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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 바른 용어
2012.05.22 16:56

번역가의 번뇌

조회 수 2589 좋아요 47 댓글 1

번역에 대한 얘기를 <바른 우리말> 카테고리에 올리는 것은 근대 이래 (혹은 그 훨씬 전부터도) 외국 말글의 유입이 우리말에 끼친 영향이 큰 것을 알고 (이것은 어떤 나라라도 마찬가지) 번역의 문제를 바른 우리말을 모색하는 길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冬天城市(Winter city) 에서 많은 것을 배우니 저도 뭔가 하고자 일본말을 다시 배우고 엉성한 번역도 올리다가 우리말이 애틋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니, 저를 키운 것은 과연 팔할이 스키로군요. (아! 어머니 그런 뜻이 아니라요.)

이태리 말로 'Tradurre, tradire' 라 하면 '번역자는 곧 반역자' 라는 뜻으로서 여러가지 상황에서 비롯된 통찰이겠으나 (주로 통역인이 적과 내통하는 상황이 아닐까) 문장의 번역이 잘못되어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오해와 왜곡이 후일 문화에 번지는 폐해도 그 상황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지요.

출판물의 양이 늘고 교육 수준은 높아졌으나 좋은 번역은 오히려 많지 않은 걸 봅니다만, 번역은 대상이 되는 말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에도 넓은 지식이 있어야 함에 그치지 않고, 자기말도 잘 알아야 하는 쉽지 않은 것이라서 과오와 왜곡은 쉽게 생기는 것이겠지만, 아래에 예로 올리는 세가지 경우는, 제가 깜짝 놀랐던 경험으로, 역자의 무지와 나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알면서도 일부러 다르게 옮긴 경우입니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미국 남부의 깊은 골짜기에서 자란 처녀로, 제 고장의 종교, 습속의 위선을 적시하는 영특한 글을 많이 남겼으나, 안타깝게 불의의 병으로 일찍 가야만 했던 미국 문단의 보석이지요. 오코너의 단편들을 읽으라는 숙제를 받고 그 중 하나를 읽는 중에 어 이건 익숙한 얘기인데 (문학은 결국 다 한가지 원형의 변주라는 의미가 아니라) 분명히 그로부터 십여년전 <미국 단편선> 인가의 제목으로 된 낡은 책에서 읽은 얘기인데, 그게 오코너였나 보군. 미국 남부의 느릿한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긴장시키는 이야기의 그러나 푸근한 결말을 다시 맛볼것을 기대했는데, 웬걸! 끝맺음이 완전히 달랐어요!

<The Life You Save May Be Your Own>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정신이 박약한 장성한 딸을 홀로 거느린 노파 앞에 웬 청년이 나타나, 외팔이 주제에 손재주도 좋고  도덕관은 고고하여 노파의 마음을 사로잡아 딸을 떠넘기게 하는데, 이 놈은 신혼 여행을 한답시고 차와 돈을 얻어내어 튀고요, 덩치만 커다란 여아 (그러나 천사같이 생긴) 는 중간에 떨구지요. (세살박이 아기와 같은 이를 방기한 결과는 상상하기 싫은 것.) 낡은 우리말 번역본은 사기꾼이 어떤 계기로 깨달음을 얻고 서둘러 차를 돌리는 것으로 맺어요. 딸을 구하려고요. 자신도 구원 받는 거지요..

그러나 원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인을 버리고 길에서 호로자식을 하나 태우는데 이 놈이 지 에미에 대해 어찌나 흉악한 말을 내밷고 욕을 하는지 청년은 혼비백산하나, 정신이 돌아와도 지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저 자기 신께 이 땅에서 惡種들을 쓸어내시기를 청원하면서 차를 가속합니다. 톡 쏘는 결말로 남부의 무지와 위선을 드러낸 결말을 역자가 바꾼 것은 아마도 '어린' 독자들이 놀라고 상처 입음을 걱정한 마음 씀씀이였겠으나, 대왕 세종 이래 우리를 '어리게 '보는 것은 사양합니다요.

다음의 책은 제목도 거론하지 못하겠습니다요. 제1 회 무슨 무슨 번역과 관련된 상인가도 받았는데, 원저자는 <아웃사이더>의 지은이로서, 책의 내용은 흉악한 범죄 사례들로 비추어 본 인류의 역사. 이 책은 다시 다 읽지는 못하고, 어떤 종교의 인물에 관한 인용이 필요해서 그 부분만 찾아 보았는데 번역본엔 없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 인물의 (그가 존재했었슴을 저도 믿으나, 그 믿음은 그 분이 사람으로 이 땅위에 섰었다는 史實 이상은 아니고, 그의 삶을 눈물나게 경외하나, 그렇게 살지는 못하겠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과 정반대의 초라한 외모를 전하는 그 몇 줄을 역자는 옮기지 않은 것이지요. 저도 두려워서 더는 못 쓰겠습니다요.

만주말을 배우고 싶어 헤메다 책 <말의 무늬> 를 찾았고 (알타이어 계통 말들을 좇아 우리말을, 또한 국경 너머 이웃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려는 책) 알음알음하여 지은이 최범영 박사와 페이스 북 친구까지 맺을 수 있었어요. 그 서비스가 그렇지 않습니까 '담벼락' (웹 서비스가 붙인 용어 중에 이것은 참 괜찮지 않습니까) 에 친교를 맺은 분들의 근황이 올라오는데, 어느날 이 분이 올린 반야심경 진언을 보았지요. 그리고 깜짝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위로부터 산스크리트, 그 소리내기, 한자로 옮긴 것, 그리고 우리말 옮김인데요 한자는 범어를 음역한 것, 이에 우리말 진언이 바탕을 둔 것을 알 수 있지요. 몇 가지 사실이 더 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표준말 읽기는 '揭諦' 를 jie di 로 읽어 소리가 멀어졌고요 오히려 우리식 한자 읽기가 '게체' 로서 원래 범어 발음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체게체 파라게체가 어떤 과정을 겪어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되었는지 궁금한데,  다음의 재밌는 보기가 힌트가 되지 않을까요. '모지사바하' 는 음가 b 를 m 으로 바꾼 것으로, 거룩한 진언에 차마 여성의 국부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을 넣을 수 없었던  번역가의 난처함. (고교 삼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선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보리수' 등 단어에 그런 연유가 있다고 하셨지요.)

원문의 뜻과 소리에 공교롭게 들어맞게 옮기고 (갔지 갔지 빨리갔지) 우리말이 범어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재밌는 의견도 보았습니다만, 이것은 번역에 중역을 거듭한 진언을 외었던 사정이 답답해 유머로 환기하자는 기분이 아닌가...

오묘한 진리를 애써 어려운 문자를 통해 깨달으려고 하기 보단, 차라리 원문에 다가가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는 것은 제가 혼자 해 보는 생각입니다. 특히 만트라는 뜻을 새기지 말고 우주의 소리를 내는 거라는데요.

Comment '1'
  • ?
    박순백 2012.05.23 20:04
    [ spark@dreamwiz.com ]

    재미있네요.^^
    알고 보면 그런 뒷얘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