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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0 21:35

[re] 장인어른께서는...

조회 수 5066 좋아요 711 댓글 5


장인어른께서는
많은 분들의 보살핌으로 푸른 바다와 고향집과 바닷가 별장이 보이는 아름다운 언덕에 안치되셨습니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첫딸인 김애경을 얻으신 장인어르신께서는...
세 딸과 아직 학생인 처남을 남겨두고 아쉬움 속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형제들에게 우환이 겹친 지난해 가을,
장인어른께서는 심한 고통과 스트레스 속에서 울분의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늘상 하시던 정기건강검진이라는 안전핀의 도움도 없이 병마(病魔)를 만나게 되셨습니다.
병은 널리 알리라 했건만...
십 개월의 투병생활에 당신의 병환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말씀 탓에 더 빠른 고통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젊으신 분이라 감히 보호자가 될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뒤늦게 우리가 당신의 보호자라는 생각이 들어 새벽 구급차로 서울에 모셨지만
그렇게 삶의 의지를 붙 태우시던 분이 입원 2주일만에 삭막한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나와야만 했습니다.
제 처와 여동생이 직장까지 관두고 장모님과 함께 병간호에 매달렸지만
국내 최고수준의 병원도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아무런 배려 없이 냉정하더군요.
쫓겨나다시피 아산병원을 나와 집 가까운 한일병원으로 모셔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고향땅이 더 편하셨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삶의 의지가 강하신 분에게 시골로 가자고 하면 스스로 포기하실 것 같아
그렇게 임종에 이르렀음을 알면서도 서울에 모셔야만 했습니다.
한일병원도 작지 않은 병원이지만 서비스의 질이나 간호사들의 품행이 아산병원에 비할 바 못되었으니
병원을 옮긴 며칠간 당신께서는 당장에 버림받은 느낌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병원에 손님들이 발길이 멈추지 않으니 서서히 적응하셨던것도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목원 정덕수 시인께서 산삼 한 뿌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도와주셨으니 당신께서는 새로운 희망을 갖기 시작하셨습니다.

집에서는 좀 멀더라도 보다 편안한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절친한 후배 문성이가 가정의학과에 있으니 그렇게 마음 편하게 모셨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며 장인어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누군가 나무라시겠지만 저는 장인어른의 회복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장인어른 돌아가신 이후에 장모님과 처제들과 처남들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만 고민했습니다.
아들일 수밖에 없는 맏사위라 집안의 장래가 더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영동세브란스에서 어떤 특별한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적같은 것을 믿지 못하고 냉정하게 장인어른의 삶이 다하심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장인어른을 편하게 모시고 싶었기 때문에 그 병원을 선택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매일 병원을 찾아 뵌 것도 편안하게 떠나시라고,
이 맏사위놈 믿고 편안하게 가시라고 하는 믿음을 드리기 위한 이유 뿐이었습니다.
숨을 거두신 그날까지 영동세브란스 병원은 장인어른의 품위를 최대한 지켜주셨습니다.

서울로 오신지 채 두 달만에 장인어른은 그렇게 고향 땅에 안기셨습니다.

병원을 찾아주시고, 장례식장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과 몸은 못와도 마음을 보내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Comment '5'
  • ?
    남재우 2005.11.11 10:04
    마지막에는 영동세브란스에 계셨군요.
    쌍문동에서는 꽤나 먼거리인데 수월치 않으셨겠습니다.
    저희 집에선 지척인데 연락 한번 주시지 그러셨어요.
    시인님의 산삼 한뿌리가 그리 쓰였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참 좋은 인연들이지요.
    시인님은 역시나 술이 얼큰히 취하셔서 새벽에 있을 발인까지 함께 하시겠다시던데, 우찌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장례식장에 중찬씨 손님들이 많았던 듯... 친지분들이 맏사위를 든든하게 여기셨을 듯 합니다.
    수고 많으셨는데, 애경씨 위로해 드리려면 앞으로 한참 더 수고하셔야겠네요. 힘내세요.
  • ?
    안중찬 2005.11.11 13:21
    저 위에 사진도 덕수형이 찍으신 겁니다.
    초저녁에 일찍 취하시더니... 발인하는 새벽1시 직전에 회복되셔서 멀리 소안도까지 함께하셨습니다.
    소안도 다녀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버스를 탄 기록이라 하시네요.
  • ?
    윤세욱 2005.11.11 15:07
    안 선생. 애 많이 쓰셨네. 맏사위 큰일 뒷처리 하는 것을 하늘에서 보시면서 고인께서도 마음이 놓이실 게야. 김애경 선생께도 안부 여쭤 주시게.
  • ?
    박순백 2005.11.14 09:52
    사진 맨 왼편에 오열하는 우리 애경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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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재영 2005.11.15 00:08
    안중찬 선생, 그간 수고 많았군요. 그간 멀리 한계령에서 남쪽 소안도까지 동행하며 푸근한 시까지 남겨주신 정덕수 선생께도 감사 전합니다. 돌아가신 분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가신 선물인 듯도 합니다... 애경씨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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