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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애의 Naver 블로그 "디카로 그리다"
2011.08.23 17:20

[re] 북악 라이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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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그토록 자전거를 좋아하시니 사뭇 그의 매력이 궁금해 지더군요.
자전거에 대한 책도 굉장히 많이 나오고...놀라운 세계였어요.*^^*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中  

"그는 페달을 밟으며 자신의 삶에 맞는 속도로 살고 있는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빨리 달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일주일에 며칠은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는다.
시속 15 킬로미터 정도다.
그때마다 나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러니까 적당한 속도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자전거, 내게 페달을 밟는 건 시속 60 혹은 80 킬로미터의 속도에 맞춰진 내 삶을 적당한 빠르기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건 좋은 일이고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탄다. 계속해서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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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 안도현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 자전거가 되리
한편생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거리지 않고
말랑말랑한 맨발로 땅을 만져보리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반듯한 길은 구부리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
내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리
가위가 광목천 가르듯이 바람을 가르겠지만
바람을 찢어발기진 않으리
나 어느날은 구름이 머문 곳의 주소를 물으러 가고
또 어느날은 잃어버린 달의 반지를 찾으러 가기도 하리
페달을 밟는 발바닥은 촉촉해지고 발목은 굵어지고
종아리는 딴딴해지리
게을러지고 싶으면 체인을 몰래 스르르 풀고
페달을 헛돌게도 하리
굴러가는 시간보다 담벼락에 어깨를 기대고
바퀴살로 햇살이나 하릴없이 돌리는 날이 많을수록 좋으리
그러다가 천천히 언덕 위 옛 애인의 집도 찾아가리
언덕이 가팔라 삼 십년이 더 걸렸다고 농을 쳐도 그녀는 웃으리
돌아가는 내리막길에서는 뒷짐 지고 휘파람을 휘휘 불리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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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의 기원

우리 나라에서 자전거가 언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개화기였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고휘성(高羲誠)이 1896년에 장안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것이 처음이라고 하고,
같은 해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현장에 갈 때 처음으로 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은 자전거를 '괴물차' 혹은 '나르는 새' 라느니 하며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후 약2년이 지난 1898년에 윤치호(尹致昊)가 하와이로부터 도입해 왔는데이것이 두 번째다.
통 타이어를 사용한 이 자전거는 매우 엉성하였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굴곡이 많은 길을 종횡 무진으로 달리는 이 자전거는 심지어 '자행차(自行車)' , 또는 '축지차' 라는 별명까지 생겨 큰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츰 한 대씩 들어오게 되었는데,
1903년 가을에는 조정의 관리들을 위해 1백대의 자전거를 도입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자전거의 인식이 호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자전거는 교통 수단으로, 그리고 운반 수단으로 그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상주의 자전거 역사는 1910년부터 행정의 효율성을 돕기 위하여 각면에 자전거를 보급하게 된 것이 시초였다.
이때 보급된 자전거는 주로<라지>와 <후지>자전거가 주로 보급되었다.
자전거의 크기는 28인치로 한국사람에게는 높아서 타기가 힘들었다.
* 당시 자전거의 가격은 약 30원(쌀1가마니가 3원이므로 10가마니 가격)이나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또한, 1928년경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있던이용설은 여가 선용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의 자전거 제조는 수리용을 주로한 부품의 생산에서 시작되어1950년 후반에 이르러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1994년도에는 118만6천4백대를 생산하여 세계주요 자전거 생산국이 되었으며,
차종도 실용 중심에서 레저용 등으로 다양화되었고 수출도 많이 하고 있다.
(자료발췌 : 자 이제 자전거로 갑시다."박성득외 2인",상주시장 저널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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