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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363 좋아요 169 댓글 13
오늘 오후 3시 반.
분당 야탑 만나 교회에서 출발하여 잠실 부근까지 라이딩하고 돌아와 지금 이 글을 쓴다.
나는 지금 헬멧만 벗었을 뿐 잔차 탈 때 입었던 그 복장 그대로를 유지 한 채,
행여 이 감정이 흐트러질까 다소 서두르는 마음으로 쳐대는 이 타이핑인지라
어쩌면 과장스러움이 묻어날 수는 있겠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 할 것인가.
뭐. 대학에  들어가서 첫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 못해 안절 부절할  그 즈음에
10시 귀가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급해지기만 했던  바로 그 시절이었노라고 나는 말할 것이고,
그리고  신혼의 그때였다고 말 할 것이고.
그리고 내 아들이 태어나고부터  걸음마를 하게 된, 그 시절 초보 엄마가 된,
그 일 년 동안이라고 나는 답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나날이
전부 20대에 몰려있음을 지금 이 순간에야 알아차렸다.

물론 20대 이후 즐거운 일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10년의 타국생활 끝에 귀국했던 그 시점도 물론 행복했었고,
첫 집 장만 했을 때도 행복했었고.
그리고 부도나서 가난해진 양가 부모님께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해드렸던 그 순간에도 나는,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미치도록 기쁜 순간이었노라고.
환호성이 터져 나올 만큼 엄청난 순간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영부영 예스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그건 온전한 희열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음을...



그런데 오늘은 100% 기뻤다. 정말 행복했다.
희열로만 가득찬 순간이 수차례씩이나 밀려왔다는 거다
오늘 페달을 내 딛던
그 순간부터...

안장이 너무 불편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주변의 사물도 보이질 않고.
핸들 바가 불편했기에
내가 자전거를 탄 이상 이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라고 인정해 버렸는데
웬일인지 오늘 라이딩 첫 순간부터 안장이 불편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제까지의 불편함은 온전히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즐거움, 기쁨, 상쾌함. 긍정, ok, good... 이런 감정만이 연달아 밀려왔다는 거다.

커다란 고민하나가 완전히 해결된 느낌.. 그러니 놀랄 수밖에...
아!  자전거가 이런 거구나.
씽씽 달려봐야지.

수분이 지나고
그것은 환영처럼,
오른편에 탄천이 풍경화처럼 보였다.
노란들꽃도 풍경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풍경화 안에 내가 있다는 거다.
자전거 타는 내가 ...

순간 나도 모르게 밀려드는 감정이
좀 우스꽝스런 표현이지만
"미치겠어~ 미치겠어~ “였다.
너무 좋으면 이런 표현이 나오는지....

“ 언니! 나 미치겠어~“
“ 뭐? 뭐라고?  안 들려~”
“ 너무 좋아 미치겠단 말이야. 언니~”
“아~그렇게 좋니?”
“ 응. 이 좋은 길! 나라에 세금 낸 게요~  하나도 안 아까워요~ 그쵸? 언니? ”
" 맞어 맞어~"

기어 변속 없이 언덕을  올라갈 때
내 자신에 놀랐다.
곧이어 나타난 내리막길을
겁 내지 않고 웨잇백에 성공했을 때도
나는 또  “ 미치겠어 미치겠어 언니!”라고 소리쳐 버렸다.
내 헬멧과, 내 쫄바지와, 내 져지와,
그리고 내 고글 안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이 함성을 어쩌란 말이야...하면서..

유턴해 오던 길
나는 햇덩이 하나를 짊어졌다.
그리고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다.
아! 얼마만인가? 내 그림자를 끌어 본 적이...


" 갈 때 보다 실력이 늘었네?"
복정역 다리 아래서
커피 파는 아주머니가 응원해주신다.
이런! 나를 기억하다니..
그들에게 손인사로 답례하고
야탑 부근에서  질력을 다해 페달의 원을 그렸다.
88올림픽때 굴렁쇠 소년이 그렸던 원처럼
둥글고도 여유로롭게 말이다.
자전거를 타는데
느닷없이 과거의 한장면이 왜 떠오르 걸까?


순간 속도가 25킬로 올랐는데
내 앞을 추월하는 잔차들,  멋진 라이더들.

안장이 더 편해오자
추월하는 그들 포지션에 눈길이 갔고
라이더의  “쏘우~ 핫 바디”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두고
점수도 매겨 보는
그런 여유까지 ~

그러는 내 자신이 우스워
에잇~ 하다가도  
느껴지는 즐거움과 터져 나오는 환희를 숨기지 못해
하늘로, 탄천으로, 아파트 숲으로
그걸 모조리 발산해 버렸다.

hot body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력을 다하는데

종착지가 다가옴을 느꼈다.
아쉬움이 밀려오는데
유턴해서  또 다녀올까? 말까?
심장이 나를 강타했건만

하지만 나는 멈추기로 결정했다.



<체력의 80%만 사용하기!>
그 명언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첫라이딩 후  2주일동안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살아도 사는게 아니었는데
몸이 회복되었다고, 아니 벌써 그 명제를 잊을뻔 했다.

잔차를 오랫동안 사랑하며 타기 위하여
질긴 라이더가 되기 위하여
정점에서 멈출줄 아는 그런 지혜를,
그 절제의 미학을,
롱런의 미학을 내가 어찌 잊었단 말인가.

이런 생각으로
그래 맞다 맞다 하며
stop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시속 20킬로 운전하는 나!
잔차 속력으로 차를 운전하며
행복하고도 특별했던 하루 해를 등뒤로 넘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탄성을 지를 만큼의 행복한 순간이 당신에게 있었습니까?"라고
행여 누군가가 묻는다면(물어 올 리 만무하지만 )
20대 이후
“바로 오늘입니다."라고  
이제는 말해도 되겠다.

사진 없이 지루하고도  긴 글을
내 감정에 취해 적는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께 감사드림.

Comment '13'
  • ?
    조혜연 2010.07.20 09:06
    [ wizz510@naver.com ]

    어느 순간 안장이 편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 행복감, 그 자신감은 어느 것과도 견줄 것이 없더군요.
    꼭 한번 함께 탄천을 함께 달리고 싶어요.
    사실 저도 앞으로 지나가는 핫바디를 보며 힘을 낸답니다^^;
  • ?
    채장석 2010.07.20 10:10
    [ racer7556@hanmail.net ]

    자전거의 매력에 푸욱 빠지셨군요~~~빠지는 만큼 건강은 더 좋아집니다~~~~~~~항상 즐거운 라이딩 하세요~~~~~~
  • ?
    박순백 2010.07.20 10:16
    [ spark@dreamwiz.com ]

    감정이입을 느끼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 ?
    박순백 2010.07.20 10:25
    [ spark@dreamwiz.com ]

    편한 안장, 그걸 하드웨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http://drspark.dreamwiz.com/cgi-bin/zero/view.php?id=mtbmania&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얼레이&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64

    근데 임경희 선생님은 이 경우, 얼레이 레이싱 스포츠나 스포츠 중 하나로 하는 게 좋고, 실은 후자가 더 바람직합니다.
  • ?
    임형찬 2010.07.20 10:49
    [ haelove21@naver.com ]

    "페달의 원을 그렸다"
    표현이 너무 멋지고 마음에 듭니다.ㅎ
    저도 꽃피는 춘삼월에 자전거에 입문하면서 스키 시즌이 아닌 비시즌에도 이렇게 인생의 또 다른 낙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었습니다.
    임 선생님께서 느끼셨던 안장의 고통과 근육통 그리고 여태 맛볼 수 없었던 희열 등. 모든 것이 공감 가는 것이 많은 글입니다.
    즐겁고 안전하게 오래오래 타세요. ^^
  • ?
    권순형 2010.07.20 11:22
    [ thefun@naver.com ]

    참 글을 잘쓰시네요.
    자전거에 푹빠진 모습이 좋아보여요.
  • ?
    박순백 2010.07.20 12:19
  • ?
    이해정 2010.07.20 18:25
    [ heajoung2@naver.com ]

    사진없어도 완전몰입해 읽어내려갔습니다^^ 200% 공감이 밀려오는 글입니다 ㅎㅎ
    햇덩이 하나 짊어지고 귀밑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함께 오늘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라이딩을 했습니다...

  • ?
    임경희 2010.07.21 10:02
    [ 1212urhena@hanmail.net ]

    이해정선생님, 권순형 선생님
    댓글 감사드려요. 안전하게 조심히 오랫동안 즐기면서 타야지
    다짐하면서 지금 탄천으로 나갑니다. 이 더운 여름에 말이죠. ^^

    임형찬 선생님
    저랑 성이 같네요?
    여자동창들과 술마신 후 적으셨던 그 글이
    ... 시 같았어요. 글은 짧은데 읽는 사람에겐 무지 많은 상상을 하게만든다는~ ^^
    술드시면 꼭 시 적어주세요 ^^.

    아 그리고 박사님.
    안장도 바꾸고싶지만요.
    어제부터는 헬멧, 저지, 오렌지 컬러 바퀴에도 눈길이 갑니다.
    욕심없다 말했는데 이렇게 확 바뀌는 제 모습에.. ^^.

    안장은 염두해 둘게요.감사합니다.


  • ?
    박순백 2010.07.21 11:03
    [ spark@dreamwiz.com ]

    욕심이 생기는 게 정상이고, 이제 제대로 빠지시는 겁니다.
    자전거 타기가 아니라 자전거나 그 관련 장비에 욕심을 내게 되는 단계가 진짜로 자전거에 빠지는 단계입니다.
    아직 그 댁의 부자는 임 선생님 단계에 못 오르셨을 걸요?ㅋㅋ(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장비에 빠지는 단계에서 실제로 예술(?)이 시작됩니다.ㅋ
    오디오. 원래 소리나 음악을 의미합니다. 근데 오디오에 빠진 사람이라고 할 경우, 대개는 소리의 본령이 아닌
    오디오 장비에 빠진 경우를 말하지요.

    근데 아래 한 시인의 오디오 예찬을 들어보면, 그게 자전거에도 완벽히 적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디오는 생명체다. 자신만의 성격과 표정과 목소리를 가졌다. 그 각각의 만남에 따라 천변만화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음악에서 빠져나와 오디오 자체에 푹 잠기는 것은 그런 능동성 때문이다." - 시인 김갑수


    자전거 장비가 가진 능동성 때문에 자전거 타기(음악)가 아닌 자전거(오디오 장비 자체)에 함몰하는 것이지요.
    거기서 천변만화의 자전거 타기의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 ?
    임경희 2010.07.21 12:27
    [ 1212urhena@hanmail.net ]



    아~ 그렇군요.
    <자전거 잘 타는 방법>을 검색하던 차에
    생명체로서의 자전거, 그 말씀을 들으니 감동합니다.

    내일 휴가를 떠나기에 준비할 게 많은데도
    아침부터 김훈의 <자전거 여행>부터 집어들었고
    오후 라이딩에 들떠서 아직 갈피도 못잡고 있습니다.
    너무 몰두하는 제 자신에게
    <진정해!>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뭐 어쩔 수없죠.

    내일 어른 네명이 제 suv로 휴가 떠납니다.
    근데 하필이면 남해안 해변입니다.
    부산 해운대와 똑 닮아 버린 그런 해변이죠.


    신새벽에 고향의 백사장에
    실뱀같은 두개의 둘을 긋게 된다면
    사진 올리겠습니다.


    이런 저런 조언에 감사드리며.
  • ?
    김휘종 2010.07.22 13:54
    [ f288gto@hotmail.com ]

    자전거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을 때의 감동을 이렇게 생생히 전달할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하고 읽는 것으로 그 감동을 전달받은 것 같은 생생한 글이네요~ ^^
    "실뱀같은 두개의 줄" 같은 표현은 국어 시간에도 못배워 본 것 같은데...
    앞으로도 기쁨과 환희에 찬 글들 많이 부탁드립니다. ^^
  • ?
    박순백 2010.07.22 14:38
    [ spark@dreamwiz.com ]

    소설가 김훈은 제가 볼 때 우리 나라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입니다.
    그 자전거 관련 책 두 권도 읽어보면 참 대단하지요. 실은 말만 자전거
    책이고, 그의 여행 심상을 적은 글인데, 표현력이 워낙 뛰어나서 정말
    그의 글을 읽다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쓴 글 같다는 느낌이 드는 자전거 책은 우리 나라에 MTB를
    처음 들여온 MTB의 문익점이랄 수 있는 김세환 형의 책입니다.ㅋ

    http://drspark.dreamwiz.com/cgi-bin/zero/view.php?id=mtbmania&page=7&sn1=&divpage=1&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03

    http://drspark.dreamwiz.com/cgi-bin/zero/view.php?id=mtbmania&page=1&page_num=60&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ff&keyword=&category=19&no=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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