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2005.07.27 22:14

"는개"

profile
조회 수 5508 좋아요 854 댓글 8
"는개"를 아세요?

비가 온 후에 우리들은 가끔 산안개를 보게 됩니다.
그런 산안개를 높은 산의 정상에서 보면 "운해"라는 말,
즉 구름의 바다로 그걸 표현합니다.
안개는 아주 작은 물방울의 집단이지요.
그 산안개가 조금 짙어지면(굵어지면) 그게
"는개"가 되는 것입니다.

"는개"는 그런 것이고, 순 우리말이지요.
왠지 다른 어떤 말보다도 아름다운 말처럼 느껴집니다.
순수한 우리말들이 대개 그렇듯이 많이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고,
한 번 들었다 해도 쉽게 외워지지는 않는 단어입니다.

산안개는 겉옷에 스며들어와 속옷까지 습하게 만들긴 하지만 그건 비가 아닙니다.
비로소 "는개"의 단계에서  비가 되고,
그 물방울이 더 굵어지면 부슬비가 됩니다.
그게 더하면 이슬비가 됩니다.
이슬비까지는 우산없이도 견딜 수 있는 비입니다.
낭만이 허용되는 한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굵은 가랑비는 정말 가랑이까지 흘러내려 온몸을 적십니다.
장대비에 이르면 우리가 흔히 폭우라 부르는 상황이 됩니다.
그 땐 비가 아니라 웬수가 되지요.-_-

"아, 저 산안개가 정말 멋지군요."
제가 한계령 능선에서 서북주릉을 보며 그렇게 말했을 때,
"저 정도에서는 는개라고 하죠."
하고 한계령의 정덕수 시인이 얘기하더군요.

처음 듣는 단어인데, 그 때부터 그 단어가 좋아졌습니다.
'역시 시인은 다르구나. 그건 그냥 말이 아니고, 시어로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령에서"란 시 중에서 젖은 담배에 관한 부분이 나오는데,
그 담배를 적신 것이 "는개"였다고...

하긴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이 어떻게 산안개와 "는개"를 정확히 구분하겠습니까?
"짙은 산안개=대략 는개" 정도로 기억하고 살면 되지요.^^;

가끔 아름다운 우리말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집니다.
                                                                      

Comment '8'
  • ?
    박순백 2005.07.28 09:58
    수연이란 양양 처녀가 는개 얘기를 읽고, 보내온 메일의 일부입니다.^^;


    '는개'라는 아름다운 말을 만나게 해주신 것도 다 제 복이라고 하면 우스울까요?

    제 기억으론..
    오색이나 미시령 같은 곳에서 만나는 '는개'는(너무 예쁜 우리말...) 그 나름의 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렷하지도 강하지도 않고, 그냥 코끝에서 맴돌다 말 것 같지만 이내 허파에 깊이 스며들어 산 꼭대기의 냄새를 전해주는 설악의 헤르메스라고 할까요?? ^^
    아마도 산 정상에서 호된 바람과 궂은 날씨를 꿋꿋이 이겨낸 푸른 내음 고이 간직한 수 많은 나무와 풀들을 차례로 지나고 나서야 제게로 오는 까닭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정덕수 시인의 '한계령'을 읽으면 가슴 한 구석이 찡 합니다...
    그 시로 만들어진 노래를 듣고 있으면 괜시리 코 끝이 아립니다...
    저녁 해가 질 때쯤 벙거지 모자를 정리되지 않은 머리위로 푹 눌러 쓴 한 남자가 한계령 정상에서
    오색을 향해 젖은 담배를 입에 물고 양 미간에 골을 만들며 한숨을 쉬고 있다면
    그 남자가 혹시 그 분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말예요.
  • ?
    박순백 2005.07.28 10:00
    크, 위의 글 말미를 읽으면 수연 처자가 만나본 일도 없는 정 시인님에게 홈빡 빠진 듯.^^
    역시 글의 힘, 시의 힘, 언어의 힘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대단한 힘입니다.
  • ?
    신명근 2005.07.28 14:02
    박사님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담니다.--;;
    복구해서 사진 다시 올려주세요. 박사님글은 역시 세심히 살펴야.--;;
  • ?
    박순백 2005.07.28 14:16
    [신명근 선생님] 뭔 말씀을 하세요?^^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연속되는 애니메이션 그래픽의 일부인데...-_-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파일입니다.ㅋㅋㅋ
  • ?
    조민 2005.07.28 14:38
    흡~! 아무 생각없이 클릭했다가 진료실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20살짜리 실습생3명 나와있습니다.-,.-
  • ?
    박순백 2005.07.28 18:55
    [조민 선생님] 그거 아무 생각 없이 클릭하나, 깊은 생각을 하면서 클릭하나 결과는 동일입니다.ㅋㅋㅋ
    그리고, 원하시는 것(^^;)이 다 안 나오니까 실습생 3명이 아니고, 그들의 친구 30명이 다와서 봐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ㅋㅋㅋ
  • ?
    김용빈 2005.07.29 03:12
    헉.. 미국에서 '로리타 컴플렉스' 환자로 몰릴뻔 했습니다. ^^
    장난꾸러기 박순백 박사님 ^^
  • ?
    정덕수 2005.08.21 13:19
    수연?
    더구나 양양에 사는 처자라는데 세삼 세상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마치 제 등뒤에 서서 절 주시하고 있는듯 모든 행동이 부자연 스러워지는 느낌처럼 말입니다.

    그 수연이라는 처자 언제 한 번 만났으면 싶기도 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좋아요
2859 바른 우리말 Inline City 사랑방에서의 [바른 우리말] 쓰기 캠페인 박순백 2005.07.25 5568 666
2858 잡담 복사한 CD는 원본 CD 보다 정말 음질이 떨어질까요? 13 임형택 2005.07.25 8218 807
2857 잡담 새로운 게시판 CGI를 사용하여... 1 박순백 2005.07.25 4816 914
2856 상식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박순백 2005.07.26 5254 767
2855 상식 [re] 무지개 손의 "배드민턴 치는 남자, 셔틀콕 치는 여자" 4 윤세욱 2005.07.27 5859 932
2854 상식 무지개 손의 "배드민턴 치는 남자, 셔틀콕 치는 여자" 5 박순백 2005.07.26 6692 742
2853 잡담 한 빈티지 선 글라스와 A State-of-the-art Sunglass 박순백 2005.07.26 5409 901
2852 사는 얘기 프리랜서 사진 작가의 꿈 11 남재우 2005.07.27 6187 883
» 단상 "는개" 8 박순백 2005.07.27 5508 854
2850 단상 "자발적 복종"에 대하여 1 신승환 2005.07.30 4971 891
2849 취미 영화 아일랜드의 과학적 고찰 5 안동진 2005.08.05 7176 801
2848 작은 정보 미국 출장기(1부) 4 안동진 2005.08.08 5387 853
2847 작은 정보 영어공부에서 느낀 어려운 것 몇 가지. 3 최재원 2005.08.08 6064 964
2846 사는 얘기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영어듣기 3 최재원 2005.08.14 5694 938
2845 사는 얘기 뉴욕과 토론토 15 남재우 2005.08.17 5644 702
2844 사는 얘기 [사진] 2002년 11월 한계령과 선림원지에 갔을 때... 1 박순백 2005.08.17 4658 765
2843 기사 믿기 힘들 만큼 많이 버는 "다코타 패닝"이란 꼬마 배우 1 박순백 2005.08.17 5396 923
2842 사는 얘기 오색령에서 Ⅸ 10 정덕수 2005.08.21 6483 728
2841 사는 얘기 21세기 바벨탑을 세울 준비를 꿈꾸면서 1 최재원 2005.08.22 4514 895
2840 사는 얘기 무료 위문 사진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 2 이동구 2005.08.22 4788 82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3 Next
/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