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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17.04.13 16:51

나의 기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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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065 좋아요 1 댓글 2

나의 기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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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ation-Adamas 30th Anniversary Edition

 

어느 포크송의 제목처럼 되어 버렸다.(송창식의 "나의 기타 이야기"란 노래)ㅋ 내가 대학에 다니던 무렵은 기타(guitar)의 발흥기(勃興期)였다. 외국 포크의 영향으로 한국적인 포크가 시작된 바로 그 때였으므로...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이외의 노래가 존 바에즈(Joan Baez)의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 https://goo.gl/NdYNG6 )인 걸 보면 분명 나는 포크 세대.

 

"기타 못 치면 간첩"이란 얘기가 떠돌던 흉흉한 반공의 시대였기에 내 또래들은 저항정신과 도피의 심정으로 다 기타를 배웠었다.(요즘 다시 기타 문화가 부활하는 걸 보면서 꽤 반가움을 느낀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합창부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노래도 잘 했으니 포크 기타의 시대는 내게 잘 맞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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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cent와 American Pie를 부른 Don McLean이 1969년부터 사용한 마틴.(이 사진은 돈 매크레인이 1975년에 사용하던 마틴이다.) 

 

근데 그 때나 지금이나 문제는 내가 "장비 데몬"이라는 것.-_- 좋은 기타를 가지고 싶었다. 가장 가지고 싶었던 기타는 "마틴(Martin)"이었다. 재즈나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깁슨(Gibson)이나 펜더(Fender)를 좋아했겠지만, 난 포크 계열이었으므로 컨트리 웨스턴 스타일의 포크 기타가 필요했었고, 그래서 난 마틴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그 기타를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돈만 준다고 살 수 있는 시기도 아니었고, 가격도 상상을 불허하는 정도여서 그건 "꿈의 기타"로 접어둬야했을 정도였다.

 

19657343_1601614663212922_2731209975335960730_n.jpg 결국 난 나중에 마틴의 복사판이라는 일본제 그레코(Greco) 기타를 구입했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마틴 기타에 필적하는 일본 기타 장인의 솜씨(Kanda Shokai Corporation / 神田商会)로 만든 것이었고, 가격이 당시의 대학 등록금에 다가갈 만큼 비쌌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그걸 샀고, 지금까지 그걸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레코는 마틴이 아닌 깁슨의 레플리카였다.^^;

왼편 사진의 기타가 Greco이다. 1970년대 초반, 명동의 Le Silence(르 시랑스)란 음악 카페이다. 당시의 경음악 평론가 이백천 선생께서 운영하시던 카페. 이 선생님이 내게 가수를 하라고 하셨었다. 어려서 철 없던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이고, 오른편엔 4월과 5월의 백순진 씨가 앉아있다. 노래를 부르다 막간에 질/답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학창시절을 뒤로 하고 세상밖으로 나오게 되니 그 좋아하던 기타도 멀어져 버렸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면서 얻은 소득도 있긴 했다. 내가 노래하는 걸 보고 반한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왔고, 지금까지 내 곁에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 기타는 항상 내 머리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가 사리라!'는 생각만 하면서...

 

그런 작은 꿈을 가지고 산다는 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일이다. 마음속에 안 두면 그건 영영 내 것이 안 되지만, 마음속에 둔 것은 언젠가는 다가오기 마련이니까...(그래서 작건 크건 꿈은 중요하다. 그게 물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하지만 마틴에의 꿈은 결국 사라져갔다. 이유는 기타가 내게서 멀어져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마틴 기타를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그걸 사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그걸 사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0년 전 즈음에 다시 기타에 대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기타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는데, 그래도 그게 내 맘속 어느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음을 그 때 다시 깨달았다. 은퇴하면 다시 기타를 열심히 쳐 보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는 마틴 기타를 하나 장만하리라고 작정했다. 그레꼬 기타가 있으니 굳이 그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기타리스트로서의 장비 데몬의 열정을 되살리려면 뭔가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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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빨간 스포츠카를 사리라!'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근데 남의 눈치를 보느라고 첫 스포츠카를 검정색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정작 빨간 스포츠카를 살 날이 왔을 때, 난 무슨 변덕인지 그보다 더 튀는 노란색을 택했었다.(노란색은 평소에는 물론이고 비오는 날에도 시인성이 좋아서 사고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등의 부수효과도 있었기에 그걸 선택한 데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런 것처럼 정작 마틴 기타를 사야할 시기가 왔을 때, 난 오베이션-아다마스(Ovation-Adamas) 기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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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마스는 오베이션 기타 회사의 명품 기타이다. 오베이션 기타는 150불에서 600불 정도선의 대중적인 기타이지만, 아다마스 계열은 싸도 1,000불이 넘고 대체로 3,500불 이상하는 제품이다. 즉, 오베이션이 토요타(Toyota)라면 아다마스는 렉서스(Lexus)급의 기타인 것이다. 기타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 마침 아다마스 30주년 기념 기타가 출시되었는데, 난 그 기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오베이션 기타 제작 과정 등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들 - https://goo.gl/mYRvv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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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바로 그걸 손에 넣었다.(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오디오 및 드론 전문가인 윤세욱 선생이 중간에서 수고해 주었다.) 그 기타는 가수 송창식과 신승훈이 사용하는 기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얼마 전에 미국(시카고, 어배너 샴페인)의 지인인 김용빈 선생이 라디오(팟캐스트)를 통해 들으니 그룹 유리상자가 역시 아다마스를 사용하고 있더란다. 가격대가 1,000만 원대에 달하는 아다마스 30주년 기타라고 자랑하면서...(내가 가진 바로 그 기타인데...-_-) 그래서 이베이(e-Bay)에서 이 기타의 가격을 검색해 보니 첫 호가가 8,000불 정도이다. 그럼 오늘 자의 환율로 계산할 때 900만 원이 좀 넘는 가격. 이런 기타를 사 놓고 이걸 묵히고 있으니 그건 죄를 짓는 것이다. 이 기타를 꿈꾸는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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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마스가 비싼 이유는 이 기타가 매우 특별하기 때문이다. 오베이션 사는 찰스 칼만(Charles Kaman/1919–2011)에 의해 1965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로서 원래 에어로다이내머시스트(aerodynamacist)로서 헬리콥터 디자이너였고, 헬리콥터용 베어링을 제작하는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아다마스를 기획하고 설계한 사람은 찰스 맥도너(Charles McDonough)로서 역시 칼만과 동일한 일을 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애초에 아다마스는 당시의 최첨단 소재인 카본으로 움림통을 만들었고, 다른 회사와는 달리 에어로다이내믹한 모양의 둥근 뒷판으로 디자인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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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타를 사 놓고도 요즘 기타를 안 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타를 쳐보려는 시도를 안 한 것이 아니다. 오랜만이나 기타를 잡아보니 대충 칠만 했다. 어쩌다 생각나지 않는 복잡한 코드도 있긴 했지만, 대개의 경우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기타를 다시 치는 걸 포기했다. 이유는 기타를 잡는 왼손가락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손이 아픈데 전엔 어떻게 매일 같이 여러 시간동안 기타를 쳤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미친 짓을 왜 했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다. 그 땐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땐 내가 어렸고,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게 폼이 나 보였으며, 주변의 여자들이 그런 나를 좋아해 줬기 때문이었다는 것.-_- 아주 단순한 이유지만, 목숨을 걸어야할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절대적인 동기가 사라져 버렸기에 기타를 쳐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었다. 손가락만 안 아파도 심심풀이로 해볼 만했으나 일부러 손가락이 견딜 수 없이 아픈데 그 짓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에 그만 두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 해가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내미의 큰 아이, (박)예솔이가 내 사무실 초당에 들러 그 기타를 봤다. 케이스에 담긴 기타를 꺼내 보여주니 어린아이의 눈에도 그게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이게 기타인데 이건 작곡가 베토벤이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부른 악기이다. 바이얼린이나 첼로, 혹은 비올라처럼 그걸 전공해서 음악가, 연주자가 되려고 하지 않아도 취미로 할 수 있는 게 기타이니, 네가 기타를 배우게 되면 이걸 가져다 써도 좋다." 그랬더니 예상 외로 아이가 곧바로 "네, 그럴게요. 기타 배울게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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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당 한 켠의 Adamas 케이스.

 

그게 얼마 전의 일이다. 그걸 안 아이의 엄마가 집 주변의 기타 학원에 전화를 걸어보니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해도 학원에 비치된 작은 기타로 연주를 배워갈 수 있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이는 일찍부터 기타 연주를 배우기로 했다. 예솔이는 학원에 있는 그 조그만 기타를 졸업하면, 일단 그레꼬 기타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아다마스 기타를 치게 될 것이다. 아이가 더 음악성있는 기타 연주를 하도록 하기 위해 기타를 배울 때 클래식 기타로 시작을 한 후에 기타 연주에 관해 뭘 좀 알게 되었을 때 핑거 스타일(finger style)로 전향토록 조언했다.

 

이제 내 주변 사람들은 언젠가 아름다운 아다마스 30주년 기타를 연주하는 예솔이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걔가 기타 천재 정성하나 김하진에 버금가는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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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타를 구입한 사이트이다. 원래 캐나다의 동생(윤세욱)이 내 의사에 따라 구입했고, 거기서 다시 UPS를 통해 한국으로 발송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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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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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빈 2017.06.17 08:47

    처음에 마틴이나 깁슨을 원하시던 분에게 이 기타 사셔야 한다고 막 뽐뿌를 넣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 80년대 대학생 시절 종로의 세고비아 악기사에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가격표를 붙이고 (당시 350만 원) TV에서 신승훈, 송창식 선생이 들고나오는 것만 보다가 드디어 박사님이 속전속결에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손에 넣으시고 나중에 댁에 가서 만져보았을 때는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때 함께 하셨던 분은 히든싱어에서 제주 소찬휘로 요즘 아주 인기인이 되셨더라구요 ^^

     

    도시바의 사실상 최초의 노트북 T1000SE(일본이름 DynaBook)를 저의 말만 믿고 구입하시고, 제 뽐뿌가 이 기타에까지 이어지니 개인적으로는 참 영광스럽습니다.(제가 존경하는 분이 저의 권유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신 것 같아서요).  한 가지 첨언하자면 Ovation 이 $200에서 $600 라인은 따로 Celebrity나 Applause라는 라인이 있구요.(Gibson에서 만드는 Ephiphone처럼) $600에서 $2000 사이로 Ovation이 있고, 그 위로 까마득한 Adamas가 있습니다.  Celebrity나 Applause는 대부분 한국에서 생산을 했었는데요, 한국에 있을 때 감히 오베이션을 가질 형편이 못 되었던 저는 Celebrity와 Applause 여러 대로 대리 만족하다가 미국에 와서야 드디어 Ovation을 손에 넣었습니다.

     

    손녀분께서 정말 멋진 선물을 받는군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페라리처럼 기타의 세계에서 페라리나 벤틀리 어쩌면 부가티급인 아다마스를 쓰게 된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격세유전으로 박사님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손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profile
    Dr.Spark 2017.06.18 09:20
    좋은 기타를 목표 의식이 없어서 안 치고 있는 게 참 안타까우니 아이라도 그걸 사용케 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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