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2006.04.28 13:37

소문의 위력

조회 수 5157 좋아요 755 댓글 4
지난 토요일인 4월 22일 11시반 강남 역 4거리에 있는 메리츠 타워에서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창업주이자 대 주주인 K 사장께서 드디어, 반세기 만에 Single생활을 청산 하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양 쪽 다 무남독녀 무녀 독남의 결혼이었습니다.

신부의 나이는 공개 되지 않았지만 29세 혹은 31세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신랑의 친구들은 젊고 예쁜 신부보다도 자신들과 연배가 비슷한 미모의 장모님에게
끌린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반백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려는 그의 놀라운 용기에 박수와 격려를 보냈습니다.
악의와 심술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청순한 신부의 모습에서
지나온 그녀의 인생을 대략 짐작 할 수는 있었습니다.
탁월한 선택임에 틀림 없음을 우리 모두는 확신 했습니다.

한달 여 전인 3월 11일
K 사장은 저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나 결혼해”
물론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이번은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소문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누구인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의 얘기는 자못 진지하게 들렸습니다.
또 그간은 “결혼 할지도 몰라” 였지 “결혼 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뭔가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얘기를 하면서 “소문은 내지마. 이 나이에 자랑스러운 건 아니니” 라고 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딱 두 사람에게만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아무튼 경이로운 뉴스 임에는 틀림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에게도 친한 사람 둘에게만 얘기하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한 시각이 오전 9시 반이었는데
저녁 9시 반이 되니 수 십 명에게서 확인 전화가 오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딱 두 명에게만 얘기했고 그 사람들에게도 두 명에게만 얘기 하라고 했는데
불과 12시간 만에 그 소문이 온 세상에 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성질 못된 저는 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전파 되는지
사람들이 오로지 추측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주말 저녁이었으니까요.

제가 2사람에게 얘기하고
그 2사람이 또 다른 각 2사람에게만 얘기를 한다고 가정 하고
이 과정이 완성 되는데 즉 한 싸이클이 도는데 30분이 걸린다고 생각 해 봤습니다.
따라서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의 12시간이라면 총 24싸이클이 돌아 가게 됩니다.
그러면 계산은 계속 2배씩 24번 올라가게 되므로 1+2+4+8+16+……2의 24승이 됩니다.
이 계산의 답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문제의 답은 무려 3354만 4431입니다.
이것도 한 사람이 오로지 두 사람에게만 소문을 전달 했을 때의 숫자입니다.
만약 이 센세이셔널한 뉴스를 두 사람이 아니라 3사람에게 전달 했다면
그 숫자는 1+3+9+……3의 24승 즉 52억명 정도가 됩니다.

이 2와 3이라는 숫자를 수학에서는 확산 계수라고 하는데
만약 확산 계수가 1이라면
제가 단 한 사람에게만 얘기하고 그 사람도 다른 한 사람에게만 얘기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 경우는 12시간 후 그 소문을 알게 되는 사람이 겨우 24명에 그치게 됩니다.
따라서 확산 계수 2가 그토록 큰 숫자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감동했습니다.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확산 계수가 4에 이르면 그 숫자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지구 전체의 인구 수 보다 더 많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놀랍지요?
하지만 확실히 이 숫자들은 진실이 아닙니다.
내가 3사람에게만 이 소문을 얘기 한다면 12시간 후에는 지구 사람 60억 모두가
이 소문을 듣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중복 때문입니다. K 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대개 중복되어 서로를 알기 때문에
소문은 실제로 K 사장을 잘 아는 커뮤니티 안에서 계속 중복 되다가
마침내 확산 계수가 1이하가 되게 됩니다.
즉 나중에 알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전하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경우부터
급속하게 확산 계수가 낮아 지면서 소문은 스스로 소멸 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상이 K 사장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아인슈타인 같은 유명인이 된다면 이 숫자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어느 순간에서부터는 중복에 부딪히기 때문에
결코 지구 인구를 넘어 서지는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지요 ‘세상 사람 누구나 6 다리만 걸치면 다 아는 사람이다.’
이것은  네트워크 이론의 하나인 '약한 유대관계의 힘'(The strengrh of weak ties)에서
비롯하여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는 재미있는 게임으로 발전해
유명해진 이론 입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6단계만 걸치면 다 아는 사람이 된다는 법칙인데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 하는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에서 존 보이트와 나오고 안젤리나 졸리는
그의 딸입니다. 그녀는 '본 콜렉터'에서 덴젤 워싱턴과 같이 나오며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톰 행크스와 함께 출연합니다. 그리고 케빈 베이컨은 '아폴로 13'에서 톰 행크스와 만나게 됩니다.

같은 미국 사람인데도 톰 크루즈와 케빈은 상당히 먼 5 단계를 거쳤지만  
엄앵란과 케빈 베이컨을 연결 하는 단계도 4단계밖에 안 됩니다.
엄앵란은 '남과 북'에서 남궁원과 출연했고 남궁원은 '인천'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와 만납니다.
그리고 로렌스 올리비에는 '리틀 로맨스'에서 다이안 래인과 출연했고
그녀는 '마이 독 스킵' 이라는 강아지 영화에서 케빈 베이컨을 만납니다.

재미 있나요?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수학 시간에 확률 따위를 배우면서 선생님에게
이런 것을 어디다 써 먹느냐고 항변한 적이 많았습니다.
결국 ‘주말의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데 쓴다’ 가 정답이었습니다.

목동에서


Comment '4'
  • ?
    박순백 2006.04.28 19:47
    [ spark@dreamwiz.com ]

    그런 때(무료한 주말)는 우리가 잘 알던 사람,
    매쉬(MASH)와 바늘구멍(Eye of the Needle)의
    도날드 서덜랜드의 아들, 키터 서덜랜드가 만들
    어 주연까지하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Fox TV 시
    리즈물 "24시"를 봅니다.^^

    머리를 쓸 시간도 없이, 시간이 지나가서 시즌 4
    까지 각 시리즈당 24편씩, 96편을 한꺼번에 보고
    싶다는 심각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무료할 수 없
    는 주말의 날밤을 까게 됩니다.^^
  • ?
    오제혁 2006.04.30 07:16
    [ whishi@dreamwiz.com ]

    중요한 팩터가 하나 빠졌네요.

    관심입니다. 누가 내게 얘기해줘도 그 얘기가 관심이 없으면, 그래서? 하고 거기서 [확산]은 끝나게 됩니다. ^^
  • ?
    안중찬 2006.05.02 13:15
    [ corelk@dreamwiz.comm ]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제가 며칠전 누군가에게 비밀스럽게 보낸 업무적인 이메일이 공개되는 바람에 난감난처해진 일이 잇었죠. 비밀은 없죠. 무섭습니다. ㅋㅋㅋ
  • ?
    전승민 2006.05.03 17:43
    [ enhanced@@netian.com ]

    그렇지요. 소문은 무섭습니다. 소문을 통해 대단한 정보들이 오고 가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도 먹고 사는 것이고. ㅋㅋㅋㅋ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좋아요
299 단상 통풍 유감 8 안동진 2008.03.03 7870 837
298 칼럼 실생활에서 살아숨쉬는 공부_합리성의 평가가 필요 2 최재원 2008.02.28 4218 699
297 기사 에너지 전략의 총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장보성 2008.02.15 2887 586
296 단상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의 차이 4 최재원 2008.02.10 5482 685
295 칼럼 영어교육, 결국 기초부터 학교에서 바로잡아야 최재원 2008.02.08 3205 636
294 단상 최고의 효도 9 안동진 2008.02.04 4793 749
293 기사 백화(어느 것이 영향이 더 클지?) 장보성 2008.02.03 2963 525
292 사는 얘기 옥소리 위헌 소청 3 장보성 2008.01.31 4741 849
291 단상 이기적 처세술 전문가가 아니라 따뜻한 합리적 대중을 바란다 3 file 최재원 2008.01.21 3738 611
290 잡담 바이오 연료의 모순. 10 윤주한 2008.01.18 3768 524
289 작은 정보 [오디오 잡설] 스피커를 빛 낸 사람들 6 윤세욱 2008.01.17 4514 579
288 잡담 [윤세욱의 자동차 헛소리] 독일차에 대하여 29 윤세욱 2008.01.15 4974 425
287 작은 정보 [윤세욱의 자동차 헛소리]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하여 15 윤세욱 2008.01.14 5051 543
286 잡담 [윤세욱의 자동차 헛소리] “차 바꾸지 마세요.” 11 윤세욱 2008.01.13 4224 584
285 사진 자동차와 집 사진 4 윤세욱 2008.01.12 5121 783
284 사는 얘기 밴쿠버 2006년 겨울 9 윤세욱 2008.01.12 4423 666
283 문화 바람처럼 살다간 조선의 천재 화가 3 안중찬 2008.01.11 4512 723
282 사는 얘기 [질문] 떫다의 영어 표현?? 1 임재우 2008.01.09 6699 886
281 사는 얘기 [re] [질문] 떫다의 영어 표현?? 장보성 2008.01.16 3359 609
280 사는 얘기 자동차의 정숙도 질문 4 김덕주 2008.01.01 4667 68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24 125 126 127 128 129 130 131 132 133 ... 143 Next
/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