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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2006.03.07 15:50

고모와 이모의 생물학적 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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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와 이모는 어느 쪽이 나와 가까울까?

고모와 이모 중 어느 쪽이 유전적으로 나와 가까울까를 생각 해 본적이 있는가?
물론 고모는 아버지의 동생이나 누나로 작은 아버지나 큰 아버지 또는 삼촌처럼 나와는 3촌 간이다.
이모 또한 어머니의 동생이나 언니로 3촌간이 되므로 같은 촌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유전적으로 살펴보면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50%씩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의 형제나 자매는 해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50%씩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형제나 자매간의 유전자가 일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의 부모님의 유전자 중 절반만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각 2만개에 달하는 전체 중 어느 쪽을 가져 오느냐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의 개수로 따진다면 정확하게 같은 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버지의 형제 이거나 어머니의 자매이거나 유전자의 수로 따진다면
정확하게 같은 친밀도를 가진다.

그런데 왜 누구는 누구를 유독 더 많이 닮을까?
어느 형제나 자매가 유독 어머니나 아버지쪽을 더 많이 닮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심지어는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삼촌이나 고모를 더 닮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2만 가지의 유전자중 우연히 외모나 성격을 결정 하는,
금방 눈에 띄는 유전자를 우연히 한쪽으로부터 많이 물려 받은 경우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제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가 고모로부터 받은 유전자보다
숫자상으로는 많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유전자의 수는 더 적을 경우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삼촌이나 고모를 더 많이 닮은 아이들을 설명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은 고모가 이모보다는 더 가깝다고 규정한다.
아마도 친가쪽을 외가쪽보다 더 중시하는 유교적인 관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교적인 관습을 차치하고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친가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지구적인 전통인 것 같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남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밭보다는 씨가 거기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의 후손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비과학적 근거라고 생각 된다.

수박은 밭을 옮긴다고 해서 호박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자 안에 작은 인간의 모습을 한 태아가 웅크리고 있다고 생각한
호문클루스(Homunculus)설을 낸 17세기의 과학자들의 주장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생각은, 그렇다면 그 호문쿨루스 안에 그보다 더 작은 호문 쿨루스가 들어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작은 호문쿨루스 안에 또 더 작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학에서 얘기하는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기회는 난자 쪽으로 넘어 가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아버지의 복사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때 이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를 닮아 서울 상대에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아들들에게만 또는 딸들에게만 물려주는 유전자가 따로 있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런 것이 있다.
아버지가 딸에게는 도저히 물려 줄 수 없는 유전자가 있으며 어머니가 아들에게는
도저히 물려 줄 수 없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색맹의 유전자 같은 예를 들 수 있는데
색맹의 유전자는 아버지 자신이 색맹이라도 절대로 아들에게는 이 병을 물려 줄 수 없다.
색맹을 결정 하는 유전자는 X염색체 상에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아들은 아무리 애원한다고 해도 아버지로부터는 X염색체를 물려 받지 못한다.
X 염색체는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만 물려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반대로 Y염색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어머니는 아들에게(물론 딸에게도) Y염색체를 나눠 줄 수 없다.
아버지는 자신의 쌍을 이루는 22종의 모든 염색체 중 어느 한 쪽을 무작위로
아들 또는 딸에게 물려 줄 수 있지만 23번째 염색체인 성 염색체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버지의 23번 염색체는 X와 Y 두 가지가 있지만 아들은 항상 Y염색체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아들들은 아버지의 Y염색체를 대대로 물려 받아 간직하게 된다.
즉 나의 Y염색체는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 할아버지의 그것과 같다.

우리 전통문화가 중요시 하고 있는 ‘씨’란 바로 이 Y염색체 인 것이다.
많은 여자를 거느린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그의 씨를 받고 싶어했던 영웅호걸 일수록
많은 씨를 대대로 남겼을 것이다. 실제로 징기스칸의 Y염색체는 오늘날 몽골이나 중국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도 수백 만 명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아들을 보지 못할 경우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Y염색체의 계보는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대가 끊어졌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면에 외가 쪽은 어떨까?
어머니는 아들에게도 또는 딸에게도 다른 22쌍의 염색체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X염색체 중 하나를 나눠 줄 뿐이다.
따라서 Y염색체처럼 어느 특정의 염색체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가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여자 쪽은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는 끈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자 쪽도 딸에게만 물려 줄 수 있는 유전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의 세포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담당하는 기관인데
수십 억년 전에 박테리아가 우리의 세포 속으로 편입 되어 온 공생기관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세포 조직 중 하나이다.
미토콘드리아 덕분에 우리는 산소호흡이라는 매우 효율적인 에너지 대사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산소호흡은 무산소 호흡보다 무려 16배나 더 많은 에너지 원인 ATP를 생산할 수 있다.)
원래 유전자는 세포의 핵 속에 존재하는 염색체에 대부분이 존재하지만 이 미토콘드리아도
자신의 고유 유전자를 별도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녀의 결합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정이란 핵과 핵의 결합이다.
인간의 모든 세포에는 핵이 존재하므로(적혈구는 나중에 없어져 버리기는 하지만)
핵과 핵이 만나 새로운 하나의 핵을 형성 한다. 그렇다면 미토콘드리아는 어떻게 될까?
정자 또한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로 배달 되지 못한다.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로 헤엄칠 때까지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 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임무를 마친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수정 되는 순간 떨어져 달아나고
정자의 핵만이 난자의 핵과 결합 된다.

따라서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의 세포에는 남자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찾아 볼 수 없다.
수정란의 핵은 남자와 여자의 결정체가 반씩 혼합되어 들어 있지만
핵의 바깥에 존재하는 세포질과 그 안에 있는 약간의 유전자는
오로지 난자를 제공한 여자의 것만으로 장차 태아의 모든 세포를 구성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 하는 것이 뭘까.
그것은 어머니는 딸들에게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전달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외할머니 증조 고조 외할머니로부터 딸들에게만 전해진다.
남자의 유전자는 전혀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서.
따라서 내 어머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계속 딸을 생산해 내는 한,
어머니의 수십 대조 외 할머니의 그것과 똑 같다.
물론 어느 할머니가 딸을 낳는데 실패하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대는 끊기게 된다.

이 사실을 이용하면 인류의 기원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어머니를 찾을 수도 있게 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그런 일을 한적이 있으며 그렇게 찾은 인류 최초의 어머니를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만년 전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여성이다.
그렇다고 20만년 전에는 이브 혼자만 살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브만이 그녀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대를 끊기지 않고 남겼다는 의미인 것이다.

자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촌수와 계보를 한번 따져 보자.
우리 아버지께서 이르시길 세상의 8모 중 고모가 최고라고 한다.
8모란 따져 본적이 없지만 어떤 것일까.
고모와 이모 그리고 백모 숙모 외숙모 당숙모 정도까지 밖에 생각 나지 않는다.
혹시 유모와 식모도 포함되는 것일까? 주모는 어떨까?
어쨌든 팔모 중 고모가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도저히 촌수와 유전자로는 고모와 이모 중 어느 쪽이 더 가까운지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
혹시 다른 요인은 없을까?
여기에 나는 한가지의 재미있는 가설을 제시한다.
나는 8모 중 이모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촌수로 따지자면 2촌에 해당하는 외조모와 친조모가 더 가깝다.
하지만 그 분들은 친척이라기보다는 부모님과 같은 존재 개념이다.
그분들이 8모에 속하는 지는 나는 모르겠다.
따라서 그 분들을 빼면 이모가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철수는 고모와 전혀 친척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모는 항상 친척이 된다. 왜?
만약 철수 어머니가 바람을 피워서 철수를 낳았다면
철수와 고모는 전혀 유전자를 나누지 않은 완전 남남이 된다.
하지만 이모 쪽은 어떨까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던 말았던
철수는 항상 어머니의 아들이고 따라서 어머니의 자매인 이모와는 항상 친척이 된다.
물론 외 할머니가 바람을 피워서 이모와 엄마가 같은 씨가 아니라도
여전히 어머니와 이모는 자매관계이며 따라서 이모는 고모보다 더 가깝다.

쓰다보니 생물학적이 아닌 사회학적 얘기가 되고 말았다.
재미로 써 본 이야기 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 하지는 말자.
만약 고모가 철수와 친척이 아니라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빠도 철수의 친 아빠가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대대로 계보가 이어 내려져 온 전통 있는 가문이라도
만약 바람 피운 장손의 며느리가 있었다면
그 집안의 Y염색체가 대대로 내려온 조상님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목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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