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rofile
조회 수 407 추천 수 1 댓글 0

dynastar.png eyedaq.png pella.png

 

09/15(금), 집사람의 생일을 맞아 전에 강화도-석모도를 방문했을 때 "다시 오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원래는 강화도의 어느 산골 마을을 찾아갈 생각을 했었다. 다른 분의 글에서 본 그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풍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그런 곳은 지금이라도 사진으로 기록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 본 풍경들이 살아있는 곳이라 친숙하다. 그처럼 추억을 되살리는 풍경이니 다시 그걸 보고, 그걸 직접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그러다가 목적지를 교동도로 바꿨다. 석모도와 교동도는 강화도에서 바닷길을 가로지르는 연육교로 연결된 두 섬이다. 석모대교는 작년에 생겼지만, 교동대교는  그보다 먼저인 2014년 7월에 건설되었다. 석모도야 연육교가 생기기 이전에도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페리(ferry)를 타고 방문하던 곳이지만, 교동도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황해도 연백군)과 4km 정도 떨어져 있는 민통선 안쪽에 있어서 매우 외진 곳이다. 하지만 그 섬이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크다고 하니 작은 섬은 아닌 셈이다. 여하간 이번엔 안 가 본 곳, 어쩌면 강화도나 석모도보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곳을 가보기로 했다.

 

DSC07370.jpg

-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섰고, 낯익은 거리들을 지나 유명한 강화고인돌이 있는 하점면 부근리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강화도 자체가 석기시대 이후의 정착지로서 우리의 전역사와 함께 한 곳이고, 특히 고려시대의 몽고 항쟁, 조선시대의 병자호란, 그리고 구한말 서구 열강의 외침이 많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경주와 마찬가지로 강화도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부근리의 강화지석묘 일대에는 강화역사박물관과 함께 자연사박물관도 들어서있다. 그래서 이곳은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 

 

DSC07370-0.jpg

- 두 잔의 카푸치노 커피를 거치해 놓고...^^

 

IMG_5427.JPG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서 방이동의 내 사무실에 먼저 들렀고, 거기서 카푸치노 커피 두 잔을 만들어왔다. 다른 곳에서 마시는 커피맛이 영 그만 못 해서였다. 특히 얼마 전에 믿었던 카페에서 전혀 기대치도 않은 커피맛을 보게 된 이후라...^^;

 

사무실에서 카푸치노가 만들어지고 있는 동안, 냉장고에 있는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챙기기도 했다. 탄산음료, 과일, 과자, 빵, 그리고 보블(Bobble) 필터 물병에 물도 챙겼다.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Karim Rashid)의 작품인 이 물병은 특허를 받은 필터를 내장하고 있어서 어디서든 수도물이나 샘물을 담아 마시면 된다.(하수도 물까지 정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병에 담긴 물은 수도물이고, 입구와 연결된 병속의 벌집, 하니컴 모양으로 뚫린 구멍이 있는 막대는 내부에 필터가 있다. 이 필터는 300회 정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품을 구매할 때부터 필터가 저 벌집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필터는 따로 포장된 채로 물병 내부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걸 개봉하여 저 구멍 뚫린 막대를 돌려 뺀 후에 넣고, 다시 잠그면 된다. (필터는 나중에 따로 구매해서 교체하면 된다고 하는데, 수입업체의 얘기로는 그러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라고... 병이 좀 헐었다 싶으면 새 제품을 산단다.^^)

 

하지만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김포를 통해 강화로 가는 동안에 교동도에 대해서 구글 검색을 한 집사람이 매우 사려깊은 얘기를 한다.

 

커피는 어차피 챙겨왔고, 마시고 가는 참이니 할 수 없지만 다른 건 먹지 말고 교동도에 가서 사 먹자고 한다. 구글 검색을 통해서 읽은 몇 가지 글을 보니 관광객들이 교동도에 가서 1960-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풍경 사진만 찍고는 그곳의 물건을 사지도 않고, 그곳의 먹을 거리를 먹거나 챙겨가지 않아서 그곳 주민들이 관광객에 대해 별로 안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에 대한 적개심(?)이라니???'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대개 섬사람들이 외지인을 경계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곳에 살려고 들어간 사람들에게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지라 그걸 이해해 주기로 했다.(결국 집사람의 제안에 따라 물과 탄산음료, 그리고 음식을 교동도에서 사먹었다.^^)

 

DSC07371.jpg

- 교동도로 가기 위하여 신봉리를 지나 교산리, 이강리의 삼거리에서 인화리 쪽으로 우회전하여 48번 도로로 들어서는 중이다.

 

예전엔 강화도에서 교동도에 가려면 이 지점에서 왼편에 있는 301번도로로 직진하여 창후리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야했다. 그래야 창후여객터미널에서 화개해운의 페리를 타고, 교동도의 월선포선착장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회전을 해서 조금 가면 초소가 나온다. 거기서 주민증 등 증명서를 내보이고, 빈 종이쪽지를 하나 받은 후에 인적사항(이름, 연락처, 차 번호)을 적어서 그걸 두 번째 초소에 제출하면 출입증을 준다. 그걸 교동도에서 나올 때 반납하게 된다. 

 

DSC07373.jpg

- 두 번째 초소에서 좀 달려가니 멀리 교동대교 이정표가 보인다.

 

교동대교 초입에 또 하나의 검문소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통행이 금지된다는 걸 알려준다. 교동대교 개통 직후로부터 2015년까지는 일출 전 30분, 혹은 일몰 후 30분까지만 교동도에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교동도가 북위 38도 선 정도에 위치하고 있고, 서부전선의 끝부분이라 군사요충지이기에 교동도는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너머에 있다. 그래서 이 정도의 불편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할 듯하다.

 

DSC07374.jpg

- 길이가 3.44km나 되니 거의 십 리에 가까운 긴 다리(사장교)이다.

 

교동대교의 건설은 주민들의 30년 숙원이 3년전에야 이루어진 것이라한다. 이런 연육교가 생기는 바람에 전엔 36,000원이나 들여서 페리를 타고 건너야했던 곳을 그냥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관광객들에게는 큰 복인 셈이다. 나중에 들으니 이 다리로 인해 교동도 주민들이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나이든 분들이 쉽게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라 한다. 전엔 섬에 병원이 없어서 고령의 주민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기 힘들었다고 한다.

 

교동도에는 원래 임진강 건너 북한 황해도 연백에 살다가 한국전쟁 시에 피난와 살던 피난 1세대들과 그 분들의 자제들이 많은데, 그들이 이미 고령이며, 3대들은 대부분 섬을 떠난 경우가 많아서 주민들의 평균 연령대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교동도를 떠나면서 계속 인구가 줄어들었고, 가장 많은 주민이 살던 때는 만오천 명 정도였는데, 현재는 주민이 3천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교동도는 높은 산이 별로 없이 대체로 평평한 지역이라 논밭이 많은데, 주민이 적다보니 일인 당 경지면적이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교동평야에서 나는 쌀은 질이 좋아서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DSC07376.jpg

- 길기도 한 폭 13.85m의 2차선 다리이다.

 

DSC07378-1.jpg

 

교동대교를 건너면 교동동로에 접어드는데, 거기서 어디로 갈까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직진하여 대룡리 삼거리 부근까지 갔다. 이정표를 보니 구글 정보를 통해 알게 된 몇 개의 관광명소가 직진만 하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화개사, 교동향교, 교동읍성이 그것인데, 교동도엔 관광지가 별로 없는지, 인터넷 정보에서는 여기에 대룡시장, 고구저수지, 난정저수지, 연산군 유배지, 황경례 정려문 등에 대한 내용이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다.

 

교동대교가 생기기 전에도 강화도의 창후리선착장에서 교동도의 월선포 선착장에 내리면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오른쪽으로 난 길(교동남로)을 통해서 현재의 교동대교가 있는 곳까지 와서 교동동로로 접어들어 읍내리 쪽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40여 년 전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으로 유명하다는 대룡시장은 위 사진의 왼편 건물 뒷편에 있다. 교동동로를 달려오는 중간에 대물낚시터로 유명하다는 고구저수지를 거쳐왔다.(교동동로는 이 저수지의 일부를 가로 질러 길이 나있다.) 

 

DSC07378.JPG

- 왼편 길에 대룡시장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는 왼편에 있는 대룡시장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직진하여 교동남로로 계속 달려갔다. 그쪽에 남산포항과 교동읍성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성에 대해서는 머리속에 낙안읍성 정도의 멋진 풍경을 생각하고 달려갔는데...

 

DSC07379.jpg

- 가다 보니 좀 특별한 광경이 눈에 띈다. 그건 길옆에 키가 높은 수수를 많이 심어놨다는 것이다.

 

수수는 원래 쌀, 밀, 옥수수에 이은 4대 작물로 분류될 정도로 중요한 곡식이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콩이나 보리에 밀려서 부식 정도로 밀려난 느낌이다. 내가 어릴 적엔 농촌에서 흔히 보던 것이 수수인데 요즘은 그걸 보기도 쉽지 않다. 수수는 한자로 고량(高粱)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만든 술이 고량주이다. "붉은 수수밭"이란 명작 영화가 있는 중국은 고량주의 천국이다. 교동도에는 여기저기에 수수가 많이 서있었는데, 여기서는 왜 수수를 많이 심는 것인지 모르겠다.

 

DSC07403.jpg

- 먼저 들른 곳은 남산포항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교동도가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삼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수영(삼도수군통제령)이 있던 곳이고, 서해안의 끝 부분이니 중국에 가까워서 중국으로 건너가는 배들이 이 항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예전엔 북한의 개성도 여길 통해서 갔다고 하고... 그래서 이 남산포항은 많은 배들의 왕래가 있던 곳이라 하는데, 지금은 한적한 매우 작은 항구였다. 그냥 작은 포구라고 부르는 게 적당할 정도.

 

DSC07405.jpg

 

DSC07382.jpg

- 항구 한 켠의 안내판. 이걸 보니 북한이 정말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군부대도 육군이 아닌 해병대.

 

DSC07381.jpg

- 이 항에 들어오는 배에 물건을 싣거나 내릴 수 있도록 길쭉한 부교 같은 게 마련되어 있었다.

 

DSC07400.jpg

- 우린 마음 편한 관광객으로 왔지만, 저 분들에겐 생활의 현장이다. 평일에 와서 이런 사진을 찍으니 괜히 송구스런 생각이 들었다.

 

DSC07386.jpg

- 그러고 보니 저 앞에 보이는 것은 석모도이다.(왼편 섬의 오른쪽 끝이 영화 "시월애"를 찍은 하리 저수지 앞이다.) 석모도 옆의 작은 기장섬도 보인다.

 

DSC07402.jpg

- 남산포항의 오른쪽에도 접안시설이 있었다.(배를 대는 곳이 세 군데 있었다.)  

 

DSC07383.jpg

- 녹슨 닻이 보이는데, 이건 꽤 큰 배가 사용하는 것일 듯하다.

 

DSC07392.jpg

- 닻엔 조개껍질이 붙어있어 그 관록을 말해준다.

 

DSC07393.jpg

- 따개비도...

 

DSC07399.jpg
- 오른편 선착장에서는 새우를 잡아온 배가 새우를 내려놓고 있다.

 

DSC07398.jpg

- 새우젓을 담는 데 쓰는 바로 그 새우인 듯.

 

DSC07396.jpg

- 배에서 내리는 어획물은 두 가지였는데, 또 하난 냉채 등을 만드는 데 쓰는 해파리였다. 근데 해파리의 크기가 어마무시했다.

 

DSC07397.jpg

 

DSC07395.jpg

- 남산포항의 오른쪽 끝 부분이다. 저 앞에 보이는 건 교동도의 일부인 죽산포 쪽인 듯하다.

 

DSC07407.jpg

- 남산포항에서 나오면서 보니까 길옆에서 밴댕이젓과 황석어젓을 팔고 있다.

 

DSC07408.jpg

- 남산포항에서 나오다 오른편으로 교동남로를 계속 달리니 교동읍성 표지판이 나온다.

 

DSC07409.jpg

- 작은 길 오른편엔 폐가가 하나. 교동도에서는 폐가가 많이 보인다. 전성기에 비해서 인구가 1/5로 줄었으니 그럼직도 하다.

 

DSC07414.jpg

- 교동읍성의 흔적인데, 남문만 이렇게 남아있다고 한다. 현재 공사 중이다.

 

DSC07415.jpg

- 기존에 있던 홍예문을 복원한 후에 그 위에 루(건물)까지 신축을 하는 공사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DSC07429.jpg

- 각 돌에는 번호가 붙어있다. 이 문을 해체하기 전에 붙여놓은 번호이고, 예전 그대로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DSC07427.jpg

- 남문의 아치를 복원하기 위하여 나무로 둥글게 받쳐주고 있다.

 

DSC07416.jpg

 

DSC07430.jpg

- 남문 부근의 어느 집에는 이렇게 탱자나무가 있었다. 열매가 꽤 많이 열렸다.

 

DSC07431.jpg

 

DSC07418.jpg

-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능소화가 핀 담이 보인다. 이 남문 위쪽 길로 올라가 봤다. 읍성 내엔 어떤 것이 있나 보러 간 것인데,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로지 읍성 남문 하나가 유일한 유적인 듯했다.

 

DSC07425.jpg

- 흙담집인데, 황토를 바른 벽에 담쟁이의 빨판이 붙었다 떨어진 흔적이 하얀꽃 같다.

 

DSC07421.jpg

- 길가에 열린 대추. 시골다운 풍경이다. 이제 추석이 가까워오니 대추도 꽤 많이, 먹음직하게 익었다.

 

DSC07422.jpg

- 고구마 밭 옆의 작은 창고엔 나팔꽃이 보인다.

 

DSC07433.jpg

- 축대 아래엔 감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주민 얘기를 들으니 교동도는 바람이 센 곳이 아니라고 하던데... 여름 장마비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DSC07434.jpg

- 역시 폐가가 보인다. 주변엔 풀이 많이 자라있다. 지붕을 타고 올라간 식물도 보인다. 한 때 저 집안에서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고, 가족들의 웃음소리도 들렸겠건만...ㅜ.ㅜ

 

DSC07420.jpg

- 양쪽 담은 돌담인데, 담쟁이로 완전히 뒤덮여있다.

 

DSC07435.jpg

- 집사람이 사진반 과제 중에 각종 담을 찍는 게 있다더니 열심히 그 돌담을 찍고 있다.

 

DSC07438.jpg

- 거기서 교동읍성 쪽으로 다시 나오다 보니 석류가 주렁주렁 열린 집이 보인다.

 

DSC07437.jpg

- 신기하다. 보기 힘든 석류나무가 이렇게 크고, 또 많은 석류를 달고 있다니...

 

DSC07439.jpg

- 석류나무 옆의 식물인데, 집사람이 꽈리인 줄 안다. 난 이게 절대 꽈리가 아니라는 것까지만 안다.^^;(나중에 정덕수 시인께서 이것이 "풍선덩굴"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셨다.)

 

DSC07441.jpg

- 교동중고등학교의 버스가 길옆의 우리 차 옆에 섰다. 교동읍성에 대한 공부를 하러 온 듯하다.

 

위의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동네쪽으로 더 달려가 보니 바닷가에 이르고, 거기는 차가 더 달릴 수 없는 막다른 곳이었다. 아래 사진의 뻘 위쪽으로 보이는 산의 왼편에 우리가 좀 전에 들렀던 남산포항이 보인다.

 

DSC07410.jpg

DSC07412.jpg

- 역시 바닷가라서 해당화가 보인다. 해당화가 본격적으로 피는 철이 아니라 꽃은 겨우 한두 송이만 보였다.

 

DSC07413.jpg

- 되돌아나오는 길이다. 저 앞에 교동읍성 복원 작업을 하는 기중기가 보인다.

 

되돌아나온 길에서 우회전을 하여 화개사, 교동향교 쪽으로 달려갔다.

 

DSC07476.jpg

- 교동읍성이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이 동네 이름이 "읍내리"이다. 여기는 왼편의 화개사 가는 길과 오른편의 교동향교 가는 길의 삼거리 중간에 있는 "읍내리 비석군"이다. 조선시대에 선정을 펼친 목민관 등의 관리를 위한 40기의 선정비(착한 정치를 한 것을 기리는 비석) 혹은 불망비(공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불망.)가 이곳에 모여있다.

 

DSC07477.jpg

- 왼편 비석의 아랫 부분에 영세불망비라 새겨져 있다. 영원토록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DSC07478.jpg

 

DSC07479.jpg

- 어떤 비석엔 이렇게 선정비라 쓰여 있다. 이런 비석들은 교동면 여기저기에 있던 것을 교동유림에서 한데 모은 것이라 한다.

 

DSC07442.jpg

- 우린 먼저 교동향교 쪽으로 달려왔다. 길이 좁은 편이다.

 

DSC07443.jpg

- 주차장 건너편에 코스모스 밭이 조성되어 있다. 교동도에서 첫 번째로 치는 유적지가 교동향교이던데, 그래서 좀 남다른 서비스를 하는 것인지?^^

 

DSC07445.jpg

- 향교를 향해 올라가는 길 옆엔 감나무가 많았다.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DSC07446.jpg

- 아주 큰 밭인데, 거기가 온통 코스모스로 꽉 차 있다. 볼 만했다.

 

DSC07447.jpg

- 어떤 밭은 온통 해바라기이다. 강화군에서 관광객들을 위해서 일부러 조성한 해바라기 밭이라 여겨진다.

 

DSC07448.jpg

 

DSC07449.jpg

- 가을풍경이 제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요즘은 철 없이 피기도 하는 코스모스이지만 그것이 이런 한가로운 풍경 속에 있을 때, 그리고 가을의 파랗고도 높은 하늘 아래에서 소슬 바람에 흔들릴 때 비로소 코스모스답다.

 

DSC07450.jpg

- 교동향교. 향교는 Village School이란 의미이다. 왼편에는 "유도회교동지부"라 쓰여있다. 교동의 유림을 의미하는 현판.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 한다.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공자의 초상 하나를 가져와 이곳에 모셨다는데, 그걸 보면 역시 유교의 기둥인 공자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유교에 몰입하여 많은 폐단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가 현명히 처신하지 못 한 탓이니 유교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DSC07452.jpg

- 왼편 상단에 있는 표식은 NFC가 지원되는 휴대폰을 가져다 대면 일본어나 중문(중국어?)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인 듯하다. 내 iPhone이 NFC를 지원하지 않아서 확인해 볼 수 없었다.

 

DSC07453.jpg

- 교동(喬桐)의 喬 자는 "높다"는 의미이다. 높을 교(喬) 자에 오동나무 동(桐) 자가 쓰인 것은 이 지역에 키가 큰 오동나무들이 많이 자생하기 때문이란다.

 

DSC07455.jpg

- 향교의 외삼문은 이렇게 열려있었다. 잡아맨 철사줄을 보니까 이 문은 항상 열려있는 듯하다.

 

DSC07454.jpg

- 의외의 방명록이다. 그리고 여기 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겼다. 나도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썼다. 동재와 서재의 규모에 관해 그게 참 재미있다고 썼다.

 

DSC07466.jpg

- 문옆 탁자에 놓인 안내문을 보니... 맨 위의 대성전이 공자의 초상을 모신 곳이고, 서재(서쪽 집의 의미)는 중인과 서인의 자제들이 머물던 곳, 명륜당은 강의가 행해지던 강당인 셈이며, 동재는 양반의 자제들이 머물던 곳이다.

 

DSC07456.jpg

- 명륜당은 닫혀있었다. 평일이라 그런 듯하다.

 

DSC07473.jpg

- 근데 명륜당 왼쪽 끝에 있는 기둥과 벽에 붙은 나무 사이엔 삼각형으로 판을 대놨다.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다.

 

DSC07474.jpg

- 화분을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도 아니고, 두 나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기 위해 끼워넣은 것인지???

 

DSC07464.jpg

- 서재이다. 양반이 아닌 중인, 서인의 자제를 위한 시설이라서인지 꽤 작은 건물이다. 하긴 그 옛날에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공부를 할 여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니...

 

DSC07469.jpg

- 서재의 귀퉁이에도 이런...

 

DSC07470.jpg

- 이들 건물엔 왜 이런 장치를 해 놓은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DSC07467.jpg

- 서재의 뒤곁에 가니 이런 굴뚝이 보인다. 옛 사람들도 그 나름의 미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DSC07457.jpg

- 왼편이 명륜당의 기둥과 처마이고, 오른편 건물이 동재이다.

 

DSC07465.jpg

- 역시 양반 자제를 위한 동재가 번듯하다.

 

DSC07468.jpg

- 건물이 크니 굴뚝의 규모도 서재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이런 차별이라니...-_- 하긴 양반만 등용하던 시절이니 중인과 서인은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DSC07458.jpg

-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저 문은 닫혀있어서 오른편에 난 길로 돌아가야 한다.

 

DSC07459.jpg

- 대성전이다.

 

DSC07460.jpg

 

DSC07462.jpg

- 근데 역시 닫혀있다.

 

DSC07463.jpg

- 구글에서 찾은 교동향교 사진을 보면 이게 열려있던데...^^

 

DSC07461.jpg

-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공자도가 보이긴 한다. 의외로 초라한 공자의 초상화.

 

DSC07475.jpg

- 향교를 떠나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화장실은 매우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사진은 거기있는 거울에 붙은 레이블인데, Mirosta란 상표가 붙은 이 거울은 규격 제품이고, 표준협회의 인증까지 받은 것이다. 유적지에 납품하는 제품들은 그런 인증까지 필해야하는 모양.

 

다시 읍내리비석군이 있는 삼거리로 가서 화개사를 향했다. 화개사는 화개산(269m)에 있는 절이라 그런 이름을 붙인 듯. 그 절은 교동향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데 화개사의 규모나 형태는 기대이하였다. 고려때 창건된 오래된 사찰이고, 서울 조계사의 말사로서 나름의 내력이 있는 절이라는데...ㅜ.ㅜ

 

DSC07482.jpg

 

화개사는 교동도 유일의 사찰이라는데 이것이 교동현과 경기도 수영(통제영)이 있던 읍성에서 가까운 곳이라 많은 관리나 주민들이 찾았을 절이다. 하지만 좌우로 긴 건물 하나만 있고, 그 오른편에 승려와 관리인들이 머무는 최근에 지은 요사체만 덩그라니 있었다.

 

DSC07481.jpg

- 별다른 특징이 없는 절이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대웅전 혹은 대적광전과 종루, 산신각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 대부분의 절들과는 달라서 아주 생뚱맞게 느껴지는 절이었다.

 

DSC07480.jpg- 약간 실망스러운 느낌으로 우린 화개사를 떠나온다.

 

DSC07487.jpg

- 역시 교동도의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반가운 수수.

 

DSC07488.jpg

- 수수 알이 제대로 커있다.

 

그곳을 떠나 우린 교동대교가 없던 시절, 교동도의 관문이었던 월선포선착장으로 왔다. 석모대교가 없던 시절에 우린 석모도의 석포리선착장에 몇 번 가 본 일이 있지만, 교동도에 처음 온 우린 이 월선포선착장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어쨌든 한 때는 꽤나 붐볐을 월선포선착장에 가봤는데, 거긴 (특히 평일이라서 그랬겠지만...) 완전히 썰렁한 느낌이었다. 교동개발이며 강남공인중계사 등의 간판을 보면 여기가 한 때는 얼마나 번성한 곳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데... 하지만 좋은 시절이 지나 버린 곳이다.

 

DSC07498.jpg

 

DSC07493.jpg

- 전엔 창후리선착장에서 출발한 화개해운의 페리가 이곳에 닿았고, 많은 차들이 이 시멘트 길을 달려올라갔을 터인데...

 

DSC07491.jpg

- 페리가 정박하던 곳이 저 앞에 보인다.

 

DSC07492.jpg

- 선착장 아래쪽에 가서 앞을 보니...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석모도이다. 그리고 왼편에 강화도와 석모대교가 보인다.

 

DSC07496.jpg

- 선착장에서 왼편을 보니 멀리 교동대교가 보인다. 이곳의 물살이 세서 다리를 만들다 일부가 무너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DSC07495.jpg

 

DSC07499.jpg

- 선착장에서 나오는 길에 보이는 교동교회가 아주 예쁘다.

 

DSC07500.jpg

- 우린 다시 교동대교 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너른 논 뒤로 역시 교동대교가 보인다. 교동도의 산은 낮고, 대개는 평야지대여서 자전거 여행엔 최적인 곳이라 생각된다. 차로 빨리 달리지 말고, 자전거로 자연과 호흡하며 달리면 정말 힐링이 될 듯한 곳이다.

 

DSC07501.jpg

 

그런데 월선포선착장에서 교동대교 쪽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도 좁았다. 차량의 교행은 전혀 불가했다. 길옆에 넓은 공터가 있지 않으면 다른 차가 앞에서 오게 되는 경우, 도저히 서로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이 날은 차량의 통행이 전혀 없어서 그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는데...(만약 주말이었다고 하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주말이면 만 명 정도의 외지인들이 교동도에 몰려온다고 한다.)

 

DSC07502.jpg

- 이런 좁은 길이다.

 

DSC07504.jpg

- "교동대교"라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산쪽으로 난 길은 역시 너무나도 좁다.

 

------------------


시간이 한동안 멈춘 듯한 강화 교동도 방문 - 2 / https://goo.gl/1RxKH7

좋은 글, 함께하고 싶은 글은 위에 '잘 읽었습니다.' 버튼()을 클릭하시면, 우측 '최근 추천 받은 글'에 노출됩니다.
이 글을 추천한 회원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581 잡담 뒤늦게 "도깨비"를 보다. 6 file 박순백 2017.10.02 578 1
2580 잡담 예린이의 SK텔레콤 T맵 추석 관련 광고 6 file 박순백 2017.09.23 725 7
2579 사는 얘기 Muhaka, Kenya 4 file 한정수 2017.09.22 681 0
2578 취미 작은 배를 타고 떠난 조동진 3 file 박순백 2017.09.18 433 3
2577 취미 시간이 한동안 멈춘 듯한 강화 교동도 방문 - 2 8 file 박순백 2017.09.16 837 2
» 취미 시간이 한동안 멈춘 듯한 강화 교동도 방문 - 1 file 박순백 2017.09.16 407 1
2575 사는 얘기 747을 모는 허승 기장 4 file 박순백 2017.09.12 1005 1
2574 사는 얘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본 연극, "결혼전야" 2 file 박순백 2017.09.06 556 3
2573 사는 얘기 나의 대학 생활 - 동문회가 퍼 간 나의 글.^^ file 박순백 2017.09.06 488 2
2572 사는 얘기 만날 사람은 언제든 만나게 된다. file 박순백 2017.09.03 521 1
2571 잡담 꼬마 예린이의 굽네 치킨 TV CF 4 file 박순백 2017.09.01 704 0
2570 잡담 꼬마 예린이의 LG 전자 TV CF 2 file 박순백 2017.08.27 894 0
2569 잡담 여름 휴가 Ver.2 - 세 째날 두 번째 글 - 결국 사흘간의 청간정 공부 file 박순백 2017.08.27 506 3
2568 잡담 여름 휴가 Ver.2 - 세 째날 첫 글 - 청간정 시(1654년)를 쓴 할아버지 박길응 4 file 박순백 2017.08.26 406 1
2567 칼럼 교육, 다양한 공부취향, 성격유형에 맞게 이루어줘야 2 최재원 2017.08.26 212 1
2566 잡담 여름 휴가 Ver.2 - 둘 째날 - 고성 청간정과 송지호 Surf 61 4 file 박순백 2017.08.24 555 1
2565 잡담 여름 휴가 Ver.2 - 첫 날 - 지피지가와 커피커퍼 file 박순백 2017.08.23 557 1
2564 사는 얘기 인연 5 file 박순백 2017.08.19 1021 3
2563 문화 영화 공범자들을 본 후에 쓴 후기이자 반성문.-_- 25 file 박순백 2017.08.16 17752 18
2562 취미 조슈아 벨과 영화 Ladies in Lavender(and its OST) 1 file 박순백 2017.08.13 320 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1 Next
/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