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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2012.10.06 07:31

SNL 'US"

조회 수 2608 좋아요 27 댓글 2
SNL에 싸이가 나온걸 봤어요. 한 밤 중에 잠이 깨 까망베르를 먹으면서 채널 돌리다 멈췄지요.

이제 일본 경제는 망가졌다고 하지만, 전에 미국으로 수학여행 간 일본학생들이 맥도널드가 눈에 띄어 그랬답니다. “마꾸도나루도가 미국에도 있네?!” 조금 다르지만, 아류를 먼저 접한 사람이 아류를 원조로 아는 현상 (보르헤스가 붙인 이름이 있었는데 까먹었지요.) 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SNL 은 원래 미국 것이죠. ‘Live from Ner York, Saturday Night Live!’ 외치며 시작하는. 이것에 ‘Korea’ 를 붙여 기획한다는 대자보를 연초부터 보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원조에 굳이 ‘US’ 를 붙여 구분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고교생일 때 한국 TV 는 대개 재미가 없었어요. <옥수수빵 파랑> 에서 이우일도 그랬다고 밝혔듯이, 야밤에 몰래 일어나 야한 것 안 하나 AFKN을 틀고 새벽까지 눈 붉히며 앉아 있곤 했습니다. 실은 요즘 한국 케이블 TV보다도 안 야해서, 기껏해야 <콜렉터> (윌리엄 와일러) 나 <록키 호러 픽쳐쇼> 정도나 봤지요.

그러다가 토요일밤에 하는 SNL 을 알게 됐는데, 못 알아들어도 어찌나 재밌던지요. 제가 시청할 당시 현역으로 가장 웃겼던 사람은 Phil Hartman 하고 Chris Farley 였는데, 둘 다 죽었어요. 그 전 세대는 John Belushi 하고 Richard Prior. (이 사람들이 다 죽거나 병에 걸렸기 때문에 ‘SNL 의 저주’ 란 얘기도 있었고요. Richard Prior 혼자 하는 standing comedy 보다 웃다 죽을 뻔 했습니다. 유튜브에 있어요.) 가장 웃기는 사람들이 마약과 총기사고로 죽은 것은 미국의 병이고요.

매주 한 명의 유명인 (대개 배우) 과 뮤지션이 게스트로 나오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죠. 워낙 많은 스타가 나왔지만 저는 드 니로가 기억에 남네요. 배우들을 불러 영화에서 했던 역을 비틀어 자기 자신을 패러디 하곤 했는데, 드 니로는 역시 화면 밖으로 넘치는 폭력의 재탕으로 자신을 희화화. 아, 2002년이었나, 앨 고어가 게스트로 나왔어요. 놀러 나가느라 못 봤지만.

또 하나의 재미는 매주 빠지지 않고 대통령, 대선 시즌엔 유력 후보를 놀리는 것이었는데, ‘저래도 되나…?’ 할 정도로 심했어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엔 아버지 부시가, 90년대는 클린턴이 매주 등장하는데, 대통령을 저리 조롱해도 되나 했지요. (되더라고요. 득표에 영향 주는 것도 아니고.) 땡전 뉴스 시대는 이미 지났었지만, 한국 TV 는 역시 경직, 엄숙했으니, 하릴없이 미국 코미디나 보며 통쾌해 한거죠.

에릭 클랩튼과 너배너를 처음 본 것도 SNL 였습니다.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저 밴드가 나와서 무대 (좁아요) 위에 연주하는 게 좋았던 거죠. 죽이는 브라스 SNL 밴드의 리더 G.E. Smith 도 기억 나네요. 왕년의 코미디언 정부미 씨 닮은 이 합죽이 기타리스트가 제 기타 히어로였습니다. 이들이 연주파라면, 카일리 미노그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율동은 또 어찌나 묘했던지요.

그런 SNL 에 싸이가 나온거예요. (SNL 을 한글 자막으로 본 것도 처음인데, 제가 거의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싸이만큼 SNL 에 어울리는 인물도 없겠네요. 웃기지, K-pop과 한국 문화 패러디지, B 급에다 자기 희화화까지. 게다가 ‘뮤지션’ 까지나.

이 사람이 노는 것은 옛날 말뚝이 광대놀음 같은 것이 아닐까… (출신 성분이 서민은 아니지만) 지배층 무능과 위선을 비꼬았던 말뚝이 말입니다. 더 나갔으면 해요.  중국이 아무리 경제성장을 해도 15년 안에 내놓을 수 없는 모든 것이 이 사람한테는 있어요.

이제 저는 케이블 TV 로 SNL ‘US’ 에 한국 사람이 나온 걸 보며 홈플러스에서 온라인 주문한 매일우유 까망베어를 우물거렸다는 얘기를 인터넷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했던 일들.

변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한국 코미디에서 대통령, 대선 후보들 희화화를 볼 수 없다는 것하고, (지난번 대통령 때는 개콘에 그나마 친근한 캐릭터가 있었지만… 혹시 코미디가 신문 정치면보다 웃길 자신이 없어서 넘보지 않는 것일 수도.) 제가 가끔 한 밤중에 일어나는 것 뿐이네요. (야한 걸 보려는 건 아니고요.)
Comment '2'
  • ?
    강정선 2012.10.06 12:43
    [ 1629kk@hanmail.net ]

    가만이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등 대통령 목소리 전문 으로 흉내 풍자하는 개그만들이 많았고 인기도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볼수가 없네요. MBC등 언론이 어용화되고 권위주의가 다시 싹트는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엔에서 한국언론자유가 퇴보하고있다는 발표도 있었고 ~~~올 겨울은 잘 뽑아야 할것 같습니다.ㅎ

  • ?
    한상률 2012.10.18 14:39
    [ 19940@paran.comm ]

    저도 중고교 때부터 대학교 다닐 때까지 국내 방송이 12시에 끝나면 에이에프케이엔(당시 2번 채널)으로 돌려서 보고는 했죠.
    아놀드 슈워츠네거(슈바르첸너게라고 해야 하나...)가 나와서 어울려 코메디를 하다 아일 비 백 하면 광고 하고, 광고 끝나면 아임 백 하고 나와서 코메디 하던 게 기억납니다.
    그 외 즐겨 보던 게 데이빗 레터맨 쇼였고요. 위의 록키 호러 픽처 쇼도 자주 봤습니다. 그거 보면서 영어 듣기가 조금 늘기도 했고요. 요즘 티비엔에서 하는 SNLK도 장진 감독이 꽤 세게 정권을 비틀고 있긴 한데, 원판보단 좀 미흡한 느낌입니다.

    국내 정치인들을 비꼬던 3김 퀴즈는 최양락의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당사자들이 은퇴하고 사망하며 없어지게 되었죠.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흉내를 잘 내던 배칠수도
    두 분이 돌아가시자 "앞으로 그 분들 흉내는 안 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더 듣기 어렵게 되었고요. (그 이후 특별한 때에 흉내내기를 한 적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일상적으론 안 합니다)

    지난 주 개콘에서 용감한 녀석들이 대선 후보를 겨냥한 개그를 한 것을 어떤 이상한 자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고발을 했더군요.
    "내가 꿈이 잘 맞는데, 간밤 꿈에 나온 당선자는..."하다가 입을 막히는 바람에 아무 얘기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말길이 트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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