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머나먼 여정의 시작 7편 - 운길,원적,삼성,유명산
- 운길산 –
운길산은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산으로 중턱에 있는 수종사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사진은 운길산 산정상 부근에서 찍은 양수리 두물머리의 모습이다).
운길산의 상세한 정보는 박사님이 얼마전에 올리신 산행기에 아주 자세히 잘 나와 있습니다. 저는 백패커의 입장에서 간략하게 박지정보 위주로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운길산을 등반한 날은 11월말의 초겨울이었습니다. 이미 낙엽은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첫 동계 백패킹이라 나름 긴장을 하고 준비를 했는데, 침낭과 텐트를 겨울용으로 장만하고 옷장비도 두툼하게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어서 행락객이 뜸한 오후 4시경 수종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을 타기 시작했죠. 코스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수종사 들머리부터 경사도가 심했고, 동계 박배낭의 무게 때문에 초반부터 진을 뺐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예봉산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북서쪽으로는 저멀리 북한산이 보였습니다.
운길산 정상에는 큰 데크가 있어 보통 여기서 텐트피칭을 하는데, 이날 많은 백패커들이 먼저 올라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개중에 한무리의 젊은이들은 쉘터까지 갖고 올라와 단단히 저녁회식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 독립백패커들이 주변을 틈틈이 메워 피칭을 하고 있었고요. 저녁에 상당히 소란스러울 거로 예상되고 자리도 여의치 않아서 5분도 채 되지 않아 단념하고 하산을 했습니다. 오늘은 아닌 거 같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올라올 때 잠시 쉬었던 중턱의 데크가 생각났습니다. 박사님 산행 영상에는 이 데크가 보이지 않는데, 산정상 못 미쳐 조그만 공터가 나오고 거길 지나는 등산로 바로 옆 작은 둔덕 위에 홀연히 나홀로 데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둔덕이 높아 등산로로 그냥 지나갈 때는 잘 안 보임). 올라오면서 쉴 때는 그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데, 산정상에서 공중목욕탕 상황을 겪고 낙심하여 내려오던 차에 이것도 감지덕지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꼭 산정상에서 자야겠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군요. 텐트 한 동 딱 들어가는 데크사이즈로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고, 초겨울이라 나뭇잎이 다 떨어져 나뭇가지 사이로 양수리가 보이므로 전망도 그다지 나쁘지 않아 여기다 피칭을 했죠.
열심히 텐트를 치고 나니 밤이 되었습니다. 저멀리 산정상에 공중목욕탕에서 그들의 쉘터 불빛이 보입니다,
(사진의 텐트는 MSR사의 어세스2로 동계용에 최적화된 제품이다.)
밤 자정까지 산정상의 쉘터에서 퍼져 나오는 젊은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가 제가 머문 중턱까지 꽤 거리가 있음에도 들리더군요. 뭐 저에게는 마치 멀리 떨어진 마을의 선술집에서 가냘프게 뒤섞여 들려오는 정감으로 느껴졌지만, 현장에서 같이 동숙하는 다른 독립백패커들에게는 다소 고역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더군요..
아래쪽에는 양수리 쪽 마을의 야경이 보입니다. 주변 소나무의 실루엣이 텐풍의 정취를 돋우어 주었습니다.
텐트 안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야밤의 산중에서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데, 의외로 심심하지가 않습니다. 오후 산행 후 저녁 무렵에 텐트를 치고 밥을 먹고 나면 보통 9시가 넘죠. 몸이 피곤하니 바로 눕게 되고, 인터넷이 터지는 곳이 많아서 유튜브도 볼 수 있고, 이렇게 얇은 잡지책을 탐독하기도 하고… 나름 시간 잘 갑니다. 이날 아래 수종사에서 간간히 들리는 타종소리와 산골 마을의 개 짓는 소리도 겨울밤의 한적함을 달래주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텐트문을 젖히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산정상에서의 드라마틱한 절경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산중턱에서 고즈넉함을 홀연히 느끼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옆에 보이는 의자는 누군가 쉬기 위해 오래전에 갖다 놓은 것 같다)
텐트안에 앉아서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일출을 감상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였습니다.
초겨울 아침의 날씨는 꽤 쌀쌀하더군요. 하지만 따뜻한 드립커피가 있어 위안이 되었습니다.
온도계를 보니 딱 0도네요. 체감온도는 영하 5도쯤 되는 듯했는데…
(제로그램사의 미니 온도계와 나침반)
- 원적산 –
이천에 있는 원적산은 산머리에 나무들이 거의 없고 능선에 초지가 있어 백패커들에게 인기가 많은 산입니다. 근데 제가 간 이날은 다음날까지 구름이 잔뜩 덮어서 이른바 곰탕 분위기였고 게다가 비가 내려 우중백패킹의 맛을 느꼈던 산행이었습니다.
(원적산 정상 남쪽은 군부대가 있어 능선길 외에는 진입이 불가하다. 사진에서 철조망이 보이는 쪽 방향임)
전날 밤. 텐트를 토닥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음날 날씨가 개기를 기대하면서 잤는데, 일어나보니 계속 짙은 안개가 산정상까지 덮고 있었습니다.
원적산은 원적봉부터 천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이국적이어서 이천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안개 때문에 그런 풍경은 맛보지 못했습니다.
항상 날씨가 좋을 수는 없는 법이죠. 대신에 처음으로 우중 백패킹을 맛본 것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 삼성산 -
삼성산은 안양시에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와도 맞닿아 있죠. 서울 근교라 퇴근박으로 야경을 즐기기에 좋은 산입니다. 저는 안양사 들머리에서 출발해 중턱에 있는 데크쉼터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들머리에서 40분 정도 올라가면 험한 바위 길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좀더 올라가다 보면 우뚝 솟은 큰 바위 밑에 두개의 데크쉼터가 있습니다.
여기 데크에서의 전망이 아주 훌륭합니다. 안양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지요. 우측의 고속도로는 제2경인고속도로입니다.
시야가 맑아서 저멀리 인천 송도 신도시까지 보였습니다.
좀더 북서쪽으로는 서울 금천구와 그 뒤로 인천, 부천시 방향입니다. 가시거리는 길었으나 구름이 많아 석양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반대편 동쪽으로는 과천시가 보입니다.
석양은 보지 못했지만, 미세먼지 없는 덕분으로 멋진 야경을 즐겼습니다.
다행히 사람도 없어서 음악과 함께 저녁을 들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화려한 세상을 자연속에서 감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저만 즐기는 것 같아 호사스런 느낌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 유명산 -
앞서 산행기에, 백운봉에서 바라본 유명산의 산머리 초지를 보고 백패킹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튜브를 보니 백패킹 정보가 있더군요(사진은 옥천면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백운봉을 찍은 것이다. 봉우리 정상에는 비구름이 걸려 있다).
들머리는 백패커들이 자주 이용하는 배너미고개에서 시작했습니다. 입구에는 사설 사륜오토바이 체험장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20분 정도 산길을 지나면 이렇게 임도가 나옵니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초지와 더불어 활공장이 나오고 거기서 야영을 합니다.
근데 이날은 아침부터 꾸물꾸물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오후 산행 시작 때는 빗줄기가 강해지더군요. 그래서 하드한 우중백패킹이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파타고니아 하드쉘 자켓과 룬닥스의 마케프로 바지를 착용해서 우중의 산행에는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산정상 빗속에서 어떻게 텐트를 쳐야 할 지 올라가면서 좀 신경이 쓰이더군요.
근데 그런 생각은 기우였습니다. 산머리 초지에 다다르자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고 있었습니다. 점점 산정상에 가까워지니 유명산의 면모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용문산 자락 백운봉의 자태가 구름이 걷히면서 멋지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세차게 내렸던 비가 그치고 비구름이 물러가면서 오히려 이런 장엄하고 멋진 풍경을 연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초지와 임도가 나름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고요. 아래 트럭은 패러글라이딩 업체에서 장비를 옮기는 차량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쯤에서 제 머리 바로 위로 패러글라이딩이 휙 지나가더니 이내 계곡을 가르면서 내려갔습니다. 흰구름이 설산처럼 산들을 감싼 풍경과 더불어 멋진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겁이 좀 많은 편이라 타고 싶지는 않았지만, 모험을 즐기는 백패커들은 하룻밤 여기서 보내고 앞서 트럭에 짐을 맡긴 다음 이렇게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산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 초지는 예전에 말을 키운 목장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래 리조트와 연계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서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것이 이제 곧 구름이 걷히면서 오후의 태양을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저멀리 북한산이 보입니다. 바로 서울쪽 방향입니다.
산정상에 다다르자 양평과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활공장에 오르자 정말 ‘와~!’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비구름이 습기를 다 뿜어내고나서 하늘로 제각각 흩어져 솟아오르고 있었고, 하늘은 맑게 열리면서 초여름을 예고하는 햇빛이 기분 나쁘지 않게, 오히려 상큼할 정도로 비추고 있었습니다.
내 평생 이렇게 찬란하고도 신선하기까지 한 풍경과 빛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천국의 하늘과 공기가 이런 맛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죠. 들머리에서의 세찬 비가 이런 선물을 가져다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이런 멋진 풍광과 환상적인 구름 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초원 위에 하룻밤 묵을 장막을 지었습니다.
장막을 친 다음 석양을 바라보며 불을 밝히고 나만의 저녁식사를 차렸습니다.
밤이 되니 양평의 야경이 텐트안에 들어왔네요.
잠시 밖에 나와 헬리녹스의자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보니 구름 구멍으로 달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반달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 장면이 참 몽환적으로 제 휴대폰에 찍혔네요.
드비시의 서정적인 피아노곡집 베르거마스크 모음곡 중에서 “달빛”이 어울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밤중의 텐풍은 마치 모두다 잠든 지구상에 살짝 내려앉은 우주선의 모습이었고요.
아침에 백운봉 아래로 드넓은 운해가 저를 맞이해주었습니다. 우주선이 저기 앞에 앉아 있네요.
전날 대지에 뿌려진 비를 한껏 머금은 구름들이 산주위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 위로 일출이 차가워진 산머리에 온기를 주기 시작했고요.
집안 꼴이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침에 새소리와 함께 구름 위에서 아침을 먹고 주변을 정리하는 작업은 기꺼이 해야 할 일입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산인데… 지난 저녁의 석양과 밤하늘과 새벽의 운해는 황홀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제 유명산에서의 백패킹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대가 아래 모 리조트의 사유지인 거 같더군요. 얼마 전 까지만해도 활공장에서 백패커들이 야영이 가능했던 거 같은데, 활공장을 최근 개비하고 야영금지 현수막을 내걸고 백패킹을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활공장을 피해서 한적한 초지에 야영을 했는데, 대부분의 초지도 활공장에서 사용하는 거라 패러글라이딩 관계자 분들이 여기는 백패킹 금지라고 하면서 아침에 계도를 하고 다녔습니다. 백패킹 천혜의 장소인데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일부 백패커들이 텐트 피칭에 사용하는 팩을 그대로 나두고 간 것이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훼손하는 사례도 있었던 거 같더군요. LNT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발상의 전환으로 여기를 백패킹과 패러글라이딩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소정의 사용료를 받아서라도 이 멋진 사이트를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럼 사우나 같은 리조트의 콘도 내 부대시설도 백패커들이 활용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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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에서 MTB 한분 본 것 같습니다. 유명산은 배너미고개 들머리 옆으로 임도가 있는데, 입구는 바리케이트로 막아놓은 상태이고 사륜오토바이 레저업체에서 사용하는 거 같더군요. 비온 뒤 청명한 날씨와 저녁 풍경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던 날이라서 더 멋있었습니다. 때가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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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유명산에는 MTB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자전거도 걷는 것에 비하면 꽤 빠르고 (하산할 때는 엄청나게...^^), 길을 살피느라 주위를 볼 여유가 없어서 이런 좋은 경치가 있는 것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