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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2015.07.03 23:09

커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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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281 좋아요 0 댓글 3

시쳇말로 난 이제 "입맛 베렸다!!!" 이제 시원찮은 커피를 마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_-

 

작년부터 내 서재 겸 사무실, 초당에서 스페셜티(specialty-COE) 커피 위주로만 커피를 마신 까닭이다. 이제 어느 커피샵에 가든 습관적으로 그 집 커피의 맛을 나름 대로 평가를 하게 되었고, 그 맛이 초당의 커피 맛과 뭐가 다른가를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초당의 커피 맛은 부드럽고, 풍부하다. 다른 곳의 커피 맛은? 쌉쌀하고, 맛의 풍부함이 적다.

 

커피 전문가들에게 들으니 그 차이는 원두의 차이에서 기인한 바 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무슨 원두를 사용하는가를 물어서 답을 하니 그럼 당연하게 맛의 차이가 날 만큼 좋은 것들인데, 차이가 안 나면 이상하단다.-_- 그런 것이었나???

 

얼마 전에 (주)깃든의 대표 박흥호 선생이 초당을 방문했다. 다른 일 때문에 오셨는데, 결국 나중에 대화가 귀결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난 박 선생이 요즘 깊이 빠진 오디오에 관한 것, 다른 하나는 커피에 관한 것이었다. 그 두 가지라면 내가 할 말이 많은 분야다.ㅋ 그래서 아주 긴 대화를 했다.

 

초당의 커피를 마셔본 박 선생이 커피 맛이 특별하다고 했다. 난 그걸 단순한 예의상의 인사 치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건 스페셜티 커피를 써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내가 사용하는 원두들을 몇 가지 선물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전화로 "집에 가서 주신 커피를 마셔 보니 전혀 그 맛이 안 납니다. 그게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뭔가요?"라고 질문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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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세계 최고의 커피인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Gesha/Geisha) 생두 진공팩. 저 황색 팩(게이샤 생두 1kg) 하나는 (Facebook에서 만난) 진짜 커피 애호가인 충북대 박용수 교수님을 위해 구입한 것이다.

 

아니 내가 무슨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닌데, 노하우를 달라신다. 그런 거 전혀 없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고 뭔가 있을 것이라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들러서 그 참에 직접 커피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살펴보겠다는 것이었다. '하 참... 그런 거 없는데...' 난감한 일이나 내가 좋아하는 분이 다시 초당을 방문한다니 그게 좋아서 그럼 다시 오시라했다.

 

박 선생이 초당을 다시 찾은 날, 그분은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하면서 메모를 하는 것이었다.-_- '아이고, 황당해라...' 근데, 메모하는 리스트가 꽤 된다며 그게 이런 이유들이 있어서 좋은 맛이 된 거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그 리스트를 살펴 보니... 대개 커피를 하는 분들이 "좋은 맛을 내려면 이렇게 하는 게 기본'이라고 말한 것들을 내가 실천하는 것 뿐이었다. 리스트의 내용은...

 

1. 사용하는 물 - 정수한 물을 냉장실에 보관했다 쓰는데, 정수시에 제올라이트 볼(balls) 등 음이온을 발생시키거나, 맥반석, 혈토 등의 복합물로 원적외선을 방사하는 볼 등을 홍차를 우릴 때 쓰는 스테인리스 그물망에 넣고, 그걸 정수기 안에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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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컵을 전자렌지에 데운다. - 이게 물이나 열로 데우는 것과 달리 컵 전체를 속까지 철저히 데우는 효과가 있다. 물론 컵을 데우면 안에 든 커피의 따뜻함이  오래 가고 그 맛을 좀 더 좋게 한다. 전자렌지 안에 음식을 데우면 그 냄새가 밸까봐 전자렌지를 커피 컵 데우는 용도 단 한 가지로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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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직접 핫 에어(hot air) 방식의 로스터(roaster)로 중배전해서 사용한다. - 특히 스페셜티 생두를 사서 그걸 직접 필요할 때마다 로스팅하고, 그걸 기본적으로 약 사흘 정도, 혹은 그 이상 숙성된 열흘 이내의 시점(즉 가장 향이 좋은 시점, 게이샤 같으면 배전 후 5일째)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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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진교역이 수입하는 커피는 "황제의 커피"란 레이블이 붙어있는데, 여기서 황제는 커피의 발상지인 에티오피아의 황제를 위한 커피의 의미이다. 가장 좋은 커피는 원래 왕에게 진상하는 것이니...

 

4. 추출 시의 압력을 대개와 같은 19바(bar)로 하지 않고, 더 높은 21바 추출 머신을 사용해서 커피를 만든다. Verzen이 바로 그런 제품이다.

 

5. 추출 시의 물의 온도를 미니멈 섭씨 80도, 맥시멈 85도 정도의 사이에서 맞춘다.(최근엔 90도 이상 95도 이내에서 내리라는 원두들도 등장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들은 과일향을 보존키 위해서 중배전하고, 적당한 물의 온도를 유지해 줘야 한다.) - 자주 비접촉식 권총형 적외선 온도계로 물의 온도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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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카푸치노 등을 만들 때 오리지널 우유를 사용한다. - 풍부한 거품이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저지방으로 만들 거나 칼슘 등의 영양소를 첨가한 우유는 사용치 않는다.(근데 다른 게 첨가된 우유보다 왜 오리지널 우유가 더 비쌀까?ㅜ.ㅜ)

 

7. 카푸치노 거품을 에스프레소 머신에 달려있는 스팀기를 사용하지 않고, 카푸아(Cappua)  전용 거품기를 사용한다. - 거품기가 훨씬 더 풍부하고도 산소가 많이 포함된 거품을 만든다는 걸 알고 그걸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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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흥호 선생은 예전에) 기본적인 드립 커피만 마시던 상황에서 바리스터(?)인 Spark가 약간의 시럽과 시나몬 가루가 첨가된 카푸치노를 무조건 권하기에 마셨는데, 그 이후에 카푸치노도 좋아하게 됐다. 전에 외부 커피샵에서 카푸치노나 라떼를 마셔본 일은 있지만 그들과는 전혀 맛이 달랐다. - 베트남의 계수나무 껍질로 만든 계피이고, 코스트코의 자체 브랜드(Kirkland Signature) 제품이다.

 

9. 에스프레소 기기의 브루잉(brewing) 엔진을 꺼내 자주 세척한다. - 커피의 고소한 맛이 커피에 포함된 기름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추출 시에 의외로 많은 기름이 나오는데, 브루잉 장치의 세척을 게을리하면 그 엔진에 기름이 계속 묻어 층을 이루고, 태가 낀다. 그건 나중에 추출하는 커피에 잡맛으로 끼어들 수 있다. 그래서 구연산을 푼 물에 자주 엔진을 세척해 줘야한다. 이와 함께 정기적인 석회질 제거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아니면 마그네슘의 텁텁하고도 쓴 맛이 커피에 깃든다. 그럼 망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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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커피 추출이 끝나고 남은 찌꺼기를 바로 밖으로 배출시키고, 보관통은 건조 시킨다. - 커피 추출을 하고 에스프레소 머신 내부의 보관통에 담긴 찌꺼기를 오래 두면 (여름의 겨우, 하루만에) 부패하는 일까지 생기는 등, 잡냄새를 낼 소지를 사전에 방지하고, 위생도 고려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내가 그걸 다 받아적지 못 했다. 박 선생은 이런 복합적인 면에서 초당의 커피 맛이 결정된 것일 수 있겠는데 그렇다면, 자긴 그런 골아픈 작업까지 해 가면서 커피를 추출하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 자신이 없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근데 박 선생의 말씀 대로 초당의 커피 맛이 그렇게 결정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책이나 인터넷 정보, 혹은 내게 커피를 알려준 선배들이 기본적으로 그렇게 해야한다고 하는 것들을 무의식 중에 곧이곧대로 실천해 온 것 뿐이었다. 물론 진짜 커피 전문가들이 보면 위의 리스트 중에 내가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지적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래야 더 맛있는 커피를 나나 초당을 찾는 손님들이 마실 수 있겠기 때문이다.^^

 

세상엔 왕도가 없다. 기본을 지키는 게 왕도를 걷는 일이라할 수는 있겠지...

 

Comment '3'
  • ?
    호박 2015.07.04 23:54
    이러다 초당 커피 배급 줄이 복도를 메우는 거 아닐지 우려됩니다...
  • ?
    김용빈 2015.07.06 04:15

    말씀하시는 과정을 보니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게 아닌데요? 이 정도의 정성을 들이신다면 이 세상의 어떤 식재료라도 최고 수준의 맛을 뽑아낼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카페인 과민 증상이 있어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데 초당 커피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번 맛보고 싶네요.

  • profile
    Dr.Spark 2015.07.06 07:34
    그런데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해오던 거라 오히려 전 모르고(?) 살았던 거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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