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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12.11.20 07:29

골뱅이

조회 수 3070 좋아요 15 댓글 12
지난번 홍어 글을 올렸을 때, 사실 더 하고픈 얘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써야할 지 몰랐어요.

(홍어 하면 생각나는 사내도 있는데, 서쪽 佛國으로부터 방문했을때, 나름 좋은 것 대접한다고 데려간 한식당이 한 사람에 한 점 내 온 홍어를, 입에 넣자 쿨럭 도로 토한, 은발에 훤칠한 남자로, 무슨 이유로 이혼하고 팔백리 떨어져 있는 딸을 한 해 겨우 두 이레나 보면 그렇게 좋다고 하더니, 그 해 늦게 들리는 말로 그들 시골에 토요일밤에나 여는 무도장 (보통 땐 버려진 창고)에서 신나게 흔들다가, 혹은 고독히 독주나 들이키다, 돌아가는 차는 왜 그리 밟았길래, 집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을텐데 (아니면 흔히 말하듯이 지루한 나날들로부터 벗어나려고?)  길을 침범한 나무에 (제가 건너갔을 적엔 나무에 나무Arbre! 라고 써 붙였길래, 아니, 나무가 나문지 모를까봐? 했더니, 그 길들은 몇 백 년 전에는 마차가 다니던 길인데, 갸날펐던 가로수가 비대해져 길을 협소하게 하니 (말馬은 잘 피해 갈텐데) 성급한 운전자가 충돌이라도 할까봐서, 그러더군요.) 아니나다를까 나무!에 아주 제대로 들이받아, 다행히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어요.

팔백리 멀리 떨어져, 애비의 부음을 받았을, 짚색 금발 훌쩍 말랐을 열 세 살 딸은, 이제 스무살을 넘겨, 또 고독한 아이를 낳겠네요.)



저 에일리언 만든 이 못지 않게 똑똑하고 날랜 감독이 (서반아語 'autor' 는 영어 'author'와 친척인데, 작가도 뜻하고, 창조주라는 뜻도 있다는데요. 이 감독은 서반어말 꼬리표를 붙여 '작가(autor)' 로 부르고 싶어요.) 한국에 만든 <괴물>. 송강호가 몰래 골뱅이 (깡통을) 까 먹는 장면이 있는데, 없어도 아쉽지 않았을 장면을 명민한 작가가 왜 공들여 집어넣었을까, 하면, 점액이 뚝뚝 떨어지는 골뱅이가 괴물 유충을 연상케 하니, 그렇다면 괴물은 딸을 삼켰고, 송강호는 괴물의 자식(을 닮은 골뱅이)을 먹는다? 더구나, 그럴 상황이 아닌게, 딸은 생사도 모르는데, 지 배가 고프다고, 하필 끈적, 미끈한 골뱅이에 게걸 드는 무심. 인간.

에일리언의 먹는 행위를 보고 제가 생식生殖하는 어미는 과연 그악스럽구나, 했는데, <괴물>은 먹는다는 의미를 더 확장하지요. 아닌게 아니라 이 작가는 '어미(<마더>)'도 만들었군요.

<할복(이치메에(一命)>이라는 일본 영화에도, 이야기 흐름과 동떨어져 갑자기, 무심無心히 대나무 가시로 주먹만한 골뱅이를 파내, 야윈 볼 튀어나오게 우겨 놓고, 우물우물, 여전히 무심하게, 꿀꺽 삼키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을, 왜 넣었을까... 몇 달만에 알 것도 같더라고요.

'목숨(이노치(命))' 이라 불러도 좋았을 이 궁상맞은 이야기에 제게 가장 눈에 밟혔던 장면이, 갓난 것을 먹이려고 칼(武士刀!)하고 바꾼 달걀을 소중히 품은 젊은 아빠가 집에 가다, 철없는 애놈들이 부딪혀 와 떨어져 깨진 계란이 못내 아까와, 드디어 엎드려 핧아먹는 것이었어요. 武士가 개처럼. 먹어야 사는 건 때로 그처럼 비루하니.

야쿠쇼 쇼지는, 딱히 권력자라고 할 수 없는, 상상想像 부재不在 아랫것 무사들과 달리 시스템에서 밀려난 인간들을 동정할 줄 알지만, 가진건 혈통뿐인 어리석은 주인에게 진력 충성하여 체제 비호하는, 그러한 인물의 분열을 표정없이 다리를 절뚝대어 기가 막히게 드러냅니다. (이 배우 아마 절름발이 흉내를 우리 스키어들 거울 앞에 숏턴 연습 하는 만큼 했을거예요.)

이 사람이 왜 혼자 소라를 파 먹을까 (그런 장면을 넣었을까): 빈자는 배곯는데 혼자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건 무심하다, 그것을 하필 더럽게 생긴, 구불구불 창자딸린 소라를 입에 우겨 넣음으로 혼자만 먹는 추악을 비추고, 허나, 권력자와 가난뱅이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 그렇다고 내면 표출한답시고 징징댈 순 없으니, 하릴없이, 또 무심하게 골뱅이나 파먹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어렸을 때 본 만화 한 컷이 떠올랐는데, 꿈틀대는 굵은 지렁이를 뎅겅! 반토막 내어, 점액 흐르는 질긴 살점을 떼어 내어, 우물거리는 甲蟲. 벌레는 표정이 없으니 눈물을 흘려, 그런 걸 먹을 수 밖에 없는 신세를 한탄합니다.)

제가 11월 한국에 가면 가장 맛있는 것이 도루묵이에요. 구워먹어도, 찌개로 먹어도 맛있는데, 익어 부풀어 배밖까지 튀어나온 분홍색 알들을 씹어 터뜨리는 게 별미이지요. 그런데, 어린 딸이 이미 알세포를 품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다음엔, 반드시 소주로 입안에 끈적하게 남은 것을 씻어내립니다.

굴은 또 어떻구요. 11월이 제일 맛있어요. 영국의 어느 싯객詩客은 '이런 걸 처음 줏어 먹은 인간은 무지無知 용감했을 것' 이라 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무도한 놈이 잔뜩 끓어올려 겨울 뒷간 벽에 냅다 뱉어 붙인 가래를 닮았는데, 이게 제철에 맛있는 이유가 精液이 가득 찼기 때문이랍니다.

만일, 입맛 돋군다고 생굴을 한 움큼 먼저 먹고, 알 밴 도루묵을 구이라도 해서 잔뜩 먹는다면, 제 뱃속에서 쿨암리타Kulamrita 라도 만들어지겠군요. (요즘 마침 박상륭 작가 - 또 온 존경을 모아 'autor'-의 <평심>을 다시 보는데, 거기 쓰신 것을 보고 또 이리 아는 척 하네요. 움베르토 에코 작가의 <푸코의 진자> 에도 나옵니다.) 제 뱃속에서 굴과 도루묵이 결혼, 혼혈 괴물 새끼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그리하여 저 자는 사이에 제 배를 찢고 튀어나와...꾸엑!)

괴물은 고아성을 먹고, 송강호는 골뱅이를 먹고, 에일리언은 알 까겠다고 사람 먹고, 저는 알 밴 도루묵 먹고 (도루묵은 그 전에 다른 누구를 먹었을테고.)

I am what I eat. (이게 원래는 뜻이 다른데?) 나는 너, 너는 나. 남의 살 먹고 찌운 저의 살을 나중에 뉘께 공양할까요.
Comment '12'
  • ?
    유신철 2012.11.20 15:05
    [ sinclair@chol.com ]

    김윤식 선생님의 상상보다 강도는 훨씬 약하지만
    알밴 도루묵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한가지..

    어릴적 어디선가 포도씨가 사람 뱃속에서 포도나무로 자라는 만화를 보고는
    나도 혹시 실수로 포도씨를 먹게 될까봐, 포도 한알씩 조심조심 해부해서 먹다 지쳐서

    그래서 지금까지도, 포도를 먹지 않는다는... -_- ;

  • ?
    김윤식 2012.11.20 18:51
    [ goldof7seas@gmail.com ]

    유 박사님, 동충하초이네요.^^
  • ?
    방형웅 2012.11.21 08:04
    [ ovrcrt@hanmail.net ]

    저는 유신철 박사님과 반대로 뱃속에서 포도나무가 자랐으면 해서 포도를 통째로 넘기기 시작했죠.ㅋ

    덕분에 지금도 씨를 골라내지 않고 포도는 껍질만 뱉어냅니다.^^;
  • ?
    박순백 2012.11.21 09:05
    [ spark@dreamwiz.com ]

    형웅, 포도의 검정색 껍질에 항산화에 좋은 안토시아닌이 엄청나게 많은데, 덜 늙으려면 다른 거 다 버리고
    껍질만 먹지 그래?? 하필 그걸 버려?ㅋ
  • ?
    방형웅 2012.11.21 09:09
    [ ovrcrt@hanmail.net ]

    박사님, 껍질을 먹어선 뱃속에서 나무가 안 자랄 것 같아서요.ㅋ

    포도껍질에 안토시아닌이 많다니 앞으로는 껍질까지 먹도록 하겠습니다.^^

  • ?
    한상률 2012.11.21 10:38
    [ 19940@paran.comm ]

    저는 껍질에 있는 좋은 성분은 와인으로 섭취합니다. ^^
  • ?
    박순백 2012.11.21 13:48
    [ spark@dreamwiz.com ]

    형웅, 문제는 유기농(그것도 제대로 된 유기농) 포도가 아니면 껍질에 농약 성분이 있다는 거.-_-

    그래서 그걸 초음파 세척기로 세척한 후에 껍질을 먹어야 돼.(우리 집은 그렇게...) 한 선생 조언
    대로 와인을 마시는 게 같은 이유. 안토시아닌은 과일의 검정색을 결정하는 색소이므로 검정색
    과일이나 야채에서는 다 나오니까 그런 걸 골라 섭취하면 됨.
  • ?
    김윤식 2012.11.21 14:17
    [ goldof7seas@gmail.com ]

    죽고 사는 얘기를 썼더니 포도껍질을 논하시다니~ㅠㅠ
  • ?
    방형웅 2012.11.21 16:22
  • ?
    김윤식 2012.11.21 19:02
    [ goldof7seas@gmail.com ]

    역시 방 교장님 ㅋ. 양배추는 중국말로 대두채(大頭菜, 썬 단면을 보니 그렇게 생겼네요.)

    다음엔 사람 먹는 얘기를 할까요?^^
  • ?
    박순백 2012.11.21 20:20
    [ spark@dreamwiz.com ]

    형웅이는 창고까지 다 뒤져서 관련 정보를 찾아내는구나.-_-

    적양배추도 좋은데, 포도를 좋아하면 초음파 세척기 하나 작은 걸로 사.
    야채 씻는 건 너무 크고, 보석 세척하는 건 너무 작고, 중간 크기 중국제로
    사면 얼마 안 함.
  • ?
    조일희 2012.11.23 10:21
    [ cho9792@yahoo.co.kr ]

    골뱅이....

    종합시장 원단매장 이름입니다.

    절친인데...ㅋㅋㅋㅋ

    생물학적인 것과는 상관없지만 .... 반가워서 댓글 답니다..


    골뱅이 = 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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