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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통신/인터넷
2013.08.13 21:42

[September 29, 1992] 키보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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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에 관하여...

박순백, September 29, 1992 - 글 원본은 위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어떤 키보드

하이텔의 수퍼스타인 김현국(pctools) 씨가 필자에게 치코니(Chicony) 키보드를 선물하였
다. 사실 이 제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가 김현국 씨의 글을 읽으면서 치코니란 이름
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후 이 키보드를 사용하는 몇 사람으로부터 또 이 키보드에 대한
얘기를 듣고나서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알고 보니 하이텔 사용자들의 치코니
키보드에 대한 관심은 그 진원지가 김현국 씨였다. 하여간 첨단(state-of-the-art)의 키보드라
면 전설적인 셀렉트릭(Selectric) 전동 타자기의 키보드, 키트로닉(Keytronic) 키보드, 오리지널 애
플 ][의 키보드 등 PC 초기 시절의 것과 옴니키/울트라(Omnikey/Ultra) 등의 좋은 키보드만을 생
각하고 있던 내게는 좀 의외의 정보였다.


일단 선물 받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려 보았다. 현재 필자가 쓰고 있는 것은 짤깍대는
소리(어떤 분들은 "또깍댄다."고 표현한다)가 별로 안 나는 것인데, 이것은 그 소리가 비교적 셌
다. 소위 택타일(tactile) 방식의 키보드인 것이다. 필자는 원래 이런 방식의 키보드를 좋아했으
므로 그 건 괜찮다고 느꼈다. 이 치코니(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의 옆모양은 위로 배가 나온 것
처럼 생겼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키보드의 글자판 자체는 그렇지 않은데 단지 옆면의 양단만을
위로 둥글게 처리한 것이었다. 인간공학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키보드들은 옆에서 키의 배열을
볼 때 가장 하단과 최상단이 가장 많이 튀어나오고, 중간은 배가 들어간 모양이라야 한다. 치코
니는 가장 보편적인 구형 BTC(큐닉스의 옴니 스테이션이 이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처럼 밋
밋한 평면형은 아니고, 올텍(Ortek) 등과 비슷한 정도였다. 즉, 인간공학을 중시하는 회사들의 것
만큼 둥글게 처리되지는 않고 있었다.

치코니를 분해하고 난 느낌

필자는 84키보드만을 쓰므로 101키 타입의 키보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이것은 하필
이면 101키 타입이었다(하기사 요즘은 84 키를 보기가 더 힘들다). 하지만 치코니 키보드에 대한
관심이 있던 차여서, 필자는 이 키보드를 뜯어보기로 했다. 뜯는 데는 불편했다. 두 개의 드라
이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키보드들은 대체로 4개 내지 5개의 너트로써 고정되는 것이 보통이
다. 안 좋은 키보드일수록 이 너트의 개수가 불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너트의 수가 적은 키보
드들은 상하의 플라스틱 모울드가 서로 결합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너트는
이미 결합된 것을 좀 더 확실하게 지탱해 주기 위해서만 필요할 뿐이다. 너트를 많이 사용하는
것들은 상판은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밑의 판은 철판 등으로 만들어 이를 모두 너트로 조이기 때
문에 오히려 안 좋은 것이다. 상하의 플라스틱 모울드가 결합되지 않는 타입의 것들도 있는데,
밑판을 철판으로 댄 것과 이렇게 따로 떨어진 플라스틱을 너트로 조인 키보드들은 오래 쓰다 보
면 괜한 잡소리가 나는 수도 있다. 요즘은 보통 결합식을 쓰며, 같은 굵기의 너트로 고정을 하는
데, 이 치코니는 세 개의 큰 너트와 아주 작은 두 개의 너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작은 너트를 중
간 크기의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풀다가 너트의 홈이 뭉개져 버렸다(그래도 분해에는 성공을 했
고, 나중에 대체 너트를 구해서 다시 조립했다).


치코니를 외관상으로 볼 때 한 가지 불만이 있었던 것은 코드가 키보드로 연결되는 부분
이었다. 이것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고, 이상하게 조금씩 움직여서 좀 성가셨다. 모울드를 조악
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의심되었다(태국제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러한 의심이 들었음도 부정하지
는 않는다). 하지만 뜯어보니 별 문제는 없는 것이었다. 연결 부위에서만 틈새가 있어서 코드가
불안정하게 고정된 것으로 보였을 뿐 키보드 바로 안쪽에서는 이를 완벽하게 고정하는 플라스틱
의 홈이 있었던 것이다. 이 키보드는 우리 나라에서 특별히 주문하여 생산한 것이라는 걸 외관
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한글 자판은 물론, 한자 키와 한/영 키를 따로 가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뜯어보니 모울딩된 상하 판이 매우 정교하게 들어맞아 있었고, 키 스
위치들이 고정되어 있는 중간의 판이 밑의 모울드에 매우 견고하게 끼워 맞춰 있었다. 그 정도
면 일단 필자의 규격(?)에 비추어 봐도 합격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모울딩된 플라스틱에
는 푸른 스탬프로 Daewoo라고 찍혀 있었으며, 컨트롤 칩은 한국에서 제작된 듯 Korea라고 쓰여
있었고, Chicony - Ver-K라고 쓰여 있는 것이 Ver(sion)-K(orea)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키 스위치는 일본제 알프스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알프스 사의 제품이라는 것은
일단 이 키보드가 키 스위치의 수명에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알프스 사의
키는 그 성능에 있어서 평균고장시간(MTBF) 간격이 타사의 1.5배 이상 3배 정도나 긴 것이 보통
이기 때문이다(그럼 문제는 이제 키보드의 케이스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 등으로 압축된다).
이의 명세서에는 XT/AT 절환 스위치가 오른편 밑바닥의 리트랙터블(접을 수 있는) 받
침대를 올리면 나온다고 써 있어서 필자를 실망시켰다. 요즘은 키보드가 시스템이 XT인지 AT
인지를 자동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AT 초창기의 제품처럼 스위칭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
에 들지 않았던 때문이다(그리고 XT가 거의 사라진 지금 이런 장치가 무엇에 필요한가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 KB-5191R이란 모델은 역시 자동 인식형이었다. 이 키보드의 플라스틱 모울드
는 예전 모델의 것을 그냥 쓰고 있는지 그 자리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밑으로 PCB
기판이 보였다.


일단 모든 면을 살펴보고 다시 타자를 해보았다. 택타일 방식이어서 여기서 나는 짤깍
대는 소리는 비교적 경쾌했다. 가장 경쾌한 느낌을 주는 IBM의 셀렉트릭(전자 타자기) 키보드에
비해서는 덜 경쾌했지만, CPT 등의 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audio tactile feedback: 소위 택타
일 방식의 공식 명칭) 방식의 키보드보다는 더 경쾌했다. 타자를 하면서 나는 소리는 무조건 경
쾌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키 캡이 가장 많이 눌려졌을 때 약간 탁한
느낌이 드는, CPT나 Wang, Rainier 등, 거의 모든 본격적인 전용 워드 프로세서의 키보드도 매
우 좋아하는 편이다(취향이란 것은 변덕스러운 것이어서 셀렉트릭 키보드를 사용할 때의 대단한
경쾌함도 즐겁지만, CPT 키보드 등의 뒤끝의 음이 퍼지는 감촉도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이
다).


셀렉트릭의 키보드는 타자를 할 때 키보드가 결코 무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눌
림에 있어서는 약간의 저항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것이 손가락 끝에 약간의 긴장을 가져오게
되며, 이는 타자에 임하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줄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 자세까지 바꿔 놓게 된
다. 울림이 영롱한 짤깍거림도 타자수에게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 이에 비하여 본격적
인 워드 프로세서들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거의 저항감이 전혀 없이 가벼우나 키를 누르는 마
지막 터취가 마치 살짝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키 스위치가 고정된 철판의
아래 부분에 설치된 실리콘 패드에 의해 철판의 울림이 희석되도록 한, 약간 탁한 음이 들리는
것도 이의 특징이다.


이 두 가지의 느낌과 비교할 때 치코니의 것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정도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요즘 한국 시장에 많이 들어오고 있는 대만제 올텍의 것과 키를 누르는 느낌은 거의 같
았지만, 그 차이는 올텍의 키를 세게 치는 경우 가장 끝음이 지나치게 많이 퍼지는 것 같고, 치코
니의 것은 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키 스위치가 잘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하면
BTC의 대부분의 제품들은 지나치게 쉽게 키가 눌려지기 때문에 키보드를 누른다는 느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택타일 방식처럼 어느 만큼 눌렀을 때 글자가 발생되는지의 감도조차 느껴지지 않
는 등 매우 재미가 없는 것이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저항감도 없이 눌려진 키보드가 가장 깊이
눌려진 상태에서는 지나치게 탁한 음을 내므로 타자의 맥을 끊는 것도 이 키보드의 문제라고 하
겠다. 올텍은 가격에 비해서는 좋은 키보드이다. 이것은 다른 것과 달리 키보드 코드를 끼워 넣
고 고정할 수 있는 홈이 키보드의 중앙 하단에 양쪽으로 파여 있어서 컴퓨터를 설치한 후 키보드
코드의 방향을 정하기 편하게 되어 있다(별 것이 아닌 듯 하면서도 이는 매우 세심한 배려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 가지 소프트웨어를 위해 빳빳한 종이에 인쇄된 여러 장의 템플릿
(template)을 제공하고 있으며,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따라서 이를 쉽게 넘겨볼 수 있는 장치가 키
보드 상단에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치코니에는 이런 배려까지는 되어 있지 않다.


한/사/모/의 오재철 씨는 이 키보드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문
자 키와 기능 키 간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불편하고, 그래서 다른 키를 건드리지 않도록 손가락
을 길게 뽑아서 기능 키를 누르는 것도 고역이라는 것이다. 이 키보드는 타자시 약간의 잡음을
내고 있는데, 이를 두 손으로 들고 좌우로 세게 흔들어 보면 키 캡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정
도이므로 이 키들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가를 의심케 하기도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하지만 필자
가 본 것은 매우 잘 고정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런 문제는 없었다).


타자기의 키보드들

필자는 1971년에 최초로 타자를 배운 이후에 약 3년 정도의 휴지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키보드를 만져 왔기 때문에 키보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1976
년까지는 수동 타자기를 주로 만져 왔기 때문에 이의 터취라든가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수동 타자기로는 애들러(Adler), 올리베티의 전신인 언더우드, 올리베티, 허미스
(Hermes), 스미스 코로나, 브라더, 시티즌 등 다양한 수동 타자기들을 다뤄 봤다. 제일 먼저 구
입했던 것은 올리베티의 스튜디오 46이란 기종이었다. 이것은 알루미늄 바디(body)이되, 데스크
탑용처럼 육중한 것이 아니고, 반 포터블에 해당하는 것이며, 비교적 납작한 형태의 것이었다(컴
퓨터로 치면 예전에 나왔던 오스본 컴퓨터 정도의 포터빌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좋으리라).
이것은 터취가 매우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먹지를 대고 타자해야 하는 경우 복사본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하지만 데스크 탑용들은 너무 키가 무거워서 필자는 그것으로는 타자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은 무려 10매 정도의 먹지를 대고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위에서 열
거한 모델들 중에서는 일본제인 브라더의 포터블형이 매우 터취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것은 키가 눌리는 길이가 짧아서 매우 빠르게 타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며, 키를 누르는 힘
도 적게 들었고, 또 타자를 하고 나면 그 세그먼트가 튀어 오르는 것처럼 약간의 반발력이 느껴
졌기 때문에 항상 손가락에 적당한 긴장이 느껴졌고, 그런 이유로 머리끝을 쭈삣 세운 채로(?) 타
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독제 타자기로서 예쁜 금발 게르
만(German) 여자의 이름을 가진 "에리카"란 것과 바꿨다(에리카는 동일한 모델을 VGA 카드나
헤이즈의 보급형 9600bps 모뎀과 같은 이름인 "옵티마"란 이름으로도 판매했었다).


브라더와 에리카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에리카는 타자하는데 매우 힘이 많이 들었으
며, 키를 깊이 눌러야만 했다. 결국 모든 면에서 유리한 브라더를 포기한 것은 변덕 때문이었다.
터취를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얄상하게 생긴 일제보다는 뭔가 듬직한 독일제(처음엔 그
게 동독제인줄 몰랐다)가 좋아 보였던 까닭도 있었다. 이것은 영문을 타자하는데 쓰고, 올리베티
타자기는 네벌식 표준(?) 한글 자판으로 개조하였다. 올리베티 타자기는 지나치게 키 터취가 가
벼웠고, 알루미늄 바디임에도 불구하고 글자가 쳐지는 순간에 키가 탕탕 튀는 가벼운 느낌까지
있었다.


1978년도에 시티즌 사의 전동 타자기를 가지게 됨에 따라서 키보드에 대한 상황이 달라
지게 되었다. 이것은 깊이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면에서 전의 수동 타자기들과 차이가 있었고,
약간만 힘이 가해지면 강한 힘으로 원치도 않는 글자가 쳐지는 바람에 애로가 있었다. 재깍거
리며 키가 눌려지면 타자가 되는데 전의 수동 타자기는 어느 정도 깊이로, 어느 만큼의 힘으로
누르면 타자가 되는지 알 수 있었고, 그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일할 수 있었으나 전동 타자기는
키를 누르는 순간에 타자가 되기 때문에 타이핑의 페이스(pace)를 잃는 것도 어려움이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키에 숙달이 됨에 따라서 수동 타자기는 전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현재의 컴퓨터 키보드보다는 약간 깊숙이 눌러야만 키가 눌려지는 것이었고, 택타
일 방식이었다. 게다가 키 스위치는 키 캡(key cap)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렛대처럼
만들어진 키를 누르면 다른 곳에 있는 키가 눌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셀렉트릭 타입의 IBM 타자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타자기의 키보드가 주는
느낌은 다른 전동 타자기와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그 중요한 이유는 키 캡의 바로 밑에 키 스위
치가 부착되어 있는 때문이었다. 이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비로소 키보드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
었다. 하지만 이것도 최고봉은 아니었다. 이 키보드는 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 방식을 사용하
지 않고 있었다. IBM 사가 "워드 프로세싱"이란 말을 만들어 최초로 사용하게 만든 바로 그 기
종인 IBM의 메모리 타자기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이 택타일 방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아주 완벽한 택타일 방식이었다. 하기사 이 방식을 세상에 소개한 바로 그 기종이 메모리 타자
기었으며, 그것이 세상에 최초로 나타난 전용 워드 프로세서였던 것이니......

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 메커니즘의 장점과 첵 섬(check sum) 에러

"택타일"이라는 용어는 "촉각의, 감촉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방식은 키보드를
누를 때 째깍째깍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의 감촉이 손가락에 느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마치 조그마한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는 키 캡
밑에 달린 스위치를 "On, Off" 시키는 것이다. 이런 키보드는 비교적 단단한 촉감을 가지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이를 사용해도 피로감이 덜 느껴진다. 더욱이 이 키보드는 소위 스컬프츄
어드(sculptured)형이어서 배열된 키보드 각 층의 각도가 약간씩 달라져서 보다 타이핑에 용이하
고 오타를 방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비교적 단단한 촉감을 가진 키보드를 연속적으로 누르다 보면 이의 적당한 촉감을 찾
게 되고, 이런 촉감은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항상 손목에 적당한 긴장감을 가져다줌으로써 역시
오타를 방지하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오타를 없애는 일에 관한 한 이 오디오 택타일 방
식은 매우 도움이 된다. 어떤 원고를 청서(靑書)하기 위하여 타이핑을 할 때 이 속도가 1분당 50
자로부터 150자 정도 되는 형편없는 실력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의 두 배 가까운 속도로
이를 두드리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한 글자를 건너뛰어 버리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사람의
귀는 매우 놀라운 역할을 한다. 즉, 아홉 개의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고, 눈
은 원고에 쓰인 각 단어들의 철자를 본다. 그런데 이 때 사람들은 철자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무
의식중에 이 철자의 수를 헤아리고, 이의 숫자를 인간의 중앙처리장치인 두뇌의 임시 기억장치에
저장시킨다. 그리고 키보드에서 들려 오는 째깍대는 소리의 숫자는 귀라는 감지 장치를 통하여
두뇌에 도달하게 되며, 이 째깍대는 소리의 숫자는 미리 기억된 철자의 숫자와 비교되게 된다. 그
리고 여기서 비교된 숫자가 많거나 적거나 하는 차이가 나게 되면 타자 상의 실수(typing error)
가 생겼다는 -- 확연한 느낌이 아닌 --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게 되고 컴퓨터의 화면이나, 타
자기의 인쇄 용지를 보게 되면 아니나 다를까 실수가 발생하여 있는 것이다. 컴퓨터 통신을 하
면서 알게 되는 패리티 비트(parity bit)라든가, 첵 섬 에러 등과 이를 연관시켜 보자. 이 건 손가
락의 움직임과 두뇌가 함께 통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로서, 컴퓨터 통신 이전의 통신 상황이며,
두 가지는 완전히 같은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위의 장점 때문에 많은 컴퓨터들이 이
러한, 비교적 역사가 오랜, 키보드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IBM 메모리 타자기식의 기계식(기계
적인 접촉식)을 채택하지 않고, 묵음 타입의 키보드를 채택하고 있는 기종일지라도 스피커를 이용
하여 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달게 된 것이다.


가끔 성질이 못된 사람들은(좋게 말해서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택타일 방식의 키보
드에서 들려 오는 째깍대는 소리를 못 견뎌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콘덴서 타입의 키
보드가 적격이다. 콘덴서 타입의 키보드는 이를 누를 때 거의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은 택타일과는 달리 스위치가 직접적으로 접촉되지 않아도 이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말로써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하나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즉, 이것은 코일을
둥글게 말아서 그 가운데로 자석을 넣었다 뺐다 하면 전기가 발생되는 것과 비슷하게 키보드를
눌렀다 뗐다 하여 그 밑에 장치된 콘덴서의 용량의 변화가 생기고 이로써 스위치의 역할을 대신
하는 것이다. 원래 콘덴서라는 것은 양극이 직접 닿지는 않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원리를 이
용한 키보드는 거의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가 나지 않는 묵음(silent type)의 키보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키보드는 대부분 스피커를 통한 소리 발생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스피커에서 나
는 소리가 성가시게 느껴지면 이를 끌 수 있는 장치를 함께 가지고 있다.


지금은 기계식 스위치를 부착한 키보드가 승리한 시대이다. 전에는 실리콘 패드(silicone
pad)가 밑에 달린 키보드도 있었다. 이 키보드는 스프링 대신에 키 캡 밑에 고무질의 판을 깔고
있는데, 키 캡 바로 밑에 실리콘이 살짝 튀어 올라와 있다. 그리고 이 튀어 오른 실리콘 판의 바
닥 바로 아래에 키 스위치를 연결하여 주는 동그란 판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키 캡
에 힘이 가해지면 이것이 부드럽게 내려가면서 스위치를 연결시켜 주는 방식이다. 이것을 칠 때
는 스프링을 사용하는 기계식 키보드에 비하여 가벼운 터취로써 빠르게 타자할 수 있으며, 키보
드에서 나는 소리도 비교적 작은 편이다. 그러나 이의 키 캡을 누르면 그 충격이 고무질의 패드
에서 죽어 버리므로 매우 탁한, "생명력이 없는 소리"가 나게 된다. 매력 없는 키보드인 것이다.
이 키보드는 만들기 편하면서도 재료 공학적인 면에서는 수월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쉽게 모울
드를 떠서 한 번엔 키 스위치가 담긴 판을 만들 수 있으되, 균일한 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실리콘 탄성이 죽지 않는 제품, 실리콘의 피로도가 적은 제품을 만들기 어려운 까
닭이다.


멤브레인(membrane) 키보드는 이보다 더 매력이 없는 것이다. 이 멤브레인이라는 것
은 얇은 막을 의미한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컴퓨터 키보드 모양이 인쇄된 얇지만 극히 질긴 폴리
에스터를 사용하여 각 키 캡 밑에 극히 정교한 스위치를 설치하고, 이 플라스틱 막에 인쇄된 글
자를 누르면 그 글자가 입력되는 것이다(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든 휴대용 계산기는 매우 흔하다).
이를 통하여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매우 큰 고역을 치르기 마련이다. 이들 다른
방식의 키보드를 생각해 보면 왜 기계식/택타일 타입의 키보드가 PC에 채택되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 키보드들

필자가 IBM 메모리 타자기를 사용한 직후에 써 본 키보드는 바로 실리콘 패드 타입으로
서 탠디 래디오 색(Tandy Radio Shack) 사의 것이었다. 값은 비싼 것이었지만 그것은 메모리
타자기의 좋은 키보드에 익숙한 내게는 매우 흥미 없는 키보드였다. 그후에는 청계천에서 만든
복사판 애플의 키보드를 써 보았는데, 이 건 그야말로 악몽 같은 것이었다. 당시의 복사판 애플
은 몸체도 플라스틱이 아니고 철판을 구부리고, 땜질해서 만든 것인데다가, 아주 조악한 대만제나
국산 키보드가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키가 잘 눌려지지도 않았고, 타자를 하다 보면 키 캡이 자
꾸 밀려 올라오기도 하는 희한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게다가 타자를 할 때면 키보드를 누르는
탁한 소리가 철판 통속에서 울려나오기까지 했다. 그래서 애플의 키보드에 대해서는 아주 안 좋
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오리지널 애플의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그 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복사판의 무겁고, 삐걱거리며, 분명히 눌렀음에도 글자가 입력되지
않고, 툭하면 키 캡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는 달리 매우 가벼운 촉감에, 살짝 눌러도 조금도 실수
없이 문자가 입력되는 그런 제품이었던 것이다. 단지 이것이 가진 문제는 몇 개의 키보드의 배열
이 업계의 표준이었던 셀렉트릭 전동 타자기의 것과 다른 점, 그리고 대, 소문자가 쉬프트(Shift)
키로써 구별되지 않고 대문자만 나오는 점 등이었다. 애플 컴퓨터 사는 "애플 IIe"라는 모델을
제작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워드 프로세싱에도 적합할 정도의 키보드를 갖추게 되고, 나중에
리자와 매킨토시의 발표에 이르러서는 드보락 자판까지 지원하는 예술적인 수준의 키보드를 선보
이게 된다.

16비트 PC 시대에 이르러서

IBM이 PC를 만들면서 키보드에 대한 상황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PC들은 대부분
워드 프로세싱을 고려하여 만들어 진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망해서 갑일 전자로 넘어간 미국의
텔리비디오(TeleVideo) 사의 터미널이나, 이 회사의 PC에 부착되어 있던 키보드는 워드스미스
(Wordsmith)들을 감동시키기에도 충분할 정도의 키보드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의 키보드가
주는 감촉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아주" 좋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이 덩치가 큰
서구인들을 대상으로 만들었기에 키가 무겁고 우리처럼 힘이 약한 사람들은 쓰기가 힘이 들었던
때문이다).


이 당시에 IBM 사는 자신들이 세운 셀렉트릭 표준의 키보드 배열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
린다(셀렉트릭 표준 배열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84 키보드의 배열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것은 "ENTER" 키의 위치를 바꾸고, 그 키를 조그맣게 만들었으며, "Z" 키 옆에 백 슬래쉬 키 등
을 배치함으로써 기본적인 키의 혼동과 함께 쉬프트(Shift)키를 누르려다가 백 슬래쉬 키를 누르
게 하곤 했다. 이 결과 모든 키가 원래의 셀렉트릭 표준의 자판 배열대로 놓여 있고, 또 인체 공
학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키트로닉(Keytronic) 회사의 키보드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게 된다. 필자
는 이 키트로닉 사의 애플용 키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현재 PC의 84 키보드와 거의 같
은 것이었다. 애플 컴퓨터는 기능 키가 두 개 밖에 없으며, 뉴메릭 키 패드가 없는데, 이것은 열
개의 중요한 베이직 명령어를 포함하고 있는 기능 키가 있었고, 뉴메릭 키패드가 있었으며, 엔터
키가 애플과는 달리 커다란 키로 어포스트로피(') 키 바로 옆에 있었고, 애플이 대문자만 발생시
키는데, 소문자를 발생시키는 장치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 키보드는 애플의 키보드는 본체에
부착되어 있어서 쓰기에 불편한데, 현재의 것들과 같이 긴 코드가 달려 있는 분리형이어서 편히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이것은 케이스가 모울딩된 알루미늄이어서 무게가 엄청나게 많이 나갔으며,
복사판 애플의 키보드를 칠 때 나는 철판 통 속의 울림이 없었고, 택타일 방식이어서 사용하는
느낌도 좋았다(치코니는 키보드의 무게가 가벼워서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느낌이다. 한참 사
용하다 보면 이것이 앞으로 밀려난다는 불평을 하는 사용자도 있다). 키트로닉은 그야말로 예술
적인 키보드의 대명사였고, 컴퓨터 생산 업체가 아닌 본격적인 키보드 업체로서는 최초의 것이었
다(요즘의 본격적인 키보드 업체는 옴니키/울트라를 생산하는 노스게이트 사라고 하겠다). 결국
현명치 못하게 만들어진 IBM 사의 키보드는 훨씬 뒤에 나오게 되는 AT 모델에서는 셀렉트릭의
키보드와 같으면서도 키트로닉의 좋은 아이디어를 절충시킨 키보드, 즉 IBM 84 키보드로 재 탄
생되는 운명을 맞는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면, 텔리비디오 사는 호환 기종의 초기 시절로부터 희한한 문
자 배열을 한 오리지널 PC(5150)와는 달리 올바르게 배열된 셀렉트릭(Selectric)과 동일한 키보드
를 채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역시 키보드의 제작에 관한 한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특히, 그들의 AT 모델이 가지고 있는 키보드는 모든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될 만한 것
이었다. 심지어 이 제품은 놀랍게도 팜 레스트(palm rest)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즉, 스페이스
바의 아랫부분에 타이핑하는 사람의 손바닥이 가볍게 올려 놓여 질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이 확
보되어 있어서, 위에 손바닥을 걸쳐놓으면 팔에 오는 긴장을 없앨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이러한
특별한 장치가 나오기 이전에도 필자는 손바닥을 스페이스 바 밑부분에 올려놓고 타자하는 버릇
이 있었으며, 이러한 버릇은 오랫동안 워드 프로세싱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버릇임을 알
게 되었다). 만약 하루에 일곱, 혹은 여덟 시간 정도씩 워드 프로세싱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리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린 채로 -- 타이핑을 안해도 좋으니 -- 일곱 시간의 반절만큼만 들고
있어 보자. 그렇게 해보면 왜 워드 프로세싱 전문가들이 손바닥을 키보드의 밑부분에 걸쳐놓고,
혹은 키보드 하단에 그와 같은 높이의 막대 등을 놓은 후에 여기에 손바닥을 의지하고 타이핑하
는 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텔리비디오 사가 "팜 레스트"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고, 이러
한 장치를 채택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팜 레스트를 가진 키보
드가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하지만 요즘 경화성 플라스틱 거품(foam) 등으로
만들어진 독립된 팜 레스트가 싼값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인간공학을 이해하는 컴퓨터 액세서리 메
이커들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수준급인 현재의 키보드들

PC 초기 시절의 키보드들과 최근의 키보드를 비교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어떤 키보드라고 할지라도 대체로 수준급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인간공학적인 배려가 많
이 행해져 있는 것이다. 사실 키보드만큼 인간공학적인 배려를 요구하는 제품은 컴퓨터 시스템
중에서 모니터 등을 빼고는 거의 없을 것이며, 키보드는 모니터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제품인 것이다. 하잘 것 없는 키 캡에 있어서도 그같은 배려가 있다. PC 초기
시절의 키보드를 누르면 이것은 키 캡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정확히 상하 운동만을 하였다. 그
러나 IBM PC의 출현 이후의 특징적인 변화는 이의 키 캡을 손끝으로 흔들어 보면 이것이 여러
방향으로 살그머니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요지부동이던 키 캡에 익숙하여 있던 사
람들은 이를 오해하게 마련이었다. 제작 과정에서 고정을 잘 못하여 그런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다. 하지만 이것은 상당한 연구의 결과이다. 이것은 인간의 손이 아무리 키보드에 숙달되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키 캡을 상하로만 눌러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고안된 것이다. 약간 비뚜로 타이
핑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키 캡이 그 움직임을 받아서 살짝 누움으로써 오히려 전 같으면 오타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을 바로 잡아 주는 작용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노력의
결과는 어떤 칭찬도 부족할 지경인 것이다(치코니의 키 캡은 이 움직임이 좀 심하다 보니 약간의
잡소리까지 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이는 필자가 사용해 본 제품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현재 사용되는 PC의 키보드들은 대체로 이같이 하잘 것 없이 보이나 실제로는 많은 노하우가 집
적된 인간공학의 산물이라고 믿어도 좋다.

IBM 사에 대한 불만과 우리의 어떤 키보드

필자는 여러 글에서 왜 84 키보드를 선호하는가에 대해 말한 바가 있다. 단지 왼 손만
으로도 컨트롤, 쉬프트, 앨트(올트) 키와 10개의 기능 키를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고,
101키 이상의 키보드에서처럼 멀리(아니 높게) 숫자 키 위에 있는 기능 키를 오른 손으로 누르고
왼손으로 컨트롤 키 등을 누르는 비합리적인 일을 하지 않기 위함이다. 또한 커서 이동키를 굳
이 따로 독립시켜 숫자 키 패드를 오른편에서 멀리 배치한 것도 불만이다. 특히 AT 시절 이후
에 아무 문제가 없이 사용되어 오던 키보드의 배열을 PS/2의 최초 기종인 모델 30을 만들면서
101키로 전향하여, 컨트롤 키 자리에 캡스록을 넣고, 엉뚱한 곳에 컨트롤 키를 배치하고, 에스케
이프 키의 위치를 변경하는 등의 엉뚱한 일을 왜 IBM 사가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IBM과 같은 대회사들은 괜히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티가 나야만 한다고
믿으며, 또 남들은 다 자신들을 추종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에 우리 나라 컴퓨터 산업에서도 수출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어느 국산
키보드를 보니 이 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IBM이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이 건 그 IBM 사마저도 이젠 더 이상 실수를 안하게 된 엔터 키의 위치 변경과 함께
엔터 키를 전과는 거꾸로 "ㄱ"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 등의 실수를 하고 있었다.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DSC04826.JPG


손에 붙는다는 느낌 등

치코니란 이름은 국제 시장에서는 그리 유명한 이름이 아닌 것 같다. 필자가 본 어떤
외국 잡지에서도 그에 대한 테스트 리포트나 칼럼니스트들의 평가를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서 체리, 키트로닉(요즘은 마우스도 생산하며, 터미널 PC용의 다기능 키
보드도 생산한다), 옴니키 등은 매우 유명한 키보드이다. 체리 키보드는 비교적 우리 사용자들에
게 알려져 있다. 보석글 워드 프로세서를 소개하여 본격적인 한글 워드 프로세싱을 가능케 한
회사는 삼보 컴퓨터 사이다. 이들은 보석글을 THP의 그래픽 도스 한글을 이용해서 쓸 수 있도
록 만듦으로써 대만제 호환 기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그로써 한국 PC의 대명사
가 되었다. 이 보석글을 삼보의 제품에서 쓰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채택한
키보드가 바로 그 유명한 독일제의 체리 키보드였기 때문이다. 키보드가 손에 붙는다는 느낌에
있어서 이 체리 키보드를 당할 키보드는 없을 것이다. 이는 택타일 방식이긴 했지만 비교적 소
리가 적었고, 키가 세게 눌려졌을 때 튀는 느낌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대체로 키보드가
튀는 느낌이 있는 경우에는 오자의 발생이 생기는 것이 많다. 하지만 워드 프로세싱 전용기나
극히 우수한 키보드 중에는 전혀 오자의 발생이 없이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 물론 개중에
는 1-2년 쓰고 나면 몇 개의 문자가 잘 입력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대체로 보아서
는 좋은 키보드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설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키보드가 손가락에 달라붙는 느낌"
에 관해서 이다. 이런 느낌, 혹은 키보드가 "착착 감겨 온다."는 비과학적인(?) 느낌은 키보드를
누른 후에 이것이 재빠르게 되돌아오되, 지나친 반동을 주지 않고 따라오는 것 때문에 가지게 된
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키 캡을 누른 손가락을 빨리 들어올려도 키 캡이 손가락에 계속 붙어
부드럽게 따라 올라오기에 이런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키 캡 표면이 얼마나 매끄
럽게 처리되었는가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실제로 키보드의 표면은 극히 미세한 요철 처리가 되
어 있다. 만약 이를 완전히 매끈하게 만들게 되면 오래 타자하게 되는 경우에 손가락 끝에 땀과
약간의 기름때가 형성되어, 손가락이 키보드에 달라붙는 느낌(이는 키보드가 달라붙는 듯한 느낌
과 전혀 반대되는 일이다.)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이 경우에는 손가락을 비누칠을 해서 씻는 것이
좋다. 아니면 재빠른 타자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 중심
키인 "J"와 "F" 키 등은 반질반질 닳아 버리기 일쑤이고, 손가락이 이에 달라붙는 느낌을 지니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타자 자체에는 별로 안 좋지만 자신이 그 키보드를 그 만큼 오래 사용했다는
데서 오는 정신적인 만족을 느끼는 수가 많다.

알프스 타입의 84 키보드 선호

그 후 알프스 키보드가 나타났다. 87년의 일로서 금성 사가 286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함께 이 알프스 키보드를 소개했던 것이다. 알프스 키보드, 혹은 알프스 타입의 키보드라는 용어
가 흔히 사용되는데, 실상 이것은 옳은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의 알프스 사는 전기적인 접
점을 기막히게 만드는 전문 회사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부품을 가지고 만드는
전자 제품들은 접점이 불량하여 래디오의 볼륨을 돌리면 찍찍대는 잡소리가 나기도 하고, 작은
불꽃이 튀면서 접점이 녹아 버리는 등의 일이 다반사였다. 특히 카 래디오의 채널 선국용 키보
드 타입 스위치 등이 그런 문제가 많아서 인지 이런 제품들은 모두 외국산의 부품을 수입해다 쓰
는 불상사가 있었다(물론 이제는 훌륭한 국산품들도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
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음이 유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에서 일본 알프스 사의 제품을 많
이 들여다 쓰게 된 것 같다. 이들은 컴퓨터 키보드에 사용되는 부품, 즉 키 스위치도 기가 막히
게 잘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또한 이들이 마우스의 기계식 접점을 잘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
에서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들의 제품은 금성 사를 통해서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다. 최초에는 모두 수입에 의존
했고, 나중엔 금성-알프스 사가 새로 설립되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키보드가 바로 알프스 키보드
란 이름을 가지게 된 키보드이다. 처음에는 금성-알프스에서 만든 제품은 모두 금성 컴퓨터에만
채용이 되었다. 이 당시 금성 사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키보드에 대한 AS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불량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키보드 사업이 확장되게 되자 이것이 청계
천의 조그만 컴퓨터 상에서 시작한 신성전자의 뉴텍 제품에 쓰이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도 대만
제 키보드를 수입해 쓰면서 그 AS로 골치를 썩히다가 원가에 있어서 약 5,000원 정도가 상승하
는 알프스 키보드로 전환하면서(생산자에게 있어서 이 5,000원은 적은 경비가 아니다), 몇 년간
거의 이의 AS에 대한 걱정을 않아도 좋았다고 한다(이 때는 84 키보드 시절이다). 당시 이 회사
의 박호영 부장은 가장 AS가 많던 키보드 부문에서 문제가 안 생기게 되니 그 원가 부담은 조금
있었지만 AS를 위한 전화 응대며, 기술자 파견 등의 업무가 없어져서 결과적으로 큰 이익을 보
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알프스 키 스위치가 좋았고, 겉모양을 중시하는 금성 사가 워낙 이 키보
드의 모울드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키보드의 모울드는 정말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아무리 키보드를 세게 두드려도 다른 잡음이 안 날 정도이
다.


필자는 금성의 AT 제품을 사면서 이 기계식 키보드(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 방식은
아님)의 성능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적당한 긴장감을 가져다 줄 정도의 키 눌림도 그렇거니와
오랫동안 쓰는 데도 불구하고, 스프링의 세기가 일정하며(어떤 키보드는 이 스프링의 강도가 변
함), 글자가 안 나오는 키가 생기지 않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같은 키보드를 쓰는
사람들로부터도 동일한 리포트를 받게 되는 점으로부터 이 키보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었다고
하겠다.


금성 사에서만 이 키보드를 채택하고 있을 때에도 필자는 어렵사리 한 개의 키보드를 여
분으로 구해 놓았고, 나중에 뉴텍에서 이 키보드를 판매함을 알고 두 개의 키보드를 더 사 놓았
으며, 이 네 개의 키보드는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사용되고 있다(세 개는 필자가, 한 개는
동생이 쓰고 있다). 단 한 번 이 키보드의 고장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개의
키를 두드리면 몇 개의 글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다시 멀쩡해 지다가 어느 순간에 별 희한스
런 에러가 다 나타나곤 했다. 여러 가지로 진단을 해보았지만 키보드의 문제임이 분명했다. 이
를 뜯어서 고치려고 키보드를 거꾸로 들었더니 새까맣고 미세한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
중에 알고 보니 유치원생 아들 녀석이 자석을 시험하기 위하여 자화된(magnetized) 쇳가루를 컴
퓨터 키보드 옆에서 가지고 놀다가 쏟았다는 것이다(이 것이 일으키는 현상은 매우 희한스러운
것이므로 꼭 한 번 시험해 보길 권한다). 결국 이것을 털어 내고 나니 전혀 아무런 이상이 없었
다. 그 이후에는 투명한 사각형 플라스틱 키보드 덮개를 꼭 사용하고 있다. 사실 먼지가 앉은
키보드를 두드릴 때 손가락 끝에 묻어 나는 먼지 가루(?)에 대한 감각이 별로 좋지 않았었는데,
그같은 문제도 키보드 덮개를 사용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마이크로네트의 한규면 선생처럼 키보드에 대한 입맛이 까다로운 분도 이 키보드에 반해
서 한 번에 여러 개를 구입하여 지금까지 쓰고 있으며, (주)한글과컴퓨터에 있는 수십 대의 컴퓨
터가 이 84 키의 알프스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음도 다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재는 이
금성 알프스의 키보드 역시 오우디오 택타일 휘이드백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금성 사는 키
보드 부문의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자사의 제품에는 이를 계속 채택하고 있다.
(이 키보드 부문은 한국 마벨 사에 넘겨졌다.) 결국 치코니 키보드와 금성 알프스의 제품은 별 차
이가 없는 알프스 키 스위치를 기본으로 한 제품으로서 제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금성 알프스의
제품이 더 낫게 생각된다. 이는 이 두 개의 키보드를 분해해 본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알 수 있
을 것이다. 플라스틱 모울드를 만든 정성과 PCB 제작 기술 등에서 금성과 치코니 사(실은 태국
의 어떤 업체의 OEM)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알프스 키보드의 명성이 높아지다 보니 청계천과 용산 컴퓨터 상가에 나가 보면 한 때는
모두 알프스 키보드라며 키보드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감촉이 달라서 보다 정확히 알아보니
"알프스 키 스위치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키 스위치를 사용한" 제품이라서 알프스 키보드라
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대만제의 일본 알프스 사 호환(?) 키 스위치를 단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 성능은 전혀 달랐다.

가격 대 성능비에서 최고의 제품?

키트로닉 키보드는 이미 10년 전에 150불 정도를 하는 비싼 제품이었다. 옴니키/울트라
도 현재 그 정도의 가격이다. 10만원이 훨씬 넘는 정도의 가격이므로 매우 비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가격에 걸맞게 기막힌 성능을 가지고 있는 제품이다. 역시 이 키보드의 촉감이라
든지 그 기능면(특히 알프스 키 스위치를 장착한 옴니키/울트라의 경우)에 있어서 이들 키보드는
다른 어느 것과도 쉽게 비교된다. 그러므로 알프스 키보드나 치코니 키보드 등이 좋다는 것은
가격 대 성능비에서 특히 좋다는 것이지 이것들이 세계 최고의 키보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환언하면, 이들은 가격 대 성능비에서의 세계 최고의 제품이 될 수 있는 키보드라고 하겠다. 하
지만 원래의 치코니 키보드와 비교하여 한국판(한글 자판과 한자 키, 한/영 전환키가 있는) 치코
니 키보드는 성능면에서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음을 부기 한다. 즉, 치코니의 명성은 그 모델
KB-5181CT를 써 본 사용자들에 의하여 확립된 것이고, 필자가 테스트해 본 것은 KB-5191R 모
델이었다. 이것은 대체로 미국 시장에서 35불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이고, KB-5181CT는
이보다 15불이 비싼 50불 정도의 가격이라는 것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50불이라고 해도
옴니키/울트라 등에 비해서는 1/3 가격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같은 모델이라고 할지라도 이것
이 한국화되면서 원가 절감을 위한 지나친 노력(우리의 호환 기종 시장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원래의 것보다는 조악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맺으며

키보드는 개인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어서 84키를 좋아하는 필자는 선물 받은 치코니의
키보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치코니 키보드가 주는 감촉 등에 대해서, 그리고 그 물건의 질
에 대해서는 전혀 아쉬움이 없다. 가격 대 성능비로 보아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필자
는 기능 키 등의 배열이 101키와 비슷한 도시바의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어서 이 101키를 전혀 사
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대체로 인간공학적인 측면을 도외시한 것이어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컴퓨터 사용자가 자신이 쓰는 기계에 대하여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키보드는 모니터와 함께 컴퓨터와 우리들을
연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인터페이스이고, 또 우리와 가장 많이 접하는 귀한 친구인 것이다.

 

DSC04828.JPG

 


 

내가 중시하는 개짓 중의 하나는 키보드
http://www.drspark.net/?document_srl=1010756&mid=gadget&listStyle=viewer

토프레 리얼포스(Realforce) 101 - 무접점의 고급 키보드
http://www.drspark.net/?mid=gadget&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document_srl=170162

키보드를 교체하다.
http://www.drspark.net/?mid=sp_freewriting&page=14&document_srl=982168

스물다섯 살 먹은 키보드
http://www.drspark.net/index.php?document_srl=534247&mid=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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