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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06.06.30 11:17

원불교 영산성지 및 익산성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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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5134 좋아요 641 댓글 4
지난 6월 17일(토) 집사람과 함께 익산에 갔었습니다. 전 거길 다녀오고 나서야 익산이 예전에 “이리”란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갈 때 내비게이터를 “원광대학교”에 맞춰놓고 갔었습니다. 당연히 익산에 간다고 알고 있었기에 ‘원광대가 익산에 있나???’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었는데... 거길 다녀오고 나서 익산이 예전의 이리였다는 사실을 제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러고 난 후에야 예전에는 “이리 원광대학교” 식으로 제가 불러왔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하긴 익산이 서울에서 보면 바로 전주 앞이라는 것도 이번에야 확실하게 안 것입니다. 익산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여겨왔었는데...

당시 토, 일요일 1박2일로 그곳에 다녀온 후에 쓴 글이 마라난타와 법성포연꽃잎 차(蓮茶), 그리고 홍성 휴게소에서 만난 인라이너란 글입니다.

법성포는 전북 익산 부근에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전남 영광에 있는 곳입니다. 아래의 기록은 17일 오후, 법성포에 가기 직전에 들렀던 영광의 원불교 영산성지(靈山聖地)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익산에 갔던 것은 원불교 종법사님(천주교로 치면 추기경 같은 분)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 원불교 익산성지에 있는 원불교역사박물관의 부관장 신복순 박사(고고학 박사로서 집사람의 대학원 후배)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지요. 제가 어떤 분을 만나도 별로 어려워하지는 않는 성격인데, 희한하게도 종교 지도자를 뵐 때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종법사님 앞에서도 그렇더군요. 전에 명동성당에 가서 김수환 추기경을 뵐 때도 그랬었는데...(거기서는 오렌지 주스에 위스키를 한두 방울 떨어뜨린 것을 주시더군요. 종법사님을 뵐 때는 역시 그곳답게 전통차가 나왔습니다만...^^)

근데 종법사님도 저를 만나실 때 어려우셨는지(ㅋㅋㅋ) 원불교전에 붓으로 싸인을 곁들여 주시면서 제 이름을 "순박할 순" 자에 "맏 백" 자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아, 삼수변에 순박할 순 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글을 쓰시면서는 "순수할 순(純)" 자로 쓰시는 것이었습니다. 기왕 쓰시고 계시는 중이고 하여 순수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아무 말씀 안 드리고 그걸 받아왔습니다.^^

그 직후에 익산 시내의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원불교( http://www.won.or.kr )가 창시된 곳인 영광의 영산성지에 갔습니다.(익산의 한식집도 전주의 한식집과 별반 다르지 않더군요. 대단한 상차림에 역시 저로서는 구분할 수 없는 같은 맛.) 이 영산성지는 원불교의 창시자(교조/대종사)가 태어난 곳입니다. 원불교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원불교의 원음방송이나 원불교에서 설립한 원광대학교 등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이지요. ‘불교의 한 종파?’ 뭐, 이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말하자면, 원불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요.-_-

하지만 이번에 익산과 영광에 가보고는 이 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원불교가 우리 나라의 4대 종교의 하나이더군요. 불교, 기독교, 천주교에 이은... 특히 올해부터는 군에 원불교의 군종장교(軍宗將校)를 둘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원불교의 교세라는 것이 제가 생각했던 이상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무식장이는 원불교가 우리의 토착종교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_- 이것이 소태산 박중빈(1891년 5월 5일 생)에 의해 창시된 토착종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토착종교로서 큰 세력을 가진 것이라면 증산교와 천도교만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거기 하나가 더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증산교와 천도교는 이제 교세가 많이 꺾여버린 상황에서 원불교는 교세가 더욱 커지고 있고, 현재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단계에 있습니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이 종교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자료를 잠시 두 개만 소개합니다. 이 자료는 원불교 홈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원불교의 창시자가 “미신타파, 문맹퇴치, 저축조합 운동”을 벌인 분이라는 게 참으로 놀랍습니다. 개화기의 선구자 중 한 분이었던 것이지요. 특히 이 분이 전남에서도 깡촌에 속하던 당시의 영광에서 간척사업까지 했었다는 건 정말 의외이더군요. 서산 간척지를 만든 정주영 회장 만큼의 뚝심이 있었던 분인가 봅니다. 종교의 창시자라면 정신적인 지도자에 그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현세에서 잘 살기 위한 노력도 강조한 분입니다. 물질의 중요성도 인정한 정신적인 지도자인 것이지요.



어쨌든 저와 집사람은 현재 이 종단을 이끌고 있는 종법사님의 곁에서 종무(宗務)를 담당하고 계신 교무(敎務) 한 분의 안내를 받아 영산성지에 다녀왔습니다. 교무는 교회로 치면 목사님, 천주교로 치면 신부나 수녀님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바쁘신 중에도 교무님께서 직접 안내를 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차를 가지고 갔지만, 이게 2인승 차라서, 교무님 및 신복순 박사와 함께 가느라고 종법사님의 RV 차량인 쉐비 스타크래프트를 이용해서 영광을 오갔습니다. 정말 그날 오후의 여행은 그 차의 이름 대로 어디 별 세계를 오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날씨는 대단히 맑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원불교의 창시자가 194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10년 전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분은 딱 지금의 제 나이와 같은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원불교의 교세가 기독교 등에는 비할 바 없이 못 미치지만, 한 종교의 창시자가 저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다 가셨다니... 적당한 비유는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이나 석가가 돌아가신 지 10년 후에 제가 태어났고, 그 종교가 교세를 키워가는 초기 모습을 제가 지켜볼 수 있는 것과 같다는...


- 이곳은 영산 성지의 관리를 담당하는 교무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 사진의 왼편에 있는 집안에는 도자기 공방과 등요가 있고, 오른편의 흰벽이 있는 곳은 차실(茶室)입니다.


-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체험학습을 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매우 특이합니다. 이런 곳에 도자기 공방과 요가 있습니다니...


- 재래식의 등요입니다.


- 도자 공방에서 나와 차실로 향하고 있습니다.

차실에 들러 연꽃잎 차(蓮茶)를 마신 후에 교조이자 대종사인 소태산 박중빈의 생가 등을 들러봤습니다. 처음 들른 곳은 영산원이라는 곳입니다. 원불교 최초의 교당(교당, 교회나 법당 같은 곳.)입니다. 아래는 이 교당 부근에서 본 나무입니다.


- 바로 보리수입니다. 석가세존이 깨달음을 얻은 곳에 서 있던 나무와 같은 종류입니다. 많은 꽃이 피어있는데, 보리수의 향기는 대단히 좋습니다. 저는 처음 맡아본 향기였습니다.(실은 이 나무가 보리수라는 것도 그날 그곳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 대단히 한국적인 교당 “영산원”입니다.^^ 처음엔 교조의 일가친척,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교도였었다고 합니다.(이 사진에서 보면 한국의 토착 종교이니 당연한 것입니다만... 교무님이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으신 것도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 영산성지의 관리를 담당하는 교무님이십니다. 영산성지에 대하여 저희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 주고 계십니다. 원광대 원불교학과나 이곳 영산 성지의 원불교 신학대학(영산선학대학교)을 나와 원불교대학원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한 후에 출가함으로써 교무로 임명된다고 합니다.




- 성지(聖地)이지만, 이렇게 편하게 마루에 앉아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다면 이럴 수 없겠지요?^^ 아마 그 때는 댓돌 앞에 금줄을 치고 바라보게만 하지, 이렇게 마루에 걸터앉게 하겠습니까?


- 영산원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또 다른 건물입니다. 그 건물 상단 오른쪽에 옥녀봉이 보입니다. 소태산 선생이 태어난 곳(생가) 바로 뒤에 있는 봉우리라고 합니다.


- 이 건물은 앞서 사진의 건물 바로 앞에 있는 것입니다.



각각 이런 이름들을 가진 건물들입니다. 초기 원불교의 귀의자들이 교육을 받고, 머물던 곳이라 합니다.




- 이런 건물도 있었는데, 이건 일본식 건물 같습니다.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영산원 앞의 봉당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있는 건물입니다.(봉당이란 말, 요즘 젊은 사람들도 쓰는 말인가???-_-)


- 우리가 영산성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에 이곳을 방문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교도들인 듯했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진정한 성지 순례인 셈입니다.^^


- 이 바위는 교조의 생전에 옥녀봉 꼭대기에서 가지고 내려온 것이라 합니다. 산꼭대기에서 가져온 것인데, 조개가 많이 붙어있습니다. 언젠가 옥녀봉 꼭대기도 바닷속이었음을, 그렇게 천지가 개벽(開闢)한 것임을 알려주는 증거물입니다.


- 이 건물은 차실에서 올 때 지나친 것입니다. 그런데 영산성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되돌아가 찍은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이 학원실이란 곳이 바로 원광대학교의 발생장소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소태산 교조의 생전에 교리를 설파한 바로 그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영산원 교당과는 또다른 의미의...




- 이런 건물도 있었습니다. 적공실이라... 공부를 하여 덕을 쌓는 방입니다.

영산원을 지나 조금 가니 영모전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의미의 영모(永)慕). 교조에 대한 기념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긴 못 가봤습니다. 갈 길이 바빠서...-_-


- 한 꼬마가 영모전을 향해서 절을 합니다.


- 나무 사이로 보이는 넓은 전답. 그것이 2만 6천 평의 정관평 방언공사(간척사업)의 흔적입니다. 원불교 초기에 보다 잘 사는 농촌을 만들고자하는 의지가 담긴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이 여기서 시작된 걸로 봐도 괜찮을 것 같군요.




- 영산선학대학교으로 가는 길입니다. http://www.youngsan.ac.kr


- 저 담 뒤로 멀리 보이는 것이 영산선학대학교입니다.




- 이 학교의 설립 목적이나 생김이나 예전에 제가 강의하던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그 다음으로 들른 곳입니다. 원불교조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곳. 원불교에서는 그 깨달음을 대각(大覺)이라 부릅니다. 큰 깨달음(great enlightenment)의 의미이지요. 전에 이곳에 작은 집이 하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대종사가 어린시절부터 오랫동안 추구하던 삶과 우주의 의미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요.




- 이 원불교의 영산성지는 그 이름 영산이 석가모니가 설법하고, 교화를 하였던 영산회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소태산이 말하였듯이 그의 연원이 불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대각성지는 아주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 해와 달이 영원히 부처님의 광명을 비춤을 의미합니다. 만고일월(萬古日月).


- 그곳의 느티나무 뿌리는 옆의 바위와 어우러져 어느 게 나무고, 어느 게 바위인지 모르게 변해있었습니다.


- 소태산 박중빈 교조의 탄생지. 한 종교를 창시한 사람의 생가입니다. 하긴 나사렛의 예수도 말구유에서 태어났음을 생각한다면... 역사가 오래지 않은 한 종교의 교조가 태어나 이 부근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하니 그런 걸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회를 지니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 성탄지 팻말.




- 그곳에는 손님을 반기는 개도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주 착한 흰둥이.




- 정겨운 고향집처럼 생긴 그런 집입니다.


- 뒤가 옥녀봉. 앞서 얘기했듯이, 한 때 저 꼭대기도 바다밑이었다는 것이지요.




- 그곳을 떠나 백수리의 폐교된 한 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 학교의 역사를 읽어보시려면, 사진을 클릭.



이 초등학교를 떠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아홉 번째 도로로 뽑혔다는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법성에 갔습니다. 거기서 들른 곳이 불교 최초 전래지였지요.(마라난타와 법성포)


법성에서 다시 익산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토요일 저녁은 원불교 익산성지에서 보냈습니다. 익산에 와서 원광대학교를 찾아 그 앞에 있는 익산성지에 제일 먼저 들렀었고, 거기서 원불교의 수장(首長)인 종법사님을 만나뵈었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약간 익은 곳으로 돌아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시간이 되니 분위기가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 원불교 익산성지의 정문.

원하면 누구라도 들어가 볼 수 있는, 이 익산성지는 한의사인 한 원불교도가 기증한 땅을 토대로 1924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곳이라 합니다.


- 정문 왼편에는 원음방송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익산성지 정문에서 보이는 길 건너편의 원광대학교. 아쉽지만 시간이 없어서 원광대학교 캠퍼스에는 들어가 보지 못 했습니다.

이곳의 숙소는 10시면 외출 금지이고, 숙소에는 TV 같은 것도 없습니다.^^ 익산성지 전체가 수련 도장의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10시가 되기 직전에 집사람과 함께 원불교 역사박물관 쪽의 산길도 걸어보고, 정문 쪽으로 가서 종법사님이 기거하시는 곳 부근을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깊은 산중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곳은 익산시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산속처럼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 사진을 클릭하면 내용을 큰 글씨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아래는 다음 날(일요일) 아침에 익산성지 내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 정문을 들어가서 조금 걸으면 보이는 원불교 역사박물관. http://www.wonmuseum.co.kr


- 길 옆의 가로수 중에는 이렇게 살구나무도 있었습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중.


- 이곳에도 영산성지와 비슷한 영모전이 있었습니다. 규모는 이곳이 더 컸습니다만...(사진에 보이는 역사박물관의 오른편에 자리함.)


- 아침에 산책을 할 때 옆에서 산책을 하던 학생 둘이 교조를 기리는 탑 앞에서 기도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기도는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 같은데...-_-) 그들의 신심을 잘 읽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익산성지는 모든 곳이 푸르른데, 길가의 갓돌 바로 옆에는 거의 모두가 우리 자생식물들을 심어놓았더군요. 이 이파리를 보시면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차로 마시는 둥글레.


-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종법사님이 기거하시는 곳.


- 무슨 나무일까요?


- 바로 보리수입니다. 앞서의 사진은 보리수의 향기로운 꽃입니다.(꽃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만... 이 꽃을 보면서 전 왜 오동나무의 꽃 생각이 나는지...) 아침 맑은 공기 중에서 풍겨오는 보리수 꽃의 향. 참으로 좋았습니다.


- 그 부근에서 본 집 하나입니다. 왠지 범상찮아 보이는 건물.


- 위 건물의 이름이 송대였군요. 소나무가 많은 곳에 지어진 집이니 적당한 이름입니다. 설명(사진 클릭)을 읽어보니 역시 의미있는 유적입니다.


- 숙소에서 원불교 역사박물관 쪽으로 산길을 걸어 언덕을 넘어 가면 나오는 습지입니다. 물위에는 새파랗게 부평초들이 덮여있더군요.


- 연잎과 갈대가 우거진 저편에 밤나무 꽃이 하얗게 피어있습니다.




- 역사박물관 앞에 놓인 큰 돌에 새겨진 것입니다. 이건 평범한 솜씨가 아닙니다. 관조(觀照)라 쓰인 것인데, 대단한 전각(篆刻) 솜씨로 새긴 것입니다. 어떤 작품인가 물어보니 전에 이곳에서 전시했던 작품 하나를 남겨둔 것이라고... 세상을 관조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사람들이 보면서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 관조 전각 부근에 있는 것인데, “경륜이 우주에 통하고, 신의는 고금을 뚫는다.“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날 아침, 원불교의 정례법회에 가보았습니다. 불교임에도 일요일에 정례법회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익산성지에서 법회가 행해지는 곳은 중고교의 강당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원불교를 상징하는 금색의 원이 흰 벽면을 배경으로 붙어있고, 그 아래 성직자인 교무님들과 종법사님이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종법사님이 쓰고 계신 캡(?)이 천주교에서 추기경 같은 분이 쓰고 계신 것과 비슷하더군요. 법회의 진행은 우리 전통을 많이 살렸다는 면에서 상당히 독창적이기도 하고, 언뜻 느끼기에도 여러 종교의 장점을 따온 것 같었습니다. 원불교가 토착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개방적이면서도 진취적인 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이 법회에 참가한 것은 거기서 신복순 박사의 “5만 년의 약속”이란 강의(?)가 거기서 행해진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5만 년은 소태산 대종사가 하신 얘기라 합니다. 그 오래 전에 5만 년을 내다보고 설법을 하신 일이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지복천년(至福千年)이라고 하여, 이제는 서기 2000년이 왔었기 때문에 일반화되어 버린 단어 밀레니엄(millenium)을 얘기하고 있었을 뿐인데... 이제야 2000년을 지냈으니 밀레니아(millenia)를 얘기해야할 때입니다만...(제가 한참 영어 공부를 할 때 이 밀레니엄이란 단어는 현재 아주 많이 쓰이는 유비쿼터스란 말 만큼 희한하고도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전 이 두 단어는 결코 우리 입에 쉽게 붙이고 살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었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5만 년의 약속”이란 강의는 그런 약속에 따라서 앞으로 오래 지속될 종교의 역사를 아직도 그 창시 초기에 속하는 지금부터 기록하고, 역사를 만들어가야한다는 요지를 가지고 있는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 원불교 역사박물관의 성립과 그에 따른 유물 찾기, 복원 등에 관한 내용도 있었고, 다른 원불교당에서도 행해졌다는 이같은 순회 강연을 통하여 역사박물관에 대한 이해를 도우면서 그걸 통해 새롭게 더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고, 그것들이 박물관에 수장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법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영모전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오른편에 영모전이 있는데, 제가 영모전 사진은 찍은 것이 없군요.^^;)

이렇게 이틀 간의 일정을 마치고 저희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일이 있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바쁘게 움직인 이틀간이었습니다. 언제나 먼 길을 오가고 나면, 여행은 그 과정이 좋다, 그 과정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지요.

* 박순백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30 13:10)
* 박순백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30 13:45)
Comment '4'
  • ?
    박종욱 2006.06.30 12:01
    [ pju1013@hanmail.net ]

    저는 나이롱 천주교 신자입니다 ^^;
    원불교의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이 우리네 정서와 많이 닮았습니다.
  • ?
    박용호 2006.06.30 12:12
    [ hl4gmd@dreamwiz.com ]

    사진과 글을 보는 내내 추억에 잠겨서 보았습니다. 제가 6년동안 살았던 곳이니 사진 사진마다 눈에 익습니다. 또 저의 아버지께서 원불교도이십니다. 교무님 사진을 보니 "우리 용호"가 뭐하느라 법회을 멀리하나? 라고 야단치실 것이 틀림없는 나문정 교무님이 생각납니다. ^^

    박사님의 이번 여행이 그냥 다녀오신 것이 아니라고 알고있는데요... ^^
  • ?
    남재우 2006.06.30 12:26
    [ mito@mitori.net.nospam ]

    글쎄말입니다.
    특히 코사님께 남다른 의미가 있는 여행인 듯 했는데,
    뭔가 힌트가 있을까 싶어 바쁜 와중에 꼼꼼히도 읽었는데 끝까지 말씀이 없으시군요.
    감추고 계신게 무엇인지 털어 놓으시죠. ^^
  • ?
    박순백 2006.06.30 13:10
    [ spark@dreamwiz.com ]

    아직 그 단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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