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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코엑스에 갔다. 한 때는 내 직장(DreamWiz)이 있던 곳 부근이라 거의 매일 가보던 곳이었는데 그곳엘 아주 오랜만에 간 것이다. 많은 것이 변한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변한 것이 많지 않았다. 동일한 공간에 전에 안 보이던 브랜드의 샵들이 보이는 것만 좀 다를 뿐, 목적지인 메가박스를 찾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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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만에 지하철로 코엑스에 갔다. 차를 세우기 힘든 곳이 그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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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엑스 몰 간판 위에 SM TOWN이라 쓰인 건 당연히(?)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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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인과 독재자"의 VIP 시사회가 열리는 코엑스 메가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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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초청 티켓 배부처 데스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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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티켓과 팸플릿을 받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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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급사인 앳나인 필름의 정상진 대표가 왼편에...(내가 정 대표님의 안티인 듯.-_-)

 

 


 

9월 8일(목)에 영화 한 편을 봤다. “연인과 독재자”란 제목의 영화이다. 9월 22일에 개봉하는 영화이기에 그날은 VIP 시사회였고, 이 영화는 앳나인필름에 의해 배급된다.

 

제목에서 “연인”이라 표현된 것은 신상옥/최은희 커플이고, 독재자는 김정일이다. 그 커플은 1960년대의 감독과 배우로서 누구라도 인정하는 스타였다. 하지만 그들의 전성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이었기에 그들은 1970년대 생에게조차도 낯선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98분짜리의 영국 출신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애덤 감독이 연출한 것으로서 신상옥/최은희 커플의 만남과 이혼, 이들 커플의 납북(1978년)과 북한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들의 북한 탈출(1986)에 관한 과정을 다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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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슈와 관련해서는 당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신 감독의 자발적인 월북인가 납북인가에 관한 논란이 있었지만 탈출 이후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대충(?) 납북으로 귀결된 바 있다.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이들 커플이 북에서 김정일을 만날 때 몰래 녹음한 자료를 통해서야 ‘정말 납북을 당했나 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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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희와 마릴릴 몬로.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상당히 착잡했다. 이미 신상옥 감독과 김정일은 고인이 되었고, 최은희도 아흔이 넘어 노환을 앓고 있는 중이라하니... 말하자면 이들에 대한 신비감이 아주 많이 희석된 상황에서 그들의 납북을 둘러싼 비화라는 것 자체가 관심에서 많이 멀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그 일이 이제 와서 영화화되고, 다시 회자되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최은희가 자신이 교장으로 있던 안양예술학교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코자 외자 유치를 위해 홍콩에 간 때 납북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때는 신 감독이 이미 전성기를 지나 퇴물 취급을 받고, 신필름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시점이었다. 그가 이혼한 전 부인을 찾으러 홍콩에 갔다가 납치를 당했다고 하니, 저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걸 자진 월북이라고 생각할 만 했던 것이다.

 

북에 간 그들의 행동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친북 행위라고 했지만 왠지 탐탁지 않다. 연인과 독재자를 보면서 난 그 둘이 매우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정치적, 경제적으로 남한에서 제약된 그들의 영화 활동이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맘껏 펼쳐질 수 있었으니 예술가인 그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려 10여 편의 영화를 마음 내키는 대로 제작해 볼 수 있었으니 뭐가 더 부러울 게 있었겠는가?(신 감독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의 장으로서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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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의 영화 제작

 

연인과 독재자에서 김정일은 "도대체 왜 장면 장면마다 자꾸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찍게 만드나, 우리 영화 안 우는 영화는 안 되겠나. 상갓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만드나?"라며 북한 영화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처럼 폭정을 한 북한의 수령이 영화광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그가 북한 영화의 단점을 지적하며, 북한 영화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확인하니 재미있다. 하지만 북한이 그 체제의 초기로부터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위해 예술을 가장 효과적인 선동 방법으로 동원해 왔다는 걸 이해하면, 그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로버트 캐넌 감독은 김정일이 "영화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고 이를 자신의 독재 도구로써 이용하고자 한 인물"이라고 평했는데, 그건 그런 이유로 당연하다.

 

김정일이 남북의 영화 현실을 대학생과 유치원생의 수준으로 평가하고, 그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그 커플을 구세주로 생각했다는 걸 보면 그가 영화광이기는 하지만 그의 안목이 별로 높은 것 같지는 않다. 김정일이 신상옥/최은희 커플을 납치한 이유가 북한 영화의 개선과 국제화를 위한 철저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라면 그런 김정일의 생각은 그 커플로부터 보답받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소금”이란 영화가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인해 그들 커플이 북한 생활에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나아가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 북한을 탈출하게 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문들이 나로 하여금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착잡한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조차 신상옥이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 하고, 그의 영화를 본 일이 없으며, 단지 그의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는 이미 나이가 든, 이제는 사회에서의 발언권이 적어진 세대들이 보는 이 영화는 쓸쓸한 기억만을 되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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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두 감독들은 이런 스펙터클한 스토리가 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분단국가 한국의 상황,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진 북한의 지도자, 그리고 거기 얽힌 남녀의 사랑 이야기 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삼자적, 객관적 시각에서 정치적 의도나 다른 감정의 개입이 없이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인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할 일들이 많아진 듯하다. 그래서 상기한 대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이해를 한 내가 착잡한 생각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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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옥/최은희 부부"였던 이들이 영화 제목에서 "연인"으로 표현된 것은 사진의 오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의 독재자인 박정희는 인신의 자유를 허락하는 체제에서 영화 예고편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 감독이 4년도 넘게 영화활동을 못 하게 했다. 예술의 자유를 구속한 것이다. 그에 반해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일은 인신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예술의 자유를 맘껏 펼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했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냥 비극이란 한 단어로 한반도의 예술 상황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처럼 딜레마나 비극으로 느껴지고, 착잡한 기분이 들게하는 이 가십 거리에 대해 외국인들의 반응은 다른 듯하다. 이 커플이 탈북 이후에 공개한 김정일의 육성이 서방세계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고한다. 우리 지난 세대에게는 식상하고(?), 현 세대에게는 관심조차 끌지 못 하던 그 커플의 스토리가 아직도 쇼킹하면서도 영화화의 가치가 있는 “실로 영화다운 스토리“로 평가된다는 것도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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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린 이제 새로운 시각에서 이 영화를 바라봐야할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거의 40년 전에 벌어진 이 일을 예술사적, 영화사적인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이 커플과 친숙한 세대들은 그간에 가져온 의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격동의 한 시대를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의외로 난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 시사회였으나 주변의 내 세대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간간히 폭소를 터뜨리고, 박수를 쳤으며, 영화가 끝난 시점에서는 열렬한 박수를 쳤다. 내가 스스로를 이 영화로부터의 이방인이라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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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아주 착잡한 마음으로 다시 지하철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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