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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06.05.11 14:57

제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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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806 좋아요 642 댓글 4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

전에 제가 이 게시판에서 김영갑 갤러리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주에서 ‘제주를 제외한 모든 한국 영토‘에 해당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육지(陸地)”입니다. 그건 제주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경원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주에 가서 느낀 그 단어가 가진 느낌은 배타성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육지 사람”은 제주에서 영원한 이방인입니다.-_-

하지만 언제나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어떤 곳을 그곳 사람들보다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이 현지인들에게 이방인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끊지 못 해 그걸 숙명처럼 끌어안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 이방인들 중에 제주의 “생각하는 정원“을 만든 성범영 선생이나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김영갑 선생이 있습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제가 놀랐던 것은 그 방문 스케줄 중 도착 이튿날 째에 ”김영갑 갤러리“가 끼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거의 무명이었던 김영갑 선생의 생전에는 홀대(?) 받던 그곳이 그분의 사후에 얼마나 많이 알려졌기에 일반 관광 코스에 그 갤러리가 포함되었는가에 대한 의아함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들을 가이드해 주신 분은 여자분이었는데 1963년의 제주생으로서 거의 20년을 관광업계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분이 김영갑 갤러리에 관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한 것은 “왜 그분이 살아계실 때 그분을 못 만나뵈었는지, 그게 정말 아쉽고, 서운한 일이에요.”였습니다. 하기사 그 “육지 사람”의 전시회는 제주에서는 별로 화제가 되지도 않았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김영갑 사진 전시회가 있을 때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거길 찾아가 보았다고 하는데...(이번 관광에 저와 함께 한 제 친구 부부도 그 전시회를 찾았던 사람 중 하나였고요.)

김영갑 선생은 작년 49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떴습니다. 1982년에 제주를 첫 방문하고 사랑에 빠져 3년 후인 1985년에 제주에 살기 위해 갔고, 그 때로부터 20년이 되는 해에 제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독한 사랑입니다.

그의 제주 사랑은 그의 사진 사랑과 함께 합니다. 그는 1999년부터 시작된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사지가 굳어가면서도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가 사진을 찍은 곳은 대개 한라산의 정상과 해안을 제외한 중산간 지역의 “오름“이었습니다. 그의 사진 중 대부분은 오름의 풍경입니다. 그 사진들은 거의 모두가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영화 화면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진 그런 사진입니다.

루게릭병은 아직도 그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지만, 그의 루게릭병 발병에 기여한 것은 아무래도 그의 지독한 사진 사랑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잘 먹지도 못 하면서 사진을 찍으러 무리하며 다니고, 건강에 좋을 리 없는 암실작업을 계속하고...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어렵게 살던 중에 어쩌다 돈이 생기면 필름과 인화지 살 돈이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음식 대신 그걸 사러 갔다고 합니다. 그의 “두모악” 갤러리에 걸려있는 사진들은 그렇게 김영갑, 그 자신의 목숨과 바꾼 사진들입니다.

그래서 제주의 한 미치광이 사진사가 위대합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이 주는 감동이 더 커집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큰 명성을 얻기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고, 누가 자길 알아주기를 원해서 그렇게 살다 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의 생을 돌이켜보면서 그를 뒤늦게 알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래 사진들은 그의 두모악 갤러리에 들렀을 때 찍은 갤러리와 그 주변의 모습들입니다.


- 입장료도 내지 않는 갤러리로 들어가는 길 옆에 세워진 기둥이 그곳이 김영갑 갤러리임을 알려줍니다.


- 제주의 돌이 있고, 나무가 있는 저 편에 갤러리가 있습니다. 이곳은 한 때 삼달국민학교였던 곳입니다.


- 교정엔 아직도...




- 숭숭 뚫린 제주의 화산돌들, 그 검정돌 저편에 제주의 사람들을 형상화한 작은 조상(彫像)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 교정 한 켠엔 이 초등(국민)학교를 위해 일한 재일교포 제주인들을 위한 송덕비가 세워져 있고...




- 그가 사랑한 제주의 자연과 사람이 있습니다.








- 정말 그 갤러리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폐교된 국민학교에 세워진 것이므로...

아래 사진은 갤러리 안에서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고, 찍은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미리 고백해야할 것은 원래 갤러리 안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_- 하지만 이 갤러리를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갸륵한(?) 생각에서 저지른 행동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원래는 창문이 많았을 초등학교 네 반 건물의 벽을 막고, 중간 벽을 터서 만든 갤러리입니다.


- “촬영 금지”에 찔린 녀석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사진입니다.(마음이 급했고, 촬영 자세를 제대로 잡을 수 없으니 흔들릴 수밖에...-_-)


- 이 때는 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찍었습니다.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_-(저 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내 친구였습니다.) 벽에 걸린 모든 사진들이 옆으로 긴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 갤러리의 한 편은 조그만 방처럼 되어 있었고, 그 곳에도 이렇게 작품이 걸려있었습니다.  앞벽과 문이 사진에 비쳐 보입니다.



갤러리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이 오름을 위주로 찍은 사진들이 걸린 한 군데와 하늘을 위주로 찍은 사진들이 걸린 또 한 군데였는데, 입구의 작은 홀을 중앙으로 해서 좌우편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왼편의 하늘을 주제로 한 제2 전시실 “하날오름” 갤러리에서는 사진을 안 찍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늘과 오름이 한데 찍혀있는 사진들이 많았고, 하늘이 많이 찍히고, 그 아래 작게 오름이 보였습니다. 그 하날 오름을 위주로 한 사진과는 다른 일반적인 성격의 사진 작품 몇 점도 그 제2 전시실에 걸려있었습니다.(제게 더 큰 감동을 준 것은 제1 전시실인 “두모악”의 오름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었지요.)


- 갤러리의 뒷문으로 나오면 이렇게 뒤뜰이 보이는데, 거긴 화산돌이 깔려있고, 담벼락 쪽엔 색깔이 다른 돌이 깔린 가운데, 많은 기이한 모양의 화산석이 놓여있으며, 한 군데는 옹기들이 놓여있기도 했습니다.




- 제주의 돌들로 낮은 석축을 쌓아놓은 교정의 한 구석에는 이렇듯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도자기로 만든 작은 인형들이 놓여있기도 했습니다.


- 이곳에 오고 싶어했던 집사람입니다. 하지만 패키지 관광의 한 코스이기 때문에 여기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집사람과 여기저기 둘러보며, 다음 코스 때문에 서둘러 움직였건만, 관광버스는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차에 타자 바로 출발했습니다.-_- 결국, 우린 이곳에 다시 가야 합니다.^^



갤러리에 들른 내 친구 갑성이는 “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과 그 분의 생에 대한 얘기를 듣고 봐서 그런지, 갤러리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고 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저와 같았습니다. 저 역시 겨우 49세에 생을 마친 김영갑 선생에 대한 아픈 마음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의 혼이 담긴 사진들을 감탄과 탄식과 놀라움과 아쉬움과 죄의식 같은 것이 믹스된 마음으로 보았던 것이니까요. 그건 가끔 작은 빗방울이 날리기도 한 그 날의 우중충한 날씨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주에 가면 제주를 관광객으로서 좋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땅의 모든 것을 사랑했던 한 예술인의 노력과 집념과 혼이 담긴 두모악 갤러리의 사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름을 주제로 한 (입구에서 보아) 오른쪽 갤러리인 제1 전시실 “두모악”의 오름과 갈대숲이 한데 찍힌 한 사진에서 느낀 전율과도 같은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잘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건 그냥 “잘 찍은 사진이다.”라는 정도의 찬사를 하는 것이 그 작가인 김영갑 선생에 대한, 그 작품에 대한 모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래는 두모악 홈 페이지의 방명록인 느낌 게시판에 쓰여 있는 글 하나, 원래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김영갑 선생의 사진에 대한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에 위의 글 중에서 이 표현을 자제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을 그곳에 있는 그대로 빌려왔습니다.



http://www.dumoak.co.kr

* 박순백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30 13:45)
Comment '4'
  • ?
    유인철 2006.05.11 17:45
    [ richell@엠팔.컴 ]

    버리면 얻나니..
    그분의 육신은 가셨지만, 정신은 영원히 저곳에 남아있겠군요.
    제주에 가면 가볼 곳이 하나 더 생겼네요. ^^

    시리즈로 하나 하나씩 내보이시는데,
    우도쪽 사진은 언제나?
  • ?
    박순백 2006.05.11 17:52
    [ spark@dreamwiz.com ]

    우도 사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안 갔기 때문에...-_-

    선상에서 찍은 우도 사진만 있습니다.
  • ?
    유인철 2006.05.11 19:04
    [ richell@엠팔.컴 ]

    일기가 안좋긴 했지만, 우도의 그 맑은 바다의 모습이 박사님 앵글에 담기질 않았군요.
    알이 굵은 그 모래도 참 독특한 곳이고,
    제주의 토속적인 가옥들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많이 가 보지는 못했지만,
    일출봉과 우도, 산방산의 용머리해안의 절경등은 정말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아~ 제주발 뽐뿌가 또.. -_-

  • ?
    박순백 2006.05.12 10:17
    [ spark@dreamwiz.com ]

    강희준 (2006-05-11 15:11:56 IP:61.110.37.53 )


    [ dumsports@dreamwiz.com ]

    바쁜 와중에 잠간이나마 숨을 돌릴수 있는 저 사진들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김영갑님의 작품을 두 눈으로 꼭 보고싶네요..




    김영근 (2006-05-11 15:19:48 IP:61.72.41.68 )


    [ eyedaq@naver.com ]

    솔직히 이분야에는 거의 잼뱅이라서..........
    장독대와 화산돌들이 저에겐 더 익숙하네요.
    좋은 그림 감사합니다 박사님




    김영인 (2006-05-11 15:21:04 IP:211.237.43.143 )


    [ poor2@dreamwiz.com ]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는데, 그게 벌써 십 몇년 전이고...
    그때는 관광지라고 해도 고작(?) 여미지 들러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요즘에는 점점 볼거리가 많아지군요..

    기회가 되면, 제주도에 가서 김영갑 갤러리 들러보고 싶군요.

    사진 곳곳에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하진태 (2006-05-11 15:28:12 IP:211.45.66.233 )


    [ nuryabba@dw.am ]

    제주도에 가면 꼭 가보야겠네요.

    아니 두모악을 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제주도에 다시 가봐야겠네요.




    이연희 (2006-05-11 15:30:15 IP:211.45.66.104 )


    [ cheese11@dreamwiz.com ]

    아~ 여기 너무나 가보고싶던 곳이었는데, 제가 갔던 날은 이미 문을 닫았더군요.
    아쉽게도 바깥의 저 인형들만 보고와야 했었습니다.
    그땐 비올듯한 날씨에, 인적도 전혀 없었기에 마치 다른세계를 엿보는 듯이 더욱 신비스럽고 스산하기까지 했어요.
    또 제주도를 가게된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




    김지호 (2006-05-11 15:37:01 IP:203.230.170.145 )


    [ naninia@hanmail.net ]

    제작년쯤에 저도 한번 갔었습니다. 그때는 김영갑님을 직접 뵐 수 있었는데..많이 변했네요. 그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시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제주에 살고 있지만 그곳에 가면 제주를 다시 한번 더 느낄 수 있거든요.^^




    김도연 (2006-05-12 09:25:31 IP:220.64.244.37 )


    [ hi5fantasium@hanmail.net ]


    학교 사진수업 교수님과 절친한 사이셔서...김영갑님 사진을 주제로 레포트도 쓰고...
    졸업여행도 제주도로 간지라.. 김영갑 갤러리도 들렀다왔었습니다.

    보면, 소위 미니홈피라는곳에 기제된 사진중에 "이뻐서 퍼왔다". 는 사진중에 김영갑님것두 많죠 ^^
    제주도를 마치 제주도가 아닌 이국의 풍경처럼 찍으시던분인데..
    지병으로 앉아있기조차 힘든상황에서 휠체어하나에 의지해서 그 높은곳을 오르내리고 몇시간을 사진을찍고.. 무척 존경하던 분이었습니다.

    작년에 타계 하셨을때, 저희 선생님께서 열흘만에 홀쭉해지셔서 나타나셨을때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때 유픔으로 남기신 사진몇점을 인쇄물이나 유리안에 넣어진게 아닌, 인화지에 남겨진모습 그대로 볼수있었는데
    무척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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