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1 10:41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X] 5유로의 행복,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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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X] 셋째 날(5/30, 일)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외관은 국립미술관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수수한 모습의 제대로 된 간판조차 없어 입구로 향하면서도 ‘이곳이 브레라 미술관 맞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지울 수 없는 곳일 것입니다.
브레라 미술관은 두오모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를 지나 스칼라 극장 우측의 비아 베르디(Via Verdi), 비아 브레라(Via Brera)를 따라 가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북쪽으로 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미술관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전통 카페가 나란히 서있는 Brera 지구는 깔끔하고 디자인 감각이 넘치는 샵들로 단장된 아름다운 거리입니다.
- 화려한 쇼윈도우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 두 손 꼭 잡은 연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지는 브레라 거리. 남자는 전형적인 이태리 남성의 모습인데 여자는 좀 더 예쁜 것 같아요.^^* 단화를 신어도 저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 키도 멋지지만, 완전 모델이로군요.
여기서 ‘피나코테카’(Pinacoteca)라고 하는 것은 미술품 중 주로 그림을 전시한 것을 말하는데, 고대 그리스가 기원으로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진 '피나코테케'(Pinakotheke'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여기엔 신을 찬미하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카우치(couch)도 있어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올라오느라 수고한 사람들이 여기에 들러 그림을 감상하며 쉬곤 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개인 저택이나 빌라에 회화와 조각 등을 설치한 방을 피나코테카라 불렀다고 하는데, 현대에는 주로 회화만을 수장한 공공미술관을 ‘피나코테카’라고 부릅니다.
입구의 문을 들어서면 광장 한가운데에 나폴레옹 1세의 상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습니다. 미술관 건물 1층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레라 예술대학(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이 들어서 있어 젊은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면 브레라 미술관의 입구가 나오게 됩니다.
- 여기가 바로 나폴레옹 동상이 서있는 캠퍼스의 중심이로군요.
브레라 궁(Palazzo Brera)은 14세기에는 수도원과 성당이었는데 중세 대학으로서의 시작점이 된 것은 1500년 예수회가 사용하던 건물을 확장해 복합적인 공간으로 만들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이자 합스부르크 왕비인 마리아 테레사에 의해 정치적 계몽 목적으로 학술 활동이 장려되면서 브레라 도서관과 고등 교육 장소가 들어서고 1776년 마침내 ‘브레라 대학’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 마침 브레라 예술대학과 타이페이 대학의 웍샵이 5월 29일부터 6월 13일까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작품들이 회랑 벽과 기둥들에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 고양이들의 모습이 예뻐서 한 컷.
- 회랑이 그 자체로 전시장이 됩니다.
- 관광객들과 예술대학 학생들이 스쳐 지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 작업실에도 들어가 보고...
- 학생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컷.
미술관의 작품들은 나폴레옹으로 인해 컬렉션이 만들어지고 많은 작품들이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고 합니다. 또 이 미술대학이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게 된 것이 브레라 미술관의 시초가 되었고, 이 미술관은 지난해 8월 15일에 개관 200주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생일에 맞춰 1809년에 대중에게 공개된 이래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 리프트가 운행되는 스키장의 모습인데 재미있습니다.
- 위와 대조되는 여름 풍경.
- 다양한 상징 기법의 연작입니다.
- 이게 아주 재미있는 발상의 작품이었습니다. “Please take a seat."이라는 글귀 옆엔 방석이 있었고, 그 위에는 수십 개의 바늘이 꽂혀있더라는...^^;
브레라 예술대학은 낭만주의 시대에 프란체스코 하예츠(Francesco Hayez, 1791~1882) 같은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 활동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가인 주세페 파리니(Giuseppe Parini, 1729~1799)의 동상입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알바의 아스카'('Ascanio in Alba', K.111)의 대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2층의 38개의 방에는 14세기부터 19세기에 걸친 롬바르디아파와 베네치아파를 중심으로 한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들을 포함하여 500여점 이상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만테냐, 베르고뇨네, 브라만티노 등 롬바르디아를 대표하던 르네상스 화가들을 비롯하여 벨리니, 틴토레토, 티에폴로, 카날레토 등 베네치아파의 작품이 전시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중세 수도원과 성당의 제단을 장식하던 프레스코화로부터 피카소, 모딜리아니의 현대화에 이르기까지의 유명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에는 에밀리오와 마리아 예지 부부가 1910~1940년대에 이르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수집하여 1976년에 이곳에 전 수집품을 기증해 ‘예지 컬렉션’(Jesi Collezione)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중입니다. 이 엄청난 양의 기증관에서 몽환적인 긴 목의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만나고 피카도도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1 전시실을 제외하고는 연대순으로 작품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14세기의 귀중한 회화, 조각을 시작으로 다빈치나 라파엘로라고 하는 르네상스 천재들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시대마다 달라지는, 이야기가 있는 이탈리아의 종교와 역사, 예술의 변모를 살펴볼 수 있는 만만치 않은 미술관입니다. 전시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큰 규모의 대작들임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습니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과 견주어 하나도 손색이 없는, 밀라노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대단히 값진 미술관입니다.
- 그 규모가 어떠한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전시실 배치도입니다.
특히 미술관 한쪽의 통유리벽 방에서 회화들을 복원하는 장면은 다시 볼 수 없는 귀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승연씨가 디카로 중요한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현재는 성모자가 복원 중이었는데, 보통 박물관에서는 복원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디테일한 작업이므로 복원에 몰두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는 코너에 복원실을 두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브레라 미술관은 그런 일반적인 개념을 무시하고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복원실을 마련해 작업을 하는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고 있어 나름 흐뭇했습니다.
- Picture by Seungyeon.
다리의 힘이 풀리고 주저앉을 것만 같던 힘겨운 때에 넓은 전시장의 대형 작품 앞에는 의자가 여럿 놓여있었습니다. 38개의 방들 중에서 3군데 방에 그렇게 마련된 의자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좋아하는 작품 앞에 앉아 내 집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 감상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우피치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 등 유명 미술관, 박물관이 수많은 인파로 제대로 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는 것에 비해 브레라 미술관의 차별성 있는 남다른 배려는 제게 너무도 따스한 미술관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 브라만티노(Bramantino)작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전시되어 있는 방에서... 유럽의 그 많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작품들을 볼 때를 생각하면 이건 밀라노만의 관람객을 위한 '특별 예우'인 것 같습니다. 승연 씨와 줄곧 둘이서만 신나게 관람을 했으니까요.
이곳 미술대학 학생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언제라도 올라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을 테고, 자신들의 선배의 작품 앞에서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남다르게 되어 자신의 꿈을 날마다 키워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 브레라 예술대학에는 전체 전공 과정과 모든 학년 과정을 포함하여 5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학부는 기본 과정 3년, 전문 과정 2년이고, 석사 과정은 1년이라고 합니다. 기본 과정과 전문 과정은 1학기 800유로, 2학기 500유로이고, 1년 석사 과정인 뉴미디어 아트&디자인 과정은 1만 유로라고 합니다.
브레라 예술대학에서 순수 미술 대학의 회화, 조각, 무대 미술, 데코, 복원 미술은 오랜 전통이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브레라 예술대학 앞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골동품 시장이 서는데 이 또한 굉장한 볼거리라고 전해집니다.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되기까지 각 지역마다 특정 가문의 군주가 지배하는 지방분권체제였으므로 군주들은 앞다투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궁전과 대성당을 지었고, 다른 지역들과 경쟁했습니다. 스포르차 가문의 루드비코 스포르차(일 모로) 역시 피렌체의 메디치가처럼 덕망있고 존경받는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떨치고 싶어했기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브라만테를 초청해 명작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한 예로 이것은 그로가 그린 "자파의 페스트 격리소를 방문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작품입니다. 프랑스는 이집트 원정 당시 자파의 요새를 점령했으나 곧 끔찍한 페스트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그림은 전염도 두려워하지 않고 병사들을 위문한 나폴레옹의 용기와 인간애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병든 병사들을 안락사 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소문을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그려졌습니다. 나폴레옹에게 회화는 선전공작의 일부였던 것이지요.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로 미술품을 모아 들였습니다.
- 나폴레옹의 키는 150cm도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이라고 알려졌는데,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인의 평균 신장에 대비해 보면 절대 왜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경호병들의 키가 거의 190cm를 웃돌아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feet 기준으로 봐도 프랑스와 영국의 도량 기준의 차이 때문에 프랑스식으로 환산된 나폴레옹의 키가 영국식으로 잘못 환산되어 나폴레옹이 난장이로 취급받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군주들은 미술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함으로써 걸작들을 남기게 되었고, 그럼으로 해서 자신의 권력과 가문을 드높이는 선전도구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으나, 군주와 정치가가 일체가 되어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 해서 그 지역만의 예술이 남다르게 보존되어 오늘날과 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마다의 특색으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의 역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항입니다.
나폴레옹시대에는 전세계적인 예술품 약탈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약탈한 미술품은 루브르 박물관을 채우고도 남아 나폴레옹 지배 아래 있던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을 세우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미술품들을 모조리 약탈해 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작품들로 미술관을 세우게 한 데 대한 공로로 미술관 한복판에 나폴레옹의 동상을 멋지게 세워주는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이 착한 건지 포용성이 깊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 개장시간: 화~일 8:30-19:15, 월요일 휴관.
입장료: 5유로.
URL: 브레라 미술관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외관은 국립미술관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수수한 모습의 제대로 된 간판조차 없어 입구로 향하면서도 ‘이곳이 브레라 미술관 맞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지울 수 없는 곳일 것입니다.
브레라 미술관은 두오모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를 지나 스칼라 극장 우측의 비아 베르디(Via Verdi), 비아 브레라(Via Brera)를 따라 가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북쪽으로 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미술관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전통 카페가 나란히 서있는 Brera 지구는 깔끔하고 디자인 감각이 넘치는 샵들로 단장된 아름다운 거리입니다.
- 화려한 쇼윈도우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 두 손 꼭 잡은 연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지는 브레라 거리. 남자는 전형적인 이태리 남성의 모습인데 여자는 좀 더 예쁜 것 같아요.^^* 단화를 신어도 저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 키도 멋지지만, 완전 모델이로군요.
여기서 ‘피나코테카’(Pinacoteca)라고 하는 것은 미술품 중 주로 그림을 전시한 것을 말하는데, 고대 그리스가 기원으로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진 '피나코테케'(Pinakotheke'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여기엔 신을 찬미하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카우치(couch)도 있어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올라오느라 수고한 사람들이 여기에 들러 그림을 감상하며 쉬곤 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개인 저택이나 빌라에 회화와 조각 등을 설치한 방을 피나코테카라 불렀다고 하는데, 현대에는 주로 회화만을 수장한 공공미술관을 ‘피나코테카’라고 부릅니다.
입구의 문을 들어서면 광장 한가운데에 나폴레옹 1세의 상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습니다. 미술관 건물 1층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레라 예술대학(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이 들어서 있어 젊은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면 브레라 미술관의 입구가 나오게 됩니다.
- 여기가 바로 나폴레옹 동상이 서있는 캠퍼스의 중심이로군요.
브레라 궁(Palazzo Brera)은 14세기에는 수도원과 성당이었는데 중세 대학으로서의 시작점이 된 것은 1500년 예수회가 사용하던 건물을 확장해 복합적인 공간으로 만들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이자 합스부르크 왕비인 마리아 테레사에 의해 정치적 계몽 목적으로 학술 활동이 장려되면서 브레라 도서관과 고등 교육 장소가 들어서고 1776년 마침내 ‘브레라 대학’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 마침 브레라 예술대학과 타이페이 대학의 웍샵이 5월 29일부터 6월 13일까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작품들이 회랑 벽과 기둥들에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 고양이들의 모습이 예뻐서 한 컷.
- 회랑이 그 자체로 전시장이 됩니다.
- 관광객들과 예술대학 학생들이 스쳐 지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 작업실에도 들어가 보고...
- 학생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컷.
미술관의 작품들은 나폴레옹으로 인해 컬렉션이 만들어지고 많은 작품들이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고 합니다. 또 이 미술대학이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게 된 것이 브레라 미술관의 시초가 되었고, 이 미술관은 지난해 8월 15일에 개관 200주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생일에 맞춰 1809년에 대중에게 공개된 이래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 리프트가 운행되는 스키장의 모습인데 재미있습니다.
- 위와 대조되는 여름 풍경.
- 다양한 상징 기법의 연작입니다.
- 이게 아주 재미있는 발상의 작품이었습니다. “Please take a seat."이라는 글귀 옆엔 방석이 있었고, 그 위에는 수십 개의 바늘이 꽂혀있더라는...^^;
브레라 예술대학은 낭만주의 시대에 프란체스코 하예츠(Francesco Hayez, 1791~1882) 같은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 활동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가인 주세페 파리니(Giuseppe Parini, 1729~1799)의 동상입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알바의 아스카'('Ascanio in Alba', K.111)의 대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2층의 38개의 방에는 14세기부터 19세기에 걸친 롬바르디아파와 베네치아파를 중심으로 한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들을 포함하여 500여점 이상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만테냐, 베르고뇨네, 브라만티노 등 롬바르디아를 대표하던 르네상스 화가들을 비롯하여 벨리니, 틴토레토, 티에폴로, 카날레토 등 베네치아파의 작품이 전시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중세 수도원과 성당의 제단을 장식하던 프레스코화로부터 피카소, 모딜리아니의 현대화에 이르기까지의 유명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에는 에밀리오와 마리아 예지 부부가 1910~1940년대에 이르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수집하여 1976년에 이곳에 전 수집품을 기증해 ‘예지 컬렉션’(Jesi Collezione)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중입니다. 이 엄청난 양의 기증관에서 몽환적인 긴 목의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만나고 피카도도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1 전시실을 제외하고는 연대순으로 작품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14세기의 귀중한 회화, 조각을 시작으로 다빈치나 라파엘로라고 하는 르네상스 천재들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시대마다 달라지는, 이야기가 있는 이탈리아의 종교와 역사, 예술의 변모를 살펴볼 수 있는 만만치 않은 미술관입니다. 전시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큰 규모의 대작들임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습니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과 견주어 하나도 손색이 없는, 밀라노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대단히 값진 미술관입니다.
- 그 규모가 어떠한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전시실 배치도입니다.
특히 미술관 한쪽의 통유리벽 방에서 회화들을 복원하는 장면은 다시 볼 수 없는 귀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승연씨가 디카로 중요한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현재는 성모자가 복원 중이었는데, 보통 박물관에서는 복원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디테일한 작업이므로 복원에 몰두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는 코너에 복원실을 두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브레라 미술관은 그런 일반적인 개념을 무시하고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복원실을 마련해 작업을 하는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고 있어 나름 흐뭇했습니다.
- Picture by Seungyeon.
다리의 힘이 풀리고 주저앉을 것만 같던 힘겨운 때에 넓은 전시장의 대형 작품 앞에는 의자가 여럿 놓여있었습니다. 38개의 방들 중에서 3군데 방에 그렇게 마련된 의자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좋아하는 작품 앞에 앉아 내 집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 감상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우피치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 등 유명 미술관, 박물관이 수많은 인파로 제대로 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는 것에 비해 브레라 미술관의 차별성 있는 남다른 배려는 제게 너무도 따스한 미술관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 브라만티노(Bramantino)작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전시되어 있는 방에서... 유럽의 그 많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작품들을 볼 때를 생각하면 이건 밀라노만의 관람객을 위한 '특별 예우'인 것 같습니다. 승연 씨와 줄곧 둘이서만 신나게 관람을 했으니까요.
이곳 미술대학 학생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언제라도 올라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을 테고, 자신들의 선배의 작품 앞에서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남다르게 되어 자신의 꿈을 날마다 키워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 브레라 예술대학에는 전체 전공 과정과 모든 학년 과정을 포함하여 5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학부는 기본 과정 3년, 전문 과정 2년이고, 석사 과정은 1년이라고 합니다. 기본 과정과 전문 과정은 1학기 800유로, 2학기 500유로이고, 1년 석사 과정인 뉴미디어 아트&디자인 과정은 1만 유로라고 합니다.
브레라 예술대학에서 순수 미술 대학의 회화, 조각, 무대 미술, 데코, 복원 미술은 오랜 전통이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브레라 예술대학 앞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골동품 시장이 서는데 이 또한 굉장한 볼거리라고 전해집니다.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되기까지 각 지역마다 특정 가문의 군주가 지배하는 지방분권체제였으므로 군주들은 앞다투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궁전과 대성당을 지었고, 다른 지역들과 경쟁했습니다. 스포르차 가문의 루드비코 스포르차(일 모로) 역시 피렌체의 메디치가처럼 덕망있고 존경받는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떨치고 싶어했기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브라만테를 초청해 명작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한 예로 이것은 그로가 그린 "자파의 페스트 격리소를 방문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작품입니다. 프랑스는 이집트 원정 당시 자파의 요새를 점령했으나 곧 끔찍한 페스트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그림은 전염도 두려워하지 않고 병사들을 위문한 나폴레옹의 용기와 인간애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병든 병사들을 안락사 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소문을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그려졌습니다. 나폴레옹에게 회화는 선전공작의 일부였던 것이지요.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로 미술품을 모아 들였습니다.
- 나폴레옹의 키는 150cm도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이라고 알려졌는데,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인의 평균 신장에 대비해 보면 절대 왜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경호병들의 키가 거의 190cm를 웃돌아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feet 기준으로 봐도 프랑스와 영국의 도량 기준의 차이 때문에 프랑스식으로 환산된 나폴레옹의 키가 영국식으로 잘못 환산되어 나폴레옹이 난장이로 취급받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군주들은 미술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함으로써 걸작들을 남기게 되었고, 그럼으로 해서 자신의 권력과 가문을 드높이는 선전도구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으나, 군주와 정치가가 일체가 되어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 해서 그 지역만의 예술이 남다르게 보존되어 오늘날과 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마다의 특색으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의 역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항입니다.
나폴레옹시대에는 전세계적인 예술품 약탈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약탈한 미술품은 루브르 박물관을 채우고도 남아 나폴레옹 지배 아래 있던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을 세우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미술품들을 모조리 약탈해 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작품들로 미술관을 세우게 한 데 대한 공로로 미술관 한복판에 나폴레옹의 동상을 멋지게 세워주는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이 착한 건지 포용성이 깊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 개장시간: 화~일 8:30-19:15, 월요일 휴관.
입장료: 5유로.
URL: 브레라 미술관
단, 허위 신고 금지!
허위 신고로 판단되는 경우, 해당 아이디는 이용 정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