도, 마오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은 극(極)히 드물게 보았습니다. 때로 50대를 넘긴 세대 가운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투로 말하는 분을 보고 소름이 돋은 적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도 빈부 격차가 심한 현재를 혐오해 다 같이 못살았던 과거가 더 나았다고 하는 심정으로 그러는 거지요. 마음속 깊이 마오를 경애한다… 글쎄 절대로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이 정말로 사실이예요.

 

잇다른 정책 실패가 시스템의 모순과 어울려 악순환을 거듭, 아사자(餓死者)의 수가 백 만, 천 만을 넘기며 인민의 삶이 피폐, 실각의 위기에 처하자 천재 범죄자의 지능을 발휘,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입지를 강화, 똑똑한 정책 결정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수 억 인민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은 것이 마오쩌둥이지요.

 

그 때문에 개인으로서도 길고 심한 고통을 겪은 덩샤오핑(鄧小平)은 그러나, ‘공적 제1 과오 제2’라며 마오를 폐기할 수 없었고요, 공산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는 오히려 더 내세웠지요. 마오가 중국 공산당의 아이콘임은 어찌 할 수 없었으니까. (만약에 덩이 권력을 잡았을 때 마오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가만 두지 않았을 겁니다. 현 국가 리더도 문혁을 겪으며 어릴 때 이미 세상 쓴 맛을 보았지요.)

 

그런 사정으로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의 면모를 갖춰 가는(혹은 이미 그렇게 된) 중국의 도시에 마오의 거대한 상이 서 있는 생경한 풍경이 있는 것이지요. 80년대 태어난 세대(‘바링허우(八零後)라 합니다.)는 별 관심이 없고 ‘지우링허우’(九零後)는 아예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콘, 공산당 리더들마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위인(爲人), 즉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믿지도 않지만 엄연히 우뚝 서 있는 20세기의 위인(偉人, 거대한 악인이라 해도 좋겠지요.)의 상을 매일 50바퀴 돌 때 때때로 입 안에 드는 묘한 느낌을 다시곤 합니다.

 

noname01.jpg

 
[사진] 인라인 타다 뒤에서 찍었습니다. 광장 맞은편에 ‘–瑪特(마트의 음역)’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지린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백화점입니다. 마오 생전 사상의 대척점에 있다고 할 욕망 집합소 백화점이 그의 상(像) 면전에 서 이룬 부조화가 재미있습니다.

 

여행지의 백화점에 가서 그 도시 사람들의 성향을 짐작하시려면 무슨 물건을 물어 보는 것이 좋을까요? 저 백화점에 가서 여성 티 팬티를 찾아 보았습니다. 한 종밖에 없더군요. 아직 멀었습니다.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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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Spark 2013.06.18 10:43

    티 팬티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것 같은데, 그걸로 도시 사람들의 성향을 짐작하시려고 하고, 또 아직 멀었다고 하시니...ㅋㅋㅋ 하긴 미국 백화점의 여성 내복 코너엔 티 팬티 아닌 것을 거의 찾을 수가 없을 정도이더군요.

  • profile
    Dr.Spark 2013.06.19 13:22 Files첨부 (1)

    오늘 페이스북에서 관련 글을 하나 찾아서...^^

     

    c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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