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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용으로 새로 나온 로시뇰 사의 월드컵 스키 중 회전용인 9S WC Ti를 몇 번 타 봤습니다. “몇 번 타 본 거 가지고 그걸 리뷰할 수 있겠냐?”고 하실 분들도 없진 않을 터이나, 저는 리뷰할만하다고 생각할 만큼 타 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종류의 스키는 전부터 몇 번 타 왔었기에 제가 워낙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이 월드컵 스키(WC ski)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된다고 해도, 양판용의 경기용 스키를 포함한 일반 스키들처럼 아주 많은 것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종류의 스키가 가진 높은 완성도가 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이 사진의 스키입니다. 05/06 Rossignol 9S WC Ti(Golden T-Box) 165cm. 이 사진과 아래의 스킹 사진은 모두 우철훈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것입니다. http://blog.khan.co.kr/photowoolee/4779728

월드컵용 스키들은 처음 보면 왠지 허접해 보인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대량생산되는 다른 스키들에 비하여 왠지 마무리가 좀 깔끔하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스키들은 공정상 자동화가 많이 이루어져서 매끈하게 나옴에 비하여, 월드컵용 스키들은 수제(手製) 스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제이니 양판용 제품들보다 더 많은 손이 갈 수도 있고, 더 마무리를 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잖아도 제작 상 시간도 더 걸리고, 정성도 더 들여야 하는 스키이다 보니 로시뇰 같은 큰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손이 좀 덜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아래는 제작사의 9S WC에 대한 설명 자료의 일부.)



하지만 월드컵용 스키를 적절히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이걸 타 보면 몇 번의 활주만으로도 이 스키의 진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가장 큰 차이는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마도 ”강력하다.“는 정도? 이를 다룰 능력이 좀 부족한 분들이 이런 류의 스키를 타면서 처음하는 말은 대개 ”왜 자꾸 몸이 뒤로 빠지지요?“라는 것입니다. 후경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스키가 너무 잘 나가기 때문입니다.(대개 "이 스키를 도저히 다룰 수 없었다."고 하는 분들은 초장부터의 가속으로 인한 계속된 후경을 잡는 일에만 전념하다가 스킹을 제대로 못 타는 경우이지요.^^)

9S WC Ti가 잘 나가는 이유는 스키가 딱딱하기 때문에 연한 스키처럼 설면의 미세한 굴곡을 따라 달리지 않고 내달리며, 스키가 비틀림에 워낙 강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날이 먹혀 카빙다운 카빙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스키의 바닥도 거칠거칠하게 소위 월드컵 베이스 튜닝인 빗살무늬식의 스트럭처링(structuring)이 되어 있어서 속도를 더합니다. 어쨌건 이 스키의 화두(話頭)는 뭐니뭐니해도 빠른 속도입니다. 월드컵 선수들은 데몬스트레이터와는 달리 화려한 기술이나 기본기에 충실한 멋진 스킹 모습보다는 등위(等位)를 정하는 관건인 속도만 빠르면 되기 때문에 그런 스키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속도 위주의 스키를 왜 아마추어가 타려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내 맘이지.”라고 일축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인간성 더럽네.’라는 생각을 상대가 할까봐, 조심스레 그 장점을 열거하곤 합니다.^^ 아마추어로서 제가 열거하는 장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스키가 강하지만, 대단히 섬세하다는 것입니다. 강한 것과 섬세하다는 것은 왠지 배치되는 성격 같기는 하지만, 실제로 강하지 않으면 섬세한 조작(컨트롤)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강해야 스키어가 스키에 전하는 물리적 특성이 곧바로 변화나 흡수가 없는 가운데, 전달되고 그것이 설면에 전달되어 스킹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스킹 기술이 높은 사람이 중급자용 스키를 타면 폼 자체가 상급 스키를 탈 때보다 “헐렁해” 보이게 됩니다. 이유는 체중이나 힘의 전달에 있어서 스키가 부드럽기 때문에 즉각적인 힘의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결국 그 스키어는 그런 특성을 가진 스키에 맞춰서 타야만 하기 때문에 강하고, 절도있는 동작보다는 여유는 있으나 뭔가 흐트러진 것 같은 엉성한 자세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아래는 제작사/수입상의 홈 페이지에 실린 관련 내용.)



어쨌건 다른 스키를 탈 때는 이 스키를 탈 때만큼 경건한(?) 자세가 되기 힘듭니다. 이 스키는 여차하는 순간에 컨트롤을 놓치는 경우, 더 애로가 많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매시각 최선을 다해서 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위의 사진을 봐도 제가 이를 악물고 타고 있는 것이 잘 보이는데, 그게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Athletic한 월드컵 선수들이 타는 스키를 주말 스키어가 타려면 이 스키를 온 정성을 다해서 제대로 밟아줘야만 합니다.("밟는다."는 스키어들의 표현은 균형을 잘 잡고, 정확한 자세로 체중을 정확히 실어서 스키에 전달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 그러니 나름 대로 밸런스와 힘을 정확한 타이밍에 강하게 실어줘야하기도 하고요. 사진의 저, 아주 진지한 모습 아닙니까?^^;


- 이렇게 이를 악물고, 밟아야...


- 스키가 이렇게 역(逆) 캠버(camber)가 되게 휘어집니다. 이렇게 스키를 밟아주지 못하면 이 스키로 스킹을 하는 데는 애로가 많습니다. 스키가 제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이것이 스키어보다 앞서서 나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9S WC를 타면서 희한한 것은 이 스키가 항상 캡(cap) 스키가 아닌 샌드위치(sandwitch) 공법으로 만들어지고, 스키가 대단히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샌드위치는 아주 구닥다리 공법인데, 아직도 그걸 쓰는 이유는 그런 방식이 에징(edging)을 할 때 더 강한 에징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에징도 중요하지만, 스키어의 체중을 스키 전체로 균형적으로 배분하는 능력도 꽤 중요한 것인데, 이런 능력은 오히려 캡 스키가 더 뛰어납니다.

바로 위의 단락에서 이 스키가 부드럽다는 얘길하고, 그 전 글들에서 이 스키가 꽤 강하다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실제로 스키를 벗어들고 스키의 선단을 손으로 잡고, 말단을 바닥에 놓고 여기저기 눌러보면 이건 중급자용 스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강합니다. 그 허리 부위의 탄력이 대단하다는 점에서 뭔가 다르다는 것이 쉽게 느껴지지요. 허리 쪽은 대단히 강합니다. 지난 시즌 제품도 그랬는데, 이번엔 RK SL WC Plate라는 것이 채용되어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 플레이트는 스키화 아래, 그리고 스키의 허리 위에 장착된 더비(derby)를 가리키는 겁니다. 부드러운 가운데, 강한 탄력을 제공하고, 또 강하게 에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원래 강하기만 한 것은 유(柔)하면서도 강한 것에 미치지 못하기 마련이지요.

지난 시즌까지는 제가 155cm짜리 9S WC를 사용했습니다. 지난 시즌에 데몬용 스키로서의 월드컵 버전인 10DMO Ultimate을 165cm짜리로 탔고, 또 05/06 버전의 Zenith 10D Ultimate 165cm짜리를 역시 지난 시즌 말에 미리 타봤는데, 별 문제가 없더군요. 길이가 10cm 정도 차이가 나면 대개는 그 길이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기 마련입니다.(10cm는 커녕 같은 스키에서 5cm만 길이가 달라져도 그 느낌이 심하게 옵니다.) 길이를 이렇게 늘린 이유는 월드컵 규정이 바뀌면서 남자 선수들은 회전용 스키의 최소한의 길이가 165cm로 길어진 까닭입니다. 물론 저는 월드컵 선수는 커녕, 선수도, 지도자도 아닌데 왜 월드컵 선수들이 길이를 늘려 탄다고 그에 영향을 받았는지 저 자신모르겠습니다.-_- 일단 그런 이슈에 영향을 받아 길이를 늘려 타도 별 지장이 없었으므로 그냥 그렇게 타기로 한 것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용 스키를 선택할 때 9S WC의 길이도 165cm짜리로 선택했습니다. 위의 제품 제원표에서 보셨듯이 이 스키의 155cm짜리는 머리/허리/꼬리가 112-64-98mm이고, 회전반경 R=11.5m입니다. 그에 비해서 165cm짜리는 117-65-104mm의 비례이고, R=12.2m입니다. 좀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미리 165cm짜리 데몬용의 WC 버전을 타 봤으니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결과는??? OTL이었습니다.ㅜ.ㅜ 올해의 스킹 첫 날에는 두 시간 정도만 데몬용인 제니스 10D를 탔는데, 그 다음에 갈 때부터는 9S WC 스키를 가지고 탔습니다. 9S WC 스킹의 첫 날은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제가 스킹 감각을 잃었습니다. 제가 그 스키를 타는 걸 보면서 많은 분들이 “올해 이 스키는 어떤가요?”라고 물으셨는데, 제가 똑 부러지는 대답을 못하고 좀 얼버무렸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그 10cm가 늘어난 스키를 가지고 좀 헤맨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과 비슷하게 탄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저는 스스로 알잖습니까? 제가 어떻게 타고 있고, 어디서 헤매는지를... 하여간 제 스스로의 평가는 OTL(좌절)이었습니다.-_-

물론 전혀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제가 원하는 그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회전반경보다 더 길어지는 것은 물론 생각처럼 안 돌아주니 그걸 힘으로 돌리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그런 안 좋은 경향이 생기다보니 어떤 때는 폴을 터치하는 타이밍까지 놓치는 일도 생기더군요. 폴을 찍어야하는데, 폴이 몸 앞으로 다 안 나간 상태에 있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아, 쓰...-_- 괜히 바꿨네.’하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에 연이어 ‘내가 뭐 선수도 아닌데, 선수들이 길이를 늘려 탄다고 거기 부하뇌동한단 말인가??? 에구, 이 놈의 속물근성(snobbism) 때문에 망한다니까...ㅜ.ㅜ’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그 날은 그냥 그렇게 탔습니다. ‘새 스키를 시즌 처음으로 타니 그렇지 뭐.’하는 마음의 위안을 스스로 가지려 노력했지만, 그게 그렇게 되겠습니까?(제가 장비를 바꿔 시즌 처음 타는 거라서 스킹이 마음 대로 되지 않은 날은 지금까지 없었고, 남들이 시즌 첫날이라 스킹이 잘 안 된다고 하면 속으로 ‘거짓말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즌 첫날인데, 장비를 바꿨더니 잘 안 된다.”는 정도의 얘기는 최소한 50% 정도는 믿어줄 예정입니다.-_-)

이렇게 찝찝한 첫 스킹의 날을 보내고, 두 번째 날을 맞을 때 저는 아주 비장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잘 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갔습니다. 다행히 이 날은 아무리 첫 날 껄끄러웠지만, 한 번 타 본 것이라 그런지 그 때 같지는 않더군요. 이 날은 ‘새 스키에 적응되어 가고 있다. 장비가 뭔가 많이 달라진 경우에는 적응 기간이라는 것도 필요한가 보다.’라는 전에 없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 사진을 포함, 위의 모든 사진들은 이 스키를 탄 셋 째날의 모습입니다.(역시 우 기자님이 찍어주신...)

그렇게 적응을 하면서 WC 스킹 셋 째 날이 되었는데, 그 날은 왠지 좀 자신이 붙더군요. ‘오늘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타 보니 예전에 타던 것과 별 다르지 않게 탈 수 있었습니다.(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위의 스킹 사진들은 모두 셋 째 날의 스킹 모습인데,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미흡할지 모르지만, 제 실력껏 탄 게 저 모양이니 다른 분들의 눈에는 미흡해도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지요.-_- 그제서 마음 내키는 대로 탈 수 있게 되니까 기존의 155cm짜리 9S WC와 165cm짜리 Zenith 10D Ultimate, 그 두 스키를 다시 타 볼까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 두 스키를 타 보면 05/06 9S WC Ti보다는 타기가 편할 것이고, 괜히 그걸 다시 시험해 보느라고, 어렵사리 붙은 감각이 또 엉망이 되어 그걸 되잡으려고 하루 이틀(주말 스키어는 이게 한두 주일입니다.-_-) 고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리뷰를 하면서 이런 넋두리를 한 적이 없는데, 여러분들께서도 회전 경기용 스키로 어떤 스키든(WC 버전이건 양판 경기용 버전이건...) 혹시 길이를 10cm 이상으로 늘려서 새 스키를 선택하시는 경우에는 심각히 고민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 그 스키를 빌려서 타 보실 수 있다면 꼭 타 보시고, 구입하십시오. 제가 비교적 오래 스키를 타서 새로운 장비에 꽤 빨리 적응하는 편인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이 새로운 장비가 전과 달라진 점을 외관을 보고 말씀드린다면, 얼마 전에 사랑방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겉모양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래픽이 좀 바뀐 것이지요. 이런 걸 우리 스키어들은 보통 “화장(化粧)했다.”고 합니다.^^ Cosmetic하게만 겉모양만 바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9S WC Ti는 화장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뀐 그래픽이라는 측면에서는 화장이 바뀐 것이지만, 구조나 기능에서의 변화가 있으니까요. 특히 뒤쪽에 9S 월드컵이라고 크게 쓴 게 인상적입니다. 전보다 더 카리스마가 있게 보입니다.



그리고 9S WC Ti라고 “Ti"가 추가되었는데, 이 Ti는 타이태널(Titanium+Aluminium Alloy)의 의미입니다. 순수 타이태늄(티타늄) 판이 아니고, 타이태늄과 알루미늄을 섞어서 무게가 더 가벼우면서도 강하게 만든 알루미늄 합금이지요.(이걸 타이태늄 판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많은 양의 알루미늄에 미량의 타이태늄을 합금한 것입니다.) 이 Ti 판이 예전에도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 훨씬 더 두꺼워졌습니다. 비틀림(torsion)을 더 적게 하기 위함이지요.(가끔 이 토션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계신데, 물론 스키가 비틀림이 적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만, 전혀 비틀리게 하지 않는 게 최선은 아닙니다. 스키는 당연히 토션이 생기게 되어 있고, 어떤 움직임에서 토션이 생겼을 때 그걸 빠르게 바로 잡아주는 것이 torsional rigidity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는 비틀림에 강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만 기억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키에는 Ti라고만 써 있는데, 이 스키의 스펙 설명에서는 꼭 골든 T-박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건 이 스키의 단면을 가지고 보면, Ti가 들어간 샌드위치의 상자(Box) 구조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골든은 로시뇰이 추구하는 "골든 스피릿," 즉 금메달 정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금색이 스키와 바인딩 등)에 칠해져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예전 로시뇰의 경기용 스키마다 장착되던 것 중 흥미로운 것이 일종의 Tip Protector의 역할까지 하는 독수리 혹은 매 발톱 모양의 디플렉터(deflector), 즉 전향(轉向) 장치입니다. 회전 기문에 스키 앞 부분이 걸릴 때에 대비하여, 그게 걸리지 않도록 안쪽으로 모아주는 장치인 셈인데, 사실 그 유용성은 사라진 지 오래이지요. 지금은 회전 경기에서 회전 반대편의 손으로 깃대를 쳐서 쓰러뜨리고 기문에 진입하니까요. 하여간 이번 시즌 모델에서는 그 디플렉터가 사라지고, 둥근 팁 프로텍터(round tip protector)로 바뀌었습니다.(이건 뭐 새로운 것도 아니지요. 요즘 앞부분이 넓은 모든 스키들이 다 이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매 발톱이 없어진 것에 대하여 섭섭해 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회전 경기용 스키의 독특한 카리스마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예전에 그 디플렉터가 있는 것이 좀 귀찮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두 개의 매 발톱이 안쪽을 향해 휘어져 있는 모양이라서 꼭 좌우구분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키의 양날을 골고루 쓰기 위해서 좌우 스키를 바꿔서 타려고 하면, 그 매 발톱을 옮겨달 수도 없고, 그냥 좌우를 바꾸면 그 놈의 발톱이 둘 다 바깥으로 향하니 모양이 너무 이상해지고... 아주 곤란했었거든요. 그래서 전 그 발톱을 빼고, 라운드한 것으로 바꿔단 적도 있습니다.(예전 9S WC 스키에서는 그 매 발톱과 둥근 프로텍터 두 가지가 제공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바꾸려면 바꿀 수도 있었습니다.) 하여간 이젠 그런 고민을 안 해도 좋으니 전 더 좋습니다.^^


- 신 제품(왼쪽)과 예전 제품의 선단은 이런 차이가...

그리고 달라진 것이 위에서도 미리 언급된 월드컵용 더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 단단해 지고, 더 강해졌습니다. 제 스키에는 RK SL World Cup Plate(더비)에다가 Race Stock FKS 155 바인딩을 사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월드컵 더비와 비교하니 무게나 강도가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요즘 경기용 더비는 예전처럼 스키에 아무 더비나 따로 구입해서 장착하는 것과는 달리 스키에 미리 장착하여, 스키와의 일체형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더비가 변하게 되면 스키 판 자체가 예전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스키 전체의 성능 자체가 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05/06 9S WC는 스키 판도 더비도 함께 변모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스키를 타 보니 전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전과 같은 점은 (뻔한 얘기들이 반복됩니다.-_-) 속도가 빠르다, 스키의 반탄력(rebound)이 강하다, 앞부분이 부드러워서 의외로 부양력이 좋다, 강한 에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선된 점은 반탄력이 더 강해 졌으며, 에징 능력도 더 강화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개선된 점이라는 것은 결국 더비의 변화와 Ti, T-Box의 변화에서 초래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스키를 타 보면 다른 스키들과 특별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 딱딱한 설면에서의 에지 그립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긴 거의 빙판에 가까운 슬로프에서 경기를 하는 월드컵 선수들이 사용하는 스키이니 딱딱한 설면에서 그립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스키의 중앙 부위를 중심으로 한 에지 그립이 상당히 강하고, 중앙으로부터 약간 뒤쪽으로도 강한 그립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예전의 9S WC에서는 에지 그립이 스키의 맨 뒷날까지 걸리는 것 같은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는데, 신제품에서는 그것과는 달리 회전의 말미에서 비교적 잘 빠져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지 그립이 중앙부에서 대단히 향상되었기 때문에 스키 전체에 걸쳐 강한 에지 그립을 주거나, 테일 부위의 끝까지 에지 그립이 연장되도록 할 필요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스키를 조종하기는 훨씬 편해지지요. 로시뇰 사는 이 스키를 디자인함에 있어서 주행성과 안정감을 높이면서 전보다 다루기 쉽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런 주장은 어느 정도 실전에서도 뒷받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이 스키는 지난 시즌에 실전(월드컵)에 투입되었고, 이를 사용한 선수들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고 있으니까요. 이 스키를 테스트한 일본의 선수나 데몬들은 이 스키의 안정감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Golden T-Box 구조와 Ti 패널의 강화, 그리고 새로운 더비의 채용과 관련이 있다는 중론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툭하면 “9S WC는 숏턴용이 아니라 카빙 숏턴용이다.”라는 소리를 해왔는데, 이는 카빙 숏턴의 경우 일반적인 숏턴에서의 “연속 회전의 용이성”이 더욱 두드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스키는 카빙 숏턴과 같은, 리바운드 숏턴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빠른 숏턴에 있어서 이런 연속 회전을 아주 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번 스키에서도 이런 성격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키의 길이를 10cm 늘려 타면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이 스키의 회전 반경이 많이 길어진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즉, 패러렐이나 롱 카빙을 할 때 스키가 의외로 안정적인 것이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155cm짜리로는 롱턴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할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면 스키 앞부분이 펄럭(???)댑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스키를 밟아줘도(눌러줘도) 이런 경향에는 큰 차이가 안 나타난다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회전용 스키에 있어서 10cm의 차이가 나는 155와 165cm 스키들 자체의 회전 반경은 R=11.5m, R=12.2m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타면서 보면 이것도 큰 차이이긴 합니다. 그런데, 긴 카빙에서의 안정감의 차이는 과연 이것이 스키를 긴 것으로 타서 그런 것인지 이번에 나온 스키의 특성이 변해서 그런 것인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걸 파악하려면 기존 스키도 같은 165cm 길이의 것을 타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새 스키를 번갈아 타 보면 이 문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만... 어쨌건 165cm짜리 9S WC는 155cm의 스키로 느낄 수 없는 긴 카빙에서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스키는 물론 체중이 좀 나가면서 강한 체력을 가진 스키어에게 알맞은 스키이고, 스킹 성향이 공격적인 스키어에게 어울리는 스키입니다.(딱, 선수를 지칭하는 특징들이군요.) 하지만 이 스키를 타면서 스키를 제대로 밟아줄 수 있고, 리바운드를 즐기는 스킹을 하는 분으로서 미세한 스키 조작에 관심이 많은 스키어라면 아마추어 스키어라고 해서 이 스키를 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 봅니다. 물론 이 스키는 중급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키이고, 최소한 상급의 아마추어여야 합니다.

그리고 리바운드를 가미한 짧은 회전을 한다고 해도, 이것이 기존의 컨벤셔널(conventional) 회전 스키와는 다르게 “작은 대회전”식의 스킹을 위한 스키이므로 회전 호를 둥글게 크게 그리면서 그 작은 대회전의 말미에서 오는 큰 리바운드를 즐기는 쪽으로 성향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이 스키로는 회전 성향의 상급자용 스키나 데몬용 스키처럼 짧고, 리바운드를 많이 가미한 스킹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들 스키를 사용하는 것보다 빨리 지치게 될 수 있습니다.

9S WC Ti 골든 티박스는 상당히 매력있고, 좋은 스키로서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스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스키를 사용할 대상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강조한 바이지만, 아마추어 스키어라면 굳이 165cm의 9S WC를 탈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155cm로 족합니다.


이 리뷰에 이어서 쓰여질 다음 리뷰는 로시뇰의 스키어 크로스(skier cross)용 스키인 크로스파이트 퍼스트(X Fight 1st)입니다. 경기용 크로스 스키입니다. 이 스키보다 한 단계 밑의 상급자용 버전인 X-Fight 2nd는 제가 지난 시즌에 타 봤었습니다. 그 스키와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로시뇰의 "스키어 크로스"용 제품, 크로스파이트(X Fight) 2nd



* 박순백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9-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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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규 2005.12.15 23:04
    [ pillar5@daum.net ]

    박사님 리뷰를 읽으면 저 하늘에서 지름신이 마구 저를 협박합니다. ^^
    로시놀 스키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고 있기에
    더더욱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 단단함, 어설피 달래면 콧방귀를 뀌는 듯한 로시놀 스키...
    그 매력에 한 번 빠지니 헤어나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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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현도 2005.12.16 07:20
    [ anabolic@freechal.com ]

    역시 박사님의 리뷰는 최고입니다.
    물론 충줄한 스키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엑심에서 장비를 스폰해주는 이유를 알것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리뷰를 잘해주셔서 앞으로 어설픈 리뷰하기가 겁나는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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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준 2005.12.16 10:14
    [ always4u@woorifis.com ]

    실력도 안되는 놈이 이런글 보면 장비 욕심만 생기니 이것두 병인가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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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규 2005.12.16 12:59
    [ pillar5@daum.net ]

    이상준 선생님 그건 병이 아닙니다.
    당연한 지름신의 왕림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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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현 2005.12.16 19:15
    [ ka1203@nate.com ]

    지름신 오신분들은 전화 주세요.. 제가 155cm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바인딩 작업은 안한 상태로 비닐 포장 그대로 있습니다. 바인딩 포함해서 105만원 생각합니다. 011-733-4486 연락주세요^^
  • ?
    주기현 2005.12.18 15:27
    [ ka1203@nate.com ]

    지름신이 오신 분들이 없나 봅니다. 어제 바인딩 작업해서 그냥 제가 타기로 했습니다. 안전스킹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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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민 2006.10.02 01:51
    [ ujuin7@hanmail.net ]

    드디어 드디어 저도 샀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비싸게 비싸게 주고 샀답니다.
    이월 모델을 95만원 가까이의 비싸게 주었지만 전혀 후회없습니다
    현재 샾에서 파는 시세정도 인듯한데 그렇다해도 재고가 전혀 없죠 ... 후~~
    어렵게 구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분 좋습니다...

    전에 타던 스키들과 비교해서 아직 한번도 안탔지만 벌써 부터 포스가 다릅니다... 후후 ^^

    제발 빨리 적응할수 있기를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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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스키(판) 브리자드 데모 회전 SLR 167 (08-09) 11 최길성 2008.12.31 7697 425
273 헬멧/모자 무주 로시뇰 데몬 클리닉에서 경품으로 받은 로시뇰 스크래치 뉴 스쿨/프리스타일 헬멧 리뷰 3 강윤국 2008.12.30 7163 467
272 스키(판) 저도 Atomic drive FR12 (S)를 타보았네요.(베어스타운 아토믹 렌탈샵) 4 최영규 2008.12.30 6020 432
271 스키(판) 노르디카 도베르만 SL프로(Nordica Dobermann SL Pro) - 최상의 그립력 제공 4 조성민 2008.12.29 9034 558
270 고글/스포츠글라스 아디다스(Adidas) a162 스노우 고글 1 박순백 2008.12.24 9191 524
269 고글/스포츠글라스 EMUSI 08/09 신모델 - Luster 고글 리뷰 10 원윤정 2008.12.24 7967 433
268 스키(판) 08-09 Atomic Drive FR 12 Type-S (베어스타운 아토믹 렌탈샵) 7 우광현 2008.12.23 7376 464
267 스키복/이너/장갑/양말 HEAD H2X 플라즈마(Plizma) 스키복 - 프로텍터 내장형 크로스오버 스키복 조성민 2008.12.19 5622 380
266 스키복/이너/장갑/양말 08/09 온요네 안테나(ANTENNA) 데몬복과 오발 아우터(Oval Outer) 쟈켓 12 고성애 2008.12.19 11047 398
265 스키복/이너/장갑/양말 2008/2009 ON-YO-NE FREX 리히텐슈타인 팀복 리뷰 8 원윤정 2008.12.18 9590 372
264 스키(판) 0809 Fischer W/C RC, W/C SC 제품리뷰 _ 강준호 데몬스트레이터 강신호 2008.12.17 5980 327
263 스키화/부츠/깔창 [08/09] HEAD Raptor 120RS Boots (헤드 랩터 120 RS 부츠) - 또 하나의 도전... 조성민 2008.12.17 7223 429
262 스키(판) 로시뇰 사의 08/09 양판 경기용 스키 - R9S WC Ti Oversize 8 박순백 2008.12.16 11974 422
261 스키(판) 베어스타운 아토믹 렌탈샾 아토믹(D2) 테스트 스키 시승기 1 이철희 2008.12.16 5798 566
260 스키화/부츠/깔창 2008 살로몬 Falcon CS Boots 리뷰 - 와타나베 가즈키 2 한정수 2008.12.16 7428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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