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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06.11.14 16:34

미국여행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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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일으킨 사건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나설 때까지 사람들은 1500년 동안이나 ‘지구’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은 지름이 겨우(?) 2광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우주의 크기는 140억 광년이므로 정말 작다……) 조그만 태양계 밖으로조차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미미한 존재이면서도(747 점보 제트기 보다 56배나 빠른 보이저 2호 로켓은 내가 대학 1학년 때인 1977년에 발사되었는데 명왕성의 궤도까지 도달하는 데 12년이 걸렸고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만 앞으로도 4만 년을 더 달려야 하는 거리이므로) 지식의 한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다.

나는 20세기에 태어난 인간이면서도 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증거는 내가 일찍부터 비를 불러오는 신통한 재주를 지녔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내가 소풍만 가면, 그리고 커서는, 세차한 다음날 반드시 비가 왔다.

늙어가는 요즘은 때로 지구적인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태풍도 불러온다.
9.11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우리 가족의 ‘미국여행계획’ 때문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9.11이 일어난 그 시각, 맨하튼의 18번가에서 쌍둥이 빌딩 중 하나가 맥없이 붕괴되는 모습을 망연히…… 보며  서 있었다. 나는 이틀 후인 9월 13일, LA에서 가족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서울에서 출발조차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고 나도 LA로 갈 수 없었다. 소풍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었다.

3년 만에 떠나는 가족 여행이므로, 나는 우리의 여행을 방해할,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이 생길지 두려웠다. 그리고 불길한 예측은 반드시 들어맞는다. 우리가 떠나기로 한 7월 10일의 D-6일에 그동안 하루하루 미루어왔던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감행된 것이다.(겁 많은 미국에서는 독립 기념일이었던 이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드시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먹었고, 따라서 나의 무모한 시도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재난의 발생이 불가피하였다.

D-1일, 태풍이 북상하고 있었다.

보통 이맘 때의 태풍은 한반도로 오지않고 대개 일본이나 남지나해 쪽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태풍은 정확하게 한반도로 진입할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인천공항 상공으로 올 것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우리가 바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했다. 그리고 아내의 열렬한 기도에 힘입어, 바로 제주도와 남해안에 폭풍과 호우가 몰아치고 있을 무렵, KE081 뉴욕 행 대한항공 보잉 747-400 항공기는 태풍이 오기 2시간 전에 간신히 인천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시속 900km의 속도로 태풍을 피해 동쪽으로 동쪽으로 도망쳤다.

지구는 동쪽으로 돈다. 지구가 자전하는 방향으로 비행기가 달려 감에 따라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15시간의 비행 끝에 출발 시각보다 20분 늦은 오전 11시 50분에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하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설이 길었지만 이제부터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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