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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초상 중 하나는 손발이 오그라들게도 낭만적이었다는 것. "장미는 붉고, 오랑캐꽃은 푸르러요. 설탕은 달콤해도 당신 만큼 달콤하진 않아요."란 팝송 가사를 좋아했었고, 남들은 모르는 바비 빈튼의 그 노래를 열심히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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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페이스북 친구, 소위 페친인 한 분의 타임라인에 올라간 글을 보았다. 어제 생일을 맞은 분이다. 내가 페친의 생일엔 꼭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이유는 내 페친의 숫자가 페이스북 한계 숫자인 5,000명에 달하기 때문에 그들과 일일이 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페친이 생일을 맞은 것에 대한 페이스북 알림이 오면 그들에게 꼭 생일 축하 메시지를 작성해서 보내는 것이다. 생일맞이 페친의 수는 대개 하루에 15~6명에서 20명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모두에게 일일이 서로 다른 메시지를 작성하는 건 힘이 든다. 그러므로 그날에 어울리는 문안 하나를 써서 그걸 복사해서 붙여넣기하는 방식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페친 중에는 오프라인에서 나와 오랜 친구들도 있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아주 친해진 분들도 있으며, 자주 교신하지는 않아도 특별히 나의 주의를 끄는 분들이 있다. 어제 생일을 맞은 박승호 선생은 세 번째 타입에 속하는, "내 주의를 끈 페친" 중 하나이다. 그 분의 따님에 대한 사랑이 유독 각별했기에...

 

그냥 페이스북 상에서 내게 친구 신청을 하고, 팔로우를 한 분들이면서 내가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일괄 작성된 메시지를 보내지만, 원래 아는 사람에겐 그러지 못 한다. 그 사람에게 알맞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 주의를 끈 페친들에게는 뭔가 관련된 언급을 한다. 그러므로 박승호 선생의 생일엔 분명 예쁜 따님에 대한 언급을 했을 터이다.

 

페친 박승호 선생이 오늘 올린 글과 사진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sugar violets1.png

 

sugar and violets.jpg

 

그에 대하여 난 아래와 같은 댓글을 썼다. 그 생일 축하 문구의 기원에 대해 알지 못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게 아주 오래된 팝송 가사에 나오는 문구이고, 실은 그게 더더욱 오래된 영국의 동요나 자장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그런 문구를 제목으로 하는 미국 팝송 덕분에 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sugar violets2.png

 

내가 그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젊은 시절(대학 재학 중이던 시절)에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채택한 교재(?) 아닌 교재 때문이다. 그 교재는 앞부분에 새로 나온 팝송의 악보와 가사를 싣고, 뒤쪽에 가면 팝 칼럼니스트가 특정 곡의 가사를 가수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해설해 놓은 잡지였다. 그 해설가는 한 때 한국에서 라디오 DJ를 했던 피세영 씨. 그는 한국 수필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작품 “인연”을 쓴 영문학자 고 피천득 선생의 자제였다. 아버지를 닮아서인가 영어를 특출나게 잘 했던 그는 노래를 좋아했고, 그래서 당시에 유행했던 아메리칸 팝송에 대해 많은, 재미난 얘기를 해주곤 했었다.

 

그 노래 Roses are red는 1935년 생 아메리칸 팝 가수인 바비 빈튼에 의해 1962년에 불려진 것이다. 그러니 요즘 세대 중 그 노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하긴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바비 빈튼의 그 노래를 알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주위에 단 한 명도 없었다. 피세영 씨의 노래 해설을 읽고 그 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 말고는 우리나라에서 그 노래를 알고, 지금까지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노래는 아주 달콤한 사랑 노래이다. 여자 친구의 졸업식 사인북에 이렇게 쓴..( 60년대와 70년대엔 우리나라에도 소위 "사인북"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걸 아는 분들조차 지금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가 졸업할 때 공책 하나를 가져오면 거기 축하의 말과 함께 미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금언 같은 걸 하나 적어주는 것으로서 "롤링 페이퍼"의 전신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장미는 붉어요, 내 사랑 /

오랑캐꽃은 푸르러요. /

설탕은 달콤해요, 내 사랑 /

하지만 당신 만큼 달콤하지는 않아요. /

 

roses-jacket.jpg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지만, 미국이 최고로 잘 살고, 잘 나가던 시절인 1960년대의 고교 졸업식에서는 벌어질 만한 아름다운 추억의 광경이 아닌가?(아래 그 노래의 가사 첫 부분을 잘 읽어보기 바란다.)

 

"Roses Are Red (My Love)"

 

A long, long time ago

On graduation day

You handed me your book

I signed this way:

 

"Roses are red, my love.

Violets are blue.

Sugar is sweet, my love.

But not as sweet as you."

 

We dated through high school

And when the big day came

I wrote into your book

Next to my name:

 

"Roses are red, my love.

Violets are blue.

Sugar is sweet, my love.

But not as sweet as you." (as sweet as you)

 

Then I went far away

And you found someone new

I read your letter, dear

And I wrote back to you:

 

"Roses are red, my love.

Violets are blue.

Sugar is sweet, my love.

But luck may God bless you." (may God bless you)

 

Is that your little girl?

She looks a lot like you

Someday some boy will write

In her book, too:

 

"Roses are red, my love.

Violets are blue.

Sugar is sweet, my love.

But not as sweet as you."

(Roses are red)

 

roses-bio.png

 

그래서 난 이 아름답고도 순수한 시절 1960년대의 노래를 내 대학시절에 즐겨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그 노래를 혼자 즐겨 부르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바비 빈튼은 이 노래 Roses are red가 첫 번째의 히트곡이다. 그를 상징하는 곡은 Mr. Lonely이고, Blue Velvet이 최고로 히트한 노래이다.

 

c1.png

 

https://www.youtube.com/embed/JVnQ7q6UKdU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가사와 함께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의 원류는 아주 오랜 영국의 동요 혹은 자장가(lullaby)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 가사는 아래의 문장을 포함한다.

 

The rose is red, the violet's blue, The honey's sweet, and so are you.

장미는 붉고, 오랑캐꽃은 푸르다. 꿀은 달콤하고, 너도 그래.

 

Roses_are_red_1_-_WW_Denslow_-_Project_Gutenberg_etext_18546.jpg

- 1901년판 "엄마 거위(Mother Goose)" 동화에 실린 윌리엄 덴스로우의 그림.

 

이런 류의 시(poem or lyrics)원래 꿀(honey)이던 단어는 나중에 설탕으로 바뀌었다. 이미 1901년에 출간된 위의 책에 실린 그림에 그렇게 나온다.

 

Sugar is sweet, And so are you.

설탕은 달콤하고, 너도 그래.

 

어쩌면 은은한 꿀이 아닌 빠르고 진한 단맛의 설탕으로 바뀐 것이 맞으리라. 그게 현대인의 머리속에 빨리 와 닿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리고 그건 바비 빈톤에 이르면 부정을 통해 더 강한 긍정으로 노래한다.

 

Sugar is sweet but not sweet as you

설탕은 달콤하지만, 너 만큼 달콤하지는 않아.

 

가끔 이런 사랑의 시를 아픈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런 게 통쾌하다. 그리고 우리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다.

 

Roses are red. Violets are blue. Onions stink. And so do you.

장미는 붉고, 오랑캐꽃은 푸르다. 양파는 쏜다. 그리고, 너도 그렇다.-_-

 

하긴 뭐 이런 글을 읽으면서 어떤 놈들은 "Are violets really blue?(오랑캐꽃이 푸르냐?)"고...-_- 하긴 이런 의문에 대해서 "아, 오랑캐꽃은 사실 푸른 게 아니고, 잉크빛과 비슷하다고 해야겠지?"라고 답했는데, 거기 대한 대답이 "잉크요? 뭔지는 아는데 본 일이 없어서..."ㅜ.ㅜ 아, 이젠 잉크를 쓸 일이 없는 볼펜의 시대이고, 볼펜마저도 쓸 일이 없는 워드 프로세서의 시대이니... 어쨌건 지금은 오랑캐꽃은 푸르지 않다. 오랑캐꽃의 색깔은 violet이 된 시대이다.

 

영국의 시인 스펜서와 친했던 빅토르 위고는 1862년에 레미제라블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 주인공 코제뜨의 어머니인 펜타인(Fantine)의 노래를 통해 이와 관련된 가사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여기서는 작가답게 순서를 뒤섞고, 자신이 앞세운 것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다.

 

Violets are blue, roses are red, Violets are blue, I love my loves.

오랑캐꽃은 푸르고, 장미는 붉다. 오랑캐꽃은 푸르고, 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다.

 

바비 빈튼의 위의 노래, Roses are red는 폴 에반스(Paul Evans)가 작곡하고, 알 바이런(Al Byron)이 작사를 한 것이다. 바비 빈튼의 노래 가사는 아름답다. 요즘과 같은 향락적인 섹스의 시대에 익숙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 할 로맨티시즘의 시대가 남긴 유산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Roses are red의 영국 동요를 바비 빈튼의 가사로 아름답게 각색한 사람의 이름이 바이런이라니, 그는 미국인이지만 우리가 잘 아는 영국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의 피를 받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Roses are red는 다행히 미국 문화에도 그 뿌리를 내렸다. 아래는 Roses are red Quotes이다.

 

http://www.beautiful-love-quotes.com/roses-are-red-poems.html

 

어제 페친 생일 리스트의 맨 위에 박승호 선생이 등장했었고, 내가 어제 페친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었기에 당연히 박 선생에게도 그 메시지 중 하나가 갔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살펴 보니 그게 아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뒤늦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sugar and violets-c1.png

 

페친 박승호 선생의 오늘 자 페북 포스팅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 젊은 날의 초상 중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 PS: 문득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팬타인(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Anne Hathaway)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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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5'
  • profile
    박용호 2016.10.21 17:12

    박사님의 글을 읽고  갑자기 그녀가 생각납니다.

     

    누구?

     

    "그녀가요.^^*

  • profile

     

    용호야, 전의 그녀가 생각나면 넌 연식이 오랜 거야.

    앞으로 만날 여자들을 생각해야 그게 미래지향적인 거야.ㅋ

     

    아래는 이 글에 대한 좋은 평. 그냥 한 때 쓰였다가 지나가기엔 (내 입장에서는) 아까운 것이어서 이렇게 네 글에 의지하여 흔적을 남긴다.ㅋ

     

    roses-comment.png

     

     

  • ?
    하종섭 2016.10.21 19:09

    이 수필은 참 인터넷적인 수필이네요. 글,사진,음악,페이스북까지 한번에 있으니.  

    추억되새김 더하기 역사기행 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20살 즈음을 돌이켜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profile
    박순백 2016.10.21 20:03
    제 수필도 시대에 따라 진화한 것입니다.^^; 오래 전엔 수필은 온통 텍스트만 있는 것들이고, 혹간 잡지 등에 실리면 컷 하나가 추가되는 정도였지만, 요즘은 그런 글은 아무도 안 읽는다고 합니다.

    인터넷의 장점은 멀티미디어적이라는 것이고, 그 장점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여... 하지만 국수적인 수필가들, 다이하드(die-hard) 수필가들은 오로지 텍스트만으로 자신의 감성을 전달해야한다고 아직도 주장들을 합니다.^^;
  • profile
    김수진 2016.11.05 18:57

    아마도 자장가(동요)에서의 허니는 꿀이라고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겠지만
    이성을 대상으로한 사랑 노래에서의 허니는 꿀으로서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허니)으로 엉뚱하게 해석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아무튼, 잔잔하면서도 좋은글들을 써주셔서 가끔이지만 잘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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